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genius guitarist RAW novel - Chapter 18
전공 지원 수업 (2)
내가 코드 세 개로 만든 멜로디는 그리 특별하지 않았다.
코드를 한 번에 잡아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난다면, 누구나 만들 수 있는 수준이다.
음계를 번갈아가면서 치고, 하이프렛으로 옮겨서 치고, 비브라토도 넣고.
나는 테크닉을 적극 활용했다.
기타는 현을 튕기면 소리가 나오는 악기이지만, ‘어떻게 튕기느냐’가 중요하다.
기타리스트의 그루브.
이 나이대 전공생들에게는, 아직 멀게만 느껴지는 영역일 것이다.
“진짜 코드 세 개로 만든 거 맞아 ···?”
“아··· 하이프렛 써도 되는구나. 왜 그걸 몰랐지?”
나선생님은 나의 연주를 들으며 잠시 눈을 감으셨다.
내가 즉석에서 만들어낸 곡은 짧았다. 이걸 몇 분씩이나 끌고 가도 별 의미가 없을 터.
“기술을 잘 넣었네요. 왼손 기본기가 아주 훌륭해요. 그리고 ···”
아이들의 시선은 전부 나에게 고정되었다.
내가 아는 셋과, 모르는 넷. 누구 가릴 것 없이 말이다.
“이 멜로디··· 제가 쓴 곡이란 참 비슷한데요?”
“아 네··· 선생님 곡의 첫부분이랑 코드가 비슷하다고 생각해서.”
“하하하. 그래요. 그걸 바로 알아채네요. 보면 볼수록 대단해요.”
만족스럽게 웃으시는 나선생님.
역시 자신의 팬을 앞에 두고 미소를 감출 수 있는 뮤지션은 없다.
이건 숙명이다.
“편견을 깬 사람은 김수재 학생뿐이었나 보네요. 다른 학생들도 너무 낙담하지 마세요. 아직 연습할 시간은 많이 남았으니까요.”
이번이 나선생님과의 첫 수업이었다.
나는 좋은 모습을 보여 드렸다는 생각에 뿌듯함이 몰려왔다.
“그리고··· 기타는 내것이랑 같은 모델인데 소리가 좀 달라요. 왜 그런가요?”
“픽가드 뜯어서 차폐랑 접지를 했습니다.”
“일렉기타 같은 경우 전기부에서 소리 영향을 많이 받죠. 열정이 느껴지네요. 주어진 환경을 최대한 활용하는 게 기타리스트의 자세에요. 여러분도 반드시 본받도록 해요.”
일곱의 기타전공생들은 멍하니 나를 쳐다보았다.
짝짝짝-
이번에도 소이가 박수를 터 줬다.
그다음은 김태현. 그리고 김태현의 친구들.
좀 쑥스러운데.
나는 꾸벅, 고개를 숙인 다음에 자리로 돌아갔다.
“김수재 ···”
멍하니 통기타를 짚고 있던 하민서가 중얼거렸다.
얘 또 나중에 지랄하는 거 아닌가?
혼자 있을 때 덤벼 봐라. 매콤하게 욕해주마.
“쟤 저런 머리는 잘 돌아가나 봐.”
“수재는 즉흥 되게 잘해. 다른 걸 못한다는 소린 아니고.”
김태현과 여학생1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수재 대단해 ···”
“으응?”
“아니야···”
소심하게 고개를 푹 숙이는 소이. 앞머리는 언제 봐도 반듯하네. 매일 미용실 가나?
“기타 수업은 연주와 감평, 예시로 진행될 거에요. 학생들이 연주를 하고, 내가 조언을 하고, 직접 시범을 보여줄게요. 알았죠?”
“네~”
수업은 아주 매끄럽게 진행되었다.
전공 지원 수업이라고 해서 대학처럼 오랫동안 수업을 받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유명한 기타리스트를 몇 시간씩이나 붙잡아두면 얼마나 비용이 들어갈지 모른다.
