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bastard in a fantasy game RAW novel - Chapter 71
71화. Episode. 24 종전 (2)
“간다.”
짧은 한마디.
직후, 보라색 별이 쏜살같이 허공을 갈랐다.
유성우의 그것처럼 꼬리를 길게 남기며.
쩌어어엉-!
곧 성채를 둘러싼 붉은 장막과 별이 부딪쳤다.
흉험하고 거대한 폭음이 울렸다.
강렬한 충격의 여파가 대기를 한바탕 뒤집어 놓았다.
콰드득, 별이 계속 장막을 밀어붙인다.
그러나 장막은 크게 요동칠 뿐, 미세한 흔적조차 남지 않았다.
“레오!”
“하압-!”
리하르트의 외침을 들은 레오가 검을 휘둘렀다.
검끝에서 쏘아져 나간 검광이 별의 뒤편을 때렸다.
콰앙!
폭음이 한 번.
콰앙!
폭음이 두 번.
그 우악스러운 망치질을 지켜보던 기사들이 입을 벌렸다.
레오가 검을 휘두를 때마다, 저 멀리 떨어진 성채의 결계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리하르트 성자님!”
“레오 사령관님! 힘내십시오!”
기사들의 응원이 사기와 함께 들끓었다.
우직하게 장막을 밀어붙이던 별이 한 점에서 회전을 시작했다.
레오가 쏘아낸 검광이 더욱 크고 밝아졌다.
“하아압!”
쩌적- 쩌엉!
금 가는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곧 붉디붉은 장막이 산산조각이 나며 흩어졌다.
“와아아!”
고작 결계 하나 깼을 뿐인데, 기사들이 기뻐 날뛰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다시금 악을 쓰는 응원이 이어졌다.
“성을 완전히 무너트려 버려!”
“마법, 마법을 쏴!”
그에 맞춰 하늘 이곳저곳에 마법진이 그려졌다.
수많은 마법진에서 온갖 기적이 일어나 맨몸의 성채를 수없이 때렸다.
“허억, 허억……!”
무리한 기예(伎藝)에 숨을 몰아쉬던 리하르트가 성을 바라보았다.
순식간에 허물어져 가는 성채에선 여전히 마기가 기승을 부렸다.
‘의식을 완성하고자 발악을 하는구나.’
눈을 부릅뜬 그가 다시금 별을 일으켰다.
“아쉽겠어. 거의 다 되었는데 말이야.”
별 한 자루가 중얼거림을 뒤로한 채 날았다.
목표는 마기가 넘실대는 성의 최정상.
콰앙-!
역겨운 살점으로 뒤덮인 성채에서 굉음이 일었다.
곧 폭발할 것처럼 들끓어 대던 마기가 눈 녹듯 사그라졌다.
연신 소란스럽던 전장에 침묵이 맴돌았다.
이게 끝일까.
리치들은 죽은 걸까.
모두의 긴장 어린 시선이 무너진 성채에 쏠렸을 때.
끄어어어-!
영혼까지 뒤흔드는 비명이 울렸다.
한순간에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간 리치들의 울음소리였다.
◈ ◈ ◈
“감히, 감히이!”
성채의 잔해가 가루가 되어 흩날렸다.
그 아래에서 세 마리의 리치가 허공에 떠올랐다.
녀석들의 텅 빈 안구에선 새빨간 안광이 타오르고 있었다.
이 모든 재앙의 주동자.
“감히 버러지들이!”
그들이 연합을 씹어 죽일 듯 노려보았다.
두렵고 위대한 왕의 행차가 저 버러지들에게 가로막혔다.
도저히 그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정말 거의 다 되었는데.
조금만 더 시간이 있었다면……!
잠잠해졌던 마기가 그들로부터 터져 나와, 다시금 공기가 무겁게 짓눌렸다.
분노에 잡아먹힌 고위 마족들의 힘은 흉악하고 또 흉악했다.
순식간에 불길한 마법진이 하늘을 수놓았다.
그곳에서 새까만 마법이 발현되어 연합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콰앙, 콰아앙-!
씹어 죽여도 모자랄 것들.
마계의 심연에 처박혀야 할 쓰레기들.
분노, 분노, 분노…….
원색적이고 적나라한 분노가 마법으로 화해 땅을 울렸다.
“죽이고 또 죽여 영혼까지 더럽혀 주리라!”
한 리치가 마법을 외었다.
폴린 성과 그 일대를 집어삼켰던 저주가 다시 한번 펼쳐졌다.
연합이 올라선 나무줄기가 꺼멓게 썩어 들어갔다.
또 한 리치가 마법을 외었다.
“크워어어…….”
죽은 흙바닥에선 망자들이 기어올랐다.
목 달아난 마수의 시체가 다시금 움직이고, 그들에게 목숨을 잃었던 기사들마저 언데드가 되어 검을 쥐었다.
