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728)
00728 묘목을 사수하라 =========================================================================
“가렌, 네 이 노오오옴!”
문을 박차고 들어선 니트로는 가렌 혼자뿐인 것을 확인하고 분노로 일갈했다. 그는 가렌의 멱살을 쥐어 잡을 듯이 달려들었지만, 가렌은 육십 대 몸 같지 않게 사뿐히 피했다.
“어허, 교수님. 왜 이러십니까. 누가 보겠습니다.”
“보라 그래라! 보라 그래! 이 노옴!”
“스승 장가보내려고 불철주야 노력하는 제자의 고충을 왜 몰라주십니까. 야박하십니다. 전 세계 어느 대학을 뒤져봐도 이런 제자 못 찾습니다.”
“이 놈아! 대체 연구소에 무슨 소문을 내고 다닌 거냐! 모르는 사람이 한 명도 없잖아!”
“아, 그 소문이요? 저도 듣긴 했습니다만 제가 냈다는 증거가 어디 있습니까?”
“시치미 뗄 거냐!”
“증거를 가져와 보시지요.”
가렌은 천연덕스럽게 니트로의 공세를 받아쳤다. 씩씩거리던 니트로는 셔츠 목 칼라를 거칠게 풀고는 앉았다.
“휘버한테 널 이적시킨 게 내 인생 최대의 잘못이었다.”
“잘못이라니요. 그때의 이적이 없었으면 지금의 교수님과 저도 없었을 겁니다.”
어쩜 저리 얄밉게 말할 수 있을까. 니트로는 차마 한 대 후려갈길 수도 없고 속만 부글부글 끓었다.
어려서 돈에 팔아넘겼다고 그 앙금을 수십 년이 지난 이제 와서 제대로 갚으려는 모양이다.
“제 몸도 하나 거동하기 힘든 늙은 스승을 기어이 데릴사위로 팔아야겠냐.”
“어디 가서 그런 말씀하시면 큰일 납니다. 팔팔한 청소년이시면서 거동하기 힘들게 늙었다니요.”
“몸이 젊으면 뭐 하냐. 마음이 늙었는데.”
“마음 늙은 건 티 안 나니까 염려 마세요.”
“끝까지 한 마디도 안 지려는구나.”
“저도 스승 팔아서 호사 한 번 누려보고 싶습니다.”
“지금도 충분히 호사를 누리고 있거늘, 여기서 뭘 더 바라는 거냐! 더 욕심내는 건 죄악이다, 이 놈아!”
“정말 그렇게 생각하세요?”
“…….”
예산에 대한 탐욕은 끝이 없어야 한다. 무제한이어야 한다. 결코 식어서는 안 된다.
늘 그렇게 제자들에게 강조했던 니트로는 가렌이 직설적으로 묻는 말에 일절 반박할 수가 없었다.
“휴양지는 왜 안 가셨어요? 회장님이 모처럼 전세기까지 대절해 주셨는데.”
“가서 뭐 해.”
“정 이사 때문입니까?”
“……알면서 물어보냐. 나쁜 놈.”
이를 바드득 갈던 니트로가 문득 물었다.
“그러는 넌 왜 안 갔냐?”
“아, 미국 스팟 필드 부근에서 조금 이상 수치가 잡혀서요. 마음에 걸려서 그거 조사 중입니다.”
“이상 수치?”
“별 건 아닙니다. 그냥 개인적으로 신경이 조금 쓰여서요.”
“네가 신경이 쓰인다면 별 게 아닌 건 아니지. 어디 나도 한 번 보자.”
니트로는 스승을 팔아넘기려고 작정한 제자를 원망하던 것도 잠시 잊고 모니터 수치에 집중했다. 그는 무심결에 턱을 쓰다듬으며 그래프 수치에 몰입했다.
한참 후 니트로는 모니터에서 시선을 떼었다.
“확실히 이상한데.”
“그렇죠? 결정 에너지 농도가 뭔가 불안정해요.”
“티가 날 정도는 아니지만…….”
“아직 보고하기는 좀 그렇죠?”
니트로는 아무 말도 않은 채 분석 자료를 들여다보았다.