선생님이 기타를 꺼내셨을 때는 그야말로 시선 강탈이었다.
나랑 똑같은 입문자용 기타로 아이들을 상대해 주셨으니까.
기타도 중요한데 손이 더 중요하다.
명확하지만 인정하기 싫은 사실을, 나숙호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똑바로 알려주셨다.
80분 수업에 중간 쉬는 시간 10분.
분위기는 학원의 단체레슨과 비슷했다.
다만, 가르치는 사람의 차이가 있다.
윤대혁 선배가 연주를 듣고 돌려 까는 수준이라면, 나숙호 선생님은 아이들을 크게 다그치지 않는다.
어떤 식으로 연주력을 개선시켜야 하는지, 곡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기타에 대한 모든 요소들을 부드럽게 알려주신다.
참된 사람이다.
-수재학생, 테크닉도 뛰어나고, 감정 표현도 꽤 좋아요. 하지만 ··· 알죠?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을 거예요. 고치려고 노력하는 게 딱 보이니까요. 조금 더 연습 강도를 올리는 게 좋을 거예요.
‘감동스럽다.’
난 수업이 끝난 후에도, 멍한 기분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무슨 생각해?”
소이가 나를 불렀다.
“아··· 맞다. 잠깐만.”
나는 복도로 나가시는 나선생님을 따라갔다.
“선생님!”
“응? 수재학생. 왜?”
대면할 때는 다시 반말로 돌아오시네.
“그··· 정말 감사합니다.”
“허허, 선생님 소리 들으려 학교에 왔는데, 학생들 조언해 주는 게 내 일이야. 따로 감사할 필요는 없어.”
“···그렇군요.”
“수재학생, 예전에 사고당한 적 있어?”
나선생님의 눈빛은 인자하면서도 날카로웠다.
“네?”
“아니라면 오른손에 좀 더 집중해 봐. 아르페지오랑 태핑으로 크로매틱하는 것도 효과가 좋지. 차근차근 속도를 올려서.”
“감사합니다!”
“아, 그리고 ··· 내 기타를 보고 실망한 눈초리더구나. 펜더 기타를 보고 싶은 거지?”
··· 당연하다.
보고 싶다.
가능하다면 한 대에 몇천만 원이나 하는 오리지널 펜더를 손에 꼭 잡아보고 싶다.
“그건 환상이야 환상.”
환상이라니 ···?
62년산 진짜 펜더기타가 환상이라는 건가?
나는 의아한 마음에 고개를 갸웃했다.
저 사람이 오리지널 빈티지 펜더를 가지고 있는 사진을 나는 몇 번이나 봤는데.
“관심 있으면 이리 가 봐.”
나숙호 선생님은 지갑에서 명함 하나를 꺼내셨다.
매끈한 재질에 아주 단초로운 디자인.
얼마나 단초롭냐면 이름과 주소만 적혀있고 직함, 회사명 같은 건 단 하나도 쓰여 있지 않았다.
“그럼, 연습 열심히 하고.”
나선생님은 여전히 인자하게 웃으시며 계단으로 내려가셨다.
“··· 후.”
“수재야.”
“응?”
“연습 ··· 더 할거야? 같이 할래?”
“물론이지.”
80분의 전공 지원 수업과 한 시간 더 주어지는 강제적 복습.
수업이 끝난 것은 기타반뿐만이 아니다. 다른 1학년 생들도 마찬가지다.
즉, 또다시 연습실 쟁탈전이 벌어진다는 의미였다.
“빨리 가자!”
나는 소이의 손을 잡고 달렸다.
저번 주에 연습실을 돌아보면서, 어디에 가장 좋은 앰프가 있는지는 이미 봐둔 참이다.
나는 실용과 연습실 3 이라고 쓰여 있는 곳에 무작정 들어왔다.
“다행히 비어 있어. 좋아.”
“와··· 여기는 되게 깨끗해···”
“봐봐. 앰프도 꽤 괜찮아.”
