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bastard in a fantasy game RAW novel - Chapter 6
6화. Episode. 02 사람은 힘들 때 신을 찾는다 (3)
리하르트의 전담 시녀, 메리는 혼란스러운 속내를 감추지 못했다. 어째서 도련님이 자신과 함께 식솔 생활관으로 향하고 있는 걸까.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야?’
리하르트가 도와주겠노라 말했을 때, 그녀는 귀를 의심했다.
악명 높은 망나니에겐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 말이잖는가.
하지만 메리가 무어라 말할 새도 없이, 리하르트가 길 안내를 하라며 등을 떠미는 통에 차마 거절할 수도 없었다.
‘대체 어쩌시려는 거지……?’
리하르트가 무슨 속내를 감추고 있는지, 메리로선 도통 알 수 없었다.
‘그래도 요즘은 많이 달라지신 것 같아.’
안 하던 수련도 열심히 하고, 근래에 들어선 나쁜 짓도 전혀 하지 않았다.
특유의 포악한 분위기도 완전히 바뀌어 있었고.
하지만 그럼에도 메리는 불안한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망나니 도련님의 전담 시녀로서 감내해야만 했던 상처는 깊었고, 흘린 눈물은 수없이 많았으니까.
그런 와중에도 걸음을 멈추진 못하고, 어느새 목적지에 당도했다.
방문을 여니 안에는 창백한 안색의 여인이 침대에 누워 있었다.
“으음…….”
갑작스레 들려오는 소음에 깼는지, 여인이 신음을 흘리며 눈을 떴다.
“어머니!”
“메리? 이 시간에 웬일이니…… 콜록!”
여인의 입가에 피가 묻어나왔다.
메리는 가슴이 미어지는 것을 애써 참아 내곤, 멀뚱히 서 있는 리하르트를 소개했다.
“이분이 제가 모시는 리하르트 도련님이세요. 어머니의 상태를 직접 살펴보고 싶다고 하셔서…….”
“아!”
리하르트의 정체를 알게 된 여인이 급히 일어서려 했다.
리하르트가 손을 내저었다.
“됐습…… 아니, 됐어. 누워 있어.”
어딘가 어설픈 하대.
하지만 여인을 바라보는 표정만큼은 사뭇 진지했다.
“상태가 많이 안 좋아 보이네. 의원은 뭐라고 했지?”
급기야는 병세에 관해 꼬치꼬치 캐묻기까지 하였다.
“의원님께서는 가망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메리의 어머니, 멜라인이 힘없는 어조로 답했다.
그리곤 고개를 돌려 딸을 바라보았다.
자기만큼이나 수척해진 딸의 몰골이 사무치듯 눈에 들어왔다.
“리하르트 공자님. 저희 메리 좀 잘 부탁합니다. 부디…….”
이미 삶을 포기한 듯 리하르트에게 고개를 조아리는 모습에 메리가 왈칵 울음을 터트렸다.
눈물을 꾹 참던 멜라인도 그때부터는 어깨를 들썩이기 시작했다.
급격히 무거워진 방의 분위기.
약 냄새와 슬픔이 뒤섞인 공기는 너무나 텁텁했다.
“혼자 남을 딸이 걱정되면 죽으면 안 되지.”
리하르트가 멜라인에게 다가갔다.
슥, 한쪽 무릎을 꿇어 눈높이를 맞춘 그가 제 손을 멜라인의 손 위에 포갰다.
“……도련님?”
무엇을 하려는 걸까.
메리와 멜라인이 의문 어린 시선을 던질 때였다.
새하얀 빛이 리하르트의 손에서 흘러나왔다.
“이 빛은……?”
갑작스런 기현상에 멜라인이 화들짝 놀라기도 잠시, 그녀는 온몸에서 느껴지는 포근함에 절로 눈을 감을 수밖에 없었다.
병마에 잔뜩 지친 심신이 안정되어 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어때. 좀 낫지? 병세가 아주 조금이지만 호전되었을 거야.”
손을 거둔 리하르트가 씩 웃음을 지었다.
그런 그에게 메리와 멜라인이 믿을 수 없다는 시선을 보냈다.
평생 검을 쥐어 본 적 없는 그녀들도 마나가 무엇인지는 안다.
그래서 단언할 수 있었다.
방금 리하르트에게서 흘러나온 빛은 마나 같은 게 아니란 것을.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빛의 정체보단 그것이 갖고 있는 능력이었다.
