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Flashing Genius At The Magic Academy RAW novel - Chapter (196)
마법학교 앞점멸 천재가 되었다 196
44. 모든 게 녹아내린(1)
두 개의 재앙이 리스본드 항구를 비롯하여 아돌레비트 전역을 들이닥 친 이후로 만 하루가 지났다.
레비앙의 해안에서 깨어난 해적제 왕의 원혼과 아돌레비트 왕실의 보 물 화령꽃이 폭주하여, 하마터면 나 라 전체가 말소될 뻔했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는 아무도 없다.
실패 없이 평생을 살아온 8클래스 의 마법사이자 아돌레비트의 여왕 홍세류가 인생에 처음으로 남긴 오 점이었다.
그리고…… 또한, 사람들은 안다.
홍세류의 실수를 완벽하게 커버한 이가 다름 아닌 셋째 공주, 홍비연 이라는 사실까지도.
아돌레비트 이후 누구도 제어하지 못했던 화령꽃을 통제하여 폭주를 잠재웠으며 심지어 그 힘을 이용하 여 해적제왕의 원혼을 쓰러뜨리다!
이처럼 드라마틱한 인생역전 이야
기가 더 있을까?
“…내가 쓰러뜨린 게 아니라니까.”
아돌레비트의 언론은 물론, 전 세 계적으로 훙비연의 이름이 널리 퍼 져나갔다.
무려 얼음의 화신과 불의 화신이 동시에 일으킨 재앙을 고작 열일곱 의 소녀가 막아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일까.
그러한 와중 여왕 홍세류는 아무것 도 하지 못하였으니 그와 비교되어 더더욱 빛을 발하는 점도 있었다.
자신에 대한 찬사와 찬양은 참으로 마음에 들었다. 누군가에게 떠받들
려지는 것은 홍비연이 참으로 좋아 하는 것이었으니.
하지만, 정작 해적제왕을 쓰러뜨린 장본인인 백유설이 아무런 스포트라 이트도 받지 못한다는 사실이 홍비 연으로서는 억울했다.
구름을 가르고, 오로라를 타고 나 타나 단 일격으로 해적제왕을 쓰러 뜨린 백유설을 목격한 이들은 거의 없었다. 그저, 한 줄기 벼락이 내리 쳤다고만 알려져 있을 뿐.
그래서 흥비연은 필사적으로 백유 설의 업적에 대해 알리려고 해보았 으나,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다.
아무런 상처도 없이 기절해있는 고 등학교 소년이 사실은 해적제왕을 단 일격에 쓰러뜨렸다는 사실을 대 체 누가 믿는단 말인가.
……애당초, 열일곱의 소녀가 이런 일을 벌인 것도 말이 되지 않는 일 이기는 했지만.
“공주님. 퇴원하시겠습니까?”
리스본드 항구, 대학 병원의 주치 의가 조심스레 물어왔다. 흥비연은 신체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었기에 입원 즉시 퇴원해도 될 정도였다.
“……글쎄요.”
그녀는 잠시 고민하였다.
당장 왕실로 돌아가도 좋겠으나….
굳이 그러지 않았다.
“아뇨. 나중에 하고 싶을 때 하겠 어요.”
“크, 크흠. 알겠습니다.”
리스본드 항구의 병원은 그 시스템 이 상당히 체계적으로 잘 짜여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이 도시 자체 가 모험가들의 성지였던지라 던전을 탐험하거나 괴수를 사냥하는 도중 부상입는 이들이 많았던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직 계 왕족이 입원해 있는 건 부담스러 웠는지 의사들의 표정이 영 불편해
보였다.
물론 남들의 불편함 따위, 홍비연 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는 이기적이었으니까.
“공주님… 그럼, 바깥에서 대기 중 인 기자들은 어떻게 하면 될까요?”
홍비연은 커튼을 살짝 들춰서 창밖 을 바라보았다.
정말…… 어마어마한 규모의 인파 가 병원 앞을 들쑤시고 있었다.
왕실 기사단이 가로막고 있어서 아 무도 쉽사리 접근하지는 못하였지만 저래서는 환자들이 제대로 입원하지 도 못할 것이다.
