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934)
00934 나는 하렘이다? =========================================================================
처음 유지웅은 당황했다. 그러나 이내 흥분했다. 저번 생의 기억이 새록새록 살아났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기필코!’
안슐, 자신에게 돈쓰는 법을 알려준 인물, 하지만 한 번도 넘어설 수 없었던 스승.
저번 생에서 얼마나 많은 분야에서 그에게 패배를 기록했던가. 심지어 저번 생에 찍은, ‘부탁해요 냉장고’에서도 무참히 패배했었다.
야심차게 주문한 대형 특제 냉장고를 가져갔을 때만 해도 그는 승리를 확신했다. 웬만한 가정집 크기만 한 대형 냉장고다. 그러나 안슐은 이동이 가능하도록 개조된 특대형 ‘냉동창고’를 가져왔다. 결국 시작부터 무참히 패배한 것이다.
‘이번에는 달라!’
그 수치심을 기필코 갚아 주리라! 그리고 이제 안슐을 넘어섰다는 것을 만천하에 증명하리라!
“좋아요. 안슐리제가 참가할 수 있도록 제가 준비하죠.”
“기대되는군.”
“네, 저도 기대돼요.”
허공에서 마주친 눈빛이 불타올랐다.
유지웅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 * *
“뭐라고?”
성희원 피디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처음에는 잘못 들은 게 아닌가 했다. 아니면 이름이 같은 다른 사람이던가.
하지만 사색이 되어 쭈뼛거리는 부하 직원의 표정을 보니, 아무래도 잘못 들은 것은 아닌 모양이다.
“……유지웅 회장이 우리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싶다고 전해왔답니다.”
“그 유지웅 회장?”
“네, 그 유지웅 회장입니다.”
“아니, 왜 우리 프로그램에? 예능을 히스토리 다큐로 만들 일 있나?”
너무 기가 막힌 나머지 가슴이 갑갑해졌다. 차라리 대통령이 출연한다 해도 이보다 막막하지는 않을 것 같다. 다른 사람도 아닌 유지웅이라니.
이미 유지웅이 참가한 저번 프로그램 촬영이 엉망이 된 전적이 있지 않은가. 물론 그가 직접 망친 것도 아니고, 그가 직접 참가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때의 악몽이 생생한 성희원 피디는 상상만으로도 머릿속이 아득해졌다. 이걸 어쩌면 좋대?
“그럼 어떡합니까? 꼭 참가하고 싶다고 부탁을 해오는데요. 거절할까요?”
“자네,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해? 이 나라에서 쫓겨나고 싶나?”
“하지만 출연 거절했다고 설마 나라에서 추방하기라도 하겠어요? 그 사람, 그래도 일반 시민들한테는 잘해준다고 소문이 자자한데요.”
“사람 속은 알 수 없는 거야. 그리고 그 사람 속은 어떨지 몰라도, 주변 측근은 안 그렇지. 정치라는 괴물이 어떤 놈인지 한 번 생각해 봐.”
“아, 그렇군요!”
“거절 할 수도 없고…… 이거 정말 골치 아프네. 으으윽!”
피디는 두 손으로 머리를 북북 긁었다.
그러나 어쩌랴. 까라고 하면 까야 하는 게 현실인 것을.
결국 제작진은 다음 촬영을 위한 준비에 발 벗고 나섰다. 쉐프진에 자세한 상황을 설명하고, 협조를 구했다. 유지웅이 출연한다는 소리에 쉐프진은 기겁을 했다.
“유지웅 회장이 게스트로 출연한다고요?”
“네, 그렇게 됐습니다. 그러니 아무쪼록 별 일 없도록 조심 좀 부탁드립니다.”
“아니, 그 분은 왜 이런 예능을…….”
특히 최현석의 표정이 압권이었다. 그는 이미 유지웅과 한 번 얽힌 적이 있다. 대통령인 부친을 압박하기 위해 자신에게 뇌물을 강제로 떠안기지 않았던가. 그거 때문에 여러 모로 마음고생 좀 했다.
“이거 마음 단단히 먹어야겠어요.”
“맞아요. 무슨 일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겁니다. 우리가 조심해야 합니다.”