“벼, 병세가 호전되었다고요?”
메리가 떨리는 음성으로 물었다.
의원도 고개를 저을 정도로 멜라인의 병세는 심각했다.
한데 그 병세가 한순간에 호전되었다니.
그녀가 물기 가득한 눈으로 멜라인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리하르트의 말이 허언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었다.
창백하던 멜라인의 안색에 조금이나마 핏기가 돌아온 것이었다.
“맙소사…….”
한참이나 멜라인을 바라보던 메리가 이내 리하르트에게 무릎을 꿇었다.
“도, 도련님! 부디 저희 어머니를 살려주세요! 시키는 건 무엇이든지 할 테니, 부디!”
간절함이 두려움을 이긴 것일까.
리하르트에게 애걸복걸 매달리는 메리의 눈엔 아무런 주저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제 어미를 살려 달라 간청할 뿐이었다.
“메리! 그만! 도련님께 무슨 추태를…….”
자신의 딸이 무릎을 꿇은 것을 본 멜라인이 다급히 침상에서 일어나려 할 때였다.
리하르트가 나직이 말했다.
“메리. 일어나.”
리하르트가 주저앉은 메리를 일으켜 세웠다.
그리곤 하늘을 향해 손가락을 올렸다.
“네 소원을 들어 주실 분은 내가 아니야. 나는 그저 대신하는 자일 뿐이니.”
싸아아-
따스한 빛이 방안을 밝혔다.
메리가 고개를 들어 리하르트를 바라봤다.
그의 몸은 후광(後光)을 휘감고 있었다.
“아…… 아아…….”
그것을 바라보자니,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이 흘렀다.
“신, 호르께 빌어라. 네가 할 일은 단지 그것뿐이야.”
◈ ◈ ◈
다음 날 아침.
나는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허공을 수놓은 시스템 창을 볼 수 있었다.
『메리가 간절한 기도를 올렸습니다』
『멜라인이 간절한 기도를 올렸습니다』
『총 60의 신앙을 획득합니다』
『기도를 올린 자에게 활력과 행운이 감돕니다』
“드디어……!”
마침내 내게 신자가 생겼다.
그것도 한 번에 둘이나.
이번 일은 막막했던 신앙 수급에 한 줄기 내려진 광명이나 마찬가지였다.
“받은 게 있으면 돌려줘야지.”
나는 곧장 잔여 신앙을 확인했다.
총 660.
어젯밤 메리와 멜라인을 감화시키기 위해 사용한 50의 신앙을 제외해도 제법 넉넉했다.
똑똑-
“도련님. 메리입니다.”
“그래. 들어와.”
때마침 메리가 식사를 가져왔다.
활력과 행운이 감돈다더니, 오늘은 그녀의 표정이 제법 좋아 보였다.
짐짓 모른 척하고 물어봤다.
“어때, 어제 내가 말한 건 해 봤어?”
“네, 네! 기도했어요. 정말 간절하게, 어머니와 같이 호르라는 신께 몇 시간이나 기도했어요!”
메리가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다.
그 눈빛이 어찌나 간곡하던지.
그녀가 지금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었다.
“그 정도나 할 필욘 없는데.”
기도는 그 안에 얼마나 진심이 담겼느냐가 관건이다.
뭐, 아무렴 어떤가.
나는 물잔을 쥐고 정신을 집중했다.
『해당 물체에 10의 신앙을 부여합니다.』
『미약하게나마 최하급 성수(聖水)의 성질을 품습니다.』
늘 그렇듯, 신앙은 만능의 힘이다.
검에 신앙을 담으면 성검이 되었고, 물에 담으면 성수가 된다.
“신께서 네 소원을 들으셨어. 아직 너희의 신앙심은 사소하기 그지없으나, 그분께선 자비를 베풀고자 하신다.”
“예?”
어리둥절한 표정의 메리.
난 그녀에게 물잔을 내밀었다.
“이건 그분의 힘이 담긴 물이야. 병마에 신음하는 이에게 큰 효과가 있지. 앞으로 스무 날 동안 내가 주는 물을 네 어머니에게 전해.”
메리는 도통 갈피를 잡지 못했다.
갑자기 웬 물이나 전해주니 당혹스러운 모양이었다.
그런 그녀의 손에 억지로 물잔을 쥐어 주었다.
“혹시 내가 물에 헛짓거리라도 했을까 걱정되면 네가 직접 마셔 봐도 좋아. 뭣하면 내가 마셔도 좋고.”
