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genius guitarist RAW novel - Chapter 168
172화. 정상에 설 기타리스트를 위하여 (5)
계약은 쫓기듯이 후다닥 진행됐다.
일이 이렇게 술술 풀릴 줄은 몰랐는데.
아무래도 홍팀장님의 공덕이 매우 큰 거 같다.
난장판 속의 여포.
나는 그를 그렇게 부르고 싶었다.
“[나 참….]”
“두 회사와 동시에 계약한 사람은 당신이 세계최초일 겁니다. ”
“엣헴.”
“그것도 10대 때요!”
“크으!”
기분이 좋다.
기분이 너무 좋다.
펜더와 깁슨의 엔도서를 동시에 할 수가 있다니.
이게 정녕 꿈이 아니란 말인가?
두 회사 모두에게 헌정 기타를 받은 기타리스트는 극소수다.
어부지리긴 하지만, 나도 그런 극소수의 기타리스트에 이제부터 포함이 되는 것이다!
“하아… 본론으로 들어가죠.”
계약서 작성을 마치자, 붉으락푸르락 얼굴에 열을 올리던 아재들이 이성을 되찾았다.
이미 지나간 일은 후회해 봤자 소용이 없다.
벌어진 것은 벌어진 것.
해야 할 것은 해야 할 것.
나는, 헌정 기타 제작을 위한 스펙시트를 작성해 나갔다.
깁슨에는 따로 요구할 게 별로 없었다.
색깔만 좀 잘 칠해주길 바랄 뿐이다.
유이기타 소리 듣는 건 이제 질렸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펜더는 …
“[정말 이걸로 되겠나?]”
“예.”
“[희귀 목재 갖고 싶어서 안달이 난 사람도 많은데? 브라질리언 로즈우드라던가.]”
“[저는 이거면 돼요.]”
“[흐음….]”
지금 쓰는 ‘디럭스’와 같은 사양에 목재등급만 업그레이드.
픽업은 그냥 상용 픽업으로.
내 요구는 대략 이랬다.
“[자네 기타 픽업 … 그 양반 작품이지? 한국으로 돌아간다더니, 자리를 잘 잡았나 보군.]”
“[어떻게 까보지도 않고 바로 압니까?]”
“[우리는 남이지만 남이 아니거든. 형제가 만든 작품을 못 알아볼 리 없지.]”
“….”
난 내 기타에 만족한다.
춘천에 틀어박힌 은둔고수의 손길에 만족한다.
그러므로 지금 쓰고 있는 하드웨어는 유지할 것이다.
“[목재, 잘 가공해서 보내주지.]”
“…!”
들켰다!
기타 보내주면 하드웨어 적출한 다음에 나무만 홀랑 갖다 쓸 생각이었는데.
생각을 전부 읽혀버렸다.
“나참, 깁슨은 따로 커스텀 안 했어요?”
“깁슨은 그냥 썼어요. 그냥 써도 좋더라구요.”
“하하하! 거봐! 우리 기타는 업그레이드할 필요조차 없다니까!”
응 아니야.
“탑 좀 이상한 거 막 갖다 쓰지 말라고 해주세요. 넥센터도 잘 맞춰 주시고요.”
“… 네.”
나는 깁슨을 혼냈다.
돈은 엄청나게 받아 처먹으면서 마감은 펜더만큼도 안 나오는 애증의 깁슨.
반성해라 깁슨.
소리 좋아서 참아준다.
“우와 … 한 번에 기타를 세 대씩이나….”
최주임이 감탄하듯 중얼거렸다. 그리고,
“수재씨 이번에 락 페스티벌 나가면 기타 광풍이 불겠는데요~”
존나 이상한 타이밍에 충격적인 발언을 내뱉었다.
“… 어?”
“어?”
“…응?”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락 페스티벌 나가고 싶어서 환장을 하고 있었지 참.
확인하려고 전화 오지게 걸었는데 받지도 않고.
“아, 아아아아! 죄송해요! 말씀을 못 드렸어요!”
최주임이 눈을 땡그랗게 뜨며 어버버 말을 더듬었다.
“락 페스티벌 ….”
“네! 인천 락 페스티벌 일정을 잡아 두었습니다! 스케쥴 괜찮으신가요?”
“당연히 나가야죠. 언제예요?”
“이틀 차입니다!”
그렇구나.
이틀 차구나.
첫날도 중요하지만, 메인은 역시 이틀 차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올해에는 추석 연휴랑 일정이 겹쳐서 인파가 엄청 몰릴 거 같아요!”
시기적으로도 큰 이득이었다.
락이 시들해졌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인천 펜타포트의 위상은 아직 죽지 않았다.
꿈에 그리던 무대가 코앞으로 불쑥 찾아왔다!
“앞으로 수재씨 덕에 기타 수요가 어엄청 늘어나지 않을까요?”
“….”
