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303)
00303 금수저를 물고 =========================================================================
두근두근.
‘내가 왜 이러지?’
테레사는 떨리는 가슴을 손으로 눌렀다. 얼굴에서 열이 확확 달아올랐다.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짜릿하게 몸을 강타하던 감촉이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기이한 감각이었다.
아기가 젖을 빨던 순간의 찌릿함. 그것은 아마 그녀의 내면에서 겨우 호흡만 연명하던 여성성, 혹은 모성애의 흔적일 테지만, 어린 시절의 학대로 자신의 여성성을 부정하게 된 그녀가 깨닫기에는 요원한 것이다.
“하아…….”
힘든 레이드를 마친 직후처럼 숨이 찼다. 그녀는 벽에 등을 기댄 채 서서히 주저앉았다. 몸을 웅크리고 가쁜 호흡을 가라앉히는데 집중했다.
문득 화환 하나가 눈에 띄었다. 「탄생 축하, 카네기.」라고 쓰인 글자가 시선에 꽂혔다. 그녀의 눈이 화환에서 떠날 줄을 몰랐다.
이윽고 그녀는 다리를 딛고 섰다. 하얀 얼굴에서 표정이 지워졌다. 카네기, 오래 전에 뛰쳐나온 가문. 그 이름을 확인한 순간 조금 전의 떨림이 거짓말처럼 사라져 버렸다.
* * *
「황태자의 탄생.」
금동이의 탄생은 커다란 화제가 되었다.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 언론까지 특집으로 다뤘다. 수많은 사람들이 제니스 후계자의 탄생을 축하했다. 황태자에 대한 관심은 미국 대통령 취임식 이상의 열풍을 보였다.
심지어 어떤 경제 신문은 금동이가 성장해서 물려받을 재산이 얼마나 되는지를 놓고 자극적인 기사를 내보내기도 했다. 화려한 운명을 동경하는 이들은 많다. 가십거리에 불과한 기사에 많은 이들이 관심을 보였다.
「제니스 공격대장은 순수히 보유한 현금만 근 20조 원에 달한다. 그리고 일성전자 지분 20조, 효웅산업 지분 2조, 제니스 대원들에게 갖는 결정체 채권 약 35조, 보유한 블루 결정체의 액면 가치만 근 85조 원에 달한다. 5조 원을 넘게 들여 매입한 에버튼 구단, 호남평야, 미국 농지 2,000만 헥타르까지 합치면 그 재산액을 측정하는 것이 불가능한 정도다. 제니스의 후계자는 이 막대한 재산의 차기 상속자로 내정된 만큼 지구상에서 다시없을 행운아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 정도다…….」
이제 태어난 지 일주일도 안 된 아이의 신붓감을 놓고 벌써부터 온갖 말들이 많았다. 신데렐라를 꿈꾸는 소녀들은 많고 넘쳤다. 사람들은 이 거대한 재산을 물려받을 후계자의 배필로 누가 될지를 놓고 벌써부터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어디 외국 왕가 정도는 되어야 격이 맞지 않을까?”
“그래도 말이 통하는 한국인이 가장 좋지 않나?”
“근데 국내에는 격이 맞는 사람이 없잖아? 나라를 하나 세워도 될 만한 사람인데.”
일주일도 안 된 신생아의 배필감으로 외국의 공주 정도는 되어야 격이 맞는다느니, 국내 재벌가 딸쯤 되어도 되지 않느냐니, 그런 거 다 상관없고 그저 예쁘기만 하면 된다느니 온갖 말이 돌고 돌았다.
“아들아, 네가 태어나니 온 세상이 너의 이름을 속삭이는구나.”
“……? 그게 무슨 말이야?”
“아니, 무슨 말도 못 하는 애 배필감 논란이 벌써부터 나오는지 어이가 없어서. 지들이 며느리 보나? 봐도 내가 보지. 그리고 아직 이십 년은 멀었다.”
“이십 년? 그렇게 빨리 보내려고?”
“남자니까 며느리 빨리 맞아야지. 못해도 스무 살 전에는 결혼시킬 거야.”
정효주는 품에 금동이를 안은 채 토닥거렸다. 미숙아로 태어나서 걱정도 많이 했는데 진료 결과 아무 이상 없었다. 모체가 탱커라서 역시 다르다고 의료진도 놀라워했다. 보통 이 정도 미숙아면 인큐베이터 신세는 기본이고 생명도 위험할 수 있다.