하지만 과연 환자가 입원할 일이 있기나 할까?
홍비연은 저 멀리 바닷가를 바라보 았다. 따사로운 햇살 아래로 반짝이 며 출렁이는 바닷물이 아름답다.
그렇다.
레비앙의 흐H안이, 다시금 살아 숨 쉬기 시작하였다.
잔잔하지만 파도가 쳤고 바람에 따 라 물결이 흔들렸으며 기온도 확 내 려가 햇살이 상당히 따사롭다.
아직은 얼음이 완전히 녹아내리지
않았지만 조만간 리스본드는 천 년 전의 모습을 완전히 되찾을 것이다.
해적제왕 블랙 벨리즈가 쓰러지면 서 해적선에 잠들어 있던 얼음의 화 신이 봉인되어, 영원한 겨울의 저주 가 완전히 사라졌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이 당장 완전히 긍정 적인 영향을 가져올지는 미지수다.
리스본드가 항구로서의 기능을 잃 은 지는 벌써 천 년이 더 넘었고, 그 시절을 기억하는 이들은 없었으니.
하지만 대륙의 심장부를 관통하는 환상적인 위치에 세워진 리스본드가 언제까지고 얼어붙어 마비되어 있는
건 비효율적이다.
항구로서 개발되기만 한다면, 이곳 은 아돌레비트 왕국을 한층 더 강대 국으로 만들어줄 발판이 될 것이다.
“……기자들은 돌려보내세요.”
아무리 이기적인 그녀라지만 혹시 나 있을 부상자를 비롯하여 이미 입 원한 환자들을 생각하여, 당분간은 이곳을 조용히 시키기로 하였다.
이곳의 모든 환자들 또한 훗날 자 신의 백성이 될 사람들이었으니.
남의 것은 생각할 가치가 없지만, 나의 것은 소중히 여기는 게 바로 홍비 연이었다.
“그럼, 그… 찾아오는 귀빈분들은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돌려보내라고 말씀드렸을 텐데요.”
“그게…… 저희가 쉬이 돌려보내기 껄끄러울 정도로 높으신 분들이 자 꾸 찾아오셔서…….”
의사의 말에 홍비연은 잠시 머리카 락을 쓸어내려서 앞으로 넘겼다. 딱 히 의미가 있는 행동은 아니고, 그 냥 단순히 씰룩이는 입꼬리를 들키 지 않도록 가리기 위해서였다.
여태 자신을 지지하는 세력은 스텔 라 내부에서 어떻게든 왕족의 줄을 잡아보려는 학생들과 고작해야 아탈
렉 공작가가 전부였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모두가 나를 원하였고, 모두가 나 를 찾기 시작하였다.
“홈홈. 아직은 만날 수 없다고 하 세요 퇴원을 ‘예고할 테니, 그때 찾아오라고 하시면 돼요.”
“퇴원을 예고하시는…… 겁니까?”
“그래요.”
백유설이 들었다면 ‘뼛속까지 관종’ 이라고 한 마디 나무랐겠지만, 이곳 의 그 누구도 감히 홍비연에게 그런 소리를 할 수는 없었다.
애당초, 그녀의 대우는 당연했다.
이 자리에 있는 의사들 역시 홍비 연이 아니었다면 재앙에 휩쓸려 흔 적도 없이 사라졌을지도 모르니까.
전 국민의 은인.
사실, 이 병원의 환자를 모조리 내 보내고 오로지 그녀 한 사람을 돌보 는 것만으로도 이미 의사에게 있어 서는 가문의 영광일지도 모르겠다.
“그럼 그렇게 말해두겠습니다.”
대답은 의사가 아니라 홍비연을 호 위하는 기사들이었다. 본래는 그녀 를 보좌하는 임원이 따로 있어야 했 으나, 여왕이 지정해두지 않은 탓에
기사들이 이런 일을 도맡아서 할 수 밖에 없었다.
여왕, 홍세류는 사건이 끝난 직후 곧바로 수도로 복귀하였다.
