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268)
00268 재주는 불곰이 넘고 =========================================================================
저 여자다.
쉔이 꽉 끌어안고 있는 메이를 보고 유지웅은 확신했다. 얼굴도 사진으로 본 것과 일치했다. 드디어 찾았구나 싶자 흡족한 마음이 들었다.
하늘에서 레드 몹을 상대하는 것도 다 지켜봤다. 이 정도면 합격점이다. 굳이 가치를 매기자면, 보호막 초기 시절의 자신 정도쯤 될까?
메이의 능력도 장비로 강화할 수 있는지는 아직 모른다. 만약 그렇다 한다면 메이의 가치는 더욱 상승할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자신과 맞먹는 인물로 성장할 수도 있다. 장비로 강화가 가능하다면 말이다.
그래도 클래스라는 게 있다. 레이드를 통해 막대한 부를 쌓고 이미 어마어마한 지위를 획득한 자신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게다가 정화 능력은 또 어떤가. 어떤 일이 있어도 메이는 자신을 넘어서지 못한다. 아니, 발끝 정도에나 겨우 미칠 수 있으리라.
결코 경쟁자가 될 수 없는 희소 능력자. 그런 이에게 보여줘야 할 것은 하나뿐이다. 관대한 포용.
“반가워요. 저는 유지웅이라고 합니다. 제니스 공격대장이죠.”
그가 입을 열자 반정부 레이더들이 귀를 쫑긋 세우고 집중했다. 통역가를 사이에 두고 유지웅이 말을 계속했다.
“여러분들이 일으킨 혁명을 저는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또한 여러분들이 그간 겪었던 고초도 같은 레이더로서 이해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을 도와드리고 싶습니다.”
“대가로 원하는 게 있겠지요?”
살짝 가시 돋친 쉔의 반문에 유지웅은 피식거렸다. 이 정도 경계심은 충분히 예상한 바다. 이들이 처한 상황이 그렇지 않은가.
“저는 인재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리고 제니스는 지금 한창 확장 중입니다. 국적을 불문하고 실력 있는 레이더라면 누구나 받아들이고 있죠.”
“그게 우리를 도와준 조건입니까? 제니스에 들어오라고?”
“물론 모두에게 해당되는 건 아닙니다.”
쉔과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유지웅의 눈은 내내 메이에게 머물러 있었다. 메이는 부끄러운지 얼굴을 붉히며 시선을 피했다. 손가락을 쿡쿡 부딪치는 게 영락없이 수줍어하는 소녀다.
좋지 않다. 쉔은 그렇게 생각했다. 메이는 이제 겨우 만 17세 밖에 되지 않았다. 한창 사춘기인 나이에 극적으로 유지웅과 마주쳐버렸다. 동경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다.
어쩌면 그것을 노리고 일부러 저런 연출을 한 건 아닐까? 쉔은 그런 의심까지 들었다.
“죄송합니다만 저희 남매는 이미 어디로 갈지 정했습니다. 목숨을 살려주셨고, 또 좋은 제안까지 해주셨지만 이미 결정된 길이 있어 그 뜻을 따르지 못할 것 같습니다.”
“미국인가요?”
어떻게 알았나 하고 쉔은 흠칫했지만 곧 납득했다. 그 정도쯤은 충분히 예상할 수도 있으리라.
“예. 내일 미국 인물들과 합류하기로 했습니다.”
“그들은 내일 오지 않습니다.”
“……예?”
“곧 도착할 겁니다. 예정 시간이 거의 다 됐으니…….”
무슨 말이지? 쉔은 당혹스러웠다.
원래 미국에서 보낸 부대가 도착하는 것은 내일이었다. 그래서 하루만 더 버티면 된다는 마음으로 모두 이를 악물고 견뎠다. 그런데 눈앞의 청년이 그것을 다 안다는 듯이 구는 건 뭔가? 그리고 내일이 아니라 오늘이라고?
두두두두두!
멀리서 로터음이 들렸다. 레이더들은 흠칫 놀라서 하늘을 쳐다봤다. 10여 기가 넘어서는 거대 수직이착륙 수송기 편대가 빠르게 접근 중이었다.
‘뭐야? 하늘?’
한편 마오는 당황했다. 원래 미군과 합류하는 건 육로로 예정이 잡혀 있었다. 그리고 내일이다.
그런데 하루빨리, 그것도 하늘로 오다니? 하늘을 이용한 길이 얼마나 위험하고 또 정치적 부담을 안고 있는지 본국이 누구보다 잘 알 텐데?
수송 편대가 착륙했다. 총원 100여 명에 달하는 북경 레이더 주축 세력을 수용하기에는 충분한 규모다. 물론 북경에는 혁명을 지지한 수많은 레이더가 남아 있지만, 한 번에 그들 전부를 옮길 계획은 없었다.
책임자로 보이는 백인 남자가 선두에 서서 다가왔다.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미스터 제니스.”