학원 합주실에 있는 것보다는 못하지만, 내 기준으로는 합격점이다.
오렌지 앰프는 써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지만, 딱 봐도 콤보앰프가 아니라 스택앰프라서 비싼 것이겠구나 싶었다.
오렌지 or15.
작지만 강한 놈이다.
근데 학교에는 마샬이나 펜더가 없네. 색이 예뻐서 이걸로 사왔나?
“예쁘다 ···”
소이는 앰프를 만지작거렸다.
“소리도 꽤 좋을걸? 넌 집에서 뭐 써?”
“나 ··· 마샬 거.”
“오호.”
정확한 모델이 궁금하다.
역시 적어도 진공관이겠지?
집에 진공관을 놓을 수 있다니. 너무너무 부럽다.
금수저니까 막 영화에 나오는 마당 딸린 부잣집에 살 것 같은 예상이 든다.
창문도 엄청 큰 그런 데.
“궁금해?”
“응.”
“우리집 ··· 놀러 올래?”
“···어?”
앰프 구경하러 놀러간다라 ···.
친구 집에 놀러 가 본 적이 대체 언제였더라?
회귀 전의 기억을 더듬어 보니, 스물 초중반 넘어서는 거의 없었던 것 같다.
내가 있었던 인디밴드가 해체되고, 민수는 메이저로 올라가고, 주변인들의 삶은 전부 바빠졌다.
나라고 안 바빴던 것은 아니다. 세션 기타도하고, 소일거리도 하고.
수입은 적었지만 치열한 인생이었다.
“… 싫어?”
“아니아니. 안 싫어. 좋아. 기대되네.”
학창시절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중고등학교 때 혁오 집에 가본적은 있지만 그 이후론···
나는 나선생님이 알려준 크로매틱으로 손을 풀고 소이와 같이 연주를 시작했다.
서로 화음을 맞춰보고, 적당히 합주할 곡을 찾았다.
“Depapepe곡 어때…?”
Depapepe인가. 통기타 듀오로 유명한 기타리스트들이다.
일렉기타 둘이서 쳐도 나름 맛깔나겠지.
“오, 괜찮지.”
“One 알아?”
“물론.”
나는 앰프를 조정했다.
트레블을 최대한 깎고, 미들과 베이스를 올렸다.
셀럭터는 미들과 프론트 하프톤.
일렉기타는 사용하는 픽업의 위치에 따라 톤이 극명하게 바뀐다.
넥쪽으로 갈수록 부드럽고 따듯한 소리가 나고, 리어 쪽으로 갈수록 강하고 날카로운 소리가 난다.
“그냥 클린톤으로 하자.”
“응.”
“소이 네가 b파트 해.”
“내가 …?”
이 곡은 b파트 쪽에 멜로디 연주가 몰려있다.
그리 어렵지는 않은 곡이라 내가 굳이 멜로디를 안 맡아도 된다.
“해볼게···”
“좋아. 너 나름대로 즉흥도 넣어 보고.”
“즈, 즉흥 말이야?”
“이게 멜로디라인 템포가 느리잖아. 상황 봐서 대충 조금씩 욱여넣어 봐.”
나는 연주를 시작했다.
코드를 잡은 후 스트로크를 치며 커팅을 하고, 소이는 멜로디를 연주해 나간다.
내 말을 의식한 것인지 억지로 솔로를 넣으려는 소이.
‘전공생이니까 방법을 모르지는 않아.’
기준을 고 1학생으로 잡는다면 리프를 만드는 실력이 나쁜 편은 아니다.
조금 거슬리게 느껴지는 이유는 내 기타짬밥 때문.
“여기서 말야 ···”
나는 소이가 순간 멈칫한 부분을 지적했다.
“클린톤으론 피킹하모닉스가 잘 안나니까 내츄럴로··· 그리고 풀링도 좀 섞어서 ···”
“그렇구나 ···. 이게 좀 더 깔끔하다.”