나는 지금 내가 뒤집어쓰고 있는 것이 망나니의 육신이란 사실도 잊지 않았다.
역시 눈앞에서 들이키는 모습을 보여 줘야 할까.
“아, 아뇨! 이 물은 제가 방금 가져온 거니까요. 그런데 정말…… 정말 이걸 마시면 저희 어머니가 나을 수 있을까요?”
“이러고 있을 시간에 가서 확인해 보는 게 어때.”
“…….”
잔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메리가 고개를 꾸벅 숙이곤 방을 나섰다.
다급한 발걸음 소리가 문 너머에서부터 점차 멀어져 갔다.
어제 내가 확인한 바로는 멜라인의 병을 고치는 데 필요한 신앙이 대략 200 정도는 되는 것 같았다.
이렇게 바로바로 효과를 보여 줘야 앞으로도 열심히 기도하겠지.
생각보다 금방 신도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좋아. 이게 바로 사람을 낚는 어부지.”
나는 밥을 먹으며 오늘 해야 할 일을 정리했다.
우선은 마나 둔감증.
『대상의 ‘마나 둔감증’을 치료합니다.』
『‘마나 둔감증’이 완화되어 갑니다.』
신도는 아니라지만, 마침내 두 명의 신자가 탄생한 것을 기념하며 50의 신앙을 사용했다.
안타깝게도 아직 완치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이게 어디냐.”
심장 어림에서 꿈틀거리는 마나가 좀 더 선명히 느껴졌다.
신앙도 그렇지만, 마나란 것도 알면 알수록 낯설고 신비했다.
◈ ◈ ◈
연무장으로 향했다.
오늘은 가주 회의가 있는 날.
하여 평소보다 일찍 단련을 시작할 생각이었다.
몸을 풀고 있는 내게 기사들의 시선이 꽂힌다. 그간 지겹도록 느꼈기에 별 대수롭지도 않은 일이다.
“훅! 후욱!”
적당히 풀린 몸으로 연무장 외곽을 따라 힘차게 달려 나갔다.
잔류하던 영약의 기운을 흡수한 덕에 체질이 개선되어, 몸이 한없이 가벼웠다.
“도련님. 곧 가주 회의가 시작한답니다.”
한참을 뛰고 있는데 아론이 내게 소식을 전해 주었다.
“대충 끝나는 시간에 맞춰서 나한테 일러 줘. 그리고 와인 한 병도 부탁해, 최고급으로다가.”
“와인을, 말입니까?”
아론이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내가 마실 거 아니고. 스승님 될 분을 뵈러 갈 거야.”
“스승님 말씀이십니까?”
어느 샌가 나와 함께 뜀박질을 하는 아론.
그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 눈을 크게 떴다.
“혹시, 발락 경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래.”
역시 맞출 줄 알았다.
떠돌이 검사, 발락.
이번 가주 회의에는 발락이 참가한다. 이번 회의가 거대한 스토리의 시작이었기에 잘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가주가 아닌 이가 회의에 참가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군요.”
“그만큼 영향력이 강한 사람이니까.”
영향력만 강할까.
그 무력도 가히 무소불위라는 말이 아깝지 않았다. 그리고 그만큼 괴팍한 성격이기도 했다.
“제가 알기론 발락 경께서는 일평생 제자를 찾아다니셨으나, 정작 제자를 받지 않는 것으로 유명합니다만…….”
난 말끝을 흐리는 아론을 흘겨봤다.
“하하, 어째 ‘네가 그 까다로운 양반의 눈에 들겠냐’고 말하는 것 같은데?”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아닌 척 잡아뗀 그가 저 멀리 앞서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크게 틀린 말도 아니지.’
발락은 오랜 시간 제자가 될 재목을 찾아다녔는데, 그럼에도 아직까지 제자를 들이지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발락의 눈이 얼마나 높은지 잘 설명할 수 있었다.
‘눈이 높은 게 당연하지.’
그는 일인전승으로서 대를 이어 오는 검성의 후계자요, 이 집안의 가주와 호각을 이루는 최강의 검사다.
그가 들이는 제자가 곧 일인전승의 후계자일 테니, 결코 아무나 받아들일 순 없을 것이다.
‘하나 난 달라.’
기연을 인연으로, 인연을 운명으로.
본래는 성사되지 않았을 발락과 리하르트의 연(緣), 그것을 비트는 것 정도야 어렵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