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571)
00571 넘어져도 기적 =========================================================================
“초청장?”
“응. 카네기 가문에서 세인 아민 카네기 씨 생일파티를 한다는데, 어쩔 거야? 갈 거니?”
“글쎄. 가야 하나? 가야겠지?”
“가야지. 그래도 쿤겐의 할아버지인 걸.”
미국에서 날아온 초청장에 유지웅은 떨떠름했다. 카네기 가문과는 적당히 협조 관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사적으로는 그리 썩 친분이 있는 사이는 아니다. 카네기 가문의 혈육인 테레사가 제니스 공격대원이자 흑석동 집사로 있긴 하지만, 테레사는 카네기를 자기 집안으로 생각 안 한 지 오래다. 원수로 여기는 건 아닌 듯한데 무관심으로 대한다고 해야 할까.
“쿤겐.”
테레사를 찾았다. 그녀는 유세현과 나란히 앉아서 그림책을 보고 있었다. 그런데 좀 여성스럽게 앉으면 좋으련만, 짧은 반바지를 입고 양반다리로 앉아 있으니 원…….
“예, 써. 무슨 일이십니까?”
유지웅이 부르자 테레사는 얼른 일어났다. 잘 놀고 있던 유세현은 괜히 뾰로퉁해서 아빠를 쳐다봤다. 마치 왜 말 시켜서 테레사가 일어나게 만들었어요, 하고 불만을 나타내는 듯하다.
“카네기에서 초청장이 왔어요. 테레사 할아버님 되시는 분이 생일이라고 하네요.”
“그렇습니까? 그러고 보니 그 영감 생일이 벌써 왔군요.”
아무리 내놓은 자식이라지만, 친할아버지를 영감이라고 대놓고 부르는데는 유지웅도 속으로 진땀을 흘렸다. 이거, 아이 교육에 괜찮은 거야?
“우리 가족뿐만 아니라 제니스 전원을 다 초청했는데, 테레사도 같이 갈래요?”
“저는 가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할아버지고, 집안 행사인데…….”
“저는 카네기를 더 이상 제 집안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저는 제니스 가문에 뼈를 묻을 겁니다.”
이봐, 그게 얼마나 위험한 발언인지 알고 있어?
“테레사, 할아버지가 있었어? 생일이야?”
“예? 아, 아닙니다.”
“그럼 아빠가 거짓말한 거야? 테레사 할아버지 생일이라며?”
“할아버지는 맞지만 지금은 더 이상 할아버지가 아닌…….”
테레사는 뻘뻘거리며 변명을 했다. 저런 모습을 처음 보는 유지웅은 신선하고 귀엽게 느껴졌다. 여신 뺨치게 이쁜 주제에 언제나 군인처럼 반듯하던 그녀가 저렇게 당황하다니.
“그게 뭐야? 할아버지면 할아버지고, 아니면 아닌 거지. 할아버지야, 아니야?”
“……일단 맞긴 합니다. 하지만 도련님, 여기에는 개인적인 사정이…….”
“할아버지 맞네. 그럼 생일파티에는 당연히 가야지.”
“예? 하지만 그건.”
“가자, 가자! 아빠! 나도 갈래요! 나도 가도 되죠?”
“어, 응. 그래. 쿤겐만 좋다면…….”
“테레사. 갈 거지?”
쪼르르 달려온 유세현은 테레사의 허벅지를 껴안고 매달리며 그렇게 물었다. 동그란 눈동자와 시선이 마주친 테레사는 할 수 없다는 듯이 끄덕이고 말았다.
“알겠습니다…….”
축 쳐진 어깨가, 왠지 귀엽게 느껴지는 것은 어째서일까.
* * *
미국으로 향하는 A3에 탑승한 제니스 공격대원들은 하나같이 신이 나 있었다. 그들 개개인도 나름 큰 부자이긴 하지만 그래도 미국의 전통적인 거부가 주최하는 파티가 어떤 것일까 하는 기대감이 있기 때문이었다.
“생각해보니 웃기네. 우리가 이렇게 들뜬 거.”
“왜?”
“아니, 그렇잖아. 사실 재산으로 따지면 공대장님이 훠얼씬 더 부자인데, 우리가 이렇게 설렐 거 있나?”
