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13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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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유지웅 입장에서 한국이나 북한이 소비하는 식량과 가축 사료는 크게 걱정할 게 없었다.
‘나에겐 무적의 왼손이 있지. 어둠에 잠식당한 오리나가 영원히 잠들어 있는 이 왼손 말이야.’
날 잡아서 곡물이나 가축 사료를 한곳에 왕창 모아놓은 뒤, 한 번 가서 결정 에너지를 싹 빨아들이면 그만이다.
매일 생산하고 소모하는 식수는 곤란하지만, 식량이나 가축 사료는 이런 식으로 정화해서 먹을 수 있다. 일 년에 몇 번 정도만 날 잡아서 처리하면 되니까.(물은 이런 게 절대 안 된다.)
‘다른 나라들 사정은 어쩔 수 없지만, 뭐 그건 자기들 운명이니까. 내 탓은 아니지.’
같은 원리로 다른 나라 식량이나 곡물 사료를 정화해줄 수도 있다.
하지만 자신은 혼자고, 세상은 넓다.
일 년 365일 하루 24시간을 다른 나라 식량 정화해준다고 돌아다니면서 살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내 절대적 원칙에도 어긋나지.’
유지웅은 나름대로 가슴 속에 세운 원칙이 하나 있었다.
‘당장 세상이 없어질 게 아니라면, 세상을 구하는 건 여가 시간에 해야지.’
세상을 구하려고 태어난 것도 아닌데, 그럴 책임이 있는 것도 아닌데, 자기 인생과 일상을 희생해가면서 구할 마음은 없다.
자신에게도 가족이 있고, 친구가 있고, 생활이 있지 않은가.
그들을 다 잘 챙기고 난 뒤에 남는 시간에 세상을 챙기는 것으로 충분하다. 자신이 손 놓고 있다고 당장 세상이 망해서 무너질 게 아니라면 말이다.
‘그래도 여기 차원축 애들은 힘에 대한 책임을 지라고 지랄 떠는 병신들이 적어서 다행이지. 정작 지들은 평생 봉사활동 한 번 안 가고 키보드질만 하면서 말이야. 역시 초반 컨셉을 잘 잡는 게 중요해.’
헬조선에 떨어진 이후, 세상에 대한 철저한 간격 유지를 제대로 한 덕분에 그런 식으로 귀찮게 하는 이들은 별로 없다.
만약 부지런히 이리저리 돕고 다녔으면 지금쯤 “왜 유지웅 의장은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놀고 있는가!”라는 비난의 목소리가 온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을 것이다.
‘뭐, 일 년에 하루 정도는 시간을 내줄 수도 있지만.’
방법이 아주 없지는 않다.
식량 정화를 원하는 나라들이 일 년치 식량을 한국까지 가져와서 한 군데 쌓아놓는 것이다. 아마 양이 어마어마하겠지?
하지만 그저 결정 에너지를 흡수하기만 하면 되니까, 한 번에 전부 정화를 마칠 수 있다. 일단 결정 에너지가 빠져나간 곡물은 안심하고 먹어도 된다.
물론 그 방법을 세상에 발표할 생각은 없었다. 그러자면 왼손의 비밀을 공개해야 하니까.
영웅이 아니라 도시의 군주가 되고 싶다.
거의 국가급에 맞먹는 거대하고 아름다운 도시의 유일무이한 주인이 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불필요한 수준으로 가진 능력을 드러내서는 안 된다.
능력을 드러내면 사람들은 기대하게 되고, 제멋대로 책임을 부여하고, 자기들을 위해 밤낮의 구분 없이 활약해줄 것을 요구하게 된다.
그것이 영웅을 대하는 군중의 심리다.
때문에 그는 영웅이 아닌, 왕이 되고자 했다. 군중은 영웅에게는 희생을 요구하지만, 왕에게는 자비로운 통치와 군림을 바라기 마련이므로.
“총사무장님.”
“예, 부의장님.”
“수색대는 철수하세요. 이제 원인도 알았겠다, 여기 더 있을 이유가 없군요.”
“알겠습니다.”
“회유 작업도 잊지 마시고요.”
“네, 수색 끝난 기념으로 수색대원들 전원 불러놓고 거하게 선상 파티라도 하겠습니다. 이미 호화 크루즈선 빌려다 놓았습니다.”