한참 배부르게 젖을 먹고 난 금동이는 엄마가 배를 쓸어주자 가볍게 트림을 했다. 손가락을 문 채 자는 모습이 그렇게 평안해 보일 수가 없었다.
“형부, 저 왔어요. 언니, 나 왔어.”
“왔어?”
“금동아, 이모 왔어. 안녕?”
눈도 못 뜨고, 말도 제대로 못 알아듣는 아기에게 정혜주는 손을 가볍게 흔들어 인사를 했다. 탁자에 마련된 위생 티슈에 손을 문질러 닦고는 아기의 뺨을 슬쩍 만졌다.
“근데 참 신기해.”
“뭐가 말이니?”
“어떻게 크리스마스에 딱 맞춰서 태어날 생각을 다 했을까? 그래봤자 지 손핸데. 선물 두 번 받을 거 한 번 밖에 못 받잖아.”
“대신에 남들이 못 받을 선물만 받지.”
“……아, 그렇구나.”
갑자기 금동이와 자기의 격차를 실감했는지 정혜주는 시무룩해졌다. 언니 품에서 쿨쿨 자는 아기를 향해 눈을 흘겼다.
“그러고 보니 샘나네? 물고 있는 수저 색이 다르잖아? 언니, 금수저가 아니라 다이아 수저나 뭐 그런 걸로 표현해야 하는 거 아니야?”
“금수저라고 처음 말한 건 너거든? 그래서 태명도 금동이라고 지었잖아?”
“아, 부러워. 나 금동이한테 진짜 잘 보여야겠다. 그럼 나중에 뭐라도 하나 해주겠지.”
“처제, 언니한테 잘 보이는 게 더 빠르지 않을까?”
“언니보다는 형부죠. 형부우, 근데 그거 사실이에요?”
“뭐가?”
“금동이 탄생 선물로 땅 주셨다면서요?”
“아. 미국에 있는 농지 명의 이전해준 거?”
“와, 그걸 전부 다 주신 거예요?”
“뭐, 어차피 나중에 지 거 될 건데 좀 일찍 줬어.”
“……진짜 내가 언니로 태어났어야 했는데.”
“다시 한 번 말해볼래?”
작게 중얼거린 걸 용케 주워들은 정효주가 눈을 흘겼다. 정혜주는 과장스럽게 놀란 척 하며 손사래를 쳤다.
“어머, 언니는? 귀도 밝다? 누가 탱커 아니랄까 봐.”
“너 대학 들어가면 남자친구부터 만들어. 언니가 좋은 남자 소개시켜줄게.”
“네가 좋은 남자를 어떻게 알고 있어?”
갑자기 유지웅이 찌르고 들어오자 정효주는 당황했다.
“아, 아니. 동기들 중에서 좀 괜찮다 싶은 애들 봐둔 게 조금 있을 뿐이야.”
“그러니까 남자들을 왜 봐두냐고? 유부녀가 왜? 임산부가 대체 왜?”
“그냥 혜주 남자친구감으로 괜찮은 애 없나 하고…….”
유지웅이 추궁하고 나서자 정효주는 땀을 뻘뻘 흘리며 변명을 했다. 다른 의도는 없었다. 말 그대로 동생 남친으로 괜찮은 녀석 없나 하고 물색해본 게 다다.
“혜주 남친은 지가 알아서 하라고 해. 아니면 내가 찾아보든가 할 거야. 너는 다른 남자한테 눈길도 주지 마.”
“형부, 금동이도 남잔데요?”
“아들은 예외. 남편도 예외.”
“와, 형부 너무 소유욕 강하시다. 언니가 저 생각해서 남자친구감 좀 찾아봤을 뿐인데 너무 반응 격하신 거 아니에요?”
“나 OT 갔을 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혜주 네가 보지를 못해서 그런 말을 하는 거야.”
“네? 무슨 일이 있었어요?”
“그러니까 내가 보는 앞에서 어떤 시커먼 선배란 녀석이 글쎄 효주한테 그냥…….”
“안 돼!”
정효주가 기겁을 하고 말렸다. 그때의 일은 그녀의 기억에서 지우고 싶은 암흑의 과거다. 하물며 친동생 앞에서는 절대 열거 하고 싶지 않은 일이다. 다른 이도 아니고 친동생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얼마나 두고두고 놀려먹을 것인가. 나중에 아이가 성장했을 때 꺼내기라도 하면 망신살 뻗친다.
