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Flashing Genius At The Magic Academy RAW novel - Chapter (186)
마법학교 앞점멸 천재가 되었다 186
42. 격리(4)
아돌레비트의 수도, 테할란은 관광 지로도 꽤 유명한 도시이다.
거리의 어디에서도 ‘서리절벽 궁 전을 볼 수 있기 때문이었는데, 저 멀리 배경을 등진 채 날카롭게 깎아 내리는 절벽 위에 우뚝 서 있는 거 대한 궁전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압도적인 위압감을 느끼게 만들어주 었다.
확실호】, 멋있는 도시였다.
거리의 야외 카페에 앉아 음료수를 쪽쪽 빨아 마시며, 저 멀리에 있는 궁전을 바라보고 있자니 참 운치 있 다는 생각도 들었다.
테할란의 거리는 19〜20세기의 런 던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도시를 가로지르는 칙칙한 흑색의 열차와 정장을 즐겨 입는 신사 숙녀 들을 비롯하여 회색빛으로 물든 하 늘과 건물들.
당장 저쪽 뒷골목에서 셜록 홈즈가
튀어나와 왓슨과 함께 살인마 잭 더 리퍼를 쫓을 것만 같은 분위기다.
이제 여기서 뭘 어떡할 거냐고 묻 는다면, 당연히 우선은 저 궁전으로 잠입을 할 생각이다.
물론 저 삼엄한 궁전에 고작 점멸 하나 믿고서 몰래 잠입한다는 건 자 살행위나 마찬가지다.
비록 내 신체에 마나는 존재하지 않지만, 여태까지의 경험상 마법사 들은 내가 점멸을 사용하는 즉시 마 나 반응을 감지하고는 했으니, 경비 시스템에도 감지될 것이다.
하지만 서리궁에 잠입하는 방법이
무조건 은밀하고 범죄적인 것만 있 는 건 아니다.
도덕적이고 합법적인 방법…….
이를테면, 내가 직접 マ母’이 되는 건 어떨까.
이제 남은 여름방학 기간은 2〜3주 가 채 안 되고 그 안에 홍비연을 꺼내와야 하는데, 궁인이 된다니 막 막하고 어림도 없는 것처럼 느껴지 겠지만 내게는 생각보다 쉬운 일이 다.
현재 벌어지는 많은 사건들에 대해 꼼꼼히 기록된 ‘직박구리 안경’이 있었으니까.
나는 먼저 타할렌에서 가장 유명한 무역상 ‘천리 상회’를 찾았다.
“음? 스텔라의 학생이군. 여기까지 는 어쩐 일이냐?”
“안녕하십니까.”
천리 상회의 사무실은 사무실이라 기보다는 공장에 가까웠다. 트럭만 큼이나 거대한 자동마차 수십 대가 대기하고 있으면 상하차를 하는 아 저씨들이 짐을 날라서 물건을 싣고 는 했는데, 그 사이에 사무를 보는 사람들이 섞여서 지휘를 하거나 볼 일을 보고 있었다.
나는 거기에 끼어들었다.
“최근, 안타릴 오일러의 기술자가 부족해져서 곤란하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마침 안타릴 오일러 다루는 기 술이 굉장히 빠삭한데 도움을 좀 드 려도 되겠습니까?”
포부 당당하게도 그리 말했으나.
“뭔 소리냐? 안타릴 오일러 기술자 는 넘쳐난다. 저기 저쪽 저 친구도 안타릴 기술자인데, 하도 기술자가 많아서 지금은 상하차 뛰고 있어.”
실패다.
직박구리 안경이라고 만능은 아니 기에 당연하다.
언제 어느 시기에 어디에서 무슨 이벤트가 발생할지 정확히 표기되어 있지 않은 건 물론, 내 행동에 따라 전 세계 곳곳에서 수많은 나비효과 가 발생하여 다른 미래를 향해 나아 가고 있을 테니 어쩔 수 없었다.
물론, 한 번의 시도에 성공할 것이 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나는 그 이후로도 도시 타할렌 곳 곳을 찾아다녔다.
신문사, 무기상, 마도구 전문점 등.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던 와중, 마 침내 직박구리 안경에 적혀 있던 대 로 곤란에 빠진 곳을 찾았다.
