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genius guitarist RAW novel - Chapter 19
불타오르는 본선 (1)
“용신배 춘기 콩쿠르 나가는 애들은 준비 잘 했어? 1학년 1학기 때 입상하면 장학금 신청 가능한 거 알지?”
어 …?
금요일 아침의 담임시간.
나는 멍하니 선생님이 하는 말씀을 듣다가 손으로 돌리고 있던 볼펜을 떨어뜨렸다.
“자.”
“고마워.”
옆자리의 이마가 넓은 여자애가 주워줬다.
“금액은 그리 크지 않지만, 생기부에 기록되니까 열심히 해. 클래식 기타는 민서 뿐이지?”
“네.”
“태현이랑 수재가 일렉기타, 아, 소이도. 소이는 저번 년도 입상자야. 도현이가 베이스. 음 ··· 1반에도 기타 한 명 있다니까 우리 학교는 기타부자네~”
“쌤 저는요!”
묶음 머리의 여자애가 손을 들었다.
“미안해~ 바이올린도!”
채미현 선생님은 겉으로는 되게 진중해 보이는 얼굴이지만 은근 장난기가 넘친다.
유쾌한 건 좋지. 사람은 유쾌하게 살아야 한다.
“3학년 선배들은 안 나가요?”
“2,3 학년 애들은 다른 콩쿠르랑 시기가 겹쳐서 잘 안 나가~ 용신배 본선 진출자는 2학년에 두 명이랬나? 기타는 없어.”
“아하.”
1학년에 기타가 몰빵됐네.
갑자기 주특기 후임이 우르르 들어오는 그런 느낌인가?
“1반 애는 누구래?”
“걔 있잖아. 안경 쓴애.”
“아, 뿔테?”
최유진이구만.
은근 학교에서 본선 합격자가 잘 나오네.
‘··· 예고 애들도 꽤 하던데.’
듣기로는, 음악 관련 학과가 다른 예고보다 크다고 한다.
그러니 시험에서 떨어진 콩나물들이 우리 학교에 온 거지.
난 최유진이 본선에 올라갔다는 사실보다도 다른 게 더 궁금했다.
“선생님, 장학금 얼마나 나와요?”
“장학금? 몇십은 나오지 않을까?”
“진짜요?”
··· 이거 내가 다 먹어도 되나?
아주 고민됐다.
비트코인에 돈 넣어서 미래기반도 어느 정도 다져 놔야지.
입문자용 기타를 평생 쓸 수도 없으니 좋은 걸로 하나 알아봐야지.
부모님 선물도 좀 사드려야한다.
“그럼~ 지급도 되게 빨라. 상품권이랑 현금 반반으로 주지만.”
“아.”
씨발!
아니야. 깡을 하면 돼.
상품권 깡.
나는 불법적인 일을 차근차근 머릿속에 그렸다.
“그럼 다들 열심히 하고!”
채선생님은 말 끝마치고 자리를 떠나셨다.
1학년 8반 담임이지만, 2,3 학년 바이올린 보조로도 수업에 들어가시는 채미현 선생님.
도현이는 오늘도 짬을 내서 베이스를 치려는 모양이다. 뭘 치는 거지? 자작곡인가?
뭔가 멜로디가 익숙한데···
“뭐 치냐?”
“어쩌다 마주친~ 그대 모습에~”
“··· 내가 아는 그거 맞냐?”
“네가 아는 그거 맞다.”
띡 띠딩-
자기가 알아서 편곡한 건가? 멜로디를 슬랩이랑 섞어서 되게 특이하다.
듣다 보니 엄청난 그루브가 느껴진다. 이걸로 콩쿠르를 나갈 생각을 하다니.
베이스 솔로를 신나게 후리는 도현이를 보며 나는 코드를 잡고 스트로크를 쳐주었다.
더욱더 신나게 슬렙을 튕기는 도현이.
하지만 그때,
턱
턱
고급 슬리퍼 특유의 찐득한 소리가 들려왔다.
이거 한 짝에 3,4만원씩 하던데 돈 안 아깝나?
“야, 김수재.”
연주가 끊겼다. 하민서 때문이었다.
“왜?”
