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genius guitarist RAW novel - Chapter 17
전공 지원 수업 (1)
전공지원 수업이 있는 날이라 해도, 오전 수업은 다른 반이랑 크게 다르지 않았다.
차이점이라곤 자빠져 자도 선생님들이 편의를 봐주시는 것뿐.
근데 이거 진짜 개이득이잖아? 엎드려도 대가리를 안 때리는 선생님들을 뵈며 나는 특별반에 들어온 것이 너무나 감격스러웠다.
“와 어떻게 자도자도 졸리냐.”
나, 도현이, 혁오.
우리는 느릿느릿 식당을 향해 걸어가는 중이다.
평소처럼 뛰지는 않는다. 이건 다 이유가 있다.
“특별반 좋냐?”
“좋아. 자도 잘 안 깨워.”
“와 ··· 나도 들어갈걸.”
근데 얘는 왜 같은 반 애들이랑 밥을 안 먹는 거지?
“너 반 친구들은? 설마 우리혁오 ···”
“응 친구많아. 애들 연습실 쟁탈하느라 밥은 다 따로 먹어.”
“아. 난 또.”
“아~ 밥 먹기 싫다~”
“나도.”
“시발.”
오늘은 기분이 안 좋다. 점심시간에 코다리 조림이랑 풀때기가 나온다. 예고는 완전 진수성찬처럼 나온다는데 우리 학교는 왜 이러지?
연습실 만드느라 돈을 다 꼴아박아서 그런가.
식당에 가니 애들의 표정이 마치 행보관이 내온 비상식량 처리하는 군인이라도 된 양 축 처져 있었다.
오우야.
심지어 강정도 아니네.
나는 자리에 앉아서 코다리 찜을 입에 넣었다. 오독오독 바늘처럼 입천장을 찔러버리는 맛이 아주 일품이다.
“퉷.”
“와 가시 실화냐.”
밥경찰이었다.
난 어떻게든 밥을 국에 말아서 처리했다. 나선생님은 만나뵙는 날인데 점심이 이러니까 기분이 좀 다운된다.
저 멀리 소이가 친구랑 밥 먹고 있는 게 보인다. 하민서는 ··· 성격이 저 지랄인데 친구가 한 명 있네?
“빨리 가자..”
도현이가 재촉했다. 얘 또 합주하고 싶어서 그런 거겠지.
“저기 연습실 있는 건물 3층이 전공지원 수업장소잖아.”
“아 계단씹.”
나는 교실로 가서 기타를 가지고 옆 건물로 뛰었다.
하지만 특별반은 1학년에만 있는 게 아니다.
특별반 애들만이 악기를 다루는 것도 아니고.
그러니까, 이 학교에는 연습실을 쓰고 싶은 사람이 아주 많다는 소리다.
그 많은 연습실이 꽉 찼다.
우린 계단에 앉아서 기타를 풀었다. 개미만큼 작은 기타 소리이지만 세게 치면 어느 정도 셋이 들을 음량이 나오긴 한다.
“레드제플린.”
“오이시스.”
“오아시스.”
다수결로 내가 졌다. 아 레드제플린이 짱인데.
“Whaterver 가자.”
“그래. 이번에 리드는 혁오가 해라.”
“오케이.”
코드를 진행해 나간다. 하도 이 짓을 많이 해서인지 생 기타 소리가 이젠 익숙하다.
도현이는 작은 볼륨을 만회하기 위해 베이스라인을 그대로 타지 않고 강하게 슬렙을 튕겼다.
“노래 잘 부르는 애 없냐?”
“김수재 개못부름.”
“아니 네가 더 못 부르잖아.”
보컬없는 밴드라니. 뭐 나름 교복 입고 학교에서 이러는 것도 낭만적이네.
혁오는 자리가 났는지 복도를 둘러보다 돌아왔다.
“··· 자리가 잘 안 나네.”
실망감을 품은 혁오의 뒤통수 뒤로,
“음?”
익숙한 풍채의 중노년 남성이 보였다.
“나, 나숙호선생님!”
나는 바로 달려나가서 꾸벅 머리를 숙였다.
혁오는 나숙호 기타리스트를 잘 알지 못하는지 그냥 멀뚱히 서 있을 뿐이다.
바보 같은 자식.
“허허, 이것 참. 김수재 학생은 마치 날 예전부터 알던 사람 같다니깐.”
“알고 있었습니다.”
“허허허.”
인자하게 웃으시는 나선생님. 저런 성격도 다 음악의 경지에 올라서 그런 건가?
“셋 다 특별반 학생이니?”
“저는 아닙니다.”
“아, 그때 너구나? 그래도 따라와~”
나숙호 선생님은 우리를 데리고 수업하게 될 교실로 향했다.
기타전공지원수업.
전공 지원 수업에서는, 각자의 전공에 따라 뿔뿔이 다른 교실로 흩어진다.
우리 학교에는 예술고 음악전공 입시에 떨어져서 온 애들이 특히 많다.