미국 스팟 필드 결정 에너지 농도 스캔 지도에 미약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가렌처럼 뛰어난 과학자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지 않았으면 알아내지 못했을 만큼, 정말로 작은 변화였다.
스팟 필드는 아직 초기인데다가 규명되지 않은 게 많은 만큼 철저한 사후 관리가 필요했다. 이전에 확인되지 않은 수치 변화가 나타나면 조사를 할 필요가 있었다.
“짚이는 건 없냐?”
“전혀 없죠. 없으니까 조사하는 거 아닙니까.”
“오리나가 필요하겠군. 어디 있지?”
“그게…… 휴양지에 가져가신 것 같던데요.”
니트로의 이마에 힘줄이 삐죽 솟았다.
“통신으로 데이터 보내서 분석 요청해 봐.”
“쌍방 연결이 차단돼서 이쪽에서 엑세스할 수 없습니다. 누가 직접 가야 하는데요.”
“왜 차단했는데?”
“그건 저도 잘…….”
오리나는 어디에 있든 원격으로 쉽게 자료를 보내 분석을 요청할 수 있다. 이용자에게 권한만 있으면 된다. 그리고 웬만한 고위직 연구원들은 그런 권한을 갖고 있다.
그런데 쌍방 연결을 차단했다는 것은 오리나 쪽에서 하위 권한자들의 접속을 임시적으로 폐쇄했다는 뜻이다. 이런 경우는 사실 좀처럼 없다. 일부러 그러지 않는 한은.
“네가 그랬지! 네가 회장님한테 그러자고 했지!”
“증거 있습니까?”
“가렌, 이 노오옴!”
“아무튼 휴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실 거면 그러셔도 되고요, 아니면 지금 바로 쫓아가셔도 되고요. 전용기는 제가 따로 준비해뒀습니다.”
니트로는 천성이 과학자다. 궁금한 게 생기면 지금 바로 해결해야 직성이 풀린다. 그리고 그는 지금 매우, 엄청나게, 궁금한 연구 테마가 생겼다.
“혹시 이거 데이터가 조작된 건 아니지?”
“제가 아무리 스승님 장가보내려고 안달이 나 있어도 그런 몰염치한 짓은 하지 않습니다. 연구 데이터를 조작하다니, 어휴. 말도 안 되는 일 아닙니까.”
“믿어보겠다. 다녀오마.”
“건승을 기원하겠습니다, 교수님.”
“필요 없다. 꺼져.”
* * *
아이들과 실컷 놀아주고 난 유지웅은 진이 빠져서 터덜터덜 걸어서 돌아왔다. 정효주가 반가이 맞이하며 먹을 것을 권했다. 그는 입맛이 없는 듯 대강 먹는 시늉만 하고는 파라솔 아래에 그대로 누워 버렸다.
“내 아들이지만 기운이 너무 넘쳐.”
“어떡하니. 하연이, 하원이 이제 크면 놀아달라고 달려들 텐데.”
“으으, 역시 애들은 안고 다닐 때가 젤 좋은 거 같아.”
“피. 그런 게 어딨어. 쑥쑥 크면 좋은 거지.”
피즈와 유세현은 지치지도 않는지 열심히 물을 튕기며 놀고 있었다. 둘은 유유자적하게 둥둥 떠다니는 나디아의 조개에 갑작스럽게 올라탔다. 조개가 기우뚱거리자 한가하게 일광욕을 즐기던 나디아가 깜짝 놀라서 몸을 움츠렸다.
“형부, 이거 드세요. 제가 직접 갈아서 만들었어요.”
정혜주가 다소곳하게 오렌지 주스가 담긴 잔을 내밀었다. 천연 오렌지를 직접 갈아서 만든 주스였다. 한 모금 넘기자 시원한 느낌이 식도를 타고 넘어갔다.
“맛 좋은데?”
“제가 언니 닮아서 요리는 제법 잘하잖아요.”
“닮긴 뭘 닮았다고…….”
“언니!”
“사실이잖아. 너 요리 할 줄 아는 거 몇 개 되지도 않으면서.”