“얘기 좀 해.”
“···흠.”
나는 턱을 괴었다. 반 애들의 볼륨은 우리들의 대화를 엿듣기 위해서인지 상당히 작아졌다.
“쟤네 둘이 이야기하는 거 처음 봐.”
“··· 넌 김수재랑 대화한 적 있어?”
“난 있어.”
특별반에 들어온 지 이주일이 지난 참이다. 평소에 도현이랑 자주 붙어 다녀도, 다른 애들이랑 말을 섞지 않는 건 아니었다.
내가 반에서 유일하게 말을 걸지 않는 애는 단 한 명.
하민서다.
“해.”
“여기서는 좀 그렇고, 따라와.”
“그러지 뭐.”
난 머리를 굴려 어떻게 혼내줄까를 고민했다.
역시 고백인가?
고백해서 울려버리는 거지.
내 평판은 나락으로 떨어지겠지만 동귀어진이다. 같이 죽자 하민서.
“야 근데 넌 왜 따라오냐?”
도현이도 내 옆에서 걷고 있었다.
“궁금하잖아~”
“그건 인정. 나 공격당하면 네가 베이스들고 도와줘.”
“안 가져왔는데?”
“도움 안 되는 새끼.”
하민서는 나를 옥상으로 끌고 갔다.
보통 학교 옥상은 잠겨 있는데, 하민서는 열쇠도 없이 몇 번이나 문 손잡이를 강하게 잡아당겼다.
덜컹 덜컹!
끼이이익-
“어떻게 한 거야.”
하민서는 대답 없이 문을 지나며 도현이에게 날카로운 시선을 보냈다.
도현이는 그냥 망이나 보려나 보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 콩쿠르 나오지 마.”
“와우.”
진짜 단도직입적이네.
“싫은데?”
“돈 줄게.”
“얼마?”
나는 곧바로 물었다.
“1등이 100만 원이야. 100만원 줄게.”
나는 말문이 턱 막혔다.
얘 산수 못 하나?
아니 1등 하면 상장에다가 100만 원에다가 장학금까지 따라오는데
100만원 받고 안 나가면 그게 병신이지.
“효용가치로 봤을 때 이건 300쯤 줘야 한다.”
“뭐··· 뭐!?”
“너 은근 머리 잘 안 돌아간다? 계산을 해봐. 1등 100만원, 장학금 수십, 학생부 기록 한 줄, 명성. 다 따져봤을 때 300, 아니 400쯤 줘야 아다리가 맞지.”
“···.”
하민서는 잔뜩 인상을 찡그렸다.
머리를 굴려봤자 아직 고등학생이다. 이게 바로 어른의 계산법이야.
“너야말로 바보야? 1등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나 1등할거 같으니까 100만원 준다고 하는 거 아니냐?”
“예고 애들도 있고, 김태현도 있어.”
“···내가 걔들 보다 잘 치는데?”
“진심이야?”
자만인가?
아니, 이건 자신감이다.
“물론.”
“그래 ··· 멋대로 해봐. 후회할걸? 예고 1학년에 잘치는 애들 많아.”
“근데 왜 넌 날 견제하냐? 클래식 기타는 부문 다른 거 아니야?”
“···수상.”
“뭐?”
“수상 한 번에 한다고.”
···.
아니시발 어쩌라고.
난 인성이 터져 나올 것만 같았다.
“본선 나간다고 알고 있을게. 작은 대회라 결선 없이 바로 수상자 발표해.”
“어 그래 열심히 해라.”
하민서는 휙 머리칼을 날리더니 도현이를 지나쳐 계단으로 내려갔다.
“진짜 왜 저러냐.”
“개무서운데?”
도현이는 질렸다는 듯 감상을 내뱉었다.
얼굴은 반반한데 성격은 아주 지랄맞다.
반 애들도 이 모습을 봐야 하는데.
“수업 시작하기 전에 빨리 돌아가자.”
“그래.”
난 찜찜한 느낌을 지우지 못한 채 금요일 수업을 받았다.
하민서는 아무래도 300만 원 까지는 없는 모양이다.
* * *
음악 콩쿠르는 누가 더 잘 부르고 잘 치고 잘 켜느냐를 겨루는 약육강식 같은 대회다.