‘석양 서점’
말이 서점이지 사실상 출판사나 다 름없는 이곳은 아돌레비트 왕가에 지속적으로 서적을 제공하는 공급처 중 하나였다.
그런데 최근, 문제가 생겼다.
왕가에 이미 공급한 서적은 따로 요청이 있기 전까지 두 번 다시 공 급해서는 안 되기에 철저하게 체크 해가며 관리해야만 하는데, 최근 관 리 사서가 도망쳐 버리는 바람에 골 치가 아파졌다는 것이다.
단순히 사서가 도망치기만 했다면 별문제는 안 되겠지만, 관련 문서를
완전히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놓아서 기한에 맞추기 힘든 상황.
“제가 이런 걸 또 기깔나게 잘 정 리합니다.”
“……그래? 뭐, 한번 해봐라.”
서점장은 나를 못 믿는 눈치였지만 그래도 스텔라의 마크가 가진 힘이 꽤 컸던 덕분인スI, 일일 아르바이트 느낌으로 채용해 주었다.
그리고, 하루 만에 깔끔하게 정리 해 내는 기염을 토해냈다.
“어, 어떻게……r
“제가 좀 칩니다.”
문서 정리 작업 자체는 사실 별것 도 없었다. 노가다 방식이기는 했지 만 문서를 한 장씩 정리하여 모아둔 다음 일일이 읽는다. 물론, 내가 읽 는 게 아니라 직박구리 안경이 읽도 록 만드는 것이다.
그다음 모든 문서의 내용을 저장한 직박구리 안경이 차례차례 순서대로 분류하도록 한 뒤, 나는 그것을 따 라서 모으기만 하면 되었다.
분량이 정말 어마어마해서 하루 종 일 끼니도 거르고 해야만 했지만 내 덕분에 석양 서점은 아돌레비트에게 서적 납품을 성공적으로 할 수 있게 되었으므로, 보람찬 일이었다.
“이거 잘됐군. 안 그래도 사서 빈 자리 채워줄 사람이 필요했는데. 여 름방학 동안 일한다고 했나? 모레쯤 에 왕실에 직접 서적을 납품할 예정 인데, 같이 가도록 흐卜지. 네가 정리 를 도와준다면 큰 도움이 될 거야.”
물론 궁전에 아무나 출입할 수는 없었고 충분히 보장된 신분이 있어 야만 했지만, 스텔라의 학생증이 어 디 보통 신분이던가?
왕가에 비하면 대단하지는 않지만 이 정도면 ‘1 등급 시민’이라고 불러 도 될 정도였으니, 단순히 출입하는 데에는 큰 지장이 없었다.
여기까지 왔으면, 절반은 성공이다.
아직 궁인이 된 것은 아니었으나 내 계획대로라면, 아마도…….
“오오, 이걸 셋이서 다 정리했나?”
“하하. 놀랍지요? 하지만 더 놀라 운 건, 저희 둘은 아무것도 안 하고 이 학생 혼자서 다 했다는 겁니다.”
석양 서점장이 너스레를 떨며 내 등짝을 팡팡 치자 왕립 도서관의 사 서는 눈을 빛냈다.
“자네, 아르바이트라고 했나? 눈썰 미와 기억력이 상당하군. 성격도 아 주 꼼꼼하고 섬세해.”
“감사합니다.”
“그래서 말인데, 하필 지금 관리인 이 지독한 독감에 걸려서 앓아누웠 거든……
사서 할아버지는 슬슬 눈치 살피는 척을 하며 말했다.
“보수는 넉넉히 줄 테니 여름 동안 만 일해보는 건 어떻겠나?”
내 예상대로, 아니, 직박구리 안경 에 적혀 있던 공략대로였다.
왕립 도서관의 관리인이 지병을 앓 는 관계로 손이 부족했는데, 그러한 와중 유능한 사서가 등장했으니…… 어디 채용하지 않고 배기겠나.
“예. 물론이죠.”
그렇게 나는, 성공적으로 서리궁에 서 일할 수 있게 되었다.
궁에서 일하게 되었다고 해서 곧바 로 흥비연을 만날 수 있는 건 아니 었다. 내 역할은 어디까지나 왕립 도서관, 그것도 극비 사항에 해당되 지 않는 3등급 서적을 관리하는 사 서에 해당했으니까.
