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267)
00267 재주는 불곰이 넘고 =========================================================================
목을 덮을 듯 말 듯한 짧은 커트 머리 덕에 얼핏 보면 소년 같다. 하지만 가는 선과 붉은 입술, 하얀 피부는 눈을 뗄 수 없는 매력을 뿜는다. 고작 커트 머리 때문에 소년으로 착각한 게 창피스러울 만큼 천상 여자다.
스물은 되어 보이지 않는다. 몇 살일까. 남자친구는 있을까. 어떤 남자를 좋아할까.
쉔은 퍼뜩 정신이 들었다. 스스로가 한심했다. 절체절명의 순간에 이런 생각이나 하고 있다니. 그만큼 갑작스럽게 나타난 여자가 매력적이라는 뜻이지만, 그래도 수치스러운 마음이 지워지지는 않는다.
“어서 이탈하십시오.”
절뚝거리며 쉔은 일어났다. 고양이 괴수는 여전히 그를 노리고 있었다. 쿤겐이 대검을 휘둘러 힘껏 괴수의 이마를 찔렀다.
까강!
칼끝과 피부가 부딪치며 불꽃이 튀었다. 쿤겐의 공격이 방어막을 뚫지 못한 것이다. 물러서다 말고 쉔은 놀랐다. 저 여자, 설마 탱커가 아니라 근접 딜러였나?
‘어떻게 버티는 거지?’
고양이 괴수는 쿤겐은 본 체도 않고 쉔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쿤겐이 다시 앞을 막아섰다. 불꽃이 튀어 오르며 빛이 사방을 감쌌다.
―크아아앙!
두 번이나 가로막히자 괴수는 화가 났는지 비로소 쿤겐을 의식했다. 쩍 벌린 입에서 날카로운 송곳니가 빛났다. 저것에 꿰뚫린다면 아마 형체도 남지 않으리라.
일단 쉔은 물러났다. 본진과 합류하자마자 울먹이는 목소리가 그를 불렀다.
“오빠!”
언제 달려 나왔는지, 여동생 메이가 울면서 와락 달려들었다. 여동생의 체온에 비로소 그는 살아 돌아왔구나 하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왜 나왔니? 위험하니까 숨어 있으라고…….”
“오빠가 죽는 줄 알았단 말이야!”
눈물을 그치지 않는 여동생을 겨우 달래고, 쉔은 비로소 동료에게 물었다.
“어떻게 된 거야?”
“모르겠어.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졌어.”
“저 헬기에서 내렸나 봐.”
누군가 하늘을 가리켰다. 고개를 돌린 쉔은 허공에 호버링 중인 비행체를 볼 수 있었다. 헬기? 아니다. 헬기 비슷하게 생겼지만 저건 헬기가 아닌 가변익 수직이착륙 기체다.
“왕페이 쪽은?”
“거의 밀어붙이고 있어. 다 잡았어.”
쉔은 조금 한숨을 놓았다. 어찌 된 건지는 모르겠으나 일단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다. 다행스럽게도 레드 몹들도 변칙적인 공격을 하는 개체가 아니어서 살았다.
―캬아아아!
그때였다. 왕페이가 붙잡고 있던 녀석이 갑자기 거친 포효를 터트렸다. 녀석의 온몸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무, 무슨 일이야?”
“둔화가 풀렸나 봐! 움직임이 빨라졌어!”
“안 돼! 왕페이! 피해!”
괴수가 앞발을 크게 휘둘렀다. 아까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빠른 속도였다. 왕페이는 반사적으로 몸을 뒤로 날렸다. 바로 코앞을 거대한 앞발이 훑고 지나갔다. 간발의 차이였다.
메이의 안색이 흙빛으로 변했다. 그녀는 괴수를 향해 손을 뻗었다.
“메이! 약화를! 어서!”
이를 악물고 그녀는 힘을 집중했다. 희미한 빛이 괴수의 온몸을 감쌌다. 괴수는 괴로운 듯이 몸을 뒤틀며 더욱 요란하게 울부짖었다. 누군가가 외쳤다.
“광역 공격을 할지도 몰라! 다들 피해!”
괴수가 입을 크게 벌렸다. 시뻘건 입천장에 기이한 빛이 맴돌고 있었다. 몸을 낮게 숙인 괴수는 그대로 입안에 머금은 힘을 내뿜었다.
촤아아악!
붉은 연기가 화염방사기처럼 뿜어져 나갔다. 마치 독가스가 살포되는 듯했다. 레이더 본진은 서둘러 물러났다.
“연기에 닿지 마! 닿으면 안 돼!”
