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Druid in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127)
제127화
제127편 드래곤의 레어 (2)
‘저 사람은……!’
갈색의 머리카락에, 햇볕에 탄 어두운 피부, 산 사람 다운 건장한 체격, 그리고 선명한 녹색의 눈동자.
한때 온후했지만, 지금은 그저 지치고 사나운 짐승처럼 보이는 인상…….
나는 저 남자를 본 적이 있었다.
셰르파 마을에서.
정확히는, 아퀼라의 집 벽에 걸려 있던 가족 초상화 속에서.
그때 남자는 조금 더 젊었고, 붉고 곱슬거리는 머리카락을 가진 아름다운 젊은 아내 옆에 서서 아내를 쏙 빼닮은 아이를 안고 환하게 웃고 있었다.
‘……아퀼라의 부모는 설산을 오르다 죽은 게 아니었던가.’
노인의 말에 따르자면 그랬다.
그러나, 대체 무슨 사연인지는 몰라도 저 남자는 ‘살아남았다’.
야수나 몬스터들을 제외하고는 살아남을 수 없는 이 은색 산맥에서!
“모습을 드러내라, 드루이드.”
남자는 마치 으르렁거리는 듯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 같으면 모습을 드러내겠습니까?’
나는 속으로 투덜거리며, 더욱 숨을 죽이고 남자의 동태를 살폈다.
“……모습을 드러낼 생각이 없다면, 내게도 방법이 있지.”
-따악!
남자가 입 천장을 혀로 차며 기묘한 소리를 내자, 불규칙적인 진동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쿵, 쿠웅, 쿵, 쿵, 쿠웅…….
“아, 아아아악!!!!”
그리고, 날카로운 비명소리. 나는 화들짝 놀라 조각상 너머를 바라보았다.
‘디디에!’
거대한 골렘이 은색 산맥의 마녀를 한 손에 움켜쥐고, 마치 주스로 만들어버릴 것처럼 단단히 쥐어짜고 있었다.
그 원초적인 고통에는 아무리 대단한 마녀라 하더라도 견딜 수 없는 모양인지, 디디에는 찢어지는 듯한 비명을 참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우득!
이미 기절한 듯, 팔을 비틀어도 움직임 없이 늘어져 있는 칼리드의 모습이 보였다. 칼리드를 붙잡고 있는 것은 예티들이었는데, 평범한 예티는 아니었다. 마치 시체를 이어 붙인 것처럼 다리가 셋 달려 있거나, 한쪽 어깨에 팔이 둘씩이나 달려있는 등 기괴한 모습이었다. 불타고 녹아버린 겉모습의 끔찍함은 또 어떻고.
“이 둘을 붙잡는 데에도 꽤 많은 희생을 해야 했지.”
남자의 목소리는 점점 음습해지고 있었다.
“하지만 죽이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을 거야.”
젠장…….
칼리드와 디디에가 제압당했을 정도인데, 과연 나 혼자서 사태를 해결하는 것이 가능할까?
-으르르릉…….
내 뒤에 몸을 바짝 낮추고 있는 아일라가 낮게 으르렁거렸다. 나는 녀석의 목에 손을 올려 진정시켰다.
-우득!
“아아악!!!”
어쩔 수 없다.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무기가 없다는 걸 증명하듯 두 손을 들어 보이면서, 아주 천천히.
“쥐새끼처럼 숨어있는 꼴이라니.”
남자는 웃음을 터트렸다. 나는 그를 향해 물었다.
“……원하는 게 뭐지?”
“너의 죽음.”
“……뭐, 그걸 원하는 사람들이 많긴 하더군. 그리고?”
“위대한 조각.”
역시, 에아르테의 조각을 찾는 건가.
“당신은, 까마귀인가?”
“…….”
순간, 남자의 얼굴에 불쾌함이 스쳐 지나갔다. 부정하고 싶지만, 부정할 수 없을 때 짓는 표정.
“어째서 그것을 원하는 거지?”
“……을 되찾기 위해서.”
그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고개를 숙인 채 웃더니 이내 나와 눈을 마주쳤다. 어두운 녹색의 눈이 불길하게 번뜩였다.
“부당한 요구는 하지 않겠다.”
“이러고 있는 게 이미 충분히 부당하다고 느껴지는데. 당신은 인질을 둘이나 붙잡고 있다고.”
“아직 죽이지 않았으니 희망이 있다고 볼 수 있지.”
