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Flashing Genius At The Magic Academy RAW novel - Chapter (212)
마법학교 앞점멸 천재가 되었다 212
46. 옛날이야기⑻
쿠구구구궁!!!
끊임없이 흔들리는 지형.
그러나 체스판 위의 체스말은 굳건 히 제자리를 지킨 채 지휘자가 명령 하지 않으면 결코 움직이지 않는다.
던전이 붕괴되는 극한의 상황에서
두뇌를 굴려가며 체스를 두는 것.
어려워 보일 수도 있겠으나, 언제 나 항상 전투 도중 마법을 캐스팅하 는 마법사에게는 지극히 익숙하고도 당연한 일이었다.
물론, 내게는 아니다.
‘으아아악!’
검을 땅에 꽂아 넣은 뒤, 청동십이 월의 가호로 지면과 발바닥을 얼려 서 몸을 고정시킨다.
그다음 연홍춘삼월의 가호를 이용 하여 최대한 냉정히 가슴을 가라앉 혀 모든 체스 상황을 눈에 담았다.
어렵지 않다.
계산은 어차피 직박구리 안경이 하 고 있을 터. 나는 그저, 무너지는 던전 속에서 휩쓸리지 않도록 버텨 내기만 하면 되었다.
‘빨리, 더 빨리!’
정신력이 실시간으로 쭉쭉 빠져나 간다.
직박구리 안경의 인공지능 기능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나의 심력을 대 량으로 소모할 필요가 있었는데, 일 전에 고작 고등학생 한 명 상대하는 데에도 머리가 터질 것처럼 아파 왔 던 것을 생각하면…… 카르멘세트를 이기려면 얼마나 괴로울까.
그때와는 달리 연홍춘삼월의 가호 도 있어서 다행이었으나, 상황이 상 황인지라 심력이 여러방면으로 물새 듯이 자꾸만 빠져나가 머리가 지끈 거리며 터져버릴 것 같았다.
[최적의 수를 계산합니다.]그러든 말든, 직박구리 안경은 허 공에 내게만 보이는 홀로그램 빔 프 로젝트를 투사하여 다음의 수를 가 리킨다. 나는 거기서 실수 없이 안 경이 시키는 대로 수를 두었다.
‘크윽, 지금 어떻게 되는 거지? 이
기고 있는 건 맞겠지? 인공지능보다 카르멘세트가 더 똑똑한 거는 아니 겠지? 이세돌 9단도 알파고를 이겼 으니까 불가능한 일은 아니잖아!’
극한의 상황에 처해 버리니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하지만, 걱정은 기우였다.
– 대단하군
“……뭐?”
-이런 상황에서도, 냉정함을 잃지 않고 최선의 수를 생각해 내다니. 비록 나는 육신이 없어서 혼란에 영 향을 받지 않았으나, 만약 내가 너 와 같은 상황이었다면 결코 이러한
수를 둘 수는 없었을 것이다.
카르멘세트의 갑작스러운 말에 나 는 허겁지겁 판을 둘러보았다.
그래도 과거 소울 체스를 상당히 두었던 나였기에, 직박구리 안경의 도움 없이도 상황을 파악하는 건 어 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건……
-체크 메이트로군. 내가 졌다.
이겼다.
그것도, 완벽하게 이겼다.
단 한 번의 공격조차 허용하지 않 은 채, 카르멘세트를 완전히 실력으
로 찍어 눌러 버린 것이다.
쿠구구궁!
“윽!”
카르멘세트의 킹이 쓰러지며 그 진 동으로 인해 지진이 더욱 심해졌다. 던전의 뿌리가 송두리째 뽑혀 버린 것만 같은 진동이었다.
그러한 와중에도 카르멘세트는 조 금의 혼들림도 없이 말을 이어갔다.
-소원을 빌거라.
드디어 때가 되었다.
나는 최대한 신중히 단어를 머릿속
으로 굴리며, 입술을 떼었다.
“네게 빈 소원으로 영생을 살게 된 멜리안 회장의 육신을 원래대로 돌 려놓으며, 그의 심장을 좀먹는 악성 종양 ‘아즈칸 갈퀴’의 활동을 영구 적으로 정지시킬 것을 원한다.”
-……소원이 상당히 길군?
“이 정도는 할 수 있잖아? 나는 너보다 체스를 잘 두니까.”
쿠구구구구!!
