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650)
00650 우린 아직 준비가 덜 됐는데… =========================================================================
희소식이 날아왔다. 북극곰 괴수가 국경지대에서 남하를 멈춘 것이었다. 원인은 몰랐지만 백악관은 일단 한숨을 돌렸다. 하필 국경선에서 딱 멈추는 바람에 캐나다와 미국 간에 보이지 않는 신경전을 치러야 하게 생겼지만, 일단은 시간을 벌었다.
“처치해도 문제, 처치하지 않아도 문제라.”
비시는 근심이 잔뜩 어린 얼굴로 신음했다. 측근들의 표정도 썩어 있었다. 벌써 며칠이나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한 건지 모르겠다. 알래스카에 북극곰 괴수가 출현한 이후 백악관에 걸린 비상벨은 꺼지지 않았다.
백악관뿐만 아니라 캐나다 총리실도 비상이 걸렸다. 이미 캐나다는 북서부 지역이 핵폭발로 날아간 상황이다. 어찌 보면 미국보다 더 다급한 입장이었다. 아예 미국과 24시간 화상 회의 채널까지 열어두었다.
‘블랙 몹 이상.’
표면상 결정도는 6,000. 하지만 블랙 몹은 체내의 결정체를 자유자재로 분산한다. 신체가 견디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북극곰 괴수가 레드 타입인지, 블랙 타입인지를 놓고 전문가들 사이에서 의견이 갈렸다.
그러나 오리나가 거기에 확실하게 선을 그었다.
“핵물질과 결정체가 안정적으로 결합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퍼플 결정체 이상이 되어야 합니다. 그 이하 출력에서는 결합 반응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어떻게 그걸 아는 거지?”
“니트로 교수가 완성한 이론 모델로 계산했습니다.”
“니트로 교수님을 불러와! 지금 당장!”
그렇게 니트로 교수는 개인 연구실에서 결정체 핵융합 장치 시범 모델 제작을 위해 골몰하다가 사복 차림의 정부 요원들에게 강제로 이끌려 비행기에 타게 되었다.
니트로를 처음 본 비시는 매우 놀랐다. 그럴 것이, 니트로는 겉으로는 16세의 잘생긴 소년이었기 때문이었다. 흰 가운보다는 캐주얼이 잘 어울릴 듯한 이미지에 비시는 뭔가 잘못된 건 아닌가 했다.
보좌관이 귓속말로 살짝 설명했다.
“박사 학위를 세 개나 가진 뛰어난 천재입니다. 한국 연주대학교에서 종신 교수직을 맡았습니다.”
“음, 그런가?”
어쩌다가 저런 뛰어난 인물을 해외에 내주게 된 거지? 비시는 조금 속이 쓰렸다.
“닥터 니트로, 설명이 필요하네. 자네 의견을 듣고 싶네.”
영어에는 존대가 없다지만, 그래도 서열을 나뉘는 표현이나 뉘앙스는 있는 법이다. 한참 아랫사람을 대하는 듯한 말투에 니트로의 눈썹이 순간 꿈틀했다. 어디 새파랗게 어린놈이.
하지만 니트로는 참았다. 그런 걸로 뭐라고 할 상황도, 자리도 아니거니와 상대는 대통령이었다.
비행기로 오면서 자세한 사정을 들은 니트로는 준비한 대로 브리핑을 시작했다.
“제가 하고 있는 연구는 핵물리학과 결정체학의 통합 이론 모델 제작에 관한 겁니다. 사실 그간 북극곰 괴수에 관해서 잘 모르고 있다가 비행기 안에서 관련 이야기를 듣고 급히 몇 가지 가설을 세워봤습니다.”
“가설이라도 괜찮네. 말을 해주게.”
“먼저 저 역시 오리나가 추론한데로 북극곰 괴수가 방사능 물질을 흡수해 체내 결정체와 융합했다고 생각합니다. 관련 데이터를 살펴보고 그런 확신을 얻었습니다. 제가 연구 중인 이론 모델에서 핵물질과 결정체 에너지가 융합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물리 현상이기 때문입니다.”
한 명만 빼고 모두들 진지한 얼굴로 듣고 있었다.