“실례합니다.”
가벼운 노크 소리 뒤에 문이 열렸다. 짧고 고운 은발이 슬쩍 모습을 드러냈다.
“아, 쿤겐. 왔어요?”
“네.”
테레사가 조심스럽게 앉았다. 그게 꼭 한 발짝 거리를 두는 것처럼 보인다. 정혜주는 말 못할 이상함을 느끼고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테레사의 태도에서 약간 낯선 느낌을 받았지만, 말로 꼬집어 말하기 애매했다.
그때 정효주가 가볍게 탄성을 질렀다.
“어머? 금동아, 일어났어?”
자고 있던 금동이가 눈을 떴다. 테레사는 저도 모르게 흠칫 놀랐다. 갑자기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아이가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것 같았다. 아니, 실제로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금동이가 쿤겐이 정말 좋은가 봐요. 쿤겐이 오니까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네.”
“그러게. 쿤겐, 금동이 좀 안아줘요.”
“네? 제가요?”
테레사의 얼굴에 경계심이 어렸다. 아기가 가슴을 빨았을 때 느꼈던 짜릿함이 되살아났다. 숨이 턱턱 막혔다. 그것도 모른 채 정효주는 어느새 아기를 내밀고 있었다.
동그랗고 맑은 눈이 빤히 바라본다.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눈빛이다. 그 투명한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낯선 그림자로 느껴졌다.
그녀는 머뭇거리며 아기를 안았다. 아기가 또랑또랑한 눈으로 빤히 바라본다. 가슴이 뭉클거린다. 사랑스럽게 느껴지는 무게가 말 못할 무언가를 치밀게 만든다.
아기가 잘 움직이지도 못하는 두 팔을 뻗었다. 마치 그녀의 얼굴을 만져보려고 버둥거리는 것만 같다.
“금동이가 쿤겐 얼굴 만져 보고 싶은가 봐.”
어린 아이도 본능적으로 미인은 알아본다고 한다. 근데 신생아한테도 그런 게 해당이 되나? 유지웅은 왠지 녀석이 커서 상당한 카사노바가 될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딸이라면 걱정이지만 아들이라면 아버지로서 흐뭇할 일이다.
테레사는 조심스럽게 금동이를 품에 안았다. 칭얼거리듯이 손을 뻗어 가슴을 쥔다. 방금 실컷 먹어서 배가 부를 텐데, 젖을 달라는 듯이 조그만 손가락이 꼼지락거린다.
테레사는 내면에서 뭔가가 부서지는 것을 느꼈다. 그게 무엇인지 그녀는 알지 못했다. 무너진 가슴의 벽을 뚫고 솟구쳐 오르는 기이한 부끄러움에 호흡이 조금씩 늦어졌다. 더 이상 아기를 안고 있다가는 뭔가가 잘못될 것만 같았다.
그녀는 남자의 눈이 아닌, 어머니의 눈으로 아기를 보고 있었다. 오래 전에 사멸화 된 모성애가 서서히 살아나고 있지만, 그것은 동시에 강한 괴리감을 불러왔다. 그녀는 내면에 일어나는 변화가 무엇인지를 인지하지 못했다. 아니, 자신이 변해가고 있다는 것도 깨닫지 못했다.
“……아드님이 참 귀엽습니다. 제니스의 후계 구도는 이것으로 탄탄해지겠군요.”
“에이, 우리가 무슨 재벌 기업도 아니고 그냥 개인 재산일 뿐인데 후계 구도 그런 게 어딨어요. 물려줄 회사도 없는데.”
“어머, 형부. 하지만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요.”
“남들 생각이 중요한가? 우리 입장이 더 중요하지.”
후계 구도니 뭐니 말이 많은데 사실 사람들이 오해를 한 것이다. 유지웅이 가진 공식 사회적 지위는 제니스 공격대장이라는 것뿐이다. 그것은 물려주고 말고가 가능한 지위가 아니다. 자식에게 물려줄 것은 돈과 땅, 즉 유형적 재산뿐이다. 그렇게 생각해보니 가짓수가 생각보다 적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 작품 후기 ============================
..니가 별로 가진 게 없다고?
후새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