“그, 그래도 별 일은 없겠죠? 제발 그러길 바래요.”
“…….”
쉐프진은 저마다 단단히 각오를 다졌다.
그리고 촬영 당일이 되었다.
“여기가 공항동 팰리스?”
“와, 저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에요. 어마어마하구나.”
“김포공항 전체를 저택으로 꾸몄다던데……. 대단하다, 정말.”
공항동 저택에 도착한 촬영진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높고 거대한 정문, 끝없이 뻗은 담벼락, 그리고 대공원에 들어온 듯한 드넓은 정원은 절로 어깨를 움츠리게 만들었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대저택이 있구나. 신기하다.”
“와…… 하루라도 좋으니 이런 곳에서 살아봤으면 좋겠다.”
쉐프들은 자기들끼리 그런 이야기를 했다.
본래 이 프로그램은 게스트 출연자 두 명의 냉장고를 각각 뜯어와서, 그 안에 든 식재료만으로 승부를 가리는 것이다.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듯이 냉장고 안의 식재료도 저마다 제각각이다. 심지어 어떤 이는 맥주와 안주만 가득 들어 있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 차이점이 웃음을 낳고, 촉박한 시간 안에 조리를 마쳐야 하는 점, 쉐프들의 요리 평론 및 입담 등을 통해 프로그램의 재미를 한결 살린다.
그래서 원래는 쉐프들이 여기까지 올 이유가 없다. 하지만 피디는 이번에는 특별히 냉장고를 가져오는 단계부터 촬영을 했다. 아마도 최장 2박 3일 정도는 촬영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드디어 드러난 본채의 위용에 촬영진과 쉐프들은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저게 정말 개인이 거주하는 집이란 말인가? 백화점 몇 개는 합쳐 놓은 듯 거대한데?
“오셨군요.”
유지웅은 자신만만한 태도로 맞이했다. 촬영진은 다소 기가 죽었지만, 곧 피디가 앞으로 나서며 씩씩하게 인사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성희원 피디입니다.”
“반갑습니다. 유지웅입니다. 오늘 하루 잘 부탁드립니다.”
“네, 저희야말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안에 모시고 차 한 잔 대접해드리고 싶지만, 촬영 때문에 많이 바쁘시죠? 바로 냉장고 가지러 갑시다.”
“네? 아니, 저 괜찮은데…….”
피디는 버벅거렸다. 아니, 우리는 괜찮은데? 이렇게 근사한 대저택에 들어가서 우아하게 차 한 잔 얻어 마시고 싶은데? 어떻게 안 될까요?
그러나 아쉽게도 유지웅은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듯했다. 피디는 물론이고 촬영진, 쉐프진도 저마다 보이지 않게 탄식을 터트렸다. 아이고, 천운이 이렇게 날아가는구나.
“자, 따라오시죠.”
유지웅은 손수 그들을 안내했다. 그러고 보니 방향이 조금 이상했다. 냉장고를 가지러 가야 하는데, 왜 집에 들어가지 않고?
“저, 냉장고가 밖에 있습니까?”
“네, 너무 커서 집에 들여놓을 수가 없어서요.”
“하하, 그게 무슨…….”
피디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실소했다. 아니, 저택이 백화점 몇 채는 합쳐놓은 듯한데? 냉장고 하나 넣을 데가 없다고? 그 냉장고가 대체 얼마나 크길래?
유지웅이 안내한 곳은 공항 청사 쪽이었다. 그제야 촬영진은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는 멈추지 않고 그대로 격납고까지 안내했다. 그러니까 비행기 격납고 말이다.
“자, 저겁니다.”
격납고에 불이 켜졌다. 잠시 눈이 부시고, 이내 드러난 거대한 점보기의 위용에 이들은 할 말을 잃었다. 바로 A480,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항공기였던 것이다.
피디가 정신을 차리고 물었다.
“저 비행기 안에 냉장고가 있나요?”
“무슨 말씀이시죠? 저게 냉장고입니다.”
피디는 외마디 비명처럼 외쳤다.
“네엣! 뭐라고요?”