무슨 악기를 다루느냐에 따라 콩쿠르에 대한 인상은 제각각이다.
하지만 그 누구라도 ‘긴장’을 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경험이 적든, 많든 말이다.
잠잠하고 어두운 단상과
사람들이 시선.
‘사람들을 감자라고 생각해’라는 헛소리를 하는 인간들도 있을 거다.
단언컨대, 만화를 많이 본 사람들이다.
사람들을 감자라고 생각하던 토마토라고 생각하던 긴장이 풀리지는 않는다.
그냥 존나 긴장된다.
수 백 개의 눈동자가 전부 나를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우친 순간, 좀처럼 진정하기가 쉽지 않다.
방구석에서는 여포인 기타쟁이들이 어쩌다 한 번 무대에 서면 손이 굳어버리는 게 그런 이치 때문이다.
“흠 ···”
3월 20일 일요일 아침.
아무래도 정장을 입는 게 낫지 않겠냐는 부모님의 걱정을 만류하고, 나는 청바지에 패딩 하나 걸친 채 시민회관 앞에 섰다.
꽤 현대적인 건물과 넓은 주차장. 근처 전봇대에는 [청소년 음악 경연 대회 본선장]이라 쓰인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나 혼자 온 건 아닌 모양이군.”
저 멀리 리무진이 들어온다.
디자인이 아주 눈에 익다.
과연 뒤범퍼 100:0으로 박아버리면 어떻게 될까?
“소이···”
어?
설마 이거 진짜 정장 같은 거 입어야 하나?
소이는 아주 고급스럽게 차려입고 있었다.
평소에는 악세서리라곤 전혀 안 하는 애가 목걸이를 걸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부모님.
곱게 차려입은 중년 남녀. 그들은 소이의 손을 잡고서 건물을 향해 걸었다.
꼭 유치원 등원시키는 모습 같구만.
난 괜히 말을 걸기가 부담스러워서 멀찌감치 떨어져 따라들어갔다.
“와 복장 뭐야.”
깁슨 하드케이스와 함께 벽에 기대 있는, 코트 입은 최유진.
근데 뭔가 눈이 퀭하다.
“어··· 안녕.”
“뭐야 왜 그래 다크서클 뭐야.”
“뭐야를 대체 몇 번 말하는 거야. 다크서클 티나?”
최유진의 옅은 화장 아래로 맥아리 없는 눈이 보였다.
“많이 검지는 않은데 눈이 그냥 동태눈깔인데?”
“아 ··· 색깔 들어간 걸로 렌즈 낄걸.”
“잠 못 잤냐?”
“응.”
그렇구만.
난 솔직히 콩쿠르에 아무 감상이 없었다.
돈 벌려고 나온 거니까.
하지만 여기 있는 애들이 전부 나 같지는 않을 것이다.
초등학교, 중학교 때서부터 대회 경험을 쌓아온 애들도 있겠지만, 이제부터 본격적인 무대에 서는 애들도 있을 거다.
최유진은 100% 후자다.
나는 인디밴드 시절에 작은 무대에는 많이 섰다.
가장 큰 무대는 ··· 아마 지역 행사 때였던 것 같던데.
치킨 세 마리와 인당 5만원. 그게 그때 받았던 보수였다.
“잠깐 기다려봐.”
난 자판기에서 커피 두 잔을 뽑았다.
설탕이 잔뜩 들어간 자판기 커피.
“마셔.”
“고마워 ···”
최유진의 손은 달달달달 떨리고 있었다.
얘가 이 시기에 상을 탔었던가.
아쉽게도 기억이 잘 안 난다.
하지만 상태를 보아하니 못 탔을 거라 대강 짐작 또한 갔다.
“커피에는 아세트포로펙신이란 성분이 있어서 긴장 완화에 도움이 돼.”
“진짜 ···?”
최유진은 뜨거운 자판기 커피를 곧바로 머금었다.
“고마워. 쪼끔 다시 봤어.”
“다시 안 봐도 돼. 내가 방금 지어낸 얘기니까.”
아세트로포펙신이 뭔데. 말해놓고 내가 기억이 안 나네.