썩은 뿌리를 타고 오른 언데드가 아가리를 들이밀었다.
쾅! 콰아앙!
다른 리치는 강대한 마법을 연합의 중심부에 쏟아부었다.
갑작스레 몰아치는 재앙.
연합이 비명을 질렀다.
단 세 마리의 마족이 만들어 내는 대참사.
하지만 그것조차도 성에 차지 않았던 걸까.
“내가 균열을 열겠다.”
리치 하나가 앞으로 나섰다.
나머지 둘이 안광을 빛냈다.
“마계의 왕을 위하여!”
“지옥을 모르는 잡것들에게 천벌을!”
“자격 없는 자에게 심판을!”
앞으로 나선 리치에게 둘의 마기가 모여들었다.
의식은 분명 실패했다.
하지만 그건 마왕이 강림할 만큼의 크고 완전한 균열을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상응하는 대가만 치르면, 어느 정도의 균열은 능히 만들 수 있다.
쩌저적-!
감당치 못할 마기를 받아들인 리치의 뼈가 우그러지기 시작했다.
쩍쩍 갈라진 뼈 위로 룬 문자들이 떠올랐다.
자기희생.
그 대가로 펼쳐지는 공간의 뒤틀림.
“똑똑히 느끼거라. 마계의 두려움을!”
퍼석- 리치가 가루가 되어 흩날렸다.
◈ ◈ ◈
“하.”
나는 한숨을 내뱉었다.
귓가에 들려오는 건 온통 절규.
그토록 경건하던 찬송가도 들리지 않았다.
고개를 돌려 성가대를 바라보자, 눈을 꼭 감고 노래를 부르는 이들이 보였다.
부르고는 있었구나.
소음에 완전히 먹혀들어 안 들릴 뿐이지.
“싸워, 싸워라! 두려워하지 마라!”
“엘프들은 마법을 요격해!”
버럭버럭 소리치는 지휘관과 절규 섞인 언데드의 울음소리가 한데 섞였다.
그 사이사이 비명과 피륙 가르는 소리도 끊이질 않았다.
“으아아! 호르시여!”
얼굴이 하얗게 질린 모리츠가 성검을 휘둘러 댔다.
죄 새까만 곳에서 신앙 섞인 검을 쥐고 있다 보니, 언데드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취익, 동지! 혼자 무리하지 마시오!”
그런 모리츠를 휴거가 지원에 나섰다.
저쪽은 알아서 살아남을 테고.
“성가대와 엘프를 지켜라!”
“줄기 뒤에서 싸워!”
“이봐, 겁먹고 떨고 있을 거면 뒤로 꺼져!”
연합은 혼란 속에서도 대열을 가다듬었다.
피로와 두려움으로 범벅이 되었으면서도 눈가엔 전의가 타올랐다.
“마지막이다! 이게 마지막 싸움이야! 결코 져선 안 될 것이다!”
마나 실린 레오의 외침이 터져 나왔다.
그러자 기사들이 검을 치켜들었다.
잔뜩 떨리는 손으로나마.
“너희 곁에 무엇이 있느냐!”
“등불 있도다!”
“너희 앞에 무엇이 있느냐!”
“어둠 있도다!”
입으로는 구호를 외쳤다.
가슴을 쾅쾅 두드리는 주먹엔 흉갑이 우그러질 정도의 힘이 실려 있었다.
“곧 사그라들 어둠이더라!”
내가 마지막 구호를 외쳤다.
외침은 곧 신앙이 되어 그들의 두려움을 조금이라도 벗겨 주었다.
“호르께서 우리와 함께하신다! 용맹히 싸워라!”
“와아아!”
전투가 다시 격해졌다.
찐득한 피를 머금은 드래곤 투스가 유난히 무겁게 느껴졌다.
하지만 검을 놓을 수 없었다.
나는 온몸에 신앙을 둘러싸고, 언데드 사이를 누볐다.
아가릴 쩍 벌린 채 덤벼드는 괴물을 베었다.
허공에 흩뿌려지는 핏물 사이로 죽은 기사의 검이 날아들었다.
쾅-
순식간에 엮어 낸 별이 그 검을 걷어 냈다.
“편히 쉬어라.”
활짝 열린 시체의 가슴팍에 드래곤 투스를 꽂아 넣곤 올려 베었다.
갈라진 사내의 얼굴이 눈에 익었다.
제3기사단의 기사였다.
“끄에에엑!”
비통함에 잠겨 있을 시간은 없었다.
시체는 이 땅에 차고 넘쳤다.
베고, 베고, 또 벤다.
한껏 일으킨 설왕의 한기가 일순간에 터져 나와, 시체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흐읍!”
검을 가로로 긋자 퍼석 하는 불쾌한 감각과 함께 시체 세 구가 나동그라졌다.
허공을 자유로이 노니는 별 두 자루로는 위험에 빠진 기사들을 지원했다.