“저 비행기가 바로 냉장고입니다. 일명 하늘을 날아다니는 백악관, 아니 냉장고, 에어포스 제로죠.”
촬영진은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굳어버렸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지금 이 양반이 뭐라고 한 거야? 뭐? 저게 냉장고라고? 지금 우리랑 싸우자는 거지!
“제가 좀 입맛이 까다로워서요. 다양한 식재료가 필요한데 해외 출장이 잦다 보니 아예 얼마 전에 새로 마련했습니다.”
“하…… 하. 그렇습니까…….”
절대로 이 프로그램 출연을 위해 준비한 것이 아니다. 나는 본래 이런 클래스의 사람이다. 정말이다.
마치 그런 뉘앙스의 말이었지만, 피디 이하 촬영진은 그런 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야말로 이 프로그램 역사상 다시없을 초대형 냉장고였다.
무려 4,500억 원짜리 냉장고! 세상에서 가장 크고, 거대하며, 가장 빠르기까지 한 냉장고가 아닌가.
충격에서 겨우 벗어난 촬영진은 긴급회의에 들어갔다.
“이러면 냉장고를 스튜디오로 어떻게 가져가죠?”
“어쩌기는. 스튜디오를 여기로 가져와야지.”
“또 다른 출연자가 중동의 왕녀였나요? 그럼 그분 냉장고를 여기로 가져오면 되겠군요.”
“그래, 설마 그 분도 냉장고가 비행기는 아닐 거 아냐. 아마 이런 냉장고는 세상에 다시는 없을 거다.”
유지웅은 회의를 살짝살짝 엿들으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압승 아닐까?
쉐프진은 비행기에 들어서서 냉장고를 살폈다. 과연 유지웅의 말은 허언이 아니었다. 기내 활용 공간의 90% 이상이 냉동 설비 및 보관 공간이었던 것이다. 단순히 비행기 안에 냉장고를 빌트인으로 넣은 게 아니라, 비행기 그 자체가 냉장고였다.
“없는 재료가 없어요! 이건 말 그대로 쉐프들의 보고입니다!”
“저 이런 거 처음 봅니다! 세계 삼대 진미가 이렇게 쌓여 있다니! 여기 심지어 라면도 있습니다!”
“라면까지 있으면 말 다 한 거군요.”
“자, 그럼 다른 냉장고를 가지러 갑시다.”
이미 냉장고의 극한을 봤다. 중동 왕녀가 어떤 냉장고를 보유했는지는 모르지만, 이보다 더 충격적이지는 않으리라.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다.
“공항동에서 촬영을 해야 한다고요?”
“네, 그렇습니다. 공교롭게도 유지웅 회장님의 냉장고가 스튜디오로 가져올 만한 게 아니라서…… 거기서 촬영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흠, 그거 문제가 있군요. 제 냉장고를 대체 어떻게 가져간다는 겁니까?”
“예?”
“직접 확인해보시죠.”
안슐리제는 손뼉을 가볍게 쳤고, 수행원이 들어와서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제가 안내해드리겠습니다.”
피디 이하 촬영진은 불안감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아니, 대체 또 뭐가 있는 거야? 응?
“저기,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는 겁니까?”
“냉장고가 있는 곳입니다.”
수행원들은 촬영진과 쉐프진을 항구 부두로 데려갔다. 그곳에는 안슐리제가 타고 온 크루즈선이 정박해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크다는 초대형 크루즈선이었다. 전장 길이만 무려 400미터에 달한다는 녀석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완전히 똑같은 크루즈선이 한 척 더 옆에 있었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중동 국기와 가문의 문양 모양까지 같았다. 둘 다 안슐리제 소유라는 뜻이다.
수행원은 그 중 오른쪽 크루즈선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겁니다.”
“네?”
“저게 안슐리제 님의 냉장고입니다.”
수행원은 별 거 아니라는 듯이 차분히 말을 이었다.
“해외 귀빈들과 유람 여행을 하다 보면 아무래도 선체 내장 냉장고만으로는 부족해서요. 그래서 배 전체를 냉장고로 꾸민 크루즈선 한 척을 거느리고 다니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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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냉장고를 어떻게 한 자리에 모을지 고민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