“그래도 전통이 있잖아. 난 그런 사람들은 파티 같은 거 어떻게 하고 노나 좀 궁금했다.”
“맞아. 솔직히 공대장님 파티는 화려하고 비싼 음식이 많아서 좋긴 한데, 대학생 엠티에 돈을 엄청 들인 느낌? 막 돈으로 업그레이드한 그런 느낌이 없진 않잖아.”
“그래도 집은 궁전이잖아.”
틀린 말은 아니다. 유지웅은 집에서 파티를 할 때 가진 부에 비해서 소박하게 하는 편이다. 유명 인사를 초청하는 것도 아니고, 파티 정복을 차려입고 격식 있게 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맛있고 비싼 음식, 술들을 잔뜩 시켜놓고 대학생들 놀듯이 편안하게 노는 식이다.
그래서 더 좋다는 사람들도 많다. 대학 동기나 과 선후배들도 맘 편하게 놀 수 있는 분위기라서 흑석동 파티를 좋아한다. 만약 정재계 고위 인사들을 불러놓고 파티 정복을 입고 치르는, 멋이 잔뜩 들어간 파티라면 이들 젊은층 입맛에 맞지 않았을 것이다.
“카네기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제니스 공격대 여러분.”
A3는 카네기 가문 본가에 딸린 활주로 착륙했다. 대형 제트기가 이착륙할 만큼 커다란 활주로가 딸려 있다는 사실에 유지웅은 새삼 놀랐다. 유세현이 신기한 듯이 말했다.
“와, 아빠. 테레사 할아버지는 우리보다 더 부잔가 봐요.”
“아니야! 아빠가 훨씬 더 돈 많아!”
“하지만 우리 집은 비행기 길이 없잖아요?”
“그, 그건 땅이 좁아서 그래.”
활주로. 그놈의 활주로. 흑석동에 집을 지을 때 안슐이 지나가듯이 염려했던 그 말이 왜 이렇게 후회가 되는지.
‘진짜 세종시로 콱 이사를 갈까?’
요즘 들어 그런 생각이 하루에도 수백 번씩 든다. 돈은 문제가 안 된다. 한 5조 원을 처바르면 지금 흑석동 저택보다 더 웅장하고 멋있고 호화롭고, 활주로는 물론이고 항구까지 딸린 대저택을 지을 수 있을 것이다.
‘아니야. 됐다, 무슨.’
그래도 5년을 산 정이 있어서 지금 저택이 아깝다. 집이라는 게 꼭 호화로움만이 전부는 아니다. 정효주와 결혼식을 올린 정원을 지나며 옛 추억을 곱씹기도 하고. 집이란 그런 맛이 있어야 하지 않는가?
“반갑습니다, 미스터 카네기.”
“반갑습니다. 유 회장.”
유지웅과 세인 아민 카네기는 악수를 나누었다. 옆에서 플래시가 터졌다. 기자를 불렀나 해서 보니 기자는 아니고, 정장을 입은 웬 젊은 청년들이었다.
“가문 아이들입니다. 기념사진을 찍는 거예요. 혹 불쾌하신 것은 아닌가요?”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어차피 얼굴 팔릴 대로 팔렸는데요, 뭘.”
웃음을 지으며 손을 놓은 세인은 이번에는 테레사에게 눈을 돌렸다.
“테레사.”
“…….”
테레사는 말없이 쳐다보기만 할 뿐이었다. 미움도, 뭣도 전부 다 잊은 표정이었다. 마치 나는 이제 더 이상 카네기와는 아무런 인연이 없다고 말하는 것처럼.
세인의 눈길이 아래로 내려갔다. 테레사의 옆에서 다리를 껴안고 꼭 붙어 있는, 귀엽고 씩씩한 사내아이에게로. 다이아몬드 수저를 입에 문 채로 태어난, 세계 제일의 귀공자다.
세인은 묘한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테레사에게 말했다.
“한동안 걱정을 했었는데, 그럴 필요는 없어졌구나. 잘해주고 있어서 다행이다.”
“……무슨 뜻입니까, 회장님.”
“이런 자리에서까지 딱딱하게 회장님이라고 부를 필요가 뭐 있느냐. 할아버지라고 부르거라.”
“싫습니다.”
