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genius guitarist RAW novel - Chapter 108
생방송의 진주인공 (2)
나는 기억력이 꽤 좋은 편이다.
연예계나 음악계의 굵직굵직한 사건들은 거의 다 기억하고 있으니까.
대중가요에 기타 소리를 입히는 것을 업으로 삼았으니까.
근데 얘넨 진짜 모르겠다.
누구지?
다운 엔터가 하꼬 회사도 아니고.
이 정도 회사에 소속됐으면서 내 기억에 없을 정도라니.
“….”
시시각각 변화하는 남정네들의 얼굴색.
뒤에 있던 다섯이 파래지고, 나머지 다섯은 홍당무 같이 변했다.
얼굴이 꼭 신호등 사탕 같다.
“… 방금 뭐라 그랬어요?”
가장 선두에 서 있던 남정네 1이 나에게 말을 붙였다.
나는,
“연예인은 넷밖에 없다고 했는데…? 당신도 연예인이야?”
방금 한 말에 더욱 살을 붙여서 대답했다.
….
널찍한 연습실과 복도에, 정적이 들이닥쳤다.
붉은 얼굴은 더 붉게, 푸른 얼굴은 더 푸르게.
주먹이 날아올 것 같은 분위기다.
나는 페달 보드 가방을 꽉 쥐었다.
이게 보기보다 존나 무겁다.
양팔의 지근섬유 성능이 눈에 띄게 향상될 정도로 말이다.
사람 대가리를 내려치면 아마 한 방에 골로 보낼 수 있을 거다.
“너 … 너 반말 …”
“아~이 씁. 더듬지 말고 똑바로 좀 말해. 물 줘?”
“… 너 … 이…”
나는 발밑에 굴러다니던 물병을 집어 들어 내밀었다.
“이익… 이익…!”
대답 대신에, 익익 거리는 분노에 찬 숨소리가 돌아왔다.
“프흐흡!”
저 소리가 바보 같다고 느끼는 건 나뿐만이 아닌 모양이다.
뒤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송아린은 필사적으로 웃음을 참고 있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호재를 불렀다.
남의 뒷담이나 까는 겉멋만 잔뜩 든 녀석들을 자극하는 데 도움이 됐기 때문이다.
“야, 여기가 어디라고 멋대로 들어와? 네가 우리 회사 직원이야?”
머리칼이 푸르스름한 놈이 이익이익거리는 놈 대신 나섰다.
봐라,
바로 이렇게 반응을 보인다.
나는 이런 놈들을 잘 안다.
여자 앞에서 창피를 당하는 것이 이 세상에 둘도 없는 굴욕이라고 느끼는 놈들.
멋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는 놈들.
나는 기타 가방을 벽에 조심스럽게 기대어 놓았다.
“어디라고 들어오긴. 불렀으니 들어오지. 하나만 묻자. 내 뒷담은 대체 왜 까는 거냐?”
“… 뭐?”
“아니 내가 여기서 오줌을 쌌냐 아니면 니들 얼굴에 침이라도 뱉었냐. 그냥 좀 욕먹을 사람이나 욕하면 안 되냐?”
욕먹을 사람 인터넷에 뒤져보면 많잖아.
강력 범죄자 까려면 날밤 새워도 모자랄 텐데.
“하, 이 새끼 말장난하네. 너 시… 발.”
“어! 욕했다!”
송아린이 눈을 크게 뜨며 목소리를 높였다.
“….”
“연예인이 그러면 안 되지. 막 그렇게 욕하고 그러면 안 돼!”
“… 하, 시발.”
투둑 투둑.
왼손에 차고 있던 시계를 풀기 시작하는 파란 대가리.
뭐, 그런 거다.
저건, 싸우기 전의 마지막 시위 같은 거다.
나 좀 말려줘.
나 이렇게 화났어.
얼마나 추하기 그지없는가.
“아, 형. 형!”
“말리지 마 …”
“수재야 이리 와!”
“미쳤나봐 …”
내가 뭐 술 먹고 이 사람들한테 오줌이라도 쌌으면 이런 반응 보여도 충분히 이해했을 것이다.