“제니스는 내 이름도, 성도 아닙니다. 내가 소유한 공격대 이름일 뿐이죠.”
“하지만 귀하가 곧 제니스고, 제니스가 곧 귀하 아닙니까? 이미 많은 이들은 귀하를 제니스와 동일시하고 있습니다.”
“뭐, 중요하지 않은 호칭 문제는 접어두죠. 여기는 뭐 때문에 오셨습니까?”
“저들을 돕기 위해 왔습니다. 미스터는 잘 모르시겠지만 미국은 혁명이 시작되기 전부터 저들을 도왔으며, 사건 종료 후 저들의 인생까지 모든 것을 책임져줄 각오를 가지고 이 일에 뛰어들었습니다.”
“아하, 미국이 이미 선점했다는 건가요?”
“유감입니다만, 그렇습니다.”
“근데 한국어가 매우 유창하네요. 당신의 이름은 뭐죠?”
“아, 실례했습니다. 저는 바루스 매들런이라고 합니다. EIS 소속 요원입니다. 보안상 자세한 직책을 말씀드리지 못함을 양해해 주십시오.”
자신 있는 표정에 거침없는 말투다. 유지웅 입장에서는 가소롭기만 할 뿐이다. EIS 국장인 루딘도 자신 앞에서는 한껏 조심스러워하는데, 저 당당한 태도는 뭔가? 직책이 꽤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그렇다면 신입 요원은 아닐 것이다. 일단 파견 부대 책임자로 보이니.
“어떡하죠? 나도 저들을 데려가고 싶은데.”
“하지만 이미 우리 미국과 약속이 되어 있습니다. 이 일이 외교 갈등으로 빚어지지 않길 바랄 뿐입니다.”
“관례에 어긋난다는 건가요?”
“바로 그렇습니다.”
유지웅은 코웃음을 쳤다. 그리고 쉔, 아니 정확히는 그가 끌어안고 있는 메이를 돌아봤다.
“당신들은 어떡할 건가요? 미국을 따라가겠어요? 아니면 나를 따라가겠어요?”
“…….”
쉔은 마른침을 삼켰다. 미국행은 이미 혁명을 일으키기 전부터 정해둔 사항이었다. 미국 망명을 조건으로 미국도 정보 제공 등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들을 도왔다. 이제 와서 그 도움을 모른 체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리고 그 협조 관계가 미국행을 결정하는 이유의 전부는 아니었다. 이유는 또 있었다.
‘제니스에 들어가면 과연 여동생이 행복할까요?’
미국은 한국행의 위험성을 그렇게 경고했다. 미국이 메이의 능력을 알게 된 날, 불과 며칠 전 일이다.
괴수 약화 능력이 없어도 제니스는 레드 몹을 잡는데 전혀 지장을 겪지 않는다. 오히려 눈에 성가신 경쟁자가 될 뿐이다. 미국은 제니스가 미리 싹을 자르기 위해 회유하려 들 수도 있다고 경고했었다.
쉔도 그 경고를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제니스가 메이를 환영할 것 같진 않았다. 경쟁자로 성장할 씨앗은 싹을 틔우기도 전에 짓밟는 게 비정한 생존 법칙 아닌가.
‘설령 제니스가 넓은 마음을 갖고 귀하의 여동생을 받아준다 해도, 결국 평생을 구속받으며 살아야 할 겁니다. 제니스 회장은 자신의 경쟁자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는 여동생을 절대로 눈 밖에 두려 하지 않을 겁니다.’
사는 장소도, 결혼하는 것도, 심지어는 죽는 것마저도 모두 통제당할 수 있다. 부귀영화는 보장되겠지만 자유는 없는 삶이 펼쳐질 것이다. 그래서는 혁명을 일으키면서까지 중국을 탈출하려 했던 보람이 없다.
쉔은 용기를 내어 대답했다.
“미국에 가면 제 동생은 제일 귀중한 레이더 자원으로 대우받으며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겠지요. 그런 자유로운 행복을 주고 싶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유창한 한국어에 유지웅은 살짝 놀라서 반문했다.
“당신, 한국어를 할 줄 알았나요?”
“한때 저도 제니스에 들어가는 게 꿈이었습니다. 언제고 그런 날이 올 수 있을 거라 희망을 품고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그러나 동생이 희소 능력자로 각성하면서 그 꿈은 접어야만 했다. 모든 건 동생의 행복을 위해서다.
유지웅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자신만만하게 지켜보는 EIS 요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제니스에 들어오면 그게 불가능하다?”
“부귀영화는 보장되겠지만 자유로운 삶은 없을 거라고…… 그렇게 생각합니다.”
“제니스가 새장이라는 건가요?”
“…….”
“그럼 미국은 새장이 아닐 것 같나요?”
그럴지도 모른다고, 아니 그럴 거라고 쉔은 생각했다. 미국도 결국 메이를 놓아주지 않고 자국민으로 붙잡아두려 할 것이다. 제니스도, 미국도 똑같은 새장. 결국 중국이라는 감옥을 벗어나 어느 새장에 갇힐 것인가를 결정할 문제다.