“그치?”
소이는 싱긋 웃음을 지었다.
평소에는 맹한 표정인데 웃으니까 귀엽네.
벌컥-
한참 연습을 하고 있던 도중,
“··· 소이?”
소이 친구가 연습실 문을 열었다.
“아, 나예야.”
“아이고··· 미안~”
이마가 넓은 여자애는 우리 둘을 번갈아 가며 쳐다보더니 조심스레 문을 닫았다.
“··· 뭐지?”
소이는 고개를 푹 숙였다. 갑자기 귀가 핑크빛으로 변했다.
둘이 기타 치는 게 그렇게 부끄럽나.
얜 피부색으로 감정 표현을 하는구나.
“너랑 자주 같이 다니던데 쟨 전공이 뭐야?”
“아, 나예는 드럼전공인데 ··· 여기 드럼 놓여 있어서 온 건가봐 ···”
확실히 놓여 있긴 하다. 상태가 좀 더럽게 안 좋은 드럼.
저거 킥에 구멍 뚫려있네 ··· 박스테이프라도 붙여주고 싶다.
근데.
“어? 드럼이라고?”
“응.”
“네 친구고?”
“응··· 왜?”
“그렇구만.”
합주할 때 부르기 좋을 거 같은데 ···?
나는 시답잖은 생각을 하면서 연습을 계속했다.
동시에, 소이가 콩쿠르 본선에서 칠 곡을 내 나름대로 감평도 해줬다.
“힘아리가 없어. 펜더니까 좀 더 깽깽대는 소리를 내봐.”
“깽깽?”
“깡깡이라고 해야 하나. 강약할때 ‘강’부분을 좀 더 세게 치는 게 좋을 거야.”
“으응··· 수재 꼭 선생님 같다.”
남 가르쳐 본 적이라곤 교회에서 꼬맹이들 모아놓고 일주일 강사 노릇한 것밖에 없는데.
내가 누굴 가르칠 자격이 있나?
소이는 뭔가 만족스러운 듯한 표정이었다.
나는 소이의 손과 크림핑크색 기타를 유심히 번갈아가며 쳐다보았다. 그런데 ···
‘어.’
소이의 스트라토 캐스터 헤드의 맨 윗부분.
정말 아주 작게, 꼬부랑글자가 적혀 있다.
“왜 그래?”
“아, 아니야.”
마스터 빌더 이름이네···
기타 하드웨어 사양이 뒤죽박죽이던데 이런 모델이 있었나 싶었지.
근데 펜더의 ‘마스터 빌더’가 만든 커스텀이었어.
진짜 핵금수저인가?
난 소이의 기타에 손을 대는 것이 문뜩 무서워졌다.
저거 한 대에 천만 원 쯤 할 텐데···
소이는 말이 없어진 나를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 * *
해가 저물고, 나는 소이와 같이 학원에 가기로 했다.
거의 반나절 동안 같이 있었네. 나름 그럭저럭 대화가 잘 통해서 심심하지는 않았다.
“안녕하세요.”
학원 계단을 올라 유선희 강사와 마주친 순간,
“수재 왔니? 3번 강의실로 가. 소이도 같이 갈래?”
그녀는 씨익 나를 향해 이를 보이며 웃었다. 뭔가 음흉한 분위기다.
“네···? 거기 피아노 놓여 있는 곳 아니에요? 제가 써도 돼요?”
“가보면 알 거야. 자, 얼른.”
유선희 강사는 따로 키를 건네주지 않았다.
근데 박스테이프를 손에 들고 나를 따라온다.
학원 연습실 문을 열자 그곳에는 ···
“어서 앉아라.”
윤대혁 선배가 있었다.
“유선희 강사님, 부탁드립니다.”
“걱정마세요~”
기타를 멋대로 꺼내고 나를 자리에 앉히는 윤대혁 선배. 그리고,
찌이이익-!
유선희 강사가 테이프를 뜯더니 내 기타와 오른손을 돌돌 감기 시작했다.
