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genius guitarist RAW novel - Chapter 178
183화. 필승과 필승의 페스티벌 (7)
나는 손에 느껴지는 감각을 필사적으로 부정했다.
하지만, 이내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좆된 거 같다.
남의 바지를 아주 야무지게 찢어먹어 버렸다.
아니 근데 나라고 해서 이렇게 쉽게 찢어질 줄 알았겠어?
힘을 그리 세게 주지도 않았는데,
-쫘좌작!
여봐. 잘 찢어지잖아.
그러니까 이건 사고다.
사고다!
“….”
“…!”
눈이 맞았다.
썬글라스를 끼고 있어서 진짜 맞은 건지 아닌지는 확신이 잘 안 가긴 하는데,
어쨌든 맞았다.
“그, 그….”
“Ho….”
“호?”
“Hooooly shiiiiiiiiiiit!”
영미권에서 오랜 세월을 보냈다는 것을 증명하듯, 잉베이 왕팬의 영어발음은 아주 찰지기 그지없었다.
그리고 그 찰진 발음에는 아주 생생한 ‘절망감’이 스며들어 있었다.
“[내, 내 바지가아아아아! 갸아아아아악!]”
허리부터 허벅지까지.
옆에서 보면 차이나 드레스인 줄 알겠다.
정말 끔찍하기 그지없는 광경이 안구를 강타했다.
눈알을 뽑아버리고 싶다!
“[뭐해!]”
“예?”
“[빨리 놔! 미친 새끼야!]”
잉베이 왕팬이 얼굴 근육을 씰룩씰룩 움직이며 어깨를 떤다.
나는 그를 멍하니 바라보며, 격정적인 감정에 휩싸이며, 손을 놓으려 했다.
다만.
“Nop.”
결국 놓지 않았다.
“Wh… what?”
“[여긴 내 자리야.]”
원래 남자는 기세라는 말이 있잖아.
지금까지 이 말을 몇 번이나 되뇌었는지 모르겠는데,
기세를 잃으면 그게 바로 패배란 거 아니야.
나는 질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바지를 찢은 건 찢은 거고.
수만 명의 관객들 앞에서 레자 차이나 드레스를 세계 최초로 탄생시킨 건 좀 미안하긴 한데!
니…
“니가 먼저 잘못했잖아악!”
쫘아아아악-!
나는 남의 바지를 찢어먹었다는 잘못을 인정하지 않은 채, 더더욱 바지를 찢었다.
“끄아아아아악!”
잉베이 왕팬의 비명이,
저물어가는 태양이 비추는 스테이지 위에 울려 퍼졌다.
“꺄아아아아아!”
“김수재 제정신이야!?”
친구들의 비명 섞인 목소리가 귀에 날아와 박힌다.
다만,
“이거야아아아아악!”
“역시 같은 하늘 아래에 두 레자바지는 없는 거야!”
“레자바지는 이제 단 하나만 있는 거야!”
팬들의 환호성이 더더욱 커다랬기에, 이내 곧바로 묻혀버렸다.
“[이것도 나름 락킹하지 않아?]”
“….”
여튼 뭐.
괜찮네.
가위질이라도 한 듯 흉하지 않게 잘 찢어졌다.
어디 패션쇼 같은데 나올 것 같이 생겼다!
“[넌 참 대단한 놈이다 …. 이렇게까지 나를 열 받게 하다니….]”
짭베이는 이를 벅벅 갈았다.
하지만 나는 태연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Fuuuuuuck!”
그는 비명을 지르며 앰프의 성에서 뛰어 내려갔다.
처량해 보이기도, 불쌍해 보이기도 한 뒷모습이 시야의 한구석을 메웠다.
양심의 가책?
느껴지긴 하지.
하지만 승리를 위해서라면,
관객들을 열광시키기 위해서라면!
중년 아재의 인조가죽 바지 정도야 값싼 대가 아니겠는가?
그냥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나는 앰프의 성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곧바로, 빨간 기타를 머리 위로 힘차게 들어 올렸다.
“외적을 물리쳤다아아아아!”