그녀 스스로도 자신이 저지른 이 대사건이 얼마나 창피하고 위험천만 한 짓이었는지 잘 알았기 때문이다.
아마 조만간 대국민 사과를 위해 뭔가를 준비하겠지만…… 그건 홍비 연이 알 바가 아니었다.
“흐응…….”
의사들이 돌아가고, 적막해진 병실 에서 홍비연은 조용히 콧노래를 불 렀다.
모든 게 완벽하다.
이보다도 더 완벽한 날이 있을까.
지금 당장 날아서 승천해버리고 싶 을 정도로 행복하고 또 행복해서 죽 을 것만 같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아직 모든 근심과 걱정을 내려놓지는 못하였다.
단 하나.
가장 큰 걱정거리가 남아 있었으니.
백유설은 언제 깨어납니까?’
전투 직후, 병실에서 깨어난 홍비 연은 가장 먼저 그를 찾았다. 다행 스럽게도 의사들의 반웅은 긍정적이 었다.
‘신체적으로 문제는 없습니다만…… 정신적으로 어마어마한 스트레스를 받은 것 같습니다. 이 정도까지 극심 한 스트레스를 받은 게 조금 의아해 서 제대로 진료를 보았습니다만, 결 국 원인을 찾지는 못했습니다. 아마 도 정신을 잃기 직전 무언가 꽤 힘 든 일을 겪지 않았을까 싶군요.’
의사의 소견을 듣고서 홍비연은 가 슴 한쪽이 먹먹해졌다.
백유설이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을 만한 일이라.
지금껏 그 어떤 고난과 역경을 헤 쳐 나오면서도 단 한 번도 힘든 모 습을 보여준 적이 없는 그였기에 걱 정이 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곧 깨어날 겁니다. 놀라울 정도로 회복이 빠르더군요.’
홍비연은 그 말을 믿기로 하였다.
의사의 지식과 진찰을 존중하는 것 도 있었지만, 그보다도 더욱 백유설 을 믿었다. 고작 이 정도에 쓰러질 그가 아니라고 생각하였기에.
똑똑!
잠시 사념에 빠져 있는데 노크 소 리가 들려왔다.
-공주님. 성주 블랙 마탈레 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들여보내.”
리스본드 항구를 통치하는 천화빙 궁의 성주이スト, 전설의 해적제왕 블 랙 벨리즈의 후손 블랙 마탈레.
병실의 문이 열리며…… 며칠 전에 보았을 때보다 안색이 좋아 보이는 듯한 느낌의 마탈레가 들어왔다.
아직은 환자복을 입은 채였으나 예 의를 차리기 위해 코트로 옷을 가린 뒤 일어서서 그를 맞이하려는데, 대 뜸 마탈레가 홍비연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무슨 짓이야?”
뒤이어 차례로 마탈레를 따라온 사 내들 역시 그녀를 향해 꿇었다.
홍비연은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 었으나 잠자코 그들을 지켜보았다.
“공주님께 큰 은혜를 입었습니다.”
“나도 알아.”
“……단순히, 저희의 목숨을 구해 주신 은혜가 아닙니다.”
마탈레는 고개를 들어 홍비연의 루 비색 눈동자를 똑바로 마주하였다.
“천 년. 정확히 천 년이라는 세월 간…… 우리 블랙 혈족은 저주와 싸 워왔습니다.”
바다로 나가고 싶다는 충동.
그러나, 바다로 나가면 반드시 죽 어버리는 운명.
블랙 벨리즈 세대로부터 시작된 그 끔찍한 저주는 세대에 세대를 거쳐
가며 더더욱 짙어졌고, 지금에 이르 러서는 저 아름다운 수평선을 바라 보는 것조차도 고통스러울 지경에 이르렀다.
블랙 혈족이 오래 살지 못하는 이 유, 참으로 어처구니없게도 바다로 나가고자 하는 증동을 견디지 못하 여 결국 스스로 바닷속으로 달려들 어 목숨을 끊어버리기 때문이다.
마탈레의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그 랬던 것처럼, 그 역시도 똑같은 끝 을 맞이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공주님 덕분에, 저희 블랙 혈족은 천 년만에 다시금 바다로 나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행이네.”