“다만 일정한 조건이 필요합니다.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중요한 건 결정 에너지가 일정 이상 높은 파워를 갖고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 최소점이 퍼플 결정체입니다.”
“그렇다면, 자네는 북극곰 괴수가 최소한 블랙 타입 이상이라고 생각한단 말인가?”
“Yes.”
“음, 그럼 생포를 해야 하나…….”
유지웅이 팔짱을 낀 채 그리 중얼거렸다. 농담으로 한 말인지 진담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로 진지했다. 행정부측 인물들 귀가 솔깃할 정도였다.
니트로가 다시 말했다.
“몇 가지 레이드 전술 계획은 이미 들었습니다. 저는 그 전술에 회의적입니다.”
“왜요?”
“광역 보호막이 아닌 단일 보호막은 방사선을 막지 못하는 점 때문입니다.”
“그래서 탱커 외에는 전원 광역 보호막 안에서 극딜을 할 생각인데요. 문제가 있나요?”
“평소 상태에서 북극곰 괴수가 뿌리는 방사선의 양은 탱커가 충분히 버틸 수 있는 정도입니다. 하지만 전투 상태가 개시했을 때 그 방사선의 양이 얼마만큼 폭증할지는 아직 모르는 일입니다.”
“교수님은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시죠?”
“적어도 월등하게 높아지리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일반 탱커는 결코 견디지 못할 겁니다. 정효주 탱커는, 글쎄요. 어쨌든 위험할 수 있습니다.”
유지웅은 순간 정효주를 돌아봤다. 일반 탱커는 견디지 못한다? 그럼 와이프는?
‘안 돼.’
그는 곧 고개를 저었다. 허용할 수 있는 위험을 감당하는 것과 예측불가의 위험에 와이프를 밀어 넣는 것은 전혀 별개의 일이다. 이 나이에 벌써 홀아비가 될 수는 없다.
“방법이 없을까요?”
니트로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다들 그도 해결책이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유지웅의 어깨에 앉아 있던 오리나가 정적을 깼다.
“에너지장을 이용한 붕괴 억제 반응을 이용하면 가능성이 있습니다.”
“붕괴 억제 반응? 그게 뭐지?”
“그게 뭔가?”
유지웅은 의아했고, 비시는 일단 화색을 보였으며, 니트로의 얼굴은 살짝 일그러졌다. 그는 어처구니가 없는 얼굴로 오리나에게 물었다.
“네가 그걸 어떻게 알지?”
“교수님의 컴퓨터 데이터를 살펴보고 알았습니다.”
“뭐? 내 컴퓨터를 뒤졌다고? 대체 언제?”
“뒤진 것은 아닙니다. 네트워크망에 접속하니 저절로 데이터가 들어왔습니다.”
“이 무슨 미친 수퍼 컴퓨터…….”
니트로는 천재다. 그래서 오리나가 지금 한 말이 무슨 뜻인지 단숨에 깨달았다. 그냥 네트워크망에 발을 한 번 담갔는데, 철가루를 빨아들이는 거대 자석처럼 유용한 데이터란 데이터는 모조리 흡수했다는 이야기다. 그러니까 자동 반사 반응 같은 거다.
칠드그린의 얼굴도 살짝 흐려졌다. 오리나의 말과 니트로의 반응에서, 그 엄청난 성능이 짐작되었기 때문이다. 컴퓨터형 괴수라고 해서 대단히 높은 성능을 가졌다는 건 알았지만, 이 정도인 줄은 몰랐다. 이래서야 미합중국의 보안 정보가 전부 유지웅에게 넘어가 있는 것과 다를 바 없지 않은가.
‘최윤 박사, 대체 무슨 괴물을 만들어낸 거요.’
보아하니 비시는 오리나의 잠재적 이용 가능성을 아직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하긴 그에게는 당장 닥친 북극곰 괴수의 위협이 더욱 급할 테니.
“니트로 교수, 설명을 해주게. 붕괴 억제 반응이란 게 대체 뭔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니트로가 입을 열었다.