연기는 계속해서 뿜어져 나갔다. 연기에 닿는 모든 것들이 타들어갔다. 공격대는 아슬아슬하게 연기의 사정거리 밖으로 벗어났다.
―캬오오!
잠시 연기 방출을 멈춘 괴수는 허공에 대고 울부짖었다. 그리고 본진을 향해 내달렸다.
“왜 갑자기? 아까는 광역 공격 따윈 안 했잖아!”
“약화 때문에 힘을 못 썼나 봐! 둔화가 잠깐 풀려서 저러는 걸지도 몰라!”
“지금 다시 약화 다시 걸지 않았어? 어떻게 된 거야?”
“메이! 어떻게 좀 해 봐!”
메이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그녀는 도망치면서도 연거푸 손을 뒤로 뻗으며 괴수에게 약화를 걸려고 애썼다. 하지만 괴수의 움직임은 조금도 느려지지 않았다. 그럴수록 그녀의 표정이 더욱 창백해졌다.
딜러들 몇 명이 그만 넘어졌다. 새파랗게 질린 그들은 절박한 표정으로 손을 내밀었다.
“메이! 살려 줘!”
“약화를 걸어! 빨리! 메이! 제발!”
그 절박한 표정을 본 메이는 달리다 말고 멈췄다. 그녀는 눈을 질끈 감고 괴수에게 손을 뻗었다. 뒤늦게 쉔이 달려왔다.
“메이! 그만 둬! 약화가 안 걸리면 그냥 도망쳐!”
“하, 하지만 오빠! 내가 안 하면 저들은……!”
“그러다 너까지 죽어! 넌 아직 능력 통제가 불완전하잖아! 어서 도망쳐!”
메이는 뭐라 말을 하려 했지만 쉔은 듣지 않고 그녀를 낚아채듯이 업고는 달렸다. 넘어진 딜러들 위로 화가 난 괴수가 달려들고 있었다. 일어서지도 못하는 그들의 얼굴에 절망이 어렸다.
그들은 눈을 질끈 감았다. 고통은 없겠지?
퍼억!
둔탁한 타격음이 들렸다. 각오했던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들은 살며시 눈을 떴다. 누군가가 괴수를 막아서고 있었다. 키가 거의 190이 넘는 남자였다.
“나도 어그로는 별로 자신 없는데. 효주 누나 어그로 잡는 건 절대로 못 따라간다고.”
김철희가 그렇게 말했다. 한국어였기에 당연히 그들은 알아듣지 못했다.
“형, 일단 잡았어. 어떡할까?”
「궁 써. 그냥 날려 버려.」
“형, 그건 안 돼. 얻어맞으면서 정신 집중 못해.”
탱커의 궁극기는 일격에 괴수의 방어막을 꿰뚫는 섬광 공격으로 발현된다. 지근거리에서 급소를 노리면 레드 몹이라 해도 한 방에 죽일 수 있다.
문제는 몇 초 정도 정신 집중이 필요하다는 것. 물론 3단계 보호막이 있으니 정신 집중할 때 얻어맞는다고 무슨 피해가 생기는 건 아니다. 하지만 상상해보라. 복잡한 계산을 하고 있는데 옆에서 시끄럽게 굴면 집중이 깨진다.
―캬아아아!
「아, 이럴 줄 알았으면 딜러라도 데려올 걸 그랬나?」
호위의 편의를 위해서 탱커 둘만 데려온 게 새삼 후회되었다. 그렇다고 변변찮은 A급 장비 하나 없는 중국 딜러들에게 딜을 시켜봤자 한 세월 할 것 같았다. 어떡할까 고민하던 유지웅은 결단을 내렸다.
「할 수 없다. 철희야, 두 마리 다 네가 잡아라.」
“뭐?”
「쿤겐은 궁극기 준비해요.」
3단계 보호막이 있으면 레드 몹 두 마리 붙잡는 것쯤이야 쉽다. 딜러가 없다면 쿤겐한테 딜을 시키면 그만. 섬광기를 제대로만 맞춘다면 레드 몹 두 마리를 잡는 것은 일도 아니다.
지시 사항을 이해한 쿤겐이 재빨리 이탈했다. 김철희도 이내 상황을 깨닫고 얼른 쿤겐이 붙잡고 있던 고양이 괴수를 공격했다. 그의 검이 가죽을 푸욱 파고들자 통증을 느낀 고양이 괴수가 이빨을 드러내며 달려들었다.
“안 아파! 하나도 안 아프다고! 어디 덤벼 보시지!”
* * *
“저 사람들은 뭐지?”
