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554)
00554 대격변? =========================================================================
자회사인 카드사의 정보 유출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세 그룹은 계열사를 팔아서 배상금을 충당했다. 숨겨놓은 비자금만으로는 턱없이 모자랐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만약 정부의 지급보증이 없었다면 절대 불가능했을 것이다.
겨우 사태를 수습하고 나니 결과는 처참했다. 알짜배기 회사 지분, 주요 자산은 다 팔아버렸다. 남은 것은 대규모로 축소된 그룹 규모와 수십조 원의 빚뿐이었다. 막대한 배상금 때문에 주가 또한 폭락하고 있었다.
“주주들 사이에서도 여러 모로 말이 많습니다. 그룹 전체가 연대 책임을 지지 말고 카드 계열사 하나만 희생하는 선에서 끝냈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난을 치고 있던 이형준 일성그룹 명예회장은 황진우 비서실장의 보고에 피식 웃어버렸다. 상황 파악을 할 줄 모르는 자들이나 할 수 있는 안일한 발상이다. 로테회장 등 국내 재계의 거목들이 그걸 몰라서 고스란히 배상금을 감당한 줄 아나?
주주들 입장에서는 애간장이 탈 일이다. 하락세로 접어든 주가는 도무지 회복될 기미가 없었다.
“대량으로 풀리는 세 그룹 지분을 사들이는 세력이 있어 조사를 해봤습니다. 헌데…….”
“유지웅 회장 일가인가?”
“그렇습니다. 정확히는 부인인 정효주 탱커장이 가족 명의로 사들이고 있는 듯합니다.”
“얼마나 확보했지?”
“각 계열사마다 다릅니다만, 그룹 전체로 보면 최소 41% 이상은 넘어선 것으로 보입니다.”
이형준은 잠시 손을 멈추고 생각했다. 이것을 어떻게 해석하면 좋을까?
정효주가 지분을 사들이고 있는 건 세 그룹 최고 임원진도 이미 알아차렸을 것이다. 아마 그들은 이렇게 생각할지 모른다. 정보 유출은 핑계였을 뿐이고, 유지웅의 진짜 목적은 싼값에 그룹을 집어삼키는 것이라고.
겉으로 드러난 결과만 보면 일리가 있는 생각이다. 유지웅이 3천만 피해자들을 모아서 고소를 하고, 총 270조 원의 배상금을 뜯어낸 덕분에 세 그룹 주가는 바닥을 쳤다. 배상금을 감당하기 위해 지분이든 부동산이든 유보 현금이든 닥치는 대로 끌어다 써야 했다.
그 싼값에 나온 지분은? 정효주가 족족 사서 모았다. 이걸 보면 누구라도 음모론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으리라.
‘하지만 다르다.’
이형준은 국내 기업인 중에서는 유지웅과 가장 많은 접촉을 해왔다고 자부한다. 사람을 보는 눈도 제법 된다.
‘세 그룹을 집어삼킨 건 부수적인 결과지, 애당초 의도했던 목적은 아니었다.’
이형준의 결론은 그랬다.
목적이 무엇인지를 정의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래야 행동 방침을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지웅은 세 그룹을 싼값에 먹어보겠다는 의도가 전혀 없었다. 그저 자기 개인 정보가 유출되었다는 불쾌감에 ‘응징’을 내린 것일 뿐이다. 폭락한 주식을 긁어모은 것은 어디까지나 덤에 지나지 않는다.
‘……아쉽군.’
이형준은 나지막한 신음을 흘렸다. 유지웅을 생각할 때마다 아쉬운 마음에 그저 속이 쓰릴 뿐이다.
처음부터 적극적으로 잡지 않은 점, 태안 폭발 사고 때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해 사태를 키운 점, 우호적이었던 그를 중립으로 돌려버리고 만 점 등, 그를 생각하면 여러 모로 쓰렸다.