“그래도 내 나이에 나만큼 요리 잘 하는 여자애는 없거든!”
“내가 네 나이에 한식, 중식, 일식, 이탈리아 해서 요리 자격증만 여섯 개를 갖고 있었는데, 지금 너는?”
“그건 언니가 너무 사기인 거구!”
언니한테 시원하게 침몰되는 처제를 구경하며 유지웅은 다시금 오렌지 주스를 쭉쭉 빨아 마셨다.
“오리나. 롤드컵 하이라이트 편집해서 좀 띄워 봐.”
「지시를 이행합니다.」
오리나가 두 손을 뻗었다. 손 위로 둥둥 떠 오른 구체가 파르스름한 빛을 내며 허공에 커다란 영상을 만들었다. 이어 영상에서는 전설대전 국제 경기 명경기가 재생되었다. 구체에서 웅장한 사운드가 쾅쾅쾅 울렸다.
연구 분석에 수퍼 컴퓨터가 절실한 과학자들이 보면 땅을 치고 통곡할 일이다. 오리나처럼 다시없을 고성능의 인공지능 컴퓨터 괴수를 고작해야 게임 경기 재생에나 쓰고 있으니.
그때였다. 멀리서 테레사가 급히 달려왔다. 뭔가 큰일이 벌어진 표정이었다.
유지웅과 정효주는 놀라서 주춤거렸다. 테레사가 저리 헐레벌떡 뛰어올 일이 뭐가 있지?
헌데 이상했다. 테레사는 둘에게 가볍게 인사만 하고 그대로 정혜주에게 가버린 것이다. 이게 뭔 일이래?
“네? 정말이요?”
“예. 제가 탑승자 기록을 확인했습니다.”
“저번에 예산안 기각까지 들먹이면서 오라고 협박한 건 가뿐히 씹더니…… 호랑이 굴에 제 발로 들어와? 좋았어!”
정혜주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녀는 잠시 자신의 몸매와 수영복 차림새를 확인한 후 얇은 시스루 숄을 걸쳤다. 비키니의 과감한 노출을 시스루의 은은한 가림으로 커버한, 남자의 눈길을 자극하는 아찔한 차림새였다.
“형부, 언니. 저 잠시 갔다 올게요.”
“어디 가는데?”
“있어요. 그런 일.”
정혜주는 총총거리며 어딘가로 사라졌다. 정효주는 테레사에게 자초지종을 듣고 아 하고 탄성을 냈다. 유지웅이 물었다.
“무슨 일인데?”
“니트로 교수님이 왔대.”
“뭐? 아하, 그래서…….”
눈치 없기로 유명한 유지웅도 그 한 마디에는 쉽게 납득했다. 일이 재밌어진다며 낄낄거리던 그는 문득 심각해졌다.
“근데 만약 둘이 잘 되면 족보 엄청 꼬이는 거 아니야?”
“…….”
“말해야 되지 않을까?”
“그러지 마. 니트로 교수님도 그거 생각해서 일부러 피해 다니고 계시는데, 굳이 그 분 비밀 말할 필요는 없잖아.”
“하긴, 그건 그래.”
니트로가 젊어졌다는 것은 극소수만 아는 비밀이다.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라면 모를까, 지금 그가 알아서 정혜주와 거리를 두고 있는데 굳이 정혜주에게 사실대로 말할 필요는 없다. 그의 명예와 처신에도 관련된 일이니까.
유지웅은 문득 처제가 조금 가여워졌다.
“처제, 안 될 사랑에 목메고 있구나. 불쌍하다.”
“……내 생각엔 불쌍한 게 그쪽이 아닌 것 같아.”
“응? 무슨 소리야?”
“있어. 그런 게.”
자매는 같은 자매가 가장 잘 아는 법.
정효주는 벌써부터 한숨이 나왔다.
============================ 작품 후기 ============================
‘어서 완결내고 딴글 써주세요’
도가 넘은 말입니다.
이런 말 하지 말아주세요.
자꾸 그러시면 완결도 안 내고 딴글도 안 쓰고 걍 쉬고 싶어지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