아돌레비트의 국민도 아니고 단순
히 여행을 온 신분이었기에 국가 마 법서 등의 2등급의 서적을 열람하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그렇다고 할 일이 없는 건 아니었 다. 오히려 너무 많아서 미칠 지경 이었다.
관리인이 자리를 비운 시간이 꽤 됐는지 이걸 정말 사람이 정리할 수 있는가라는 본질적인 의문이 들 정 도로 왕립 도서관은 꼬라지가 엉망 이었는데, 심지어 그 규모가 쓸데없 이 커서 정리하는 데 꼬박 일주일이 넘게 걸렸다.
“이걸 정말 정리하다니. 대단하군.”
“이봐, 사서장. 그 꼬맹이가 자네가 말한 그 꼬맹이인가?”
“그렇다니까. 대단하제?”
“흠흠…….”
거기에도 모자라, 소문을 듣고 찾 아온 행정관의 관리직 귀족들이 내 게 눈독을 들이기 시작했다.
제발 사서장이 막아줬으면 하는 바 람이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그에게는 큰 힘이 없었다.
“거, 시간 되면 나 좀 도울 수 있 겠나? 문서 작업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데, 이걸 도통 정리하기가 힘들 어서 원.”
그러죠.”
단순 도서관 사서로서 조용히 지낼 계획이었거늘. 여기저기 불려다니며 행정 업무를 보는 신세가 되었다.
나는 아돌레비트 국민도 아니고 귀 족도 아니었으며 심지어 정식 궁인 도 아니었는데, 대체 뭘 믿고 저러 는지 모르겠다.
하긴, 써먹을 구석만 있으면 길거 리 복실이도 데려다가 굴려 먹던 대 한민국 군대 생각하면 이 정도는 양 반이려나.
그래도 이런 일들이 썩 나쁜 건 아니었다. 정식 궁인은 아니었으나
귀족 궁인들과 친해질 수 있었고, 특히 시녀들과 가까워질 수 있었는 데 그녀들은 소문에 워낙 민감하여 왕실 내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 다.
“들었어? 이번에 여왕 폐하께서 공 주님들과 함께 휴가 가신다는데?”
“당연히 들었지. ’레비앙의 해안’으 로 가는 거잖아.”
“에잉, 그게 말이 휴가지 뭐.”
시녀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통해 비 로소 나는 이 상황이 내가 아는 그 이야기가 맞다고 확신하였다.
[Extra Episode] [아돌레비트 왕가의 휴가]메인 에피소드가 아닌 엑스트라 에 피소드이 다.
하지만 내가 일전에 말한 적 있을 것이다. 이 세계를 올바른 엔딩으로 이끄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로 추정 되는 ‘십이신월’이라는 존재가 메인 에피소드에서는 거의 마주칠 수 없 으며, 번외 스토리를 진행해야만 만 날 수 있다고.
그런 이유로… 이번 에피소드는 여 태까지의 그 어떤 스토리보다도 중 요하다고 감히 말할 수 있겠다.
영원히 겨울이 끝나지 않는 레비앙 해안에는 십이신월 청동십이월(靑冬 十二月)이 잠들어 있으니까.
‘벌써부터 이걸 진행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하지만 결국 십이신월은 언젠가 반 드시 만나야만 하는 운명.
시기가 이른 감이 없잖아 있지만, 어쨌든 상황이 이렇게 됐으니 최선 을 다해봐야겠スI.
* * *
“……공주님. 죄송합니다.”
홍비연은 입술을 꾹 다문 채, 묵묵 히 호위기사 예테린의 말을 들었다.
철이 들 무렵부터 언제나 항상 같 은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왔던 예테 린은 홍비연에게 있어서 가장 친한 친구이자 보호자와도 같은 존재다.
모두가 나를 적대하는 이 끔찍한 궁전에서도 그나마 믿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존재였단 말이다.
그런 예테린이 파견을 나가게 되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지 않은 가? 공주의 호위기사를 파견 보내다 니. 하지만, 여왕 홍세류가 직접 결 재한 사안이었기에 번복은 불가능.