“도련님! 하늘이!”
그때였다.
피어싱 오러로 마법을 꿰뚫어 내던 아론이 하늘을 가리켰다.
“…….”
나는 말없이 검을 늘어트렸다.
왜 저기에 균열이 열리고 있을까.
분명 의식은 실패하지 않았던가.
“젠장.”
변수였다.
나는 하늘에 한눈 팔린 기사들에게 정신 차리라 외치곤, 리치들을 노려보았다.
어째선지 하나가 줄어 둘이 된 리치들.
놈들은 몹시 지친 듯 기세가 약해져 있었다.
쩌저적-
갈라진 하늘에 검은 구멍이 생겨났다.
그 구멍에서 붉고 붉은 왼손 하나가 불쑥 튀어나왔다.
“설마……!”
눈이 절로 커졌다.
저 붉고 커다란 손의 주인을 알 것만 같았다.
『한심한…… 균열조차도 제대로 열지 못했느냐.』
구멍을 비집고 흘러나온 음성이 전장을 짓눌렀다.
그 안에 담긴 비난과 살의는 리치들을 향했음에도, 이쪽의 숨이 멎을 것만 같았다.
“……뭐야, 저건 대체 뭐냐고!”
쩔그렁.
모리츠가 떨어트린 성검이 애처롭게 울었다.
전투 중 검을 놓는 행위는 자살 행위였다.
그러나 지금은 상관없었다.
인간이든 언데드이든, 모두가 넋 놓고 붉은 마족을 바라보았으니까.
곧 양팔, 머리를 비롯한 거대한 상체가 드러났다.
“군단장 칼고스…….”
리치 세 마리 따위와는 비교도 할 수없는, 먼 훗날에나 등장할 강적.
그게 벌써부터 대가리를 들이밀고 있었다.
『호오…… 나를 알고 있…….』
내 중얼거림을 들은 걸까.
붉은 거인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그런데 놈의 흉흉한 목소리가 돌연 뚝 끊겼다.
『끄흐, 끄흐흐……!』
이것은 흐느낌일까, 웃음일까.
나를 향한 두 눈이 반달처럼 휘어진 걸 보면 웃음이 분명했다.
『아버지이……! 아버지이! 빌어 처먹을 아버지!』
“큭!”
광기 어린 웃음소리가 골을 울렸다.
내게 무어라 소리치는데, 울분인지 희열인지 모를 감정이 잔뜩 뒤섞여 발음이 뭉개진 터라,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었다.
“뭐라는 거야, 빨갱이 자식이.”
역한 마기에 반항하듯 신앙을 일으켰다.
지금 연합에게 칼고스는 끔찍한 재앙이다.
그러나 전혀 두려울 것 없다.
우리에게도 변수는 있으니.
“저건 정말 위험하구나.”
여태 방관만 하던 발락이 나섰다.
나서지 않겠다고 말은 했지만, 연합이 초전박살 날 판인데도 그럴까.
“쯧, 말을 번복하는 건 그리 좋아하지 않는데.”
발락이 언짢은 기색을 내비췄다.
그 주위로 여덟 자루의 별이 송곳니처럼 날카롭게 빚어졌다.
◈ ◈ ◈
“뭐냐, 뭐냐아!”
“왜 저놈이……!”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한 건 리치들도 마찬가지였다.
크나큰 출혈을 감수하고 일으킨 균열에서 칼고스가 튀어나온 건 의도대로였다.
그런데 이후의 상황은 전혀 의도치 않은 대로 흘러갔다.
난데없이 별을 다루는 노인이 튀어나와 칼고스를 공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노인은 리치들도 익히 알고 있는 자였다.
마왕으로부터 임무를 부여받고 이곳에 발을 디뎠을 때, 그들을 죽음 직전까지 몰고 갔던 인간.
자신들을 상대하면서도 줄곧 여유롭던 기사였다.
“저런 강자를 끌어들이지 않기 위해 그토록 조심했건만.”
『끄워어어-!』
군단장이 잔뜩 악에 받쳐 포효했다.
하나 여덟 자루의 별은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칼고스의 강철보다도 단단한 육신을 쩍쩍 갈라내고 있었다.
까득-
리치의 새하얀 턱뼈가 억세게 갈려 나갔다.
가만히 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균열을 좀 더 크게 열어야 한다.”
“동의한다.”
작심한 그들이 마기를 부풀렸을 때였다.
콰앙!
또 다른 별 한 자루가 날아들어 배리어를 두드렸다.
“……!”
고개를 돌린 리치, 크롬벨이 몸을 굳혔다.
대체 어느새인지, 수십의 기사들에게 포위되어 있었다.
“뒤에서 잔머리만 굴리지 마, 개뼈다귀 자식들아.”
선두에 선 인간, 리하르트가 나직이 말했다.
그 덤덤한 어조 속에, 꾹꾹 눌러 담았던 분노가 부글거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