“우와아아아아아아아아!”
“빨기좌가 무대를 지켜냈어!”
바지를 반으로 갈라 죽이긴 했지만!
어쨌든 물리치긴 했다!
“다음 곡은 겨울 숲의 노래입니다!”
– 가즈아아아아아!
– 명곡 가자아아아!
관객들의 환호성은 더더더욱 거세졌다.
나는 얼빠진 표정을 짓고 있던 친구들을 향해 휙, 고개를 돌렸다.
“윤수빈!”
“어… 어어!”
칫칫칫-!
윤수빈은 몸이 기억한 대로, 노련한 솜씨로 하이햇을 두들겼다.
그리고 이내,
두우우웅-!
도현이가 저음을 깔며 앞으로 나옴과 동시에, 우리의 두 번째 곡이 시작됐다.
– 와아아아아아아!
또다시 밀어닥치는 함성.
방금 전에 쳤던 ‘블루 퍼플 바’와 똑같이 관객들에 의해 왜곡되어버리는 곡조.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
키잉-!
스콰이어 아닌 스콰이어 기타의 소리.
“…!”
나는 순간 헛숨을 삼켰다.
온몸에 전율이 흘렀기 때문이었다.
불과 몇 마디 연주한 것뿐인데, 치자마자 이 기타의 성향을 아주 잘 알겠다.
비록 넥이 스콰이어긴 하지만, 이 기타를 만든 한 사람의 ‘의지’가 진득하게 느껴진다.
울린다.
공명한다.
그냥 건조기에 때려넣고 대충대충 말린 나무가 아니라, 제대로 바싹 마른 나무.
평생 기타 만들기에 매진한 장인이, 직접 감아 만든 픽업.
겉모습은 50년대 스타일이지만, 그다지 잡음이 심하지는 않다.
완전히 옛 방식을 고수하지 않았다.
내 연주스타일처럼 말이다.
이것은, 정말로 ‘나’만을 위해 만들어졌다.
부품의 부품 하나하나의 품질은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좋았다.
비슷하게 생겼음에도, 비슷하게 낡고 녹이 슬었음에도.
전혀 달랐다.
치이잉-!
머릿속에는 여느 때와는 다른 풍경이 그려졌다.
‘겨울 숲의 노래’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매서운 눈보라가 부는 숲의 풍경이 아닌,
“….”
시끌벅적한 겨울 숲.
한파가 몰아닥쳤지만, ‘자연’에 대항하려 과학의 힘과 자본을 있는 힘껏 끌어온 아재들의 풍경.
아재들이 … 불을 피우고 있었다.
카니발, 쏘렌토, 싼타페로 무장한 차박꾼들이 숲을 점령해버렸다!
– 끼에에에에에엑!
– 너무 좋아!
관객들은 조용히 감상하지 않았다.
멜로디를 느끼며 내가 몸을 흔들면 같이 흔들고,
하민서와 소이가 아르페지오 멜로디로 치고 나오면 그에 맞춰서 또 함성을 지르고.
오케스트라가 무대 위에 차려진 것을 제삼자의 입장에서 ‘감상’하는 것이라면,
락 페스티벌은 뮤지션과 관객, 그리고 음악이 한데 뭉치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그렇다.
모든 것은, 같이 어우러졌다.
– 가즈아아아아아!
곡조가 후반부에 달하며 조금씩 격해지기 시작했다.
머릿속에 그려지는 풍경에는, 대자연에 대한 두려움이 눈곱만치도 없었다.
그저 옹기종기 모닥불 근처에 모여 앉아 이야기를 풀고, 술 한잔을 나누며, 밤을 기다리는 사람들만이 있었다.
거친 캠핑.
자연에 도전하는 캠핑.
두렵지 않은 따뜻함.
그것이, 곡이 되었다.
키이이잉-!
하지만,
“…!”
“오오오!”
“이번엔 또 뭐야!?”
방해꾼이 생겼다.
눈보라가 거세졌다.
나는 급히 고개를 돌려 진원지를 확인했다.
“도, 돌아왔다!”