진짜 간신히 피킹할 여유만 남긴 채 오른손과 기타가 밀착됐다.
“수, 수재야 ···?”
“네 나쁜 버릇을 고쳐주마.”
“유선희 선생님? 이거 뭡니까?”
“그럼 수고~”
··· 뭐지?
나는 소이의 흔들리는 눈동자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기타리스트 윤대혁
“넌 오른손이 문제다. 아니, 문제라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문제다.”
이게 뭔 개소리야?
윤대혁 선배는 이글거리는 눈동자로 나를 쳐다보았다.
대체 뭔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다.
“계속 그렇게 있을 거냐?”
“저, 저요?”
소이가 당황하며 말을 더듬었다.
“상관없다. 구경해라.”
“네, 네에···”
뭐지. 날 기타랑 합체시켜놓고 뭘 할 생각이야.
이게 기타리스트의 최종 진화 모습이라도 되는 건가?
기타가 내가 되고, 내가 기타가 되는 그런 ···
“오른손이 자꾸 뜬다. 억누르는데도 뜬다. 그렇다면, 아예 못 뜨게 하는 게 방법이지.”
“아니, 다른 사람들도 피킹하다 뜰 때 많잖아요?”
“많지. 근데··· 너는 쓸데없이 많이 떠.”
이것도 많이 교정한 건데. 집에가서 잠잘 때 까지 죽어라 연습한 건데.
회귀한지 1주일 좀 지난 상황인데. 앞으로 차근차근 해나가면 될 것을 ···
“왜 이러세요?”
“뭐가?”
“저번에 김태현한테 들었어요.”
“계속 다니겠다면서?”
그렇지 뭐.
계속 다닌다. 돈 대준다는데 굳이 거절할 필요는 없잖아?
하지만 찜찜한 것도 사실이다. 난 이참에 확실히 이유를 들어 두기로 했다.
“왜 제 학원비용을 대줄려고 하는 겁니까?”
“그건 ···”
윤대현 선배는 멈칫했다.
명예욕 때문이라면 굳이 학원에서 돈 써가며 할 짓은 아니다.
인재 발굴을 하고 싶다면 그냥 김태현 실력을 키우면 된다.
나는 잘 치긴 하지만, 지금 저 사람에게 있어서는 그냥 남이다.
대체 왜?
“··· 취미야.”
“예?!”
“재능이 있는데 무식해서 썩히는 놈들을 보면, 열불이 끓어오른다.”
눈에서 불길이 샘솟는 것 같았다. 이 양반 이런 성격이었나?
‘내가 아는 건 아저씨 윤대혁 밖에 없는데 ···’
회귀 전에는 학원을 아예 안 다녔으니, 나는 20대의 윤대혁과 마주친 적이 없었다.
민수가 메이저에 들어가고서야 알게 됐고, 그때 그는 이미 30대 중후반이었다.
눈앞의 윤대혁은 내가 알면서도 모르는 사람이다.
“부족한 테크닉을 확실히 단련시켜주마.”
“··· 제 테크닉이 그렇게 부족합니까?”
“아니, 안 부족하다.”
뭐하자는거야.
“하지만 부족하다. 아주 미묘하게 ··· 조잡한 느낌이 있어.”
“···.”
“실력만 따지자면 네가 태현이 보다 위다. 다만, 태현이가 작은 지반부터 차근차근 쌓은 저택이라면, 너는 기둥 하나가 빠져 있는 왕성이다.”
··· 비유가 참 찰지다.
기둥 하나가 빠져 있는 왕성이라.
내가 그런 거창한 칭호를 받아도 되는 건가?
지미 페이지나 잉베이 말름스틴 같은 이들에게는 대체 어떤 칭호를 붙여야 하지?
아, 그 사람들은 이미 다 칭호가 있나.
“못 참겠군. 어쩌다 그런 버릇이 생긴 건지, 선천적으로 손목이 안 좋나?”