근데 이놈들은 만난 적도 없는 나를, ‘내가 아는 사람’ 앞에서 모욕하고 있었다.
나는 더더욱 상대가 약오를만한 말을 필사적으로 머릿속에서 짜내었다.
“다시 보니까 난 네가 참 마음에 들어.”
“… 뭐?”
“난 원래 나보다 못생긴 애를 보면 마음이 편해지거든.”
“….”
비쥬얼로 먹고 사는 놈에게, 외모 욕을 한다.
인생 짬밥이 다르다.
걸어온 길이 다르다.
남을 빡치게 하는 ‘아이디어’ 자체가 다르다!
“이… 이새끼가 …!”
파란 머리의 분노가 머리끝까지 차오르는 타이밍에 맞춰,
털썩-
나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놔 봐! 놔 봐!”
같이 있던 다른 남정네들끼리 서로 밀치고 말리고 버둥거리고 아주 난리도 아니다.
나는 가방에서 기타와 공구를 꺼냈다.
시퍼런 빛을 뿜어대는 독일제 드라이버와 반짝반짝 빛나는 몽키 스패너.
원래 공구는 좋은 걸 써야 한다.
중국산 막 드라이버를 쓰다간 나사 머리가 야마 나버리기 일쑤니까.
이름 모를 남정네 열 명은, 흉기 아닌 흉기를 눈앞에 두고 순간 몸을 떨었다.
“헉…!”
달아올랐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싸해졌다.
“…”
이들은 과연 나를 어디까지 알까?
뒷담 하는 거 들어보니까 내 무대를 아예 안 본 것 같지는 않은데.
“ … 야.”
“왜?”
“내려놔….”
“왜?”
말투가 침착해졌다.
분노 조절 기능이 그새 돌아왔나 보다.
머릿수가 저렇게 많은데 깡다구가 없네.
이래서 요즘 것들이란.
에잉 쯧쯧.
“저기 … 공구는 왜 …”
제일 멀찍이서 몸을 숨기고 있던 내 또래 남자애가 묻는다.
“왜 꺼냈냐고?”
“아 … 네.”
나는 기타 헤드에 튜너를 끼웠다.
그리고 곧바로, 12 프렛을 잡고 줄을 튕겼다.
사실 기타란 게 개방 현만 음을 맞춘다고 제대로 튜닝이 되는 게 아니다.
브릿지 쪽에 있는 새들 위치를 조정해서 12프렛의 음도 맞춰야 한다.
제대로 안 맞추면 미묘하게 불협화음이 나니까 필수다.
“… 일.”
“네?”
“일한다고. 입 좀 다물어. 튜닝 틀어지니까.”
나는 들러붙은 철가루를 털어내려 드라이버를 힘껏 휘둘렀다.
“으아아아악!”
무리 뒤에 있던 세 명이 소스라치며 도망갔다.
의리 진짜 존나 없네.
“…”
할말이 남은 건지, 홍당무 다섯이 문 앞에서 묵묵히 나를 노려본다.
시비를 걸자니 공구가 무섭고, 그렇다고 자존심 상하게 도망가기는 싫고.
척 봐도 척이다.
나는 연습실의 한구석에서 정밀 튜닝을 시작했다.
정말 미묘하기 그지없는 공기가, 약 1분 동안 지속되었다.
답답한 공기를 깬 것은 이미 귀에 익어버린 중년 남성의 목소리였다.
“야이~ 너 뭐 하고 있어?”
박작곡가였다.
그리고 …
“어, 수재씨 여기 있었네요?”
박부장도 같이 왔다.
“…”
“…”
“안녕하십니까!”
세 명의 동료를 잃은 일곱 청년은, 다 같이 소리를 지르며 허리를 숙였다.
나는 수염을 만지작거리던 박작곡가와 박부장을 향해 꾸벅, 묵례를 했다.
“아, 그래요. 무슨 얘기하고 있었어요?”
“아, 아무것도 아ㄴ…”
“딱 봐도 그림 나오지 않습니까?”
“예?”