“…….”
“조각을 넘겨라. 그럼, 이 녀석들을 돌려주지.”
개소리다.
까마귀들이 근원신의 조각을 손에 넣으려 하는 이유는 뻔했다. 그것에는, 감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힘이 깃들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뤼세트에서 이미 그 힘을 겪었고,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알고 있었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그리젤이 그랬던 것처럼, 이 남자 역시 처음에는 자신이 원하던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까마귀의 뜻대로 모든 것은 어둠의 손길을 벗어나지 못하게 되겠지.
그렇게는 둘 수 없다.
‘……그리고, 나야말로 근원신 퀘스트를 해결해야 해서 절대 양보할 수 없다고.’
이제 겨우 하나를 얻었는데, 겨우 찾은 두 번째 조각을 까마귀들에게 양보할까 보냐.
“허튼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거다, 드루이드.”
남자는 한 번 더 혀를 찼다. 그러자, 디디에가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그대로 기절하는 것이 아닌가.
그도 진심인 것이다.
‘여기서 일 보 후퇴해야 하나?’
일단은, 입을 털어서 시간을 끌어 볼까.
‘인질이 저 두 사람 뿐이라는 건, 로이드와 엘, 아퀼라는 무사하다는 뜻이야.’
그렇다면, 곧 세 사람이 도착할지도 모른다.
“……당연히, 줘야지.”
나는 능청스레 웃으며 말했다.
“그런데 말이야, 사실, 아직 나도 손에 넣지 못했거든? 위대한 조각인지 뭔지, 그건 아직…….”
“…….”
“저 곤히 잠든 드래곤의 손아귀에 있어.”
고갯짓으로 뒤를 가리키자, 남자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드래곤을 상대하는 건 그 역시 꺼려지는 일인 모양이었다.
“내게 조금만 시간을 주면 꺼낼 수 있을 것 같기도 한데. 어떻게 생각해?”
그는 화를 참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다가, 한 번 더 혀를 찼다. 그러자, 칼리드를 붙잡고 있던 예티가 골렘에게 칼리드를 넘기고 나를 향해 다가왔다. 나는 그를 향해 빈정거렸다.
“살살 걸어. 그러다가 드래곤이 깨기라도 하면…….”
“닥쳐라. 허튼 짓 할 생각 말고 움직여.”
“네, 네.”
나는 뒤로 돌아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어둠 속에서, 아일라가 눈을 번뜩이며 예티를 노려보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때가 되면 신호를 해서 아일라가 예티를 덮치게 만들고, 곧장 저 남자를 습격하면…….
물론, 그가 바로 골렘에게 명령해 칼리드와 디디에를 으깨버리는 최악의 결과가 나올 수도 있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이것 말고 더 좋은 방법이 생각나지 않는다. 드래곤을 깨우는 방법도 있겠지만, 그건 적만이 아니라 우리까지도 전멸할 가능성이 높으니 패스.
가장 좋은 루트는, 로이드와 엘이 빨리 이곳에 도착하는 것이다. 남자의 말로는 칼리드와 디디에를 붙잡는 데 ‘큰 희생’을 치렀다고 했으니, 밖을 지키고 있는 변종 예티나 골렘이 있을 확률은 적었다. 로이드와 엘, 아퀼라가 무사히 잠입하기만 하면…….
나는 일부러 느릿느릿, 에아르테의 조각이 있는 발톱의 반대 쪽을 향해 걸었다. 다행히, 주변이 어두웠기 때문에 남자는 이상함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 같았다.
-스릉……!
그때였다.
“멈춰라.”
검을 뽑는 소리와 함께,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엘이 있었다.
정확히는, 아퀼라를 붙잡고 목에 검을 겨누고 있는 엘이, 있었다.
“……!”
남자가 헛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멈추지 않으면, 이대로 네 딸의 목을 베어 예티의 먹이로 던져 주지. 설마, 라는 의심은 거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 나는 거짓을 모르는 명예로운 검사이니까.”
과연 내가 알던 그 엘이 맞나 싶을 정도로 차가운 목소리다. 어린애 같은 앳됨은 온데간데 없고, 냉혹한 얼굴의 검사만이 그 자리를 지키고 서 있었다. 엘은 농담이 아니라는 듯 아퀼라의 목 아래 더욱 깊이 검을 가져다 댔다.
“……루바프!”