“아뇨 그건 아닌데···”
“답은 정해져 있다. 거기 너.”
“네, 넵!”
소이는 멀뚱히 듣다가 몸을 움찔했다.
“신경 쓰이니까 자리에 앉아라.”
“네에 ···”
폴짝- 피아노 의자에 앉는 소이.
“자, 기본 크로매틱 시작.”
“아니 피크는 쥐여줘야죠.”
“엄지로 튕겨.”
시발거.
나는 윤대혁 선배가 시키는 대로 했다. 이런 짓을 한다고 내 오른손 버릇이 고쳐질지는 모르겠다.
아 근데 이거 뗄 때 어떡하지? 팔 털 왕창 뜯겨나갈 것 같은데.
딩딩딩딩
앰프에서 맑은소리가 흘러나왔다.
“흠.”
윤대혁 선배는 피아노 위에 올려져 있는 전자 메트로놈을 가져왔다.
아, 설마 이사람.
“4연음 80. 시작.”
딩딩딩딩딩딩딩딩
엄지가 아프다.
피크가 없다.
그런데 손목을 움직이기가 여간 불편하다.
“갸아아아아악.”
“엄살 부리지 마라. 90.”
윤대혁 선배는 메트로놈이 100을 가리키고 나서야 나에게 피크를 건넸다.
“수재야 괜찮아 ···?”
“어 ··· 피크로 치니까 버틸만한데.”
손목이 되게 불편하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관절에 무리가 가서 그런 게 아니라 원래 치던 방식대로 못 치니까 불편함이 느껴지는 것뿐이다.
“괜찮나?”
메트로놈은 140을 가리켰다.
“뭐, 아직까지는 ···”
“그래.”
160
170
180
“갸아아아아악!”
맨날 하는 크로매틱이지만 테이프로 결박된 채 하니까 고역이었다.
“음 ··· 이 상태로 5분만 버텨라.”
팔목에 쥐가 날 것 같다. 내 한계는 180이 아니다. 쥐어짜면 당연히 더 나온다.
그런데 ··· 이런 속주를 오래 하다 보면 굳이 테이프로 손목을 묶지 않아도 쥐가 나기 마련.
5분을 버티라니.
“수, 수재야···”
괴이한 광경에 질려버린 소이가 눈을 크게 떴다.
눈을 감고 있는 게 좋을 거야.
저 숫자가 200이 되기 전까지.
“꽤 버티는데? 효과가 좋군.”
남일 이라는 듯이 윤대혁 선배는 중얼거렸다.
뭐 남일이 맞기는 하지.
‘나선생님도 연습 강도를 올리랬어.’
근데 이렇게 한 번에 올려도 되나?
집에서 꾸준히 악력기를 쓰고, 동생이 다이어트 하겠다고 괜히 사둔 문틀 철봉에도 자주 매달리는데.
아직 악력 회복이 안 됐다.
드르르르르륵-
이젠 메트로놈이 몇 bpm인지도 모르겠다. 난 그냥 따다다다다닥 거리는 소리에 따라 손만 움직일 뿐.
“흠 ···”
소리가 멎었다.
테이프 때문에 팔이 다 쓸려서 아프다.
아시발 근데 테이프는 왜 감아 놓은 거야. 천 같은걸로 묶을 수도 있잖아.
“역시 강제로 하니까 조잡함이 더해졌어. 그 은은한 조잡함 ··· 참 열불나는군.”
“···.”
“넌 어리다. 아직 고칠 수 있어. 지금 상황을 스스로 이해하고는 있나?”
“원래부터 조금 불편하긴 했는데, 오늘 학교 선생님께 제대로 지적받았어요.”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안 좋은 습관. 그러면서도 고칠 수 없었던 습관.
누구 한테 지적받지 않아도, 내 스스로가 잘 알고 있었다.
“그런가. 누구지?”
“나숙호 기타리스트입니다.”
“···.”
윤대혁 선배가 얼굴을 굳혔다.
