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248)
00248 거인의 움직임 =========================================================================
자문단 교수 서너 명이 대표로 흑석동 저택을 방문했다. 결정체학과 교수인 손재진이 포함된 멤버였다. 정효주가 임신한 몸인데도 차를 내오자 그들은 송구스러워 했다.
가볍게 다과를 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사실 중국의 요구는 이상합니다. 우리나라와 중국은 사이가 좋지 않고, 얼마 전에는 불원숭이 때문에 심한 외교적 갈등까지 겪었습니다. 그런데 태연하게 안전지대를 설치해달라고 요구하는 게 뭔가 미심쩍습니다.”
“다른 노림수가 있다는 건가요? 저나 와이프를 붙들어두려고 한다던가?”
정치외교학과 교수 박정식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정말로 그러려고 했다면 이렇게 대놓고 중국으로 오라고 요구하지 않았을 겁니다.”
“하긴.”
유일한 안전지대 설치자를 자국민으로 만들고 싶은 건 어느 나라나 똑같은 마음일 것이다. 하지만 그걸 위해 안전지대 설치를 구실로 내세웠다는 건 너무 뻔하다. 바보라도 안 속아 넘어갈 것이다.
“그럼 정말로 안전지대 설치를 목적으로?”
“중국도 대도시의 방위에는 민감한 국가입니다. 적어도 북경이나 상해 같은 도시만이라도 우선 설치하고 싶을 겁니다. 하지만 좋게만 생각하기에는 신뢰할 수 없는 나라라는 게 문제지요. 우리나라와 사사건건 부딪치는 관계이기도 하고요.”
“또 중국은 자존심이 무척 강한 나라입니다. 진정으로 안전을 위해서 안전지대를 설치하고 싶었대도, 본래라면 이런 처지에서 요구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건 스스로 굽히고 들어가는 걸 인정하는 셈이니까요.”
유지웅은 처음에는 단순히 중국이 뭐 잘못 먹어가지고 그러는가 했다. 그런데 말을 들어보니 미심쩍은 구석이 보인다.
“뭐, 됐습니다. 일단 중국의 의도가 뭔지 따로 분석을 해주세요. 궁금하기는 하네요. 어차피 갈 일은 없을 테니 별 문제는 없겠지만요. 아, 연구단지 진척은 잘 되는지 모르겠네요.”
“참, 그 연구단지 말인데요. 굳이 결정체 연구 시설에만 국한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기왕 짓는 김에 종합과학연구단지로 이용목적을 확대하는 것은 어떨까요?”
“종합과학단지요?”
“예. 결정체뿐만이 아니라 다른 기초과학이나 실용공학도 총체적으로 연구하는 기업연구시설로 발돋움시키는 겁니다. 아시아의 실리콘밸리로 키우는 거죠. 세계적인 인재도 대거 몰릴 테고요.”
“좋네요. 김 실장님, 그렇게 진행하죠.”
비서실장은 지시를 체크했다. 몇 조, 아니 몇십 조 이상의 자금이 들어갈 투자 확장 계획이 즉흥적으로 결정 났다. 저러니 유지웅 자문단의 권세가 청와대 수석 권세보다 더하다는 말이 나오는 판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자문단이 청탁을 받거나, 사리를 위해서 조언을 하지는 않는다는 점. 순수해서라기보다는 그 사실이 발각되었을 경우의 일이 두렵기 때문이다.
자문단의 절반 이상은 유명 대학의 젊은 교수들로 이뤄져 있는데, 그들이 학교에서 가지는 영향력이 어마어마하다고 한다. 자문단에게 주어지는 혜택, 무제한 연구 자금 지원의 메리트가 엄청나기 때문이다. 돈이 들어오니 자연히 목소리가 커지고, 나이 많은 교수들도 그 앞에서 설설 기게 된다.
학계 권위를 내세워서 자문단 교수를 쥐어보려고 한 노교수도 있긴 했다. 하지만 쥐도 새로 모르게 교수직에서 해임되면서 그런 일이 사라졌다. 권위를 내세우는 것밖에 모르는 노교수쯤 잘라내는 것은 식은 죽 먹기보다 쉽다.
김 실장이 보고를 시작했다.
“현재까지 계약에 응한 연구원은 956명입니다. 대부분 국내외 유명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딴 젊은 인재들입니다. 직장에서의 평가도 아주 좋은 사람들만 특별히 가려 채용했습니다.”
“전에 다니던 직장은 아직 그만두라고 안 했죠?”
“예. 일단 계약만 마친 상태입니다. 연구단지가 설립 중인 걸 알고 있기 때문에 그들도 이해하고 있습니다.”
“어쩌지. 완공되려면 내년은 되어야 할 텐데.”