그림쟁이도 몇 명 있는데 소수다.
“기타 전공생들은 8명이라더구나. 좋아. 아주 좋은 숫자야.”
좋은 건가? 아무래도 그냥 하시는 말씀 같다.
나숙호 선생님은 a-a라고 쓰여 있는 교실 문을 열쇠로 여셨다. 평소에는 잠겨 있는 모양이다.
기타 전공자들을 위한 이곳. 세 학년이 같이 돌려쓰기 때문에, 구석에는 낡은 10w급 앰프 여러개가 비치되어 있었다.
“흠 ··· 환경은 괜찮구나.”
가지고 온 노트북을 꺼내어 세팅하시는 선생님. 우리는 재빨리 그것을 도와드렸다.
“기타 볼래?”
“기타 ···”
“···”
“기타?”
난 알고 있다.
나숙호 기타리스트가 애용하는 펜더 스트라토캐스터 ‘오리지널’ 62년산.
62년 제품을 따라 만든 ‘리히슈’가 아니다.
진짜 62년산 기타다.
지금 시점에선 50년 넘게 묵은 전설이 기타이며,
20년 후에도 70년 넘게 묵은 전설의 기타다.
“오오 ··· 어?”
나숙호 선생님의 기타 가방에서 나온 것은 내 예상과는 아주 다른 물건이었다.
“왜 그러니?”
나숙호 선생님은 어깨를 으쓱하셨다.
“서, 선생님 그 기타는···”
“하하, 나도 하나 샀다.”
콜트네? 내 거랑 똑같은 거.
20만원짜리.
색은 하얀색이다.
“자, 도와준 답례로 수업 시작하기 전에 얼른 보여줄게.”
나숙호 선생님은 기타를 앰프에 연결한 뒤, 손도 풀지 않고 연주를 시작하셨다.
사막을 걷는 노래.
이 곡은 가사가 붙여진 편곡버전도 있지만, 오리지널은 그냥 기타 솔로 곡이다.
부드러운 클린톤과 특유의 사막 냄새나는 듯한 멜로디 라인. 진짜로 내가 사막 한가운데에서 불을 피우고 추운 밤을 나는 듯한 느낌이 드는 곡.
“와 ···”
기타 전공자도 아닌 도현이가 감탄을 내뱉었다.
“어떠니?”
“좋아요 ···”
이 사람 연주를 코앞에서 들을 수 있다니.
회귀하기 정말 잘했다 진짜로. 오프라인 공연도 거의 안 하는 사람인데.
“멍하니 연주하지 말아라. 베이스도 마찬가지야. 베이스는 리듬악기임과 동시에 멜로디악기지. 아무 생각 없이 엄지로 줄만 때린다고 되는 게 아니야.”
나선생님은 기타로 슬랩을 치셨다.
“슬랩도 강약이 중요한 거야. 포인트를 내가 정해야 해. 다 똑같은 ‘틱’이 아니라 ‘틱’이랑 ‘딱’이야.”
“감사합니다.”
도현이는 감명받은 듯 꾸벅 고개를 숙였다. 내용 자체는 기초적이었지만, 대단한 연주를 들은 다음에는 사뭇 다른 감상을 불러일으키는 법이다.
“아이들은 밥 먹다 체했나?”
손목시계를 확인하는 나선생님. 아니나 다를까, 복도 창문 너머로 슬금슬금 인영이 보인다.
“아, 저는 이제 가보겠습니다.”
“저도요.”
“그래. 연습 열심히 하고.”
나선생님은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는 도현이와 혁오에게 덕담을 해주시고서, 복도에서 기웃거리던 아이들을 들여보냈다.
“자, 시작할까?”
나, 김태현, 하민서, 백소이, 남자 둘 여자 둘.
소이는 내 옆에 와서 앉았다. 친구들은 다 다른 전공인가?
“안녕.”
“안녕 ··· 주말 잘 보냈어?”
“잘 보냈지. 콩쿠르 예선도 치르고. 넌 예선 잘 봤어?”
“난 ··· 안 봤어.”
어?
분명히 예선장에 있는 걸 똑똑히 봤는데. 시험을 안 치렀다니.
“난 저번 년도 입상자라 ··· 예선 안 봐도 된대···”
“와우”
작은 대회인데 별게 다 있네.
“그때 옆에 있던 애는 누구야?”
“아, 반 친구인데 애가 참 유쾌해.”
“그렇구나 ···”
소이가 나를 지긋이 쳐다본다.
뭐지. 왜 자기한테 말 안걸어줬냐고 화내는 건가?
이 나이 처먹고 무슨 병신같은 망상을 하는 건지.
나는 자괴감이 몰려오는 것을 간신히 억눌렀다.
“자자, 앞으로 1년 동안 기타 전공생 여러분을 가르칠 나숙호에요. 반가워요.”
짝짝짝짝-!
애들은 적당히 박수를 쳤다.
아주아주 거슬린다. 더 세게 치지 못할까.