“요즘 그린 결정체 정제설비 시장은 어떤가?”
황 비서실장은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사실상 사양길에 접어들었습니다. 그린 결정체 수급량이 뚝 줄어 설비 가동률이 예전의 10%도 채 되지 않습니다. 설비 생산 시장은 일제히 공장을 멈추고 손을 놓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린 결정체 공급량이 다시 복구되지 않는 한 시장이 살아나기는 불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옐로 몹은 멸종의 길로 접어들었다고 하지 않는가.”
“제니스 연구단지의 발표로는 그렇습니다.”
“블루 결정체 정제설비 시장이 엄청나게 성장하겠군.”
비유하자면 그린 결정체는 석탄, 블루 결정체는 석유다. 당연히 정제시설은 서로 호환되지 않는다. 일단 연료 등으로 정제를 마친 결정체는 그린과 블루 여부에 상관없이 사용이 가능하지만, 정제 과정에서는 별도의 모델을 써야 한다.
즉 그린 결정체가 시장에서 퇴출되면 전 세계에 깔려 있는 그린 결정체 정제 기반시설을 전부 갈아엎어야 한다. 그 매출 규모만 해도 어마어마할 것이다. 그리고 한국은 블루 결정체 공정에 있어 가장 뛰어난 기술력과 노하우를 갖고 있다.
“……아쉽군. 정말 아쉬워.”
그게 바로 요즘 이형준의 입에서 한숨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태안 폭발 사고 때문에 일성그룹은 국내에서는 결정체 정제업에 진출할 수 없게 되었다.
블루 결정체로 세대교체가 이뤄지고 있는 변혁기, 이 가장 중요한 시기에 사업 진출을 금지당한 것이다. 얼마나 속이 쓰라리겠는가.
손가락만 빨고 놓쳐 보내야 할 수많은 기반설비 교체 사업들을 생각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지경이다. 주가도 서서히 하락세에 접어들고 있었다. 투자자들도 바보는 아니기 때문이다.
* * *
“그걸 다 산 거야?”
“응. 나오는 대로 샀어. 왜, 안 돼?”
“아니, 안 될 건 없는데. 네가 그걸 사서 어디다 쓰게?”
“글쎄. 하는 김에 자선사업이나 해볼까 해서.”
“자선사업?”
“자선사업이 별 거니? 회사가 너무 돈돈만 하지 않게 해도 나름대로 자선사업 될 거야.”
듣고 보니 일리가 있었다. 재미 삼아 해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다 싶었다.
“뭐, 어떻게 하려고?”
“그냥 카드 수수료율 좀 낮추고 직원 임금이랑 복지 조금만 개선하라고 시키면 되지. 너무 풀어주는 건 안 좋지만 또 너무 조이는 것도 안 좋으니까.”
“난 바짝 조이는 게 좋은데.”
“…….”
짓궂은 농담에 정효주는 가볍게 눈만 흘겼다. 그가 키득거리며 허리를 감싸서 당겨 왔다.
회사 지분을 사 모은 이유? 글쎄다. 특별한 건 없었다. 그냥 폭탄 세일로 나왔으니 샀고, 이왕 산 김에 간접 사회 기부나 해볼까 하는 것이다.
꼭 재단을 설립하고, 돈을 내놓아야만 기부는 아니다. 수십 만 직원들의 임금 및 복지를 조금씩만 향상시켜줘도 충분한 기부 행위가 된다. 이른바 간접 기부다.
“그런 것도 좋지. 너무 돈이 한곳에만 몰리면 장기적으로도 결국 안 좋다더라. 그 뭐더라? 병들고 불합리한 사회에서 최고 먹어봐야 별 소용없더라고. 결국 망하고 마는데.”
도시 건설, 나라 운영 시뮬레이션을 해보면서 참 느낀 점이 많았다. 최고 지도자가 개인적인 이익만 바득바득 긁어모으고 사회는 나 몰라라 하면 결국 망한다.