홍비연은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 보았다. 서서히 녹아내리는 저 바다 를 바라보고 있자면, 속이 뻥 뚫리 는 느낌이었다.
비록 저들은 저주에게서 해방되었 지만, 아직은 바다로 나갈 수 없다.
아돌레비트 왕가와의 계약 때문이 었다.
“내가 만약…… 왕이 된다면, 너희 혈족 모두를 해방시켜 줄게.”
“……그렇습니까.”
“응. 농담 아니야. 가서 해적질이든 뭐든 하고 싶은 대로 살아.”
“말씀만으로도 감사드립니다.”
“말뿐이 아니야. 나는 진짜 여왕이 될 거니까.”
“그런 뜻으로 말한 게 아닙니다.”
“뭐?”
블랙 마탈레는 또렷한 눈빛으로 홍 비연을 바라보았다.
“저 또한…… 일평생 바다로 나가 고 싶다는 충동과 싸워왔고, 이제야 그 저주에서 해방되었으나 아돌레비
트 왕가를 등질 생각은 없습니다.”
“그럼… 어쩌려는 거야?”
“자유로이 바다를 누비는 건 다음 세대가 되어도 좋습니다. 저는 이곳 리스본드에 남아, 이 도시를 키워보 이겠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도 움이 되는 수준까지 자라난다면, 당 신의 힘이 되어드리겠습니다.”
“뭐?”
생각지도 못한 말에 홍비연은 얼떨 떨한 표정을 지었다.
항구도시라는 가치는 현대에 이르 러서도 아주 무거운 의미로 다가온 다. 워프 홀과 비행선 기술이 개발
되었다지만, 화물까지 모두 운송하 기에는 지극히 비효율적인 탓에 여 전히 수상 운송이 무역의 주된 수단 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리스본드 항구는 전 세계 전체로 퍼져나갈 수 있을 정도 로 심장부나 다름없는 위치였기에 제대로 성장하기만 한다면…… 어마 어마한 힘을 갖추게 될 터.
리스본드의 성주 블랙 마탈레는 지 금껏 껍데기뿐인 직책을 맡고 있었 지만, 진짜 항구도시가 되었을 때도 껍데기뿐일까?
그럴 리가.
앞으로, 그의 권력은 지금까지와는 달리 천정부지로 솟구칠 것이다.
그때가 되어 돈과 힘을 손에 거머 쥔 블랙 마탈레가…… 홍비연에게 힘을 실어준다면 분명 왕위 쟁탈전 에서도 큰 도움이 될 터.
“그건……
“……혹시, 해적의 핏줄이 마음에 들지 않으시다면 깔끔히 성주를 포 기하고 물러나겠습니다.”
“아니. 그럴 필요는 없어.”
블랙 마탈레가 성주를 놓게 되면, 다시금 여왕 홍세류의 손에 리스본 드가 떨어지게 된다. 그렇게 둬서는
절대로 안 된다.
“해적이라고 무시한 적은 없다. 애 당초, 내 아래로 모든 인간은 평등 해. 귀족이든 노예든 말이야. 나는 사람을 능력으로 평가하지, 절대 신 분으로 보지 않아.”
“그렇습니까……
묘하게 양심에 찔리는 말이었으나 최근 들어서는 어느 정도 사실이기 는 했기에 홍비연은 뻔뻔하게 그런 말을 내뱉을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반드시, 이 도시를 최 고의 항구로 성장시켜 당신께 힘이 되어드리겠습니다. ”
“응. 자주 찾아올 테니까, 열심히만 해. 내가 할 수 있는 지원은 전부 해줄 테니까.”
“감사합니다!”
블랙 마탈레는 홍비연에게 충성을 맹세하였고, 그가 돌아간 뒤 홍비연 은 남몰래 뒤돌아서서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일이 잘 풀려가는 느낌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 느낌은 틀리지 않았는 지, 정확히 일주일이 지난 날.
백유설이 깨어났다.
* * *
꿈을 꾸었다.