던전이 붕괴되는 것에도 모자라 슬 슬 공간에 점점이 구멍이 뚫리기 시 작했다. 허공에 자그마한 블랙홀 같 은 게 생성되어 지형지물이 어딘가
다른 차원으로 사라지는 끔찍한 광 경을 보고 있자니 식은땀이 줄줄 홀 러 내린다.
-크흐흐, 그래. 네 말이 옳다.
그는 무엇이 즐거운지 크게 폭소하 였다.
-은세십일월에게 저주를 받아, 이 던전에 갇힌 뒤 나 홀로 소울 체스 를 둔 지도 어언 수백 년. 다가오는 도전자를 마다한 적 없었고 도망치 는 도전자를 붙잡은 적도 없었다.
어째서 카르멘세트의 말이 길어졌 는지, 나는 이해하지 못하였다. 다만 그 말에 어쩐지 진심이 담겨 있는
것만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오늘, 이토록 즐거운 체스 는 처음이었다. 다음에 또…… 기회 가 있다면, 너와 체스를 두고 싶군!
카르멘세트는 그리 외친 뒤 붉은 안광을 번쩍이고서…… 어딘가로 소 멸되어 사라졌다.
아마도, ‘다른 시간대’로 이동한 게 틀림없을 터. 이 던전 또한 시공간 이 붕괴됨에 따라 카르멘세트를 따 라서 이동할 텐데 거기에 휩쓸렸다 가는 높은 확률로 비명횡사하겠지.
하지만, 내게는 마지막 발악이 남 아 있다.
은세십일월!”
허공을 향해 그의 이름을 외친다.
“지금 이 순간을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일전에 나는 그와 포커를 쳤고, 그 와의 재회를 약속하였다.
평범한 인간에게 ‘재회’란 그리 어 려운 일이 아니다. 시간과 장소를 정해서 다시 만나면 그만이니까.
하지만 시간 여행자에게 시간이란 매우 유동적이고 불규칙적인 존재.
재회와 기적을 동일시 여기는 은세 십일월이니만큼, 그는 재회를 위해
나를 특별한 방법으로 주시하고 있 을 것이다.
“단 한 번이면 충분합니다!”
우우우웅-!!
이제는 더 이상, 던전이 붕괴되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이불속에 숨겨놓은 스마트폰이 거 칠게 진동하는 듯한 불쾌한 백색 소 음만이 귓가를 잔뜩 채워버렸다.
내 몸 또한 서서히…… 시공간 어 딘가의 틈새 사이로 빨려 들어간다.
나 자신이 사라지는 것을 느끼면서 도, 은세십일월을 향해 외쳤다.
“그러니, ‘시간의 태엽’을
직후.
의식이 소멸되었다.
**……음!”
홀로 바둑을 두던 은세십일월은 온 몸의 감각이 곤두서는 감각을 느끼 며,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의 은색빛 눈동자에 백유설의 모 습이 포착되었다. 실시간으로 벌어 지는 끔찍한 재앙.
,이런……
항상 그를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 니었기에, 어쩌다 저 총명한 소년이 시공간의 소용돌이에 휩쓸렸는지 원 인을 곧바로 파악하는 건 불가능했 다. 단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잠깐 눈을 뗀 사이 별 해괴한 사 건에 휘말렸군……!’
도대체 뭘 하는 인간이면 은세십일 월 자신도 겪기 힘든 상황을 열일곱 의 어린 신체로 겪는단 말인가.
그건 중요치 않다.
마지막에 백유설이 외쳤던 ‘시간의 태엽’이라는 단어가 뇌리에 각인되
었기 때문.
그는 자신에게 ‘시간 여행’을 부탁 하였다.
은세십일월의 가호 없이는 분명히 부작용이 심하겠지만, 수많은 시간 을 관통하여 살아온 백유설이라면… 어쩌면 무사할지도 모른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지금의 내 힘으로는 저 소용 돌이에서 백유설을 온전히 빼내는 게 불가능하다.’
과거의 신물을 흡수했다면 모를까, 그는 시간을 다루는 힘이 굉장히 미 약해져 있었다.
그러다 퍼뜩 든 생각.
,가만……
은세십일 월에게는 느껴진다.
지금 이 순간, 어딘가에서 ‘과거의 신물’이 활동하는 증이라는 것이.
그는 또다른 자신이며, 그것의 힘 은 자신의 것이었기에.
‘……이용하는 것 정도는, 할 수 있겠군.’
원래 자신의 것이었던 힘을 빌려서 억지로 그 틈새에 끼워 맞춰야 한다 니. 참으로 비루한 꼬라지였으나 스 스로가 자초한 일이었기에 어쩔 수
없었다.