“어차피 새장에 갇혀야 한다면, 좀 더 큰 새장에 갇히는 게 행복할 거라 생각합니다. 죄송합니다.”
어느덧 모두가 숨을 죽이고 있었다. 쿤겐도, 김철희도, 그리고 반정부 레이더 동료들도 침묵한 채 둘의 대화를 듣기만 했다. 어떤 이는 이해가 안 간다는 듯이 얼굴을 찌푸리기도 했고, 어떤 이는 납득이 된다는 듯이 끄덕이기도 했다.
“새장이라……. 좋아요. 인정하죠.”
“무엇을 말입니까?”
“제니스란 새장에 메이 양을 가두려 했습니다. 인정해요. 그러나 그건 미국도 마찬가지죠. 아메리카라는 새장에 메이 양을 가두려 하고 있죠.”
“…….”
“하지만 내가 준비한 새장이 더 작다는 말은 인정하기 어렵군요. 단언하건대, 메이 양은 새장에 갇혔다는 자각을 할 수 없을 만큼 자유롭고 행복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미국이란 새장은 처음에는 넓어 보이지만 금세 벽이 느껴지고 답답할 겁니다.”
쉔은 입을 다물었다. 이 청년, 지금 자기 품이 미국 품보다 더 넓다고 주장하고 있는 건가? 아무리 세계적인 유명 인사라 해도, 일개 개인 주제에? 미국을 상대로?
“혹시 메이 양도 한국어를 할 줄 아나요?”
유지웅의 질문에 쉔은 망설였다. 그러나 야속하게도 메이가 재빠르게 대답했다.
“예, 할 줄 알아요.”
“따로 공부했어요?”
“오빠가 언젠가는 한국에 들어가 살고 싶다고, 만약 그 꿈이 이뤄지면 저도 한국에서 살아야 하니까 배워야 한다고 했어요.”
쉔은 오래 전부터 한국을 갈망했다. 레이더가 가장 평화롭고 행복할 수 있는 나라, 한국. 그건 바로 제니스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미국행을 결정한 것은 오로지 여동생 때문이다. 제니스가 여동생을 포용하지 못할 거라는 불안함이 컸던 것이다.
“메이 양, 당신의 첫 번째 불행은 그런 희소 능력을 갖고도 중국에 태어난 겁니다. 중국 같은 나라에서는 당신이 마음껏 날개를 펼칠 수 없죠. 두 번째 불행은 2년 전이 아닌 지금 각성을 했다는 겁니다. 당신의 능력은 나와 대등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녔지만, 지난 2년 간 우리의 격차는 이미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로 벌어졌습니다.”
쉔이 그런 불안감을 품고 있다면, 그것을 해소해주면 그만.
“하지만 당신의 가장 큰 행운은 바로 나를 만났다는 거죠. 미국에 들어가기 전에 내가 찾아왔다는 겁니다. 이것은 아마 죽을 때까지 기억될 크나큰 행운이 될 겁니다.”
유지웅은 안슐을 생각했다. 자신이 얻은 가장 큰 행운은 보호막 능력자로 각성한 게 아니라, 바로 그를 친구로 만났다는 것 아닐까?
인생의 멘토가 되어준 친구. 만약 그가 지금 자신이라면 어떤 결정을 내렸을까? 자신이 그라면 어떻게 행동할까?
“쉔, 미국이 약속한 대가는 뭐죠? 면세? 돈? 보수? 면책권?”
유지웅의 박력에 눌린 쉔은 저도 모르게 더듬더듬 대답했다.
“……평생 면세 혜택에 미국 시민으로 존재하기만 해도 연 2,000만 달러를 지급하겠다고 했습니다. 그 밖의 다른 혜택도 물론 있습니다. 지금 기억나는 건…….”
코웃음을 치며 유지웅은 뭔가를 내밀었다. 쉔은 뭔가 해서 그것을 받아들었다. 금액이 적히지 않은 수표였다.
“당신 남매를 내가 종신 고용하겠습니다. 모든 연봉을 지금 이 자리에서 한꺼번에 지불하죠.”
“하지만 이건 아무 것도 적히지 않은…….”
“당신들의 가치는 당신들 스스로가 정하세요. 원하는 액수를 적으면 됩니다.”
어쩌면 안슐을 만났던 것은, 바로 지금 이 순간을 위한 예행연습은 아니었을까? 유지웅은 비로소 안슐의 마음을 아주 조금 이해했다. 일본에서 그가 어떤 넓은 마음으로 자신에게 백지 수표를 제시했었는지, 그 끝자락이나마 조금 엿볼 수 있었다.
“당신들 자유, 난 미국보다 비싸게 사줄 수 있습니다.”
============================ 작품 후기 ============================
“가르친 보람이 있도다.”
친구의 중요함을 깨닫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