-나는 빠르고 시원스러운 전개와 극적인 연출을 좋아하거든!
청동십이월의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쩌렁쩌렁 울렸다.
-행운을 빌 スI!
이윽고, 나의 몸이 추락하였다.
밑도 끝도 없이 갑작스레 부유감이
느껴지면 인간으로서 공포를 느낄 수밖에 없겠으나, 나는 두려움을 느 낄 정도의 기력조차 남지 않았던 것 같다.
세상이 마구잡이로 휙휙 뒤집혔고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레비앙 해 안의 상공을 날고 있었다.
이윽고 시야에 한가득 들어오는 해 적제왕, 블랙 벨리즈.
그것은 정말이지 거대하고 육중한 체구를 가지고 있었다. 게임에서 그 래픽으로 본 적은 있었으나 실제로 느껴지는 압박감은 차원이 달랐다.
그러나.
나는 그조차도 두렵지 않았다.
머릿속에는 단 하나의 생각밖에 들 지 않았다.
‘심장에 찔러 넣어라!’
청동십이월이 준 자그마한 고드름 은 어느덧 나의 키보다도 더 길어진 채, 새파란 빛을 발광하였다.
아이기릭스의 궤.
얼음의 화신이 잠들어 있는 해적제 왕의 심장에 이것을 찔러넣으면, 그 가 가진 힘의 근원을 봉인할 수 있 다.
– 그건……
그것이 나를 발견하고서 당황한 듯 하였으나, 늦었다. 나는 점멸을 제어 하지 않고서 최대 사거리로 연속해 서 사용하였다. 고작 45m밖에 되지 않는 사거리였지만, 문제없다.
해적제왕 블랙 벨리즈의 심장에 파 고들기에는 충분했으니까.
간단했다.
놈의 심장에 창을 겨누었고.
찔러 넣었다.
-..!!
그 순간.
갑작스레 블랙 벨리즈의 푸른 해골
이 민트 초코 치킨이 되었다.
나는 식탁에 앉아 민트 초코를 먹 기 위해 포크를 들었으나 역시 이건 내 입맛에 맞지 않았다.
옆에 앉아 있던 풀레임에게 그것을 건네주자 그녀가 말하길.
‘민트 초코 치킨이 발사하는 마관 광살포에 맞으면 다시는 순살 치킨 의 다리를 먹을 수 없대!’
안타깝게도 풀레임은 이미 순살 치 킨을 먹을 수 없는 몸이 되어버렸으 나 다행스럽게도 그녀는 하와이안 피자를 좋아해서 상관이 없었다.
그러나 나는 하와이안 피자도 싫어
하여 대걸레를 휘두르며 쫓아오는 민트 초코 치킨을 피해 달아날 수밖 에 없었다.
나는 순살 치킨의 다리를 골라먹는 낙으로 살아가는 사람이었기에 필사 적으로 도망쳤으나 택시 요금이 없 어서 붙잡히고 말았다.
그때 하늘에서 건담이 나타나더니 하이퍼불꽃제트킥을 날려 민트 초코 치킨을 기절시켰다.
오/늘도 세계 평화를 지켜냈군!’
나는 민트 초코 치킨의 사체를 보 며 끔찍한 기분이 들었으나 이런 걸 나만 볼 수는 없다는 생각에 박물관
에 기증하였다.
사람들이 모여서 민트 초코 치킨을 구경하며 고통스러워했다.
‘지져스!’
‘이런 음식이 세상에 존재한다니!’
‘내 시각기관을 믿을 수가 없어!’
고통받는 사람들을 가슴 아픈 심정 으로 지켜보는 와중, 에이젤이 나를 학교 뒤뜰로 조용히 불러내어 민트 색을 닮은 머리칼을 배배 꼬며 수줍 게 고민하였다.
‘나 사실…… 민트 초코 치킨을 좋 아하는 것 같아…….,
그 순간, 나는 눈을 번쩍 떴고.
“으아아 안 돼!”
“무, 뭐야… 평민……
바로 옆에는 홍비연이 당황한 눈으 로 나를 멀뚱멀뚱 바라보고 있었다.