“허, 그 사람이 테크닉을 지적할 줄이야.”
“··· 뭐라고요?”
나선생님을 알고 있는 건가.
아니, 나숙호를 모르는 기타리스트가 그냥 간첩이겠지.
가슴 속에 미미한 짜증이 올라왔다.
“마치 나숙호 기타리스트가 테크닉이 부족하다는 말처럼 들리는데요.”
“그렇게 말 한 거 맞는데?”
“··· 진심?”
나는 오른손에 감긴 테이프를 뜯어버렸다.
팔 털까지 같이 뜯겨서 고통이 느껴졌지만, 지금 그런 건 아무 상관이 없다.
“내가 틀린 말 했나? 그 사람은 테크닉이 부족해. 속주에서 실수가 자주 나는 기타리스트다.”
“··· 연로하신 분들 중에 속주능력이 떨어지는 분들은 많습니다.”
“그래서?”
만약 지미 헨드릭스가 죽지 않고 노인이 되었다고 해서 그가 기타의 신이 아니게 되나?
절대 아니다.
여전히 그는 기타의 신으로 칭송받을 것이다.
“기타의 테크닉은 속주로만 평가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허.”
윤대혁 선배는 어이없다는 듯한 표정을 띄웠다.
“이제 막 고등학교 올라왔으면서, 늙은이라도 된 양 말하는군.”
“··· 뭐 틀린 말이라도 했습니까?”
27살의 혈기 넘치는 윤대혁은, 내가 알고 있던 윤대혁보다 더욱 거칠었다.
뭔가 더 날 것 같은 인간군상이다.
“왜 그리 열을 내나? 나숙호 기타리스트의 팬인가?”
“예, 팬입니다. 제가 힘들 때 마음을 달래줬던 노래가 나선생님 것이었으니까요.”
“···.”
회귀하기 전에는 작은 인연조차 만들 수 없었던 사람.
하지만 지금은, 나를 인도해주시는 스승님.
내가 나숙호 기타리스트를 옹호할 깜냥이 되냐 안 되냐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 이전의 문제다.
‘이 사람은 정갈한 연주가 특징이었어.’
정갈한 연주.
라이브에서 실수 하나 내지 않고, 테크닉을 적극적으로 살릴 수 있는 기타를 애용한다.
넥이 극단적으로 얇고, 하이프렛 연주가 편하도록 바디를 확 파버린 슈퍼스트렛 같은 모델들을 말이다.
하지만 역으로 생각한다면, 정갈함 외에는 딱히 다른 감상이 떠오르지 않는다.
굳이 끼워넣자면 차가움 정도일까.
정갈하면서 차가운 연주.
그것이 윤대혁이다.
“속주만 죽어라 단련한다면, 그게 미래에 나올 가상 악기랑 무슨 차이가 있겠습니까?”
나는 나숙호 선생님의 말을 빌렸다.
나선생님을 욕했으니, 나는 나선생님의 말로 반격했다.
미래에 가상악기는 계속해서 발전한다.
사람을 완전히 대체할 수 있을 정도까지는 못 되지만, 위협할 수 있을 수준까지는 된다.
하지만 세션은 계속 존재했다.
음악은 사람이 만들어 내는 것이니까.
그 특유의 사람냄새를 기계는 표현하기가 힘드니까.
“··· 참 기분 나쁜 놈이군.”
윤대혁 선배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메트로놈을 원래 자리에 돌려놓았다.
“다음 주에는 오른손에 진전이 있길.”
그러더니 조용히 조용히 열고서 나갔다.
윤대혁은 바쁜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일부로 시간을 내서 나를 가르치려 찾아왔다.
“···.”
여전히 말을 참 직설적으로 내뱉는구만.
사람의 성격은 잘 변하지 않는다.
그러니 내가 알고 있던 ‘윤대혁’이라는 인간은, 뇌에 필터 몇 장이 더 생성된 상태였던 건가.