“테레사. 네 마음은 안다만…….”
“그만 하십시오.”
테레사의 눈빛에서 불꽃이 튈 듯하자 카타리나가 서둘러 손뼉을 치며 나섰다.
“자자, 먼 길 오시느라 피곤하실 텐데 사람들이 방으로 안내해 드릴 거예요. 일단 여장을 풀고 나서 다 같이 저녁 식사를 하기로 해요.”
가정 직원들이 우르르 달려와서 제니스 대원들이 든 짐을 들고 각자 방으로 안내했다. 240명이 넘는 인원이었지만 카네기 가의 본채가 워낙 큰 터라 숙소는 넉넉했다. 물론 지원팀까지 왔다면 천하의 카네기라도 감당하지 못했을 것이다.
유세현은 테레사의 다리에 꼭 붙어 있었다. 세인은 그 모습을 조금 묘한 눈으로 보다가 유지웅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본인이 저택 안내를 해도 될까요?”
“아, 그래주신다면 영광입니다.”
“가장 중요한 손님이니 내 직접 모셔야지요. 이쪽으로 오시지요.”
세인은 손수 유지웅과 정효주를 안내해서 저택의 중요한 곳을 구경시켜 주었다. 호화로운 분수대, 아름답게 잘 꾸며진 정원 같은 것은 유지웅 커플도 별 감흥이 없었다. 그 정도는 흑석동 저택에도 갖춰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서재에 들어선 순간 유지웅의 눈빛이 달라졌다. 단순히 서책을 보관하는 곳이 아니었다. 카네기 가문의 주요 인물들의 초상화 및 사진, 유품, 생전 시절 이룬 주요 업적이나 경력을 정리해놓은 것 등이 유지웅의 눈을 사로잡았다. 이것이야말로 역사와 전통이 있는 가문의 서재답지 않은가.
“조상분들을 이렇게 기리고 있으시군요.”
“물론이지요. 이 분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카네기가 있을 수 있었던 겁니다.”
“아, 이 분은?”
“카네기 가문을 세우신 초대 철강왕, 앤드류 카네기입니다. 정말 자랑스러운 분이시지요.”
제니스가(家)는 유지웅이 1대라고 할 수 있다. 이제 겨우 한 5년 되었나? 그래서 가문의 역사적인 면에서는 내세울 만한 게 아무 것도 없다.
세월이란 아무리 많은 돈을 들여도 살 수가 없는 것이다. 유지웅은 정신없이 서재에 잘 정리된, 카네기 가문의 역사를 구경했다. 과연 미국의 정통 부호 가문다웠다. 새삼 부러웠다.
“록펠러가에도 이런 게 있을까요?”
“그렇습니다. 저도 한 번 구경을 해본 적이 있습니다.”
“저력 있는 가문이란 과연 무섭군요.”
짐짓 말에 뼈가 있다고 느꼈을까. 세인은 소리 없이 하얗게 웃었다.
“그래봐야 세월의 퇴적물일 뿐입니다. 지금 제니스가 가진 힘에 어디 비할 바가 되겠습니까? 마음만 먹으면 미국 대통령도 갈아치울 수 있는 힘을 지녔는데.”
“에이, 그 정도는 아니에요. 저 힘없어요.”
“어디 가서 그런 말씀 하시면 눈총 받으실 겁니다.”
“사실인데요, 뭘. 제가 무슨 재주로 미국 대통령을 갈아치우고 말고를 하나요? 저 미국 사람도 아닌데.”
딴에는 겸손을 떤다고 하는 말이다. 하지만 겸양도 지나치면 거만이 된다고 했다. 옆에서 듣다 못한 정효주가 막 말리려고 할 때였다.
“사실 할 수야 있지만, 그런 거 해서 뭣 하나요. 괜히 이런저런 음모론에만 휘말리죠. 저 그런 거 딱 질색이거든요.”
“이해합니다, 그 마음.”
“전 앞에서 설치는 스타일이지 뒤에서 남들 몰래 흉계 꾸미고 킬킬거리고 그런 거 별로더라고요.”
정효주는 어색하게 웃고 말았다. 순간적으로 세인의 표정이 가볍게 경직된 건, 아마 착시가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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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음모론 따위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냥 깽판을 치고 말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