“막 펜더랑 깁슨이랑 디어 기타랑 다 동나는 거죠!”
그럴 일은 없어요.
솔직히 입문용으로 펜더, 깁슨을 사는 건 어렵다.
존나 비싸니까.
하지만,
“… [이미 한국에서 ‘피에스타 레드 색상’ 스콰이어 제품 재고가 부족하다고 하더군.]”
“에피폰에서도 체리 썬버스트 색상이 잘 나가더군요.”
입문급이나 중 저가형은 다르다.
직장인 기준으로 용돈을 꼬불치고, 비상금을 동원해서 닿을만한 가격대의 기타는 다르다.
뭔가,
뭔가 ….
설마설마 하긴 했는데.
‘나’는 이미, 기타업계에 꽤나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턱을 괴었다.
그리고서,
“한 가지 제안이 있는데요.”
“….”
“….”
예전부터 하던 생각을 허심탄회하게 말했다.
“허….”
“[욕심이 있으면서도, 욕심만 있는 게 아니군.]”
“….”
“뭐랄까, 조 새트리아니가 젊었을 때는 아마 수재씨 같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냥 한 말인데.
세 아재는, 나를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적극적으로 어필해 보겠습니다.”
“[나도.]”
“저희도 빠질 수 없죠.”
“감사합니다!”
세 아재는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언제 싸웠냐는 듯, 연락처를 주고받으며 헤어졌다.
“….”
계약이 끝났다.
나를 차지하려던 싸움이 폭풍같이 지나갔다.
아재들은 그 누구도 승리하지 않았다.
진정한 승자는, 바로 나였다.
“우리도 일어날까요?”
“수고하셨습니다아….”
우리는 카페에서 빠져나왔다.
“수재 잘 됐다. 히힣.”
“고마워 소이야.”
소이는 해가 거의 다 저물 때까지 내 옆을 지켜주었다.
뭐랄까…
소이 덕에 일이 되게 잘 풀렸다.
덕을 되게 많이 봤다.
그래서 더더욱, 받고만 있을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뭘 해줘야 할지….
“아, 수재씨!”
차로 향하던 최주임이 휙, 뒤를 돌았다.
“네?”
“락 페스티벌 말이에요. 이번에도 인스트루멘탈로 진행할 생각이신가요?”
“다른 방법이 있나요?”
“그… MR도 좋긴 한데, 회사에서 한번 말이 나왔거든요. 대형 행사 같은 데에서는 필요하시면 백밴드 지원해 주신다고…”
“…오!”
설마.
진짜?
백밴드를 지원해 준다고?
“와우.”
“아무래도 ‘락 페스티벌’이니까 MR을 쓰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하는 의견이 있어서….”
낫지.
확실히 낫지.
인스트루멘탈이 깔끔함이나 박자 같은 면에선 좋긴 하지만, 아무래도 ‘생동감’이라는 요소에서 백밴드에 밀릴 수밖에 없다.
“백밴드라….”
아예 하우스 밴드를 통째로 고용하거나, 한 명 한 명 따로 세션을 모집하거나.
합주 도중에 마찰이라도 생기면 헬게이트가 열리긴 하지만 …
‘생동감’ 넘치는 소리를 위해서라면 그런 악조건은 충분히 감내할만했다.
“금전적 대가 없이 수재씨랑 같이 서고 싶다는 제안이 굉장히 많이 왔더라구요!”
“절대 안 돼요.”
“아, 아니에요. 저희도 그럴 생각은 ….”
돈은 줘야 한다.
‘무료로 해드리겠습니다’라고 들이밀어도 돈은 꼭 줘야 한다.
대부분의 밴드들이 못 서서 안달인 무대긴 하지만, 그래도 사람 마음이라는 건 알 수 없으니까 말이다.
“….”
“….”
나는 소이를 지긋이 쳐다보았다.
동시에, 머릿속에 갑작스레 ‘풍경’이 그려졌다.
내가 소이에게 해줄 수 있는 건 별로 많지 않다.
뭘 어떻게 해야 도움을 줄 수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다만 이번에는,
“소이야.”
“응?”
“우리 이번에 밴드 해볼래?”
내가 해줄 게 아예 없어 보이지는 않았다.
“밴… 드?”
“응. 락페 같이 가자.”
***
풀세팅하고 번화가를 걸으면 언제나 주목받는 외모.
그 외모에 더해 좋은 목소리.
그 목소리에 추가로 나름 외적으로 괜찮은 성격.
주변에서 들려오는 ‘하민서’에 대한 평가는 그랬다.
그리고 하민서는, 그게 딱히 과장됐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애초에 예쁘면 예쁜 줄 안다.
애매하게 예쁜 게 아니라, 확 예쁘면 더더욱 잘 안다.
자신은 예쁘다.
자신은 목소리도 좋다.
노래도 잘 부른다.
기타도 잘 친다!
근거 없는 자신감이 아닌, 근거 있는 자신감.