100㎢에 달하는 대규모 공사를 일 년 안에 마무리 짓는 것부터 이미 무지막지한 수준이다. 흑석동 저택을 지으면서 돈의 힘을 체감한 유지웅은 ‘얼마가 들어도 좋으니 튼튼하고 안전하고, 그리고 빨리’ 지으라고 지시했다. 그래서 무제한으로 공사자금이 투입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 막대한 면적의 연구부지가 내년에 완공된다는 것만 해도 대단한 것인데, 그는 아직도 만족을 못했다.
“그럼 1년 만이라도 공부를 시키는 것은 어떨까요?”
“공부요?”
“예. 해외 유명 결정체 연구소에 연수를 보내는 겁니다. 본격적인 프로젝트 투입 전에 휴식을 주는 의미도 있고, 또 견문을 넓히는 효과도 있지요. 연구원들의 사기도 높아지고 효율도 증대할 겁니다.”
“좋네요. 그렇게 하죠.”
김 실장은 얼른 지시를 확인했다. 내년까지 956명이나 되는 연구원들을 해외 유명 기관에 연수를 보낸다니. 국가도 쉬이 엄두를 내기 어려운 일이다.
국가 정책급 자금이 움직이는 결정이 쉽게 쏟아져 나온다. 거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게 자문단이다. 저러니 자문단의 권세가 하늘을 찌른다는 말이 나돈다.
* * *
서재에 노크를 한 뒤 정혜주는 유지웅을 불렀다.
“형부, 언니가 간식 먹으래요.”
잠시 후 대답이 돌아왔다.
“잠시만. 거의 다 됐어.”
“대체 뭐 하시는 건데요? 잠시 들어가 봐도 돼요?”
“응. 들어 와.”
허락이 떨어지자 얼른 문을 열고 들어간 정혜주는 입을 떡 벌리고 놀랐다.
“이, 이게 뭐예요?”
“레고잖아. 남자의 영원한 장난감.”
“레고는 애들이나 하는 게 아니었어요? 세상에…….”
대체 뭘 하나 했더니 1:1 사이즈 부가티 베이론 레고를 조립하고 있었다. 이 정도에서 놀랐다면 사실 정혜주를 너무 과소평가한 것이다. 그녀도 세계 제일의 부자를 형부로 둔 몸이라서 나름대로 기준치가 대폭 상승한 여자다.
그녀가 기겁을 한 것은 레고의 색상 때문이었다. 바로 레고 부속품의 재질 말이다.
“설마 이거 다 금이에요?”
“금색 부속품만.”
정혜주는 생각했다. 역시 언니와 자매로 태어난 건 누구와도 견줄 수 없는 행운이다. 그리고 하나 더 생각했다. 하필 동생으로 태어난 건 정말 안타까운 불운이다.
레고 부가티 베이론은 대부분 금으로 만들어졌다. 황금색으로 황홀하게 빛나는 완성품의 모습에 정혜주는 아찔해졌다. 저렇게 커다란 금덩어리가 존재한다는 게 신비하기까지 했다. 그냥 아름다웠다.
“그럼 금색 말고 다른 색깔 부속품은 다 플라스틱이에요?”
“아니? 이건 루비, 이건 사파이어, 이건 에메랄드…… 이건 모르겠네.”
이제는 놀랄 힘도 없었다. 한 마디로 금과 보석을 아낌없이 써서 만든 실물 사이즈의 부가티 베이론 레고라는 소리다. 예술성은 제쳐두고 그 귀금속의 가치만 따져도 어마어마할 것이다.
조립을 마치고 뿌듯한지 유지웅은 몇 걸음 물러나서 관찰도 하고, 사진도 찍는다고 난리였다.
“형부, 저랑 같이 사진 찍어요.”
“그럴래?”
둘은 베이론을 배경으로 해서 다정하게 셀카를 찍었다.
“유출 안 할게요. 걱정하지 마세요. 트위터 같은 곳에 안 올려요.”
“올려도 상관없는데.”
“에이, 그래도 그건 아니죠. 형부는 가끔 보면 너무 무심하시다니까.”
유지웅은 어깨를 으쓱했다.
“뭐 어때? 내가 땀 흘려서 일해서 번 돈으로 취미 생활한다는데 누가 뭐라고 할 거야?”
“저는 간이 작아서 그렇게 못하겠어요. 아직도 떨려요. 이거 만져 봐도 되는지 겁나요.”
문을 닫기 전 정혜주는 서재 한가운데를 장식한 레고를 바라보며 한숨을 푹 쉬었다. 저거 부속품 하나만 슬쩍 해다가 팔아도 어마어마한 돈이 될 것이다. 고용인들이 서재에 들어가지 못하게 관리를 해야겠다 싶었다.
“다 끝났니? 먹자.”
쿤겐이 정효주를 도와서 식탁을 차리고 있었다. 그녀는 ‘주방일은 여자나 하는 것.’이라며 궁시렁거리곤 했지만, 겉으로는 절대 그 말을 하지 않는다.