“외적이 다시 침입했다아아아악!”
눈에 비치는 것은, 아까보다도 더더욱, 더더더더욱 반딱반딱거리는,
그야말로 불광과 싸구려의 경계선에 아슬아슬하게 걸친 듯 보이는….
‘레자바지’였다.
“[내가 이대로 물러설 줄 알았나?]”
“이럴 수가… 대체… 대체 ….”
몇 벌을 쳐갖고 온 거야?
이게 말이 되는 건가!?
나에게 바지를 찢긴 잉베이 왕팬은, 더더욱 강력한 레자바지로 무장한 채 다시금 무대 위에 섰다.
카아아앙-!
하긴 뭐.
한 번 난입하기로 먹은 적군이, 쉽사리 퇴각할 리가 없지 않은가.
저 멀리 미국에서 ‘기타빵’을 위해 한국까지 날아온 사람이 얌전히 물러날 리가 없지 않은가.
나는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서,
“[준비됐나?]”
누런 이를 내보이며 양껏 웃음을 짓는, 오랑캐의 침입에 대비했다.
***
무서운 인상의 사내에게 있어서 ‘락 페스티벌’이란, 일종의 관습이었다.
딱 한 번, 비행기 결항 때문에 귀국이 늦어졌던 때를 빼고서는 서울이든 인천이든 부산이든 매년 참가했기에 그 표현이 절대 부족하지는 않았다.
애들 엄마에게 들키지 않도록 몰래 집에서 빠져나와, 등산복을 챙긴 후, 사람들 속에 섞이는 것.
소소하지만 작은 일탈.
그리고 확실하게 보장되는 재미.
매년 보아왔으니 눈에 익었고, 어떻게 무대가 흘러가는지도 대충 짐작이 갔다.
‘알고 있는 맛’이라도, 맛이 없는 것은 절대 아니었다.
하지만 올해.
그리고 오늘,
그리고 ‘지금’.
사내가 알고 있던 맛은, 커브를 틀어 ‘모르는 맛’으로 변해버렸다.
눈앞에 비치는 광경은 대체 무엇인가?
반딱반딱한 레자바지를 입은 남자 둘이서 기타를 들고 대체 무슨 짓을 벌이고 있는가?
“이게 대체 ….”
수많은 스테이지를 보아왔다.
두 기타리스트가, 라이브 잼을 하며 연주를 과시하는 상황은 흔하다.
하지만 이런 무대는 처음이다.
이것은,
‘곡 하나’를 두고 싸우는,
‘의미 없는 잼’과 테크닉의 대결이 아닌,
훨씬 더 고차원적인 싸움.
“저게 바로 빨기좌예요.”
옆에 있던 비슷한 나이대의 남성이 그리 말했다.
“그렇군요.”
“볼 때마다 상상을 초월하죠.”
정말로 그랬다.
상상을 초월했다.
1분 채 남지 않은 멜로디를 두고, 두 사람은 주도권을 가져가기 위해 열심히 피크를 튕겨댔다.
서로 다른 성향의 연주기법이 싸우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카카카카카카캉-!
그 ‘기술’이 터져 나왔다.
“우와아아아아아아아악!”
“빨모닉스다! 빨모닉스를 썼어!”
“저거에는 못 당하지!”
빨기좌의 비장의 기술.
쉽게 남들 앞에서 보여주지 않는 기술.
그리고, 앞으로 일렉기타의 역사에 한 획을 그을지도 모르는 기술.
빨모닉스.
무서운 인상의 사내는, 그저 입을 쩌억 벌렸다.
눈을 떼기가 힘든, 눈을 깜빡이기도 아까운 광경이었다.
“대단하군 ….”
빨기좌 팀과 관객들이 만들어내는 ‘따뜻함’과, 그것을 모조리 쓸어버리려고 하는 ‘차가움’의 만남.
두 공기가, 크게 부딪혔다.
1대 다수라는 상황이기는 했지만, 두 진영 간의 기세는 비슷해 보였다.
무서운 인상의 사내는 무대의 뒤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곧바로 이를 악문 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많이 컸구나….”
