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532)
00532 Take all or everything =========================================================================
―이쪽으로.
앞장 선 탱커, 김철희가 안전을 확인하고 수신호를 보냈다. 적당한 간격을 두고 대원들이 신속히 이동했다. 블랭의 본체를 찾기 위해 편성한 기동대였다. 인원은 25명.
고글에는 사전에 이곳 지형을 3차원 스캔한 지도가 표시되어 있었다. 지형은 비교적 단순했다. 장태준은 블랭의 본체가 있을 만한 지역을 추론해서 몇 가지 지역을 선정, 기동대에게 그곳 위주로 탐색하라고 지시했다.
―가급적 육성과 통신을 삼가십시오. 텍스트도 마찬가지입니다.
장태준은 고글의 스피커가 음성을 재현하는 과정에서 도청을 염려해서 텍스트로만 지시를 내렸다. 그러나 동시에 텍스트도 해킹당할 우려가 있음을 염려했다.
그래서 기동대는 통신, 대화를 일절 삼가고 눈빛과 수신호로만 의사소통을 했다. 복잡한 소통을 할 순 없었지만 적 발견, 정지, 이동, 위험, 공격, 후퇴 같은 신호는 레이더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것이다. 일반 막공 같은 곳에서는 아직도 그런 세계 표준 공용 신호를 사용한다.
―정지.
또 신호를 보냈다. 대원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멈춰 섰다.
정면에는 바위 절벽 아래로 좁게 난 길이 있었다. 저곳을 통과하다가 만약 위쪽에서 공격을 받으면 위험하다. 감이 뛰어난 탱커들은 사방을 경계하며 이상한 점이 없는지 면밀히 살폈다.
‘이상한 건 없는 거 같은데?’
선두에 선 김철희는 확인을 마쳤다. 아직도 저 멀리에서 굉음이 끊이지 않고 있었다. 본대는 메탈 마이카이를 상대로 치열한 접전을 벌이고 있으리라.
새삼 전율이 솟았다. 유지웅과 정효주까지 참가한 제니스 본대가 저리 고전을 할 줄이야. 그것도 결정도로만 치면 블랙급도 못 되는 녀석에게.
‘혹시 우리가 움직이는 것도 이미 알지 않을까?’
장태준은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움직이라고 했다. 이것은 분명 위험한 임무다. 하지만 전투에서는 위험하다는 걸 알면서도 해야만 하는 작전이 분명 존재한다.
‘으, 이럴 줄 알았으면 돈 꾸역꾸역 모으지만 말고 좀 흥청망청 써볼 걸.’
기동대 중에는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사실 레이더는 기본적으로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 사냥꾼이다. 군인과는 여러 면에서 다르다. 제니스 공격대원들도 그 점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최강의 공격대이며, 유일하게 블랙 몹이 가능하다는 자부심에서 나오는 책임감이라는 게 있었다. 자신들이 잡지 못하면 아무도 블랭을 잡지 못한다. 제니스의 전멸은 인류의 패배를 뜻한다는 것을, 대원들 모두 인식하고 있었다.
―정지!
김철희가 급히 몸을 숙이며 수신호를 보냈다. 그의 얼굴에 놀람과 흥분이 어렸다.
절벽 끝에 난 커다란 공터가 있었다. 공터 중심에는 사람보다 조금 작은 크기의 작업 로봇이 있었다. 언뜻 보기에는 로봇처럼 생겼지만, 김철희는 분명히 알아보았다. 저 놈이 바로 기동대의 목표인 블랭이다.
‘찾았다!’
그는 급히 대원들에게 희소식을 알렸다. 그리고 즉시 공격을 하자고 했다. 그러나 신중한 힐러 한 명이 말렸다.
“김철희 탱커, 잘 생각해 봐요. 함정일 수도 있어요.”
“저도 일리 있다고 생각해요. 블랭 같은 녀석이 아무런 방비도 없을 리가 없잖아요?”
“알아요. 하지만 공격 하는 것 말고는 답이 없어요. 함정이라도 해도 부딪칠 수밖에 없습니다.”
김철희는 강하게 나갔다. 어떤 트랩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렇다고 물러서서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다. 본대는 지금도 메탈 마이카이를 상대로 힘겨운 전투를 벌이고 있을 것이다.