“입덧 같은 거 없어? 괜찮아?”
“응. 가끔은 임신한 게 맞나 싶기도 해.”
“좋겠다, 언니. 나도 탱커로 태어날 걸. 요새 벌써부터 눈가에 기미 생기고 신경 쓰여 죽겠어.”
“그건 수험생이라서 그렇고. 아직 스무 살도 안 된 애가 무슨 벌써 그런 타령이니.”
“그래. 혜주 너는 아직 한창 이쁠 때야.”
“정말요? 언니랑 비교하면 어때요?”
“밥 먹는데 꼭 상처를 받고 싶어?”
“뭐예요. 너무해.”
밥을 먹다 말고 정효주가 소리 없이 웃었다. 정혜주는 일부러 토라진 척 탁탁 소리를 내며 젓가락질을 했다. 물론 장난으로 그러는 것이다.
“참, 언니도 봤어? 형부 요새 취미로 하는 그거?”
“레고 말이니?”
“응. 나 그거 보고 깜짝 놀랐어. 대체 재료값만 따져도 얼마야?”
“글쎄? 아마 꽤 비싸지 않을까?”
덤덤한 언니의 반응에 정혜주는 약간 샘이 났다. 보통 남편이 사치스러운 취미를 하면, 그러니까 이어폰이나 자동차나 RC카에 빠지면 바가지를 긁는 게 와이프의 도리 아닌가? 그런데 저리 덤덤하다는 건 ‘그 정도쯤’은 사치스러운 취미가 아니라는 의미가 아닌가?
“좋겠다아. 큰일이야. 나 나중에 어떻게 시집가지?”
“왜 시집을 못 가. 이렇게 예쁜데.”
“형부 때문에 눈만 높아져서 큰일이에요. 이러면 시집가기 힘든데. 시집가서도 막 비교 돼서 순탄하게 살기 힘든데.”
“에이, 다 너 하기에 달렸어.”
“그냥 나 시집 안 가고 형부가 데리고 살아주면 좋겠다.”
“시집 안 간다는 애가 진짜 시집은 제일 빨리 가더라.”
정효주는 피식 웃고는 먼저 일어났다. 그릇을 챙기면서 그녀가 물었다.
“독일 가기로 한 거 어떻게 됐니?”
“그냥 민간 항공선 이용해야 될 거 같은데. A3 정비가 좀 오래 걸릴 것 같대.”
“전세기라도 빌리지.”
“물량이 없더라. 잠깐 다녀오는 건데 뭐 불편해도 참아야지. 할 수 없잖아.”
모레 에버튼이 독일에서 친선 경기를 갖는다. 그래서 독일을 방문하기로 한 것이다.
“가는 김에 독일 공과 대학들도 몇 개 방문하려고. 독일에 좋은 연구원들이 많으니까.”
“그럼 며칠 걸리겠네?”
“열흘 넘게 걸릴지도 몰라.”
“나도 같이 갈까?”
“같이 가면 나야 좋지. 너도 좋고.”
신랑은 한창 왕성할 때다. 거기다 녹서스의 돌이 흡수된 이후로는 좀 비정상적인 수준으로 왕성해졌다. 매일 상대해주는 그녀가 누구보다 잘 안다. 농담이 아니라 하루에 네 번을 해도 부족하다고 달려든다. 그런 신랑을 열흘이나 넘게 방치하는 것은 고문이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같이 가자는 말을 꺼낸 것이다. 물론 둘만의 은밀한 신호를 담아서. 당연히 정혜주나 쿤겐은 그 안에 담긴 속뜻까지는 눈치 채지 못했다.
* * *
대한항공 소속 여객기 A380이 인천 공항을 이륙했다. 일등석 전부를 구매한 유지웅은 정효주와 시시덕거리며 시간을 보냈다. 일등석 다른 좌석에는 둘 외에 자문단 멤버와 통역사, 그리고 정부가 경호를 목적으로 제공한 정보 요원들이 타고 있었다.
“이 비행기도 나쁘지 않네. 멋있게 생겼어. 하나 살까?”
“근데 너무 느려. 난 A3가 더 좋더라. 초음속이잖니.”
웃고 떠들고 있는데 잠시 후 다급한 표정의 요원이 다가왔다.
“문제가 생겼습니다.”
“문제? 무슨 문제요?”
“지금 중국 영공을 지나는 중인데 운항 신고가 되어 있지 않는 소속 불명의 비행기라며 중국 전투기가 항로 전환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착륙하고 검문을 하겠다고 합니다.”
놀란 유지웅은 창밖을 내다보았다. 항공기 좌측에 전투기 3기가 포위하듯 비행하는 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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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분들의 인내심을 시험하기 위해 여기서 끊어 보겠습니다.”
..농담인 거 아시죠? 살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