“어, 어? 휴…….”
꿈.
꿈이다.
꿈이었나 보다.
나는 간혹 너무나도 강렬한 경험을 하게 되면 꿈속에서 같은 일을 반복 하는 경우가 있다.
비록 그게 이상한 방향으로 스토리 가 흘러가서 문제였지만…….
“악몽을 꿨어……「
내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하자 홍비 연은 진지한 얼굴로 들어주었다.
“무슨 꿈?”
“민트 초코 치킨이 발사하는 마관 광살포에 맞으면 순살 치킨의 다 리를 먹을 수 없는 저주에 걸리는 꿈이었어……
“그래서 그걸 풀레임한테 보여줬 더니 자기는 하와이안 피자를 좋아
해서 상관없다는 거야…….”
“……그래서?”
“하는 수 없이 그걸 박물관에 전시 했더니, 에이젤이 사실 그걸 좋아한 다고 자기가 먹겠대……
말해놓고도 어이가 없어서 슬쩍 눈치를 보니, 과연 화가 난 듯 아까 와는 달리 표정이 잔뜩 구겨진 채 였다.
“응. 그래서?”
“어, 어…… 끝인데?”
그리 말한 뒤 나는 슬그머니 눈치
를 살폈다. 이제 보니, 이곳은 병실 이었다. 새하얀 벽지와 의료 기구가 상당히 고급인 것을 보아하니 그럭 저럭 대우를 받은 모양이다.
내가 상황을 파악하는 와중에도 홍 비연은 꿈을 자꾸만 되물었다. 무언 가를 기다리는 듯.
“끝인데… 왜?”
“……아무것도 아니야.”
그러더니 표정을 잔뜩 찌푸리는 흥 비연. 화가 난 것을 보아하니 헛소 리를 들어서 짜증이 난 것 같다.
“후우…….”
그녀가 화난 것과는 별개로 어쩐지 정신적으로 너무 피곤하여 다시 침 대에 드러누웠다.
“야. 나 얼마 동안 잠들어 있었냐.”
“이주이 ”
“헐 미친. 그건 좀 큰일인데.”
“..왜?”
내가 경악하자 홍비연도 덩달아 경 악하였다.
“여름방학 일주일을 생으로 날려먹 다니…….”
홍비연은 ‘뭐 이딴 놈이 다 있지?’
라는 표정을 지었으나 그런 것과는 별개로 나는 나대로 심각했다.
안 그래도 쉴 새 없이 달려온 인 생이었기에 잠깐이나마 나만을 위한 휴가를 챙기려고 했거늘.
‘끄응. 청동십이월과의 내기가 아 무래도 컸던 건가…….’
아무리 신체가 완전히 동결된 환경 이었기에 먹지도 자지도 않아도 된 다지만 석 달이나 그 고생을 했으니 고작 일주일 기절은 많이 봐준 셈일 지도 모르겠다.
“그럼…… 여기는 어디야?”
“리스본드 병원.”
그녀는 그리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 났다. 묘하게 히죽히죽 웃는 모습이 보기에 좋다.
“어? 어디가?”
“너 깨어난 거 확인하고, 퇴원 수 속 끝마쳤어.”
“아…… 그러냐.”
“뭐 해? 옷 입어.”
“나도 퇴원해?”
“당연하지.”
당연한 거였나?
잘은 모르겠지만 공주님이 하자는 데 또 안 따를 수는 없지 않겠는가.
나는 주섬주섬 일어나 옷장을 뒤적 였다. 교복 코트밖에 남지 않았으나 일단 이거라도 일단 걸치자는 생각 에 코트를 입은 뒤 기다렸다.
……한참을 기다렸다.
거의 두 시간은 침대에 앉아서 멍 때린 것 같다.
“뭐야. 언제 오는데.”
달칵!
말하기가 무섭게, 나와는 달리 제 대로 차려입은 홍비연이 병실 문을 열고서 들어왔다.
“슬슬 다 모였네. 가자「
“어…그래.”
나는 그녀를 뒤따랐다.