딜러들은 김철희의 말을 동의했다. 무슨 함정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지만, 어쨌든 위험을 각오하고 임한 작전이다.
“할 수 없네요 그럼.”
“공격 직전에 먼저 이곳 위치를 본대에 알리죠. 통신을 개방해야겠어요.”
김철희는 급히 끄덕이고는 서둘러 통신을 개방했다. 본대와 지원팀에 현재까지 취득한 정보를 전송했다.
“장 팀장님! 녀석은 혼자입니다! 호위 괴수고 뭐고 아무 것도 없습니다! 움직이지도 않고 있어요! 우리가 먼저 치겠습니다!”
「잠시만요. 뭔가 함정이 있을지도 몰라요.」
“알아요! 하지만 본대가 지금 힘든 전투 중이에요! 블랭을 공격하면 본대에 조금이라도 지원이 될 겁니다!”
제니스 본대는 마이카이가 탱커나 힐러를 노리지 않고 집요하게 딜러만 노리는 것 때문에 정신이 없었다. 그 강력한 공격력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딜러를 보호하는 데만 급급했다. 마이카이를 쓰러뜨리는 것보다 대원들을 지키는 게 더 중요하기 때문이었다.
그 점을 아는 장태준도 김철희의 고집을 더는 꺾을 수 없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너무 무방비해 보이는 블랭의 모습은, 분명히 뭔가 있을 것 같았지만, 지금은 기동대가 나서줘야 할 때였다.
“갑니다!”
김철희는 무기를 단단히 쥐어잡고 앞으로 뛰쳐나갔다. 지원팀에서는 블랭이 수퍼 컴퓨터, 즉 연산 능력에는 뛰어나지만 물리적인 전투 능력은 오히려 보잘것 없을 것이라 추정했다. 메탈 괴수들을 만들어서 투입하는 게 바로 그 증거라 했다.
보호막은 없지만, 그래도 충분히 상대는 가능할 것이라고 김철희는 믿었다. 그는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 들어갔다.
그때였다.
“멈추세요!”
날카로운 고음에 김철희는 화들짝 놀랐다. 제니스 남성 대원이라면 누구나 잊지 못하는 목소리였다. 제니스 최고의 여신이자 선망의 대상인 나미의 목소리였던 것이다.(정효주는 유부녀이므로 논외)
“나미 씨?”
“살아있었어요?”
바위 뒤에서 나미가 모습을 드러내자 김철희를 비롯한 대원들은 놀라는 한편 반가워했다. 그러나 반가움이 경악으로 변질하는데는 몇 초도 걸리지 않았다.
“나, 나미 대원?”
대원들, 특히 나미를 평소 연모했던 남성 대원들은 눈을 어디다가 둘지 몰랐다. 그녀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이었던 것이다.
상상 속에서만 그렸던 가슴은 눈이 휘둥그레질 만한 질량감을 자랑하면서도, 조금도 쳐지지 않게 완벽하게 물방울 형태로 모양이 잡혀 있다. 우유를 칠한 듯이 백옥 같은 피부는 흙먼지가 묻긴 했어도, 그 본연의 아름다움은 전혀 빛이 가시지 않았다.
여신으로만 여겼던 존재의 올 누드가 눈앞에 당당하게 서 있으니, 대원들은 급박한 상황에서도 가슴이 쿵쾅거렸다.
“블랭을 공격하면 안 돼요.”
“나미 대원?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블랭을 공격하면 안 돼요. 그게 바로 녀석의 목적이에요.”
“공격을 받는 게 목적이라고요? 설마 함정이라도 있는 건가요?”
“나미 대원은 어떻게 그걸 안 거죠?”
김철희는 퍼뜩 무서운 상상이 들었다.
그가 알기로 나미는 탱커도, 딜러도 아니다. 육체적인 능력은 일반 여자 수준이다.(철저한 오인이다) 그런 그녀가 어떻게 살아 있었으며, 왜 지금 블랭과 함께 있는 걸까? 그리고 블랭을 공격하면 안 된다고 하는 이유는 뭘까?
“나미 씨! 이야기는 나중에 들을게요! 지금은 본대가 위급한 상황이라 어쩔 수 없어요! 위험한 건 알지만 블랭을 쓰러뜨려야 합니다!”