“자기 혹시, 우리나라를 내 거라고 생각하는 거 아니야?”
“……어, 반쯤은?”
“자기, 어디 가서 그런 말 하면 큰일 난다.”
“뭐 어때? 이 나라 국민으로서 투철한 주인 의식을 갖고 있을 뿐이야. 국민이라면 누구나 그러지 않아?”
“어유, 말이라도 못하면 밉지나 않지.”
유지웅은 키득거리며 일어났다. 오후에는 가벼운 식사 약속이 잡혀 있었다. 상대는 강우석 의원 부부였다.
“준비하고 이제 슬슬 출발하자.”
“세현이는? 어떡하지?”
“쿤겐이 잘 놀아주고 있던데 뭐. 놔둬.”
검은 색 정장으로 맞춰 입은 둘은 3층에서 내려왔다. 하얀 마이바흐 란돌레가 둘을 기다리고 있었다. 운전기사가 얼른 와서 문을 열어 주었다.
나란히 뒷좌석에 오르자 차가 부드럽게 출발했다.
“그러고 보니 강 의원님 와이프 뵙는 건 처음이네.”
“그러게.”
“미국 사신다고 하지 않았니?”
“그랬던 거 같아.”
강우석을 보면 참 특이한 인물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한국 정계에서 나름 파워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특별한 비리가 없다는 점이 신선하다. 정치 후원금도 합법적인 액수가 아니면 아예 받지도 않는다고 하고, 특별히 후원금을 모으기 위해 동분서주 하지도 않는다고 한다.
“와이프가 엄청 부자라고 하던데.”
“우리보다 더?”
“에이, 그건 아니고. 암튼 미국에서 무슨 재벌급이랬어.”
그만한 정치가의 부인이 공식석상에 노출이 되지 않은 점도 특이하고, 아무튼 이래저래 신기한 사람이다.
둘은 여의도 제원호텔에 도착했다. 호텔 지배인이 1층 로비까지 내려와서 유지웅 커플을 맞이하고 안내했다. 프론트 부근에 있던 손님들이 누구야, 하듯이 힐끔거렸다.
“의원님께서는 벌써 기다리고 계십니다.”
“네.”
정효주와 팔짱을 끼고 들어서던 유지웅은 순간 멈칫 했다. 정효주가 의아해서 갸웃거렸다.
“왜 그래?”
“아,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어. 너랑 전에 여기 한 번 온 거 같은…….”
“……우리 여기 단골이거든?”
“아니, 그런 게 아니라. 그러니까 그게…….”
유지웅은 스스로가 생각해도 실없다는 걸 깨닫고는 머쓱해서 다시 걸음을 옮겼다.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VIP룸에는 이미 강우석이 먼저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었다. 반갑게 들어서던 유지웅은 순간 멈칫 했다. 부부동반 식사라고 했는데, 강우석의 아내는 안 보이고 막내손녀로 보이는 여자만 있었기 때문이다.
탐스러운 흑발에 늘씬한 팔다리, 작고 하얀 얼굴에서 단아한 느낌이 묻어나는 대단한 미인이었다. 딱 상류층 집안의 귀한 딸 같은 분위기라고 해둘까.
“어서 와요.”
유지웅을 본 강우석이 반갑게 맞이했다. 유지웅도 그에게 인사하며 의자를 빼서 정효주가 앉게 했다. 그리고 자신도 앉았다.
“오랜만입니다, 강 의원님.”
“그러게 말입니다. 한 번 자리를 마련하고 싶었는데 워낙 공사가 다망한 분이시라 영 힘들군요.”
“사실 크게 바쁘진 않아요.”
“유 회장, 그럼 시간 좀 많이 내줘요. 유 회장 만나고 싶은 사람들이 지금 엄청 줄을 섰어요.”
“그런데 이 분은……?”