묘하게 신경 쓴 듯한 홍비연의 차 림새가 수상쩍다.
곧이어,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찰칵찰칵!!
웅성웅성.
“공주님이다!”
“셋째 공주님이 나오셨다!”
“공주님! 이쪽 한 번만 봐주세요!”
*……뭐여?’
순간 현기증이 날 정도로 어마어마
한 인파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홍비연을 기다렸다.
그들은 홍비연을 향해 함성을 빙자 한 비명을 내질렀으며 기자들은 정 신없이 셔터를 눌러대며 마이크를 들이밀었는데, 이건 여태 내가 수많 은 사건사고를 치면서 받아왔던 언 론의 관심을 모조리 합친 것보다도 더욱 규모가 커다랬다.
‘미친…… 이게 대체 무슨 일이 야?’
홍비연은 은색 머리칼을 우아하게 뒤로 쓸어넘긴 뒤 그곳을 향해 걸어 나갔다.
척!척!
아돌레비트 기사단이 홍비연이 나 아가는 앞길에 길을 트자 그녀는 자 연스레 그 사이를 걸었다.
저보다 더 완벽한 모델 워킹이 있 을까. 결혼식 날 신부의 들러리가 된 느낌으로 뒤따라 걷는데, 홍비연 이 돌연 뒤돌아 나를 바라보았다.
,,백유설”
“……어.”
왜 그랬을까.
홍비연이 나를 부른 그 순간, 주변 의 모든 소음이 제거되었다. 마치
세상에 둘밖에 남지 않은 것처럼.
“지금껏 네가 보아왔던 홍비연은 모두 잊어.”
“뭐?”
갑작스러운 말에 내가 의문을 표했 으나, 그녀는 제대로 대답하지 않고 서 내게 한 걸음 더 다가왔다.
“그리고, 네 기억 속에 지금의 나 를 새기는 거야.”
“그, 그게 대체 무슨 뜻이야?”
“너는…… 단 한 번이라도, 이렇게 행복한 나를 본 적이 있어?”
그 말에 일순간, 아이테르 월드 온
라인이 떠오른 것은 어째서였을까.
게임 속 ‘캐릭터 홍비연은 한순간 도 행복하지 못한 채, 끝끝내 주인 공들에게 처참히 짓밟힌 뒤 마지막 에는 사망하는 것으로 끝이 맞이하 게 된다.
하지만 현실의 홍비연은 다르다.
그녀는 가장 큰 사망 플래그 중 하나를 수월하게 넘긴 것으로도 모 자라…….
“홍비연 공주님!”
“공주님 만세!”
“이쪽 한 번만 봐주십쇼!”
“사랑합니다!”
모두에게 사랑받고, 찬양받는 최고 의 공주가 되어 있었다.
그건, 틀림없이.
내가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완전히 새로운 ‘홍비연이었다.
그녀가 무슨 의미로 저런 질문을 던졌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나는 나 만의 방식대로 이해하여 대답했다.
“아니. 본 적 없어.”
**……응. 그렇겠지. 네가 아니었다 면 나는 이렇게 될 수 없었을 테니 까.”
그녀는 또 한 걸음 내게 다가왔다. 이제는 숨결이 닿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였기에 상당히 부담스러웠으나, 어쩐지 뒷걸음질을 칠 수가 없었다.
“그러니 지금까지의 모든 홍비연은 전부 잊어버려. 그리고…….”
그녀는 잠시 망설였으나, 끝끝내 속에 담아두었던 말을 끌어내었다.
“네게 무슨 일이 있더라도, 지금의 나만을 기억해.”
-……뭐?”
“할 수 있지?”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겠고, 맥락도
전혀 모르겠으나 못한다고 하면 큰 일날 것 같은 분위기여서 나는 허겁 지겁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그녀는 표정을 풀고서 비스 듬히 미소를 짓더니, 뒤돌아 앞장서 걸어 나갔다.
오늘따라 홍비연의 발걸음이 가벼 워 보이는 건 기분 탓일까.
그러나 그녀가 기분이 좋아 보이 니, 덩달아 내 발걸음 또한 가벼워 졌다.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