눈을 질끈 감고 있던 아퀼라가 소리쳤다. 루바프. 그것이 남자의 이름인 모양이다. 그는 이를 악물고 엘과 아퀼라를 바라보았다.
‘좋아, 엘. 그렇게만 해 다오.’
변수가 생겼으니 이제 내 쪽이 훨씬 유리해졌다. 츳, 나는 혀 차는 소리로 아일라에게 신호를 주고 잠시 눈을 감은 채 정신을 집중했다. 곧, 귀에 익은 파도 소리가 들려왔다.
‘한 번에 끝내야 해.’
루바프가 데려온 예티와 골렘의 수는 어림잡아도 스물. 가장 큰 골렘 둘은 벽이 닫히지 않도록 붙잡고 있느라 당장 움직이지 못한다고 쳐도, 남은 수가 지나치게 많다. 하나씩 공략하는 건 무리였다.
그러니까, 강력한 한 방이 필요했다.
적어도 놈들을 절반 이상 쓸어버릴 수 있는 강력한 한 방.
“……아빠한테 오렴, 아빠한테 와.”
어느새 귓가에 울리기 시작하는 부드러운 파도 소리. 그래, 켄. 나야.
-므으으으으…….
-규우우우우…….
크라켄 특유의, 기분이 좋을 때 머리의 빈공간을 진동시켜 내는 울음소리가 잔잔히 퍼졌다.
그렇다.
나는, 나의 뿌듯한 업적 [은혜 갚은 오징어]로 재미를 좀 볼 생각이었다.
-콰과과과과과!!!!!
얼음 기둥 사이로 공간이 뒤틀리더니, 그대로 켄의 붉은 촉수가 엄청난 속도로 뻗어져 나와 줄지어 자리를 지키고 있던 골렘들의 몸통을 꿰뚫어 버렸다. 퍼버벅! 퍽! 촉수는 커다란 바위들을 꼬치 꿰듯 그대로 관통하고 다시 얼음 기둥 사이로 사라졌다. 그러자, 촉수에 꿰여 있던 골렘들의 몸통은 그대로 우수수 바닥에 떨어지고 말았다.
-쿵!
-쿠웅!
-쿠구궁!
‘두 번은 더 해야 해.’
자, 켄. 아빠랑 한 번 더 놀자. 그러자, 이번에는 반대쪽 얼음 기둥 사이에서 공간이 뒤틀렸다.
-콰과과과과과곽!!!!
빠른 속도로 뻗어져 나온 촉수는 다시금 남아 있던 골렘들의 몸통을 관통했다. 개중에는 완전히 부서져서 터져버리는 바윗덩이도 있었다. 바윗덩이에 맞아 머리통이 떨어져 나간 예티도 몇 있다. 이제 남은 골렘은 둘, 예티는 여섯…….
‘자, 한 번 더…….’
켄, 이라고 다시 부르려는 순간, 코와 입에서 뜨끈한 액체가 느껴졌다.
“……윽.”
젠장, 피다.
드래곤의 레어에 들어오는 길에 이미 많은 마력을 소모한 상태였다. 거기다 켄의 촉수 소환까지 사용하니 마력이 위험 범위까지 소진되면서 몸에 무리가 오는 모양이었다.
켄이 내 예상보다 훨씬 강해진 탓도 있었다. 소환하는 존재가 강해질수록 내가 지는 부담도 커지는데, 그 잠깐 사이에 켄이 성장에 성장을 반복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두 번만으로도 벌써 무리가…….
완전히 마력을 소진하면 한 번 더 촉수 소환이 가능할 것이다. 그럼 놈들을 전부 쓸어버릴 수 있겠지. 하지만…….
‘기절해서는 의미가 없어.’
나는 손등으로 코와 입가의 피를 문질러 닦고 짧은 휘파람을 불러 아일라에게 신호했다. 아일라는 곧장 나를 향해 달려왔는데,
-후웅!
순간, 어둠 속에서 세 개의 팔이 아일라를 향해 뻗쳐졌다.
“아일라!”
내 목소리에 아일라는 몸을 틀려고 했다. 그러나, 한발 늦은 상태였다. 까맣게 타들어간 팔이 아일라의 목을 움켜쥐려는 순간.
-콰직!!!!!
거대한 무언가가 변종 예티를 그대로 짓뭉개버렸다.
「……평온을 방해하는 자여, 이름을 고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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