은세십일월은 가부좌를 틀고 앉아 정신을 집중하였다.
‘과거의 신물이 바라보는 시간대는 10년 전의 아이테르 대륙.’
비록 백유설을 현재로 불러올 수는 없으나, 임시로 그를 그곳에 정착시 킨 뒤 힘을 끌어모으기만 하면 다시 불러오는 것 정도는 얼마든지 가능 하다. 시간의 소용돌이에 휩쓸릴 바 에야 과거의 시간에 잠시 머무르는 편이 낫지 않겠는가?
“후우…….”
시간의 태엽을 거꾸로 돌리는 것은
그에게도 정말 오랜만에 하는 일이 었기에 조금 긴장되었으나, 침착하 게 능력을 발휘하며 입을 열었다.
“백유설, 들리는가.”
이미 시공간의 소용돌이에 휩쓸린 그에게 들릴지 어떨지 알 수는 없었 으나, 반드시 전해야만 했다.
“나는 너를 10년 전의 과거로 보 낼 것이다. 그러나, 명심할 점이 있 다.”
시간 여행자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충고.
“절대 과거에서 발생한 사건을 바 꾸려고 하지 말거라. 미래가 아예
소멸되는 결과가 발생할 테니……「
예를 들어, 현대의 아이테르 월드 는 100년 전 발생한 ‘제3차 마도대 전에 의해 이 사회가 구축되었다.
그런데 갑자기 시간 여행자가 100 년 전으로 돌아가 제3차 마도대전을 막는다고 ス] 자.
그럼, 현대는 어떻게 되는가?
갑자기 전쟁이 발생하지 않았던 역 사로 수정되어 또다른 세계가 될 것 인가?
그렇지 않다.
현재의 이 세계는…… 소멸된다.
모두의 기억도 의지도 역사도 문명 도 가족도 친구도 인연도 운명도.
단 하나도 남지 않은 채 완전히 ‘없던 것’이 되어버린다.
“너는 시간의 운명을 거스를 수 있 었다. 나조차도 할 수 없던 일이 スI. 하지만, 과거의 운명은 결코 바꿔서 는 아니 된다! 반드시, 반드시! 반 드시 명심하도록!”
그는 마지막으로 백유설을 향해 필 사적으로 소리쳤고, 이윽고.
번쩍!
은색의 태엽이 밤하늘을 가득 메우 더니, 정확히 3650번의 역회전을 하
고서 소멸되었다.
“후우…….”
백유설의 기운이 완전히 소멸하였 음을 확인한 은세십일월은 땀을 훔 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부디, 아무런 일이 없기를…….”
* * *
에이젤과 풀레임은 여타의 탐사대 원들과는 다른 방향으로 멸망한 도 시 카라코르니아를 수색하였다.
사실 수색이랄 것도 없는 게, 그녀
들의 탐사는 상당히 어설펐기 때문 이다.
전문가들은 사소한 돌조각이나 건 물에 난 흔적만으로도 당시의 인간 들이 어느 정도의 기술력을 갖췄는 지, 식습관이나 문화는 어땠는지를 손쉽게 파악하고는 했다.
그래서 그 정보를 토대로 ‘증요한 것’을 어디에 숨겨두었는지를 빠르 게 알아내 조사에 착수하는데…….
그에 비해 풀레임과 에이젤은 유적 탐사에 대해 전혀 배운 바가 없다.
애당초 그녀들은 흑마인과 싸우는 마법 전사 생도였으니 말이다.
야영 경험은 조금 있더라도, 유적 지는 완전한 생초짜.
이곳에서는 마법을 조금 다룰 줄 아는 일반인에 불과했다.
‘근데 꼭 전문가만 탐사를 하는 건 아니 礼’
풀레임은 자신이 어렸을 적…… 아 니, 정확히는 ‘전생에서 보았던 영 화의 한 장면을 떠올렸다.
무수히 많은 전문가와 용기 있는 사나이들이 달려들어도 발견하지 못 했던 전설의 보물을, 평범한 여주인 공이 우연찮게 줍고서 초능력을 얻 으며 시작되었던 이야기.
평범하다고 해서 아무것도 하지 못 하는 건 아니다. 비록 그것은 영화 였고 픽션이었으나 에이젤이라는 존 재는 그 자체로도 픽션과 별반 다를 것 없는 특별한 존재이지 않던가?
그녀의 존재가 픽션이라는 게 아니 다. 그녀가, 아주 특별하다는 이야기 였다.
‘에이젤, 너는 주인공이니까.’