짐을 싸서 떠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도, 예테린은 안타까운 눈을 감추지 못했다.
평상시였다면 무어라 한마디라도 했을 홍비연이었거늘, 오늘은 유난 히도 입이 무거워서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공주님…….”
예테린이 불렀음에도 흥비연은 대 답하지 않았다. 아니, 그러지 못했
다. 여기서 입을 열었다가는 정말 자신이 무슨 소리를 할지 알 수 없 을 것만 같아서.
그녀는 천천히 홍비연에게 다가와, 작게 속삭이듯 말했다.
“공주님, 제가 없더라도…… 공주 님은 잘 해내실 수 있을 겁니다. 제 가 봐왔던 공주님은 결코 무언가에 무너지는 일 없이, 올곧게 나아가시 는 분이었으니까요.”
“꼭…… 임무를 빠르게 끝마치고 돌아와서, 다시 공주님의 곁을 지켜 드리리라 약속하겠습니다.”
거기까지 말한 뒤 예테린이 물러나 니, 그제야 흥비연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새삼 울상을 짓지는 않았다.
아직, 이곳에는 보는 눈이 많았다.
‘약해져서는 안 돼.’
언제나 강한 모습만을 보여야 한 다. 약한 모습을 내비쳤다가는 순식 간에 얕잡아 보일 것이다.
나는 먹이사슬의 꼭대기에 위치해 있지만, 동시에 모든 포식자들이 노 리는 먹잇감이기도 했으니까.
예테린이 떠나간 뒤, 홍비연의 호
위기사 자리는 다른 사람이 대신하 게 되었다. 이름도 모르고 신분도 모르지만, 단 하나는 확신했다.
‘그는 나의 편이 아니다.’
짧게 친 머리칼에 딱딱하고 싸늘한 인상의 그 사내는 홍비연을 그다지 탐탁잖은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감히 왕족에게 보낼 수 있는 시선 이 아니었으나 함부로 건드릴 수 없 다. 그는… 여왕이 직접 붙여준 사 람이었으니까.
……밤이 되었다.
홍비연은 속옷을 입은 채 발코니로 나가 달빛을 바라보았다. 휘영청 떠
오른 보름달이 원망스럽기만 하다.
뭐가 좋다고 저렇게 환히도 웃고 있는지.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자니 오 래전 떠나버린 언니가 떠올랐다.
그녀는 언니와 함께 언덕에 누워 서, 줄곧 별을 바라보고는 했다.
‘너는 유성우를 본 적이 있니?’
그때의 나는 고개를 저었다.
‘해가 완전히 잠드는 시간에, 오늘 을 작별하며 하늘과 마주하는 거 야.’
자정이 넘어가는 시간이었다.
나를 찾는 사람 누구 하나 없어서, 언니와 함께 새벽의 언덕을 오르더 라도 아무도 제지하지 않던 시절.
‘구름 없이 맑은 날, 돗자리 하나 를 깔고 누워서…… 이렇게 하늘을 모두 품 안에 담아봐. 유성우를 바 라보는 그 순간만큼은, 너는 세상에 서 가장 자유로울 테니까.’
……언니의 말은 틀렸다.
나는 더 이상 자유로울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그깟 유성우, 뭐 가 중요하단 말인가.
외롭고, 쓸쓸하고, 고독하다.
외롭지 않다는 그 낯선 감각을 알 아버렸기 어】.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기댈 수 있다 는 감각을 알아버렸기에.
이 감정은 더욱더 지독하게 홍비연 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더 이상 서리궁 내부에 그녀의 편
을 들어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의 곁을 지켜주던 이들 역시, 모 두 떠나갔다.
나는 혼자다.
혼자서 궁전에 갇혀.
평생을 쓸쓸히 기도하다가.
그렇게 시들겠지.
홍비연은 힘없이 발코니에 등을 기 대어, 눈을 감았다. 쏟아지는 별빛의 위로를 받으며…….
‘아.’
그때 문득, 무언가 이상하고 낯설 지만은 않은 감촉이 뺨에서 느껴져
눈을 뜨고 말았다. 멍하니 자신의 뺨을 손으로 쓸어보았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이건……
다시 생각해 보니, 이건 오감이 아 니었다. 제6의 감각, 즉 마나가 익 숙한 향수를 느껴 버린 것이다.