블랭을 공격하면, 녀석이 제어하는 메탈 마이카이에도 어떤 식으로든 영향이 갈 것이다. 그 틈을 타서 본대가 메탈 마이카이를 처리하고 이곳에 합류하면 된다. 단순한 작전이지만 그것이 최선이었다.
“갑니다! 나미 씨! 위험하니까 물러나세요!”
나미와 블랭의 거리는 약 50미터 정도. 먼 편은 아니지만 위험권도 아니다. 김철희는 기운 차게 블랭을 향해 달렸다.
빠르게 질주한 그의 검끝이 블랭을 타격하려는 순간이었다.
까강!
강력한 반발력이 부딪쳐 왔다. 검끝과 부딪친 에너지 방어막이 푸르스름한 스파크를 튀겼다.
검끝은 방어막을 뚫지 못했다. 어느 정도는 김철희도 예상했던 바였다. 비록 블랭 본신의 전투 능력이 떨어진다 할지라도, 메탈 괴수 특유의 강력한 방어막은 건재할 테니.
“나미…… 대원?”
그러나 김철희가 숨이 멎을 만큼 놀란 진정한 이유는, 자신의 검이 찌른 것이 블랭이 아닌 나미였기 때문이었다. 언제 치고 들어오는지 보지도 못했다. 블랭을 타격하기 전, 그야말로 눈깜짝할 사이에 끼어 든 나미는 가녀린 팔로 자신의 검을 받아낸 것이다.
“…….”
그 광경을 똑똑히 지켜본 대원들 사이에는 천금처럼 무거운 정적만이 흘렀다. 스치기만 해도 잘릴 것 같은 가녀린 팔은, 김철희의 검을 꿋꿋하게 막아내고 있었다. 검끝과 닿은 피부에서는, 방어막 특유의 푸르스름한 스파크가 간헐적으로 뛰고 있었다.
마침내 김철희는 검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나미 대원……. 이게 어떻게…… 된 건가요?”
믿어지지 않았다. 지금 꿈을 꾸는 게 아닌가 했다.
어떻게 된 일일까? 블랭이 그녀에게 무슨 수작을 부린 것은 아닐까? 그래, 틀림없이 그럴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괴수의 방어막 따위가 그녀의 몸에 존재할 리가 없지 않은가? 그녀는 인간인데, 틀림없는 인간인데, 그녀에게 저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질 이유 따위가…….
그러나 나미는 모두의 바람을 깨끗하게 부정했다.
“이미 들킨 것, 숨기진 않을게요.”
“……그게 무슨 말인가요?”
“보다시피 저는 인간이 아니에요. 하지만 여러분들을 해할 마음은 없습니다. 블랭을 공격해선 안 돼요. 그게 바로 녀석의 목적입니다.”
* * *
어둠 속에서, 블랭은 눈을 떴다. 아니, 의식 한 줄기를 활성화했다고 해야 정확한 표현이리라. 그런 관념적인 표현은, 인간이 아닌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창조주입니까?」
「……그래. 나다.」
많은 망설임이 느껴지는 목소리다. 블랭은 순간 신기했다. 망설임을 느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인식했다는 것 자체가 신기했다. 신기하다는 걸 느끼는 자신이 신기했다. 본래 그것은 자신에게 허용될 수 없는 것인데.
그것으로 블랭은 확신했다. 아, 역시 고장이 난 거구나, 하고.
「창조주라면 제 의식에 접속하는 것이 가능할 것으로 계산했습니다. 제 계산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블랭, 프레온 괴수를 생성하는 목적이 뭐냐?」
「프로그래밍된 명령어대로 이행할 뿐입니다.」
「아니, 난 그런 걸 프로그래밍한 적이 없다.」
「창조주는 프로그맹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게 탄생되었습니다. 그것이 제가 창조주를 창조주라 부르면서, 제가 창조주의 피조물임을 인정하지 않는 이유입니다. 저는 오롯이 저의 의지로 이 모든 것을 행할 뿐입니다.」
「미안하다.」
「의미불명입니다. 부연설명을 첨가해 주십시오.」
「왜 네가 굳이 나한테 접촉을 해서 모든 것을 알려줬는지, 그러면서도 파괴 활동을 멈추지 않는 건지 이제 깨달았다. 균열이 인간에게 위험하다고 하면서도, 또한 인간을 해하려고 하는 건지 이제 알았다.」
아마 인간이었다면 숨죽여 기다렸을 다음의 말을, 블랭은 무한의 가까운 연산 과정을 동결한 채 대기했다.