“역시 총사무장님. 스케일과 디테일에서 흠잡을 곳이 전혀 없군요.”
유지웅은 엄지손가락을 척 들어 보였다.
니트로도 어깨를 으쓱한 뒤 입을 열었다.
“드론 조사팀도 최소한의 인력만 남기고 철수하겠습니다. 드론 20기 정도만 남기고 주기적으로 관찰하며 결정도 분포에 변화가 없는지 체크할 생각입니다.”
“그렇게 해주세요. 교수님도 복귀하실 거죠?”
“네, 그래야지요.”
그렇게 브라질 철수가 결정되었다.
두꺼운 보고서를 받아든 샘 스미스 중장은 한 자도 빠뜨리지 않고 전부 읽어 내려갔다.
두 시간에 걸쳐 꼼꼼하게 보고서를 읽고 난 샘 중장은 잠시 자신의 눈두덩을 비볐다. 설명하기 힘든 피로감이 엄습해왔다.
잠시 후 새 종이에 만년필로 뭔가를 휘리릭 써내려간 그는 이윽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방금 자신이 작성한 한 장짜리 보고서를 쥔 채, 그는 트럼프 대통령을 찾았다.
“각하, 보고드릴 게 있습니다. 아마존 관련 문제입니다.”
“앉으시게, 샘 중장.”
대통령을 옆으로 보고 자리에 앉은 샘 중장은 요약본을 눈으로 훑으며 생각을 다시 한 번 정리한 뒤 입을 열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물이 결정 에너지에 오염되는 사태는 원천 차단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됩니다.”
“그건 자네의 판단인가, 아니면…….”
“유지웅 의장 및 장태준 총사무장, 그리고 니트로 교수가 의견 일치를 본 내용입니다.”
“흐음. 계속하게.”
“물을 오염시키는 괴수 알은 아마조니온이 낳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알의 개수, 프랑스와 한반도에도 오염 사태가 발생한 점 등을 미루어 볼 때, 아마조니온은 우리가 확인한 것보다 훨씬 많은 개체가 존재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물론 이 역시 국제공격대연합 측의 판단입니다.”
트럼프는 턱을 쓰다듬으면서 설명에 귀를 기울였다.
“그 근거로, 아마조니온이 전장 600미터의 거대한 성체로 자라날 때까지 중간 성장 과정이 발견된 적이 없다는 점을 들고 있습니다. 아마조니온은 생각보다 훨씬 은밀하게 숨어서 서식하는 것으로 판단됩니다. 아마도 뱀 특유의 은폐성이겠죠.”
트럼프의 표정이 점점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 샘 중장은 설명을 계속했다.
“이미 남미, 한반도, 프랑스에서 발견되었다면, 전 세계 어디에 서식하고 있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는 추정입니다.”
“그래서 해결책이 없다는 건가?”
“이유나 메커니즘이나 밝혀진 건 아닙니다만, 알이 강에 잠기면 물에 결정 에너지가 스며듭니다. 그러나 지구상에 존재하는 알이나 아마조니온 성체를 모두 찾아내서 제거한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바퀴벌레 박멸이 불가능한 것처럼 말입니다.”
“…….”
“따라서 제니스 컴퍼니는 아마조니온과 알 제거 작업보다는, 물 자체를 대량으로 정화할 수 있는 결정 에너지 드레인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게 유의미한 해결책이라고 밝혔습니다.”
“……물의 정화라.”
“브라질 공격대가 몇 차례나 아마조니온 레이드에서 실패한 걸 보면 아마조니온 토벌 작전도 거의 쉽지 않으리라 생각됩니다. 레드 몹인 터라 탱커가 한 대만 맞아도 즉사하거나 빈사 상태에 이른다고 합니다. 거의 레이드가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유지웅 의장은 하룻밤 새에 혼자서 두 개체를 모두 잡지 않았나?”
“유지웅 의장은 놀라운 기동력과 지치지 않는 체력, 그리고 정교한 원거리 타격 능력을 갖추었습니다. 여기에 혼자 괴수를 상대해도 당황하지 않는 침착함까지 있지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자신은 한 대도 맞지 않고, 괴수의 방어막을 무력화시켜서 결국에는 쓰러뜨린다, 이것이 유지웅 의장의 사냥 전법입니다.”
뻔히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샘 중장의 입으로 정리된 내용을 들으니 새삼 유지웅이 대단하다는 걸 느끼게 된다.