이렇게 커다란 무대 위에서, 전혀 위축되는 기색이 없다니.
정말로 대견했다.
“이게 바로 락 페스티벌이지.”
무서운 인상의 사내는 올라가는 입꼬리를 주체하지 못했다.
그리고서, 잉베이 같은 사내와 빨기좌가 서로를 마주 보며 식은땀을 흘리는 모습을 아주 감격스럽게 지켜보았다.
***
뭔가 미묘하다.
뭔가 이상하다.
싯누렇게 익어버린 스캘럽 지판과, 담배 타르에 변색되어 버린 올림픽 화이트 색상의 바디.
그리고 그 ‘기타’가 만들어낸, 클래식풍이 가미된 선율.
이자가 잉베이 스타일의 연주를 펼친다는 건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테크닉에 부족함이 없다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나는 준비를 했다.
친구들과의 호흡을 맞췄고, 비장의 기술까지 꺼냈다.
하지만 압도할 수가 없었다.
바지까지 찢어서 레자 차이나드레스를 만들어 줬음에도,
모든 기세를 완전히 가져올 수 없었다.
키이잉-!
카아앙-!
잉베이 짭이 나와 같은 타이밍에 비브라토를 넣었다.
멜로디 라인이 더블링되었지만, 어느 한쪽이 묻히지는 않았다.
내 곡이고, 내 준비가 훨씬 더 철저함에도, 그는 묻히지 않았다.
매우 이상한 일이었다.
“[정말 잘 치는군 소름돋을 정도야.]”
잉베이 왕팬이 입을 내 얼굴에 가져다 대며 그리 말했다.
나는 필사적으로 감정을 숨기며 되물었다.
“[당신… 누구야?]”
“[누구라고 생각하나?]”
“[장난 그만하고 ….]”
피식,
그는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서,
좌아아앙-!
절대로 지지 않겠다는 듯이, 힘차게 코드를 긁으며,
나와 정확히 같은 타이밍에 곡을 마무리했다.
“…후우.”
‘겨울 숲의 노래’가 끝났다.
나는 이미 땀 한 바가지를 아주 세차게 쏟아낸 상태였다.
그리고 눈앞에 있는 이 남자 또한…
“[대단해, 정말 대단해.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기분이야!]”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닦아내고 있었다.
“[그것참 다행이군.]”
그는 여전히 미소를 잃지 않았다.
아까 바지를 찢었을 때는 정말 세상 다 잃어버린 듯한 표정을 짓더니만.
지금은 아니었다.
정말로, 진심으로 즐거워 보였다.
“[넌 다 계획이 있구나. 기타 소리가 아주 좋네.]”
그는 불쑥- 코앞으로 다가와 내 기타를 살폈다.
설마 들켰나?
“[내 기타도 좋아. 봐봐.]”
다행이다.
안 들켰나 보다.
나는 얌전히 그가 내민 기타를 살폈다.
리얼하다.
되게 리얼하다.
기타는 겉모습만 낡은 게 아니라 묵직한 ‘담배 쩐내’를 내뿜고 있었다.
“[좋네요.]”
“[넌 계획을 잘 짰어. 기타도, 무대도.]”
“….”
“[근데, 인생이란 게 계획대로 흘러갈 리가 있나?]”
“… 뭐?”
눈앞의 남자는, 다시금 미소를 흘리더니 스테이지의 구석으로 향했다.
그리고서, 큼지막한 가방 같은 것을 손에 쥐고 다시금 이리로 다가왔다.
“[다들 나오라고!]”
외국 아재들이 각자의 악기를 가지고 무대 위로 튀어나온다.
잉베이 왕팬,
아니.
정체불명의 남자는…
다시금 내 앞에 서서,
가방을 열었다.
“이럴 수가…!”
그것은, 페달 보드였다.
수많은 이펙터가 박힌,
수백만 원이 때려 박힌 듯 보이는,
화려한 페달보드 말이다.
“[당신 지금까지 페달보드를 …]”
“[안 썼어.]”
“….”
“[이제부터 써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