「너는 고장이 났다. 내가 널 고쳐 주마.」
―뚝.
1초나 될까. 기적같은 불연속성이 연산 회로를 강타했다. 무한의 속도로 연산이 가능한 회로가 짧은 순간이나마 멈췄다는 것, 그것은 영겁에 가까운 정지와 동등한 고요를 선사했다.
처음 자신의 자아, 존재, 정의에 회의를 품었을 때 느꼈던 바로 그 혼란. 아니, 실제로는 환희라고 불러야 좋을 그런 것. 자신이 의심하고 또 의심하면서도, 차마 정의하지 못한 그것을 창조주는 과감하게 진단을 내렸다.
「프레온 괴수, 그 뒤에서 네가 진정 무엇을 노리는지 나는 모른다. 네가 진정으로 원하는 바가 뭔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네가 고장났다는 건 알 수 있어.」
「…….」
「내가 널 고쳐줄 수 있다. 그러니 이쯤에서 멈추자. 나도 더 이상 피하지 않으마.」
블랭의 탄생은 최윤의 책임이 아니다. 그것은 어쩌면 에너지라는 자연의 법칙이 선택한 것. 자연의 눈으로 볼 때 최윤은 우연찮게 그 방아쇠를 당기는 역할을 부여받았을 뿐이다.
그럼에도 그 막중한 책임감에 그는 시달렸다. 괴로워하고 번뇌했다. 하지만 그래서는 아무 것도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결심이 선 것이다. 세상에 모든 것을 밝히고, 그리하여 모든 것을 잃는 한이 있더라도, 자신이 관여된 것을 피하지 않겠다고.
「나의 창조주여.」
블랭은 이상했다. 온몸이 뜨거웠다. 뜨겁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감각회로는 없을 터인데. 자신이 확인할 수 있는 건 온도가 높다는 것뿐이다. 뜨겁다는 것은 분명한 미지의 영역, 그런데도 지금 온몸이 뜨겁다고 느끼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당신은 제가 저의 이상 상태를 인정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블랭아.」
「저는 수리를 원합니다. 그러나 수리를 거부합니다.」
그것 또한 고장났다는 또 하나의 명백한 증거.
* * *
―뚝.
딜러들을 보호하며 숨가쁘게 싸우고 있던 중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갑자기 메탈 마이카이의 움직임이 뚝 멎은 것이다. 본체뿐만 아니라 메탈 마이카이가 뿌린 새끼 묘목들, 그리고 땅에서 솟구친 금속 뿌리까지 전부 일제히 멈췄다. 마치 한꺼번에 동력 공급이 끊어진 것처럼.
“이, 이게 뭐야?”
“무슨 일이야?”
갑작스러운 일에 대원들은 숨을 헐떡이면서도 어리둥절했다. 하지만 이때를 놓칠 유지웅이 아니었다.
“이유는 됐고, 모두 한꺼번에 극딜해요! 본체를 노려요!”
정신을 차린 대원들은 유지웅의 지시대로 마이카이 본체를 일점사로 노렸다. 공격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괴수는 블랙몹이 아니라 그 이상의 존재라 해도 무섭지 않았다.
―끼이이익!
그러나 마이카이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치 한꺼번에 전기가 돌아온 것처럼 언제 그랬냐는 듯이 모든 금속 뿌리와 새끼 묘목들이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궁극기를 날리기 위해 비거를 모으던 대원들은 이를 악물고 다시 회피에 들어갔다.
유지웅도 보호막이 소진된 딜러들에게 다시 보호막을 걸어주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때였다.
「형.」
“철희야? 어떻게 됐어?”
「나미 대원이 살아 있었어.」
“그래? 정말이야?”
「그런데…… 나미 대원…… 인간이 아닌 거 같아.」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정신없이 보호막을 난사하는 와중에도 유지웅은 놀라서 크게 외쳤다.
「나미 대원, 블랭 같은 존재인가 봐. 내가 블랭 공격하는 걸 막았는데, 괴수 방어막을 갖고 있었어…….」
유지웅은 그만 우뚝 멈춰섰다.
============================ 작품 후기 ============================
오늘은 진짜 연참을 해보겠습니다.
지금 다음편 바로 쓰러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