반정부 레이더들은 놀라운 광경에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눈앞에는 그들이 상상도 할 수 없는 방식의 레이드가 펼쳐지고 있었다.
저건 공격대도 아니다. 그저 탱커 두 명만 있을 뿐이다. 딜러도, 힐러도 없다. 그런데도 버티고 있다. 아니, 저건 버티는 수준이 아니라…….
“탱커 혼자서 레드 몹을 붙잡고 있어?”
“저게 가능한 거야?”
김철희 혼자서 레드 몹 두 마리를 상대로 버티고 있는 광경은 혼을 빼놓기에 충분했다. 쉔은 눈을 비볐다. 자신이 지금 헛것을 보는 게 아니라면, 이 광경을 설명해줄 수 있는 해답은 오직 단 하나뿐이다.
“제니스 대장이 여기에 있다.”
“뭐? 제니스 대장이? 설마 저 헬기에?”
그제야 모두들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봤다. 상공에 호버링 중인 검은 가변익 수직이착륙기가 보였다. 저 안에 제니스 오너가 있단 말인가?
“저거 봐! 레드 몹 두 마리를 상대로 끄덕도 않고 버티고 있어! 저건 보호막이 아니면 설명이 안 돼!”
“제니스 대장이 여긴 왜 온 거야? 뭐 때문에?”
“설마 우리를 도우러 온 건 아닐까?”
“우리를 도와? 그 사람이 뭐 때문에?”
“아니야. 생각해 봐. 그 사람은 레이더 권익을 중요시하는 사람이잖아. 중국 레이더가 핍박받는 거 때문에 그 사람이 이번 러중 전쟁을 뒤에서 부추겼다는 말도 있잖아.”
누군가가 진지하게 말했고 몇 몇 이들이 끄덕였다. 이래서 음모론이 사람 잡는다고 하는 거다.
“오빠, 저기에 제니스 오너가 있는 거야?”
메이가 물었다. 커다란 눈빛 가득한 호기심에 쉔은 쓴웃음을 지으며 이를 악물었다.
‘메이 때문인가?’
그는 확신했다. 메이가 희소 능력자라는 사실에 제니스 대장이 호기심을 갖고 온 것이 분명하다고. 주먹이 꽉 쥐어졌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메이를 지켜야 한다.
한편 제니스의 등장에 이를 악무는 사람이 한 명 더 있었다.
‘젠장!’
딜러인 마오는 인상을 잔뜩 썼다.
중국인이긴 하지만 그의 진짜 신분은 미국에서 파견된 스파이였다. 이번 임무에서 그의 역할은 반정부 레이더에 미국이 제공하는 정보를 공급하는 것. 그래서 정체를 숨기고 열심히 공작을 했는데 마지막에 떡 하니 제니스가 나타난 것이다.
‘하루만 더 시간이 있었어도! 대체 본국은 여태까지 뭐 한 거야?’
미국의 대처가 느린 것은 아니다. 중국 땅에서 미국이 움직이기에는 여러 가지로 제약이 심했다. 아무래도 러시아만큼 자유롭게 움직이기에는 국민들 눈치도 봐야 하는 등 신경 써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으니.
―제니스 회장 출현. 괴수 섬멸 중.
마오는 일단 몰래 본국에 보고를 했다. 그리고 슬쩍 메이의 눈치를 확인했다. 메이는 괴수가 아닌, 제니스 회장이 타고 있는 V-23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위기의 순간 자신들을 구원해준 은인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일이 힘들게 됐다.
‘승진은 물 건너갔군.’
마오는 혀를 찼다. 어느덧 쿤겐이 발사한 섬광이 눈부신 빛을 뿜고 있었다.
쿠웅!
육중한 소리를 내며 괴수 두 마리가 쓰러졌다. 정확히 두 발, 쿤겐의 섬광기는 괴수의 급소를 꿰뚫었다.
반정부 레이더들은 질린 눈으로 모든 것을 지켜보았다. 그들의 눈은 연기로 흩어지는 괴수의 시체에 머물러 있지 않았다. 서서히 고도를 낮추는 V-23을 쫓고 있었다.
마침내 V-23이 그들 앞에 착지했다. 로터 프로펠러가 만들어낸 거친 풍압에 머리카락이 거칠게 휘날렸다. 로터가 멈추고, V-23 문이 열리며 한 청년이 내렸다.
그와 눈이 마주친 쉔은 저도 모르게 메이를 꽉 끌어안았다. 쿤겐이 호위하듯이 그의 옆에 바짝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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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너희를 위해 보호막을 내려주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