나는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는 시늉을 했다.
“제가 여기 올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그냥 친구가 들리자니까 들린 거죠.”
“아 …”
“기타 꺼내서 그 … 세팅도 좀 하고요.”
헤드 머신을 스패너로 꽉 조인다.
가방에 넣고 다니다 보면 이것도 은근 잘 풀린다.
“… 세팅은 다 했어요?”
“예. 다 했는데 아까부터 못 나가고 있네요.”
“… 왜요?”
“요즘 세상 무서워서 살겠습니까? 아주 그냥 열 명… 지금은 일곱이서 문을 틀어막고 있는데 나갈 수가 있어야죠. 무서워요 아주.”
“….”
“….”
정적이 흘렀다.
박부장은 후우, 크게 한숨을 쉬더니.
“… 상황이 어떻게 된 건지… 대충 알겠네요.”
얼굴이 달아올랐다.
“아 ….”
“…”
“수재씨는 내가 초대해서 온 거예요. 이번에 방송 좀 같이 나가달라고.”
“…”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를 숙일 뿐인 남정네 일곱.
분노 조절 장애는 이제 이곳에 없었다.
모두가, 분노 조절을 잘하게 되었다.
팍 인상을 찌푸린 중년 남성 둘은, 일곱의 기생오라비들을 압도했다.
“아니 … 뭔 일이야 대체. 아직 얘기 진행도 안 했는데.”
박작곡가가 길을 막고 있는 일곱 명을 스윽 훑었다.
저들중에 눈을 똑바로 마주칠 수 있는 자는 없었다.
“….”
“….”
“야, 이참에 대답 좀 듣자. 너 그 이번에 인기뮤직 서는 거 아이리즈는 확정됐고 … 그리고 …”
박작곡가의 시선이, 포 데이지 멤버들에게 향했다.
“스케쥴 괜찮으면 다른 애들도 부탁하려고 했거든?”
“….”
포데이지 멤버 전원의 시선이, 아주 말똥말똥한 시선이,
나에게 향했다.
“… 포데이지요?”
“어. 한 곡만 해주면 되는데. ‘빠져버린’이라고 들어 봤어?”
“들어봤습니다.”
“아~ 잘됐네. 그 곡도 내 거야.”
….
문어발에다가 빨판도 개 넓네.
여기 직속 작곡가도 아닐 텐데.
마음대로 건물이랑 스튜디오 들락거릴 수도 있고.
옆에 있으면 감이 잘 안 잡히는데, 가끔가다가 진짜 대단한 사람처럼 느껴진다.
사실 대단한 사람 맞다.
“그리고 시간 더 되면 얘네들도 가능하냐?”
“이 사람들 건 안 하죠.”
“그렇지? 사실 세 곡은 좀 무리긴 해. 나도 시간 모자라고.”
“맞아요. 좀 무리죠.”
“맞아 맞아.”
이야기는,
딱히 어디 회의실 같은 데에 갈 필요도 없이 척척 진행되었다.
“그럼 … 인기뮤직은 서는 걸로 결정된 겁니다?”
“옙.”
“그 … 수재씨도 카메라 잡힐 테니까 오셔서 화장도 하시고 그러셔야 해요. 그리고 … 어제 말씀드린 거 좋은 쪽으로 생각해 주시면 감사하고요.”
“하하하…”
“제가 위에 따로 더 말해 뒀어요.”
비율 좀 올려주고 불리한 항목 수정 좀 해주면 바로 갈 텐데.
성의는 말이 아니라 조건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자, 잠깐만요. 기타 … 라니, 이 사람이랑 같이 무대에 선다고요?”
“어. 인기 뮤직 나가는 애들 어디까지 케어 가능한지 물어본 거야 방금. 트랙 재조정해놔야 하니까.”
“….”
“너흰 안 된대.”
….
나는 흘러가는 상황을 대충 파악했다.
인기 뮤직에 솔로 기타리스트가 서기는 힘들다.
박부장이 나에게 제안한 것은 ‘라이브 세션’
그냥 그림자 속에서 묵묵히 기타를 치는 세션이 아니라, ‘눈에 띄는’ 라이브 세션.