나는 힘차게 손뼉을 부딪쳤다.
“자, 목요일에 나와야 했는데 안 나왔죠? 미안해요. 대신 보조선생님이 수업을 진행하셨고, 학생들 연주를 평가해주셨다 들었어요 어디보자 ···”
서류 뭉치를 꺼내는 나숙호 선생님. 수업 할 때는 존댓말을 쓰시나보다.
“음 ··· 봐도 모르겠네요.”
큼지막한 교실 맨 앞에는 칠판이 있었다. 나숙호 선생님은 코드 세 개를 바로 적으셨다.
G,A,E
“기타는 이론도 중요하지만 치는 게 더 중요해요. 코드 세 개로 멜로디 곡을 만들어 봐요. 기본음만 허용할게요. 코드가 가리키는 음 외에는 터치 금지에요.”
“···.”
“그럼 시작.”
나숙호 선생님은 아무것도 말하지 않으셨다. 자기가 누구인지도, 이곳에 온 소감도.
그냥 코드 세 개만 주셨다.
아이들은 얼떨떨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다들 기타를 꺼내더니 피크를 내려놓고 손으로 스트로크와 아르페지오를 섞기 시작했다.
“사람이 많으니까 일렉기타는 볼륨을 크게 올리지 말아요.”
디리리링-!
교실에 단조로운 멜로디가 울려 퍼졌다. 저 기본 중의 기본 코드만 가지고 곡을 만들라니.
“으음 ···”
소이는 옆에서 아르페지오를 튕기고 있었다. 어떤 순서로 진행해야 멜로디가 정갈하게 되는지. 고민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다들 코드를 신나게 바꾸고 있구만. 근데 ···
‘이거 의미가 있는 건가?’
기타란 결국 프렛을 누르고 현을 튕기면 음이 튀어나오는 악기다.
그리고 그 프렛을 어떻게 사용하냐를 정해놓은 게 코드와 스케일이다.
그러니까.
그냥 섞이지만 않게 후리면 될 텐데?
굳이 코드를 한 번에 다 잡을 필요가 없잖아.
딱히 순서는 정해주지 않으셨다.
나는 피크를 쥐고, 기타를 튕겼다. 프렛 이동이 불편한 솔로라고 생각하면 되지.
코드 한 개당 세 개에서 네 개 음이니 조합이 제한적이라는 소리고 ···
‘하이프렛도 쓸까.’
기본 코드와 12프렛 기준 상태로의 코드를 번갈아가면서 바라보았다.
기타는 12프렛 이후 프렛이 음높이가 올라가서 반복되는 구조다.
나는 코드를 한번에 잡지 않고 분해했다.
말이 분해지 그냥 후리는 거다.
손가락 풀 때나 하는 그거. 여기에 직전 프렛 잡고 밴딩 넣어서 음 올리고 ··· 더블밴딩으로 화성 만들고.
나름 쉽네.
“···?”
나름 짧은 곡을 차근차근 만들어 가던 중, 다른 애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다들 기타에서 손 놓고 나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수재 코드 연주 안 하는데요?”
“뭐? 이거 코드연주야.”
코드를 분해했잖아. 그러니까 코드연주지.
늬들이 하는 아르페지오도 결국 분해된 거다.
“자, 그만.”
나선생님은 아이들의 지방방송을 손바닥을 치며 멈추게 했다.
“어땠나요, 재밌었나요?”
“···.”
“코드를 보고 그 스케일에 맞춰서 치라고 한다면, 분명 잘 칠 수 있었을 거예요. 그런데 ‘코드’만 가지고 치라고 하니까 머릿속이 하얘졌죠?”
나숙호 선생님의 시선에 나에게 향했다. 입가에, 은은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고정관념이에요. 코드도 결국 화성학에 따라 조합된 하나하나의 음에 불과해요. 중요한 건 얼마나 예쁜 음을 만들어 내냐에요. 알았어요?”
나선생님의 말은 아주 부드러웠다.
진짜 베테랑 교사처럼 가르침에 전혀 거리낌이 없으시다.
‘대단하다.’
내가 저 자리에 선다고 저렇게 잘 가르칠 수 있을까?
“네에···”
김태현을 제외한 애들은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다들 아르페지오를 활용하려 한 것 같던데··· 김수재 학생?”
“네?”
나선생님은 갑자기 나를 가리켰다.
“발상이 참 좋네요.”
“감사합니다.”
하민서가 나를 찌를 듯이 쳐다본다.
클래식 기타 전공은 분리 안 시켜주나?
아 제발.
“코드는 처음부터 아예 잡지도 않았지요?”
“아 네. 코드를 한 번에 잡아버리면 다른 테크닉을 쓰기 불편하니까 ···”
“어떤 곡이 나왔나요? 한 번 들려줄래요?”
이곳에 있는 모든 시선이 나에게 집중되었다.
“··· 넵.”
나는 기타와 앰프를 들고 교실 앞으로 걸어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