“아참, 내 정신 좀 보게. 인사해요. 내 안사람입니다.”
유지웅은 하마터면 뿜을 뻔했다.
혹시 최근에 새 장가 드셨어요? 라는 말이 저절로 나올 뻔했다. 남편이 한국 정계의 중추가 될 때까지 외국에서 송금을 아끼지 않으며 뒷바라지를 해온 조강지처 재벌 기러기 와이프를 저버리고, 어리고 예쁜 아내를 새로 얻은 뭐 그런 시츄에이션?
“이렇게 보이지만 사실 나보다 연상이에요.”
“네?”
이거 어떻게 대해야 하나 당황스러워하던 유지웅은 흠칫 했다. 강우석은 올해 60이 넘는다. 물론 워낙 정정하고 관리를 잘해서 겉보기에는 40대 중후반으로 보인다. 평소에 운동도 게을리 하지 않아, 얼핏 보면 곱게 나이 먹은 장년으로 보인다.
“바깥양반한테 말씀 많이 들었어요. 반가워요. 이세나라고 합니다.”
이세나? 이세나? 어디서 많이 듣던 이름인데? 유지웅은 필사적으로 생각했다. 왜 저 이름이 귀에 익지?
정효주가 그보다 더 빨랐다.
“혹시 우리나라 최초의 탱커 각성자인 이세나 여사님이세요?”
“영광이군요. 아직도 그걸 기억해주는 젊은이가 있을 줄은 몰랐어요.”
“반갑습니다! 정효주라고 해요!”
정효주는 눈에 띄게 기뻐하며 활기차게 인사했다. 왜 저렇게 기뻐하나 하고 유지웅은 의아했다. 살아있는 한국 탱커의 전설이라는 건 얼핏 들은 거 같은데, 왜 저리 반가워하지?
“여사님의 활약은 많이 보고 공부했어요! 레이드를 할 때 참 큰 도움이 됐습니다! 힘들 때마다 마음가짐을 다잡는 데에도 힘이 됐고요!”
“빈말이지만 듣기 좋네요. 세계 최고의 탱커가 그렇게 봐주다니, 영광입니다.”
“아니에요! 여사님은 제 영웅이신 걸요!”
두 소녀……라고 해야 할까? 아무튼 소녀로 밖에 안 보이는 두 여자는 화기애애하게 이야기꽃을 피웠다.
옛날 한국 최고 탱커와 현재 한국, 아니 세계 최고 탱커끼리는 서로 통하는 무언가가 있는 모양이다. 아득한 수십 년의 격차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10대 후반의 동갑내기 소녀로 보인다는 게 많이 넌센스지만, 아무튼.
두 남자는 대화를 끼지 못하고 겉돌았다. 유지웅이 쓴웃음을 지으며 와인을 권했다.
“사모님 되시는 분이 이세나 탱커님이신 줄은 몰랐네요.”
“특별히 말을 할 기회가 없었어요. 많이 놀랐습니까?”
“그보다는 왜 의원님이 정치후원금에 전혀 관심이 없는지 그 이유를 6년 만에야 알았네요.”
이세나. 수십 년 전 한국 최고의 탱커이자 레전드라 불렸던 전설. 그녀는 당시 레이더로서는 상상을 할 수 없는 획기적인 길을 걸었다. 미국으로 혈혈단신 건너가 선진 레이드 시장에서 많은 돈을 벌어들였고, 그렇게 모은 돈을 각종 레이드 사업에 투자해서 더욱 많은 수익을 내서 세계적인 부자가 된 인물이다.
강우석은 그런 인물의 남편이었다. 그러니 코 묻은 정치비자금에 관심이 없었겠지.
============================ 작품 후기 ============================
1세대 레이드 재벌과 4세대 레이드 재벌이 서로 만났습니다?
PS : 표지가 테레사로 바뀌었습니다. 설정란에 풀샷을 올려두었으니 한 번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