“아 …”
파란 머리 괴상한 성격의 청년이, 멍한 눈빛으로 나와 박부장을 번갈아 가면서 쳐다본다.
“… 관련 부서로 상황 전달해 놓을게요. 오늘 일은 나중에 회의에서 …. ”
박부장은 말을 잇다가 짜증이 덮쳐 왔는지 손을 크게 한번 휘적였다.
이름 모를 남정네 일곱은 꾸벅, 고개를 숙인 뒤 천천히 흩어졌다.
파란 대가리는 끝까지,
나에 대한 적개심을 지우지 못한 모양이었다.
‘기타가 뭘 하겠어…’
소리를 내지 않은 중얼거림.
내 눈은, 저 문장을,
똑똑히 감지했다.
“민서양, 문자 고마워요.”
“ … 아닙니다!”
“수재씨, 일요일 아침 일찍 와주세요. 준비할 게 많아서…”
“걱정하지 마십시오!”
“커피 뽑아 마시고 천천히 둘러보다 들어가세요. 문제 생기면 제 이름 대시고.”
“….”
박부장은, 한 손에 캔커피를 쥔 채 뚜벅뚜벅,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갔다.
나는 휙,
하민서에게 고개를 돌렸다.
“… 네가 불렀어?”
“응.”
“와우.”
“왜?”
“놀랍잖아.”
“그래?”
“…”
“나 가볼게. 얘기 잘 나눠.”
참 … 되게.
이상하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어떤 심경 변화가 있었는지, 기억을 훔쳐보고 싶을 정도다.
싸움이 났을 때 어른을 부른다는 선택지가 지극히 10대다웠지만, 동시에 현명했다.
“우리도 올라가자. 곡 맞춰 봐야 돼. 아린이는 멤버들 전부 스튜디오로 부르고.”
“네!”
뭐, 곡 맞추는 작업이야 그리 어렵지 않았다.
아이리즈의 ‘마음을 주고 싶어’는 평소대로 치면 된다.
포 데이지의 곡은 …
“스읍 … 드라이브가 좀 약한데?”
“이게 게인 최대에요. 더 올리면 메탈 돼요.”
“아니야, 아니야. 그래도 좀.”
“아, 혹시 중저음역이 비어서….”
“아~!”
“이게 펜더 스택 픽업이라 한계가 있긴 한데 …”
“좀 더 두꺼워야 되는데 …”
아주 잠깐, 난관에 부딪혔다.
뭐 난관이라고 해봤자 나랑 박 작곡가만의 난관이다.
포데이지와 아이리즈 멤버들은,
그저 다소곳이 의자에 앉아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표정을 띄우고 있을 뿐이었다.
“아!”
난관은 곧바로 해소됐다.
“기타 한 대 더 쓰죠.”
“… 어?”
“어?”
“쌍기타?”
“쌍기타!?”
멍때리고 있던 두 그룹 멤버들 얼굴에 호기심이 감돌았다.
쌍기타.
기타에 대해 잘 모르는 이들도 곧바로 흥미가 쏠릴 만한 단어였다.
자주 보여줄 만한 기술은 아니지만… 뭐, 괜찮겠지.
“오~ 좋다. 레스폴쓰면 되겠네. 소리 두껍잖아.”
“음 …”
나는 ‘쌍기타’를 입에 담으면서도, 스멀스멀 느껴지는 아쉬움을 감출 수 없었다.
음악적 아쉬움이 아니다.
내 ‘쌍기타’의 이미지가 희석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뭔가 … 더.
더더욱.
강렬한 이미지가 필요하다.
‘기타가 뭘 하겠어’라는 말이, 더 이상 입에 머금어지지 않도록.
“… 포데이지 그룹의 테마가 뭐였죠?”
“응? ‘정열’ 아닌가?”
“맞아요!”
박작곡가의 눈동자가, 서서히 떨리기 시작했다.
“정열.”
“…”
“열(熱).”
“…”
“열은 … ‘불’에서 나온다.”
그리고 이내, 동공지진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