20대의 그는 필터가 없었다.
“수재야 괜찮아 ···?”
살 떨리는 신경전을 처음부터 끝까지 감상한 소이가 말을 걸었다.
“어, 응··· 괜찮지. 괜히 말싸움했네.”
“아니야 ··· 충분히 이해해.”
소이는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나저나 테크닉이라 ···
‘기둥 하나 빠진 왕성인가.’
단련된 왼손으로 오른손을 무마시킨다.
아무리 내 오른손 테크닉이 떨어진다고 해도, 취미로 치던 사람들보다는 훨씬 낫다.
하지만 프로 기준에서는 미묘한 조잡함을 숨길 수 없는 수준이다.
나는 피식 웃음을 지었다.
고쳐주마.
테크닉? 연습하면 되겠지.
아직 회귀한지 1주일 조금 넘었을 뿐.
나는 원래 조급한 마음이 없었다.
주어진 시간이 많았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조급함이 생겼다.
나선생님에게 가르침을 받는 입장.
나때문에 나선생님이 욕을 들어서는 안 된다.
“윤대혁 선생님 원래 저러지?”
“응? 아··· 가끔 레슨하시는 거 봤는데 원래 말을 거침없이 하셔. 너무 신경쓰지마···.”
“···.”
30대의 윤대혁은 저렇지 않았는데.
삶의 풍파가 그를 깎아 버린 것일까. 아니면 중간에 인생의 전환점이라도 있었던 것일까.
알 수가 없었다.
“단체레슨 받으러 갈까.”
“응.”
“아, 반대편에 있는 분식집 먼저 들리자. 오는데 냄새 쥑이더라.”
“분식집 …?”
부잣집 아가씨라 서민음식에 거부감이 있는 건가?
코다리 조림도 잘 먹던데.
“응. 가자.”
“좋아.”
나는 소이와 같이 분식집에 가서 어묵과 떡볶이를 흡입했다.
얘 매운 거 되게 잘 먹네.
의외다.
***
“아니, 저도 거기까지는 좀···”
“말이 돼요? 걔가 왜 본선에 합격하는데요?”
“··· 분명 말씀은 드렸는데, 아무래도 심사 과정에서 트러블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아.”
하민서는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서 연락처에 저장된 ‘정선우매니저’라는 이름을 삭제했다.
이제 전화가 걸려와도 그냥 번호만 뜰 것이다.
이 이름을 보는 것만으로도 짜증이 몰려온다.
그리고 ···
“김수재 넌 왜 ···”
이를 빠득 갈았다.
자신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쏠려야 할 상황인데.
그런 상황을 기대하고 예고 입학도 발로 차버렸는데.
콩쿠르는, 자신의 독무대가 되어야 하는데.
하민서는 답답한 마음에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서울 강남역의 한복판.
사람은 너무 많았다.
“하아.”
***
“본선 진짜 그 기타로 나갈 거냐?”
“물론.”
“야 그냥 내 거 빌려줄까?”
“놉.”
“와··· 어떻게 입문용으로 콩쿠르에 나가냐. 나 같으면 지금 당장 사포로 갈고 펜더 스티커 붙인다.”
콜트 무시하지 마라.
회귀하게 전에도 애용했던 메이커다.
스티커 붙이는 건 너무 슬프잖아.
“내거 빌려드림.”
“넌 베이스잖아 미친놈아.”
어느덧 한 주가 지나가고, 콩쿠르 본선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기타 연습도 하고, 콩쿠르 나갈 곡 준비도 하고.
나름 알찬 하루하루를 보냈다.
“흠 ··· 100만 원 받으면 뭐 사지.”
“기타 사.”
“아니, 다 쓸 수는 없거든.”
“1등 할걸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네 자신감 오져.”
“자 신 감!”
나는 교문 앞에서 무심코 큰 소리로 외쳤다.
시선이 쏟아져서 좀 쪽팔리다.
“내일 모레인가 ···”
일요일이 정말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