“그걸 동일하게 해낼 수 있는 레이더나 공격대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각하.”
“끄응…….”
“원거리 딜러들은 기동력이 일반인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렇다고 탱커나 근접 딜러가 일일이 업고 다니면서 공격을 하는 것도 버겁습니다. 자칫 실수라도 해서 잡히게 되면 곧바로 전멸하게 됩니다.”
“알았네. 결정 에너지 드레인 기술이나 더 이야기해보게.”
트럼프는 자신의 지적이 잘못되었음을 인정하고, 다시 화제를 원래 흐름으로 돌렸다.
“제니스 컴퍼니에 모인 네 명의 천재 과학자들이 결정 에너지 드레인 기술을 개발하고, 대량화에 성공한다면 이 문제를 완전히 해결할 수 있습니다. 다만 그 시기가 언제인지 아직 미정이라는 게 문제입니다.”
“일단 당장 안전한 식량과 가축사료를 최대한 확보해서 비축해두는 게 관건이겠군.”
트럼프는 얼마 전 농무부와 상무부가 협력해서 곡물 비축 작업에 들어간다는 보고를 떠올렸다.
아무래도 대통령의 권한으로, 미국의 미래가 걸려 있다 여기고 본격적으로 확보 전쟁을 시작하라고 추가 지시를 내려야 할 것 같다.
“오염된 물이라 해도 가정에서 10리터 단위라 나누어서 24시간 이상 방치하면 결정 에너지가 빠져나가 안심하고 먹을 수 있습니다.”
“최악이 되더라도 당장 먹을 물까지 없어지는 사태는 아니라는 거군.”
“예, 그리고 설령 과잉 축적 현상이 일어난다 해도 그 자체로 죽음에 이를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합니다. 몸에 탈이 나서 일상생활이 불가능해지는 정도지요. 힐러가 힐 한 방만 시전해주면 즉시 낫는다고 합니다. 다행히 레이더들은 과잉 축적 현상의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트럼프는 그 말에 불현듯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잉여 힐러 자원을 전미에 골고루 배치해서 언제 환자가 발생해도 즉시 치료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면? 아니, 애초에 과축적 증세를 일으키든 말든 물과 식량, 고기를 자유롭게 먹게 하고 환자가 경미 증상을 보일 때마다 힐러를 투입한다면?’
이거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 방법 같은데?
물론 힐러들이야 고생을 할 것이다.
하지만 물이나 곡물 등의 오염 차단 작업이 성공적으로 이뤄지지 않을 경우, 오염 방어 비용이 부담스러울 정도로 치솟을 경우, 힐러를 상시 투입한다는 작전도 고려해볼 법하다.
‘어차피 힐러야 남아돌게 될 테니까…… 되지도 않는 오염 확산 차단에 매달리는 것보다 차라리 이게 낫지 않을까?’
완전한 방역 차단이 불가능하다면 차라리 항원에 감염되게 놔두되, 그때그때마다 즉시 치료제를 놓아서 회복시키는 게 훨씬 효율적이지 않을까?
애초에 죽는 병도 아니고 말이다.
트럼프는 방금 막 떠올린 가능성을 진심으로 고려한 뒤, 샘 중장에게 의견을 물어보았다.
“……어떤가?”
“각하? 진심이십니까?”
대통령의 말에 샘 중장은 처음에는 놀랐다.
그는 대통령이 농담을 하는 거라 생각했지만, 진지한 눈빛을 보고 그게 아님을 깨달을 수 있었다.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죽을 위험이 없다 하지만, 예를 들어 운전 중에 갑자기 발작을 일으키는 사람이 나온다면 대형사고로 번지게 됩니다. 중화학공업에 근무하는 사람들의 경우는 더 큰 위험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가능성의 하나로 검토하라는 거지. 예를 들어 일정 구역에 거주하는 모든 이가 하루도 빠짐없이 힐을 받게 하는 걸세. 샘 중장 말대로 중화학공업이나 항공기 조종 같은 분야에 종사하는 이들은 아침저녁으로 힐을 받게 하던가.”
“…….”
“무조건 그렇게 하겠다는 뜻도 아니네. 일단 가능성의 검토는 해보라는 말이야.”
“알겠습니다.”
대통령이란 자리는 참으로 무섭다. 사람의 목숨을 숫자와 효율로 계산해야 할 줄 알아야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