“원자의 붕괴 현상을 억제하는 겁니다. 원래는 결정체의 핵분열 반응 유도를 위해 만든 이론 모델입니다.”
이번에는 유지웅이 물었다.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 거죠? 쉽게 설명해주세요.”
“에너지장을 형성해 그 안에 존재하는 핵물질 결정체의 붕괴를 강제로 억제하는 겁니다. 실현이 가능하다면 북극곰 괴수 결정체의 핵분열 반응을 봉쇄할 수 있습니다.”
“그럼 핵폭발도, 방사선 누출도 막을 수 있는 거 아닌가?”
“그렇습니다.”
비시는 기쁘면서도 한편 이해가 안 갔다.
“헌데 왜 아까는 말을 아꼈나? 무슨 문제라도 있나?”
“일단 예산이 많이 듭니다. 그래서 저도 연구를 중지하고 핵융합 반응 쪽으로 눈을 돌린 겁니다.”
유지웅은 뭐가 문제냐는 듯이 시원스럽게 가슴을 치며 말을 꺼냈다.
“지금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죠. 돈이 부족하다고요? 누구 앞에서 그런 이야기를 하는 건가요?”
비시는 끄덕였다. 아무렴, 세상에서 가장 부자를 눈앞에 두고 지금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어찌 보면 그게 큰 모욕일 수도 있다는 걸 모르나? 역시 어려서 그래.
“미국 한 해 예산이 얼만데. 캐나다까지 합치면 천문학적인 돈을 얼마든지 대줄 수 있을 거예요.”
비시는 하마터면 뿜을 뻔했다. 이, 이 사람! 자기 돈은 전혀 쓸 생각이 없어.
낌새를 눈치 챈 유지웅은 이상하다는 듯이 돌아봤다.
“미국과 캐나다의 위기니까, 당연히 두 나라의 돈을 투입해야죠. 안 그래요?”
“무, 물론입니다.”
“하지만 연구 결과는 니트로 교수님 겁니다. 이해하시죠?”
“당연합니다.”
지분에 관한 사소한 문제가 간단하게 해결됐다. 니트로는 새삼 존경스럽다는 눈으로 유지웅을 봤다. 어떻게 말 한 마디로 저런 천문학적인 예산을 뜯어낼 수 있을까. 그것도 자기 지갑은 아예 열지도 않은 채. 저것이야말로 과학자라면 본받아야 할 처세술 아닌가?
“예산은 해결됐네요. 또 문제가 있나요?”
“그게, 시간이 필요합니다.”
“시간이요?”
“이 과정에는 최윤 박사가 만든 결정 에너지 폐쇄 공간 재현 모듈이 필요합니다. 아직 최윤 박사는 준비가 덜 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유지웅은 흙빛이 되었다.
“네? 뭐라고요? 폐쇄 모듈? 그게 왜 필요해요?”
“에너지장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동력원으로 레드 결정체급 출력이 필요합니다. 현재 인위적으로 그만한 파워를 낼 수 있는 건 최윤 박사의 폐쇄 모듈뿐입니다.”
“오리나가 있잖아요?”
레드 결정체라면 오리나가 이미 자기 걸로 만들어버린 구체가 있지 않나? 그걸 사용하면 안 돼?
“안 됩니다.”
“저는 에너지 역장 구현에 필요한 계산을 해야 합니다. 그 계산 과정에 구체의 에너지를 사용해야 합니다.”
“뭐라고요? 그럼 레드 결정체가 두 개나 필요하다는 거예요?”
“하나는 계산용, 하나는 동력원입니다. 계산기는 있는데 엔진은 없네요.”
최윤이 이렇게 필요하게 될 줄이야. 유지웅은 얼른 한국에 전화를 걸었다. 최윤이 잠이 덜 깬 목소리로 받았다. 간단한 사정을 설명해주자 최윤은 칼같이 말했다.
「죄송합니다. 저흰 아직 준비가 안 됐는데요.」
소중하게 아끼던 폐쇄 모듈을 오리나에게 빼앗긴 원망이 절절이 담긴 하소연이었다.
============================ 작품 후기 ============================
헉헉 너흰 아직 준비가 안 됐다으아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