풀레임은 천천히 그녀의 뒤를 따랐 다. 안타깝게도 자신에게는 운명을 따르는 특별한 힘이 없지만, 에이젤 에게는 그것이 존재하였으니까.
그리고 그 예상대로, 에이젤은 서
서히 정답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아무것도 모른 채, 정처없이 카라 코르니아를 헤맬 뿐인데도…….
정체불명의 위화감이 멀어지기는커 녕 점점 더 가까워져만 갔으니까.
그리고, 마침내 도달한 장소.
“……탑이네요.”
“응. 미로처럼 얽혀 있어서 찾기는 힘들었는데, 드디어 왔네.”
스텔라의 지하 도서관에서도 읽어 보았던 장소다. 비록 기록과는 조금 다른 생김새였으나 전체적인 특징이 매우 흡사하였다.
에이젤과 풀레임은 드높게 솟아오 른 탑을 정면에 두고, 서로 눈을 마 주하였다.
“……들어갈까?”
“조, 좋아요.”
긴장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겠지.
에이젤은 크게 숨을 들이쉰 다음, 탑의 정문을 향해 손을 가져다 대었 다. 이제 여기서 힘을 주고, 밀어내 기만 하면…….
“안녕?”
“어?”
“아? ”
……라고 생각했을 때, 이미 그녀 들은 탑 내부에 있었다.
,,뭐, 뭐야?,,
풀레임은 서둘러 주변을 둘러보았 다.
따뜻한 커피가 담긴 잔 세 개.
붉은 카페트와 붉은 커튼.
타닥타닥 타오르는 벽난로의 온기 가 실내를 따스하게 휘감았으며 유 리로 된 창문은 활짝 열려 시원한 바람이 솔솔 새어 들어왔다.
“뭘 그렇게 놀라?”
그리고 그 방 안에, 카일라가 있었
다. 모험가 복장은 벗어던진 채 우 아한 드레스를 입은 그녀는 공주님 처럼 걸어서 소녀들에게 다가왔다.
“우리 귀염둥이들, 모험에 지치지 는 않았니? 사실 나는 잔뜩 지쳤거 든. 잠깐 다과라도 즐길래?”
에이젤과 풀레임은 경계어린 눈으 로 그녀를 바라보며 뒤로 한 발자국 물러나, 지팡이를 꺼내 겨누었다.
“어머〜 우리 친했잖아. 그새 내가 미워진 거야?”
“……당신, 정체가 뭐죠?”
에이젤의 물음에 카일라는 방긋 웃 었다.
“글쎄. 나도 내 정체가 궁금해. 나 는 내 어린 시절의 기억이 없거든.”
“기억이 없다구요?”
“응. 단지, 어느 순간부터인가… 내 게 이런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 냈을 뿐이야.”
그녀는 다 상해 버린 사과 하나를 품에서 꺼낸 뒤 손바닥으로 쓰다듬 었다. 그러자 그것은 붉은기 감도는 싱싱한 사과가 되었다.
아삭!
그것을 한 입 베어문 카일라는 눈 을 감고서 몸을 부르르 떨었다.
“으으응〜! 맛있어어〜!”
“……그건 대체 무슨 마법인가요?”
“마법? 아냐, 이건 마법이 아니야.”
카일라는 자신이 되돌린 사과를 가 만히 바라보았다. 멍한 그 눈동자에 담긴 생각을 도저히 읽을 수가 없어 서 긴장감이 배가 되었다.
“글쎄, 응. 마법은 아닐 거야. 아마 도 사실 나도 잘은 모르겠어.”
“그렇…군요…….”
어디까지 믿어야 하는가.
어디까지 납득해야 하는가.
“그건 그렇고, 그만 좀 앉지 그래?
나는 너희한테 악감정이 없어. 정말 이야.”
에이젤과 풀레임은 눈을 마주쳤다.
어차피 여기까지 끌려온 이상 도망 칠 방법도 없다.
소녀들이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는 그 순간.
우웅!
“앗……!”
“윽…!”
어느 순간, 이미 그들은 의자에 착 석한 뒤였다.
“자아, 그럼 우리 이야기를 해볼
까? 사실 나는 ‘이야기를 해볼까’라 는 단어가 굉장히 어색해. 우리는 대체 무슨 이야기를 나눠야 하는 걸 까? 그런 이야기에 의미는 있는 걸 까?”
“으웅, 표정을 보니 이런 이야기가 재미없다는 것 정도는 확실히 알겠 네. 그럼 주제를 옮겨볼까? 너희가 나를 찾아온 이유에 대해서 말이 야.”