모두가 잠든 야심한 시각.
홍비연은 조용히 룸에서 빠져나와 복도를 걸었다.
어디로 향하는지도 모르는 채, 그 저 그 익숙한 향기를 따라갔다.
걷고. 또 걷고.
복도를 몇 개나 지나친 뒤, 궁전을 빠져나온 다음에야 그녀는 비로소 목적지라고 부를 만한 장소에 도착 할 수 있었다.
그곳은…… 도서관이었다.
왕립 도서관.
스텔라에 입학한 이후로 처음이었 기에 반년 만에 오는 장소였다.
‘여긴, 왜……?’
자신조차도 이곳에 왜 오게 되었는 지 이해할 수 없었으나, 그녀는 무 심코 도서관의 문을 열었다.
새벽 시간대라면 당연히 잠겨 있을 줄 알았건만 이상하게도 문이 열려 있었다.
끼이익…!
기름칠 되지 않은 낡은 대문이 열 리며, 도서관 내부가 드러났다. 책 냄새가 진동하였으나 기분이 나쁘지 는 않았다.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도서관 안쪽에 전등이 켜져 있는 것 을 확인하였기에 조심스레 지팡이를 꺼내 들고서 그곳으로 향했다.
직후, 들려오는 요란한 소음.
쿠당당! 쿠웅!
“컥!,,
무언가가 무너지는 소리였다.
‘무슨…!’
홍비연은 다급히 소음이 들려온 곳 으로 달려갔다.
도착한 곳에는,책장이 옆으로 엎 어져서 완전히 흩어져버린 수십 권 의 책들과 그곳에 깔려서 버둥거리 는 누군가가 있었다.
“누구-”
누구냐고, 물어보려던 순간.
소년이 책 사이로 불쑥 빠져나와 얼굴을 드러냈다.
……그 순간, 홍비연은 정말로 심 장이 멎을 뻔했다. 지금 이 상황이 혹시 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서, 무심코 숨을 쉬지 않은 것이다.
“아이고 나 죽네……. 썩을 사서장, 내일 출근하기만 해봐라…….”
투덜대며 책을 들어내려던 백유설 은 무심코 눈을 돌리다가, 잠옷 바 람으로 자신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 던 홍비연과 눈을 마주치고 말았다.
“어
잠시간의 침묵.
그 이후, 백유설을 어색하게 웃으 며 말했다.
“허허…. 거, 쳐다보지만 말고 와서 좀 돕지 그러냐? 이웃끼리 서로 돕 고 사는 거 아니겠-”
털썩!
“…어엉?”
그러나 홍비연이 자리에 주저앉는 바람에, 백유설은 말을 채 끝마치지 도 못했다.
“어, 어떻게, 네가 여기에…….”
“그냥, 어. 좀. 아르바이트 삼아서.”
그는 자신의 뒤쪽을 엄지손가락으
로 가리켰다.
“보이냐? 저거 죄다 내가 정리했거 든. 장난 없지? 내가 또 이런 데에 는 솜씨가 일품이다 이거야.”
기껏 열심히 자랑했건만, 홍비연의 시선은 백유설이 말한 장소를 쳐다 보지도 않았다.
잠깐이라도 시선을 떼면 그대로 놓 쳐 버릴 것처럼 눈조차도 깜빡이지 않고 그를 바라보았다.
“아르바이트…라고……?”
“그렇다니까?”
흐, 하흐……
그녀는 웃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표정은 울고 있었다.
“거짓말…….”
그녀는 고개를 푹 숙였다.
“거짓말인 거, 누가 모르냐… 멍청 한 평민…….”
“크흠! 거짓말은 아닌데. MSG가 조금 첨가되긴 했어도. 원래 인스턴 트식품이 맛도 좋고….”
“……이쪽 보지 마.”
“어?”
홍비연은 양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그때부터는 백유설도 진심으로 당황
하여 무어라 제대로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오류에 걸린 듯 입술이 제 대로 떼어지질 않았던 것이다.
그녀가 저렇게까지 격한 반응을 보 일 줄은 전혀 몰랐기에 백유설은 정 말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밤이 깊었다.
유난히도 별이 반짝이는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