과평가되지 않은, 실체 있는 자신감.
그리고 그 자신감은, 중학교 2학년 겨울방학 시절 정점을 찍었다.
유명 연예 기획사로부터 연습생 제의를 받은 것이다!
주변에서 부러움을 사는 것은 물론이요, 인기도 더더욱 많아졌다.
시기 어린 시선이 없지는 않았지만, 만만하게 보일만 한 짓은 절대 하지 않았기에 그 누구도 건드리는 일은 없었다.
“….”
다만 결국, 하늘을 찌르던 자신감은 사그라들었다.
그리고 그 ‘자신감’이, 촛불에 늘어진 개미의 그림자라는 것도 깨달아버렸다.
무너져내렸다.
동시에,
“… 김수재 축하해.”
“어 그래 고맙다.”
안정이 찾아왔다.
비대하던 자신은 작아졌지만, 단단해졌다.
“이번에도 뭐 한대?”
“민서야~ 둘이 무슨 일 있어?”
“아,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뭐, 그렇다고는 해도 사람 성격이라는 게 단박에 180도 변할 수는 없었다.
눈치 없다는 소리를 평소에 많이 들었었는데.
방금도 좀 눈치가 없었다.
“아 뭔데에~”
“김수재 뭔데~”
“아까부터 히죽거리는데?”
“그러게?”
“근데 평소에도 히죽거리잖아.”
“그러게!?”
락 페스티벌 나간다더라.
뿐만 아니라, 엔도서 계약까지 했다더라.
“….”
별로 질투심 같은 건 느껴지지 않았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저 얼굴을 볼 때마다 가슴이 울렁거리곤 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흠 ….”
“왜, 왜?”
“아니 그냥. 부럽냐?”
“아니거든!”
아니야.
안 그래.
안 부럽…
사실 부럽긴 한데.
안 부러워!
하민서는 후다닥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가슴이 울렁거리지는 않았다.
근데, 심장이 울렁거렸다.
기 분나쁘게 울렁거리는 게 아닌, 간드러지게 울렁거렸다.
자신이 드디어 미쳐버린 건가?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말이 되는 건가?
‘나한테 욕한 남자는 네가 처음이야.’ 같은 드라마같이 작위적인 상황이 일어날 수가 있는 거였나!?
스스로 한 망상이지만, 스스로 기분이 나빴다.
“민서민서.”
“응?”
단짝이 말을 걸어왔다.
“김수재 진짜 무슨 일 있는 거 맞지?”
“응? 왜?”
그걸 왜 자신한테 물어보는 걸까?
“아니 그냥… 어제 끝나자마자 막 연습실로 뛰어가길래.”
“연습은 평소에도 하지 않아?”
“그건 그런데 ….”
하민서는 고개를 갸웃했다.
곧 있으면 락 페스티벌이기도 하고, 연습은 연습대로 매일 하는 거고.
그냥 학교 시설이 괜찮으니까 남는 게 아닐까? 싶었지만 … .
“그게… 혼자 연습하는 게 아니라 막 쟤들끼리 밴드? 하던데?”
“… 엥?”
아니었다.
의문은 그게 아니었다.
“배, 밴드?”
“응. 버스킹 준비하는 건가?”
“음….”
….
잘 모르겠다.
밴드라….
실음 하는 애들이 많으니까 밴드를 만드는 건 딱히 이상하지 않은데.
“모르겠어. 근데 재밌겠다.”
“어디서 하는지 물어볼까?”
“그럴까?”
하민서는 계획을 세웠다.
이따가 현장을 덮치기로.
무슨 짓을 하는지 너무나 궁금하기에, 직접 맨눈으로 보기로.
방과 후가 찾아왔다.
동시에,
우다다다다닥-!
김수재, 백소이, 윤수빈, 이도현이 복도를 질주했다.
하민서는 재빨리 그들의 뒤를 몰래 쫓았다.
“달리기 엄청 빠르네….”
“그러게….”
마침내 도착한 별관 구석의 연습실에서는,
“와 이걸 틀린다고?”
“베이스 뭐 하는 거야악!”
“역시 베이스가 문제였어.”
“베이스가 틀리니까 박자가 어긋나는 거지!”
“나, 나 아니야아아아아아악!”
이도현의 억울함 섞인 비명이 들려오고 있었다.
“밴드 맞는 거 같은데?”
“그러게?”
하민서는 살짝, 미닫이문을 열었다.
그리고 눈앞에 비치는 풍경에 그만…
“헉!”
숨소리를 우렁차게 내고 말았다.
“누구임?
“뭐임?”
“무슨 일임?”
“우리를 본 이상 살려둘 수는 없겠어.”
학교에서 가장 구석지고 낡은 연습실.
거미줄이 제자리를 야무지게 잡은 연습실.
그곳에는,
기타를 도합 ‘6대’ 쓰는,
괴상한 밴드가 존재했다.
“…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