그 말에 에이젤의 눈동자가 크게 커졌다.
“짐작하고 있겠지만, 아마도 나는 ‘은세십일월의 신물’일 가능성이 상 당히 높아. 오랜 세월을 살아오며, 스스로에 대해 고찰한 결과 내놓은 해답이야.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도 전혀 알 지 못하다니. 아니, 애당초.
신물이…… 사람이었다니.
그것도 사람들 틈 속에 섞여서 살 아가는, 그런 평범한 사람이었다니.
에이젤은 눈앞의 저 존재에 대해 부정하고 싶었다. 자신의 상식이 송 두리째 개벽당하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결국.
“당신의 말이… 옳다고 생각해요.”
상식 외의 상황이 막상 현실에 닥 쳐오니, 납득하는 수밖에 없었다.
상식을 부정당한다는 건 굉장히 끔 찍하고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자신 의 지혜만을 믿는 고지식한 에이젤 이었기에 더욱 그럴지도 모르겠다.
“네가 나를 찾을 만한 이유가 무엇 이었을까. 사실 나는 너에 대해 그 다지 잘 알지는 못해. 다만…… 너 희들에게서 아주 친근하고 익숙한 기운이 느껴져서 내가 직접 찾아갔 어.”
“네? 잠깐…….”
“뭐, 뭐라고?”
놀란 건 에이젤 뿐만이 아니었다.
“언니, 방금 ‘너희들’이라고 했어?”
“자, 잘못 말한 거 아니야?”
“아니. 너에게도 비슷한 기운이 느 껴져. 내 우매한 지식으로는 도저히 무슨 느낌인지는 모르겠지만…… 어 쨌든 좋은 향기라고 생각해서 접근 한 거야. 왜? 뭔가 잘못됐니?”
”아니, 그런 건 아니야. 다만……
다만.
그 기운은, ‘주인공 에이젤’에게서
만 느껴져야 정상이란 말이다.
‘뭐가 어떻게 된 거지……?’
왜 자신에게서도 에이젤과 비슷한 기운이 느껴지는가. 풀레임은 그녀 의 말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 의미 모를 이야기는 됐 어요.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요.”
에이젤은 카일라의 눈을 똑바로 마 주하였다. 그녀의 눈동자는 은색의 맑은 옥구슬을 닮아, 아름다웠다.
“저에게 10년 전의 과거를 보여주 세요.”
그 단호한 말에는 어떤 힘과 의지 가 담겨 있었다. 그 어떤 수단과 방
법을 가리지 않고서, 반드시 아버지 의 진실을 파헤치겠다는 의ス1가.
카일라는 그런 에이젤을 똑바로 마 주하였다. 고작해야 몇 초뿐인 시간 이었으나, 정말 한참의 세월이 흘렀 다는 생각이 들 무렵.
“응. 좋아.”
그녀는 방긋 웃으며 대답했다.
^ユ 정도는 해줄 수 있어. 대 신…… 너희는 그 시간대로 가서 아 무것도 흐ト지 못해.”
자리에서 일어난 카일라는 기지개 를 펴며 말했다.
“명심해. 너희는 그저 ‘기록된 비
디오 테이프’를 구경하는 것뿐이라 고 생각해. 시간 여행 같은 거창한 행위는 나조차도 불가능하거든.”
“그런..
은세십일월의 신물조차 시간여행이 불가능할 줄이야.
“뭐, 가끔 나도 모르게 시간여행의 능력이 발동되기는 하는데, 나도 원 리를 모르겠고 그런 불완전한 능력 을 너희에게 사용하고 싶지는 않 아.”
“그런가요…….”
“아무튼, 그 시대의 사람들에게 간 섭하는 것도 불가능하고 역사에 끼
어드는 것도 불가능해. 정말로, 가서 지켜보는 것 외에는 할 수 없어.”
카일라는 굳이 그 문장을 몇 번이 나 강조하였다.
‘너는 과거를 보되,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마치…… 에이젤이 무슨 과거를 보 려는지 미리 아는 사람처럼 말이다.
“그래도, 정말로 갈 거니?”
상관없다.
그곳에서 무슨 진실이 기다리고 있 든, 이미 보기로 마음먹었으니까.
에이젤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
덕였고, 카일라는 쓰게 웃으며 말하 였다.
“좋아. 보내줄게, 10년 전의 세계 로. 가서 보고 와. 네가 그토록 믿 어왔던 모든 진실을.”
그 순간.
세상이 점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