“풉. 푸흐흐··· 아, 뭐야~”
최유진은 갑자기 피식피식 웃기 시작했다. 역시 긴장 완화에 효과가 좀 있구나.
“그냥 커피 마시고 잠 깨라고. 내 것도 줄까?”
한 입 댄건데.
“그래 다 마신다아주. 다.”
최유진은 내 커피까지 홀짝홀짝 번갈아 가면서 마셨다.
“하아 ··· 살겠다.”
“곡은 뭐로 하게?”
“Here’s that rainy day”
“역시 재즈구만.”
웨스 몽고메리의 곡이다.
“손가락으로 칠 건 아니지?”
“어? 응··· 엄지로만 치는 건 못 하겠더라.”
“이펙터 가져왔어?”
최유진은 기타가방에서 작은 멀티이펙터를 꺼냈다.
“웨스 몽고메리는 이펙터 안 썼잖아? 그냥 클린톤으로 ···”
“아니, 좀 달라.”
웨스 몽고메리는 할로우바디 기타를 썼다.
대부분의 일렉기타는 속이 꽉 차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특히 할로우바디 기타 같은 경우, 속이 크게 비어 있어서 고음역이 많이 깎여나간다. 그 때문에 소리질감 자체가 아주 부드럽다.
그냥 쳐도 통기타 급으로 볼륨이 큰 건 덤.
“소리가 부드러워야지.”
몽고메리는 피크를 사용하지 않고 엄지로 연주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안 그래도 부드러운 기타를 더 부드럽게 치는 것이다.
이 곡을 레스폴 기타로 소화하려면, 어느정도 톤 개조가 필요하다.
“··· 안에 건전지 들어 있지?”
“응···”
나는 코러스를 제외한 모든 이펙터들을 꺼버렸다.
“가서 확인해 봐. 셀럭터는 프론트 고정. 이건 싱 -험 전환이 되는데 험버커로 고정. 기타톤은 아예 반 이상 깎아서 테스트해.”
“그냥 클린톤으로 하면 안 되나 ···?”
“듣기론 여기 앰프가 마샬이라던데, 앰프 이퀄을 조정해도 좀 부족할걸. 넌 피크를 쓰니까.”
“한 번 해볼게!”
최유진은 밝은 표정으로 대기실로 뛰어갔다.
“콩쿠르라 ···”
쟤도 잘하면 입선 정도는 하지 않을까?
실력이 나쁘지는 않던데.
나는 자판기에서 율무차를 뽑은 다음에 대기실로 향했다.
“오 수재!”
오늘은 주위에 여자애들이 없네.
근데 왜 이렇게 친한 척 말 거냐.
“너 순번 4번이래.”
“··· 레알로?”
“그래. 그러니까 미리 올라가봐.”
조용히 앉아서 음료수를 홀짝이는 김태현.
나는 그를 뒤로하고 오늘의 무대로 향했다.
작은 조명 하나뿐인, 관객 한 명 없는 공허한 홀.
영화관을 연상시키는 듯한 와인색 의자.
내 숨소리가 스스로 귀를 간질일 정도로 적막하다.
“··· 진짜 무대구나.”
학원이나 학교에서 누가 시켜서 치는 게 아니라.
내 의지로 선 무대.
나는 조용히 그곳을 걸어보았다.
얼마만이지?
그러니까 인디밴드 해체하고 ··· 교회에서 쳤던 걸 카운트하는 건 좀 아니고.
없네.
인디 이후론 없는 것 같다.
그러니까, 10년쯤 됐다는 소리다.
“···.”
큰 무대는 아니었다.
하지만 특유의 분위기가 피부를 타고 은은한 전율을 전해주었다.
동시에, 약간 울컥한 기분이 나를 감쌌다.
진짜, 진짜로
다시 기회가 주어졌구나.
“후 ···”
난 촉촉해진 눈을 말리려 고개를 들었다.
100만원 ··· 받는 거 좋다.
하지만 다른 목표가 하나 더 생겼다.
이곳에 꽉 찰 관객들에게 박수를 받자.
오랜만에, 청중들에게 응원 좀 듣자.
예전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