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genius guitarist RAW novel - Chapter 16
얼어붙은 예선전 (2)
빠각-!
적당히 울려 퍼지는 북 치는 듯한 소리.
싸커킥을 날릴 생각은 ··· 없었는데 실수로 날렸다. 아 왜 갑자기 힘 조절이 안 돼.
나는 무안한 마음에 앰프 윗부분을 발과 손으로 두들겼다.
“김수재학생 ··· 뭐 해요?”
심사위원 셋은 나를 째려보았다. 전생에 마주친 적 없는 그냥 평범한 인상의 아저씨들이다.
“이거 앰프 고장 났는데요.”
“고장 ···?”
“고장 나서 좀 때렸습니다. 원래 옛날 기계들은 때리면 말을 잘 듣거든요.”
기타와 앰프를 연결해 본다. 아무래도 회로 자체에 문제가 있는지, 아니면 스피커가 맛탱이가 갔는지.
차도는 보이지 않았다.
“제가 저거 써도 됩니까?”
나는 예고 남학생 1이 차지하고 있는 앰프를 가리켰다.
“고장이라니? 순서가 꼬이니까 지금 바꿀 수는···”
“그럼 순번을 반대로 하면 되죠.”
“··· 어?”
예고 애들이 고장 난 앰프 쓰고.
다른 애들이 정상적인 앰프 쓰면 되겠네.
아주 간단한 문제다. 시간 로스가 크게 생기지도 않을 테고.
“앰프 테스트 안 해보신 겁니까? 봐봐요.”
나는 연결된 기타를 튕겼다.
“··· 클린톤인데 드라이브가 아주 미약하게 걸려요. 회로 문제겠네요. 그리고 ···”
코드를 잡고 저음으로 팜뮤트를 튕겨보았다. 앰프에서는 미미한 치찰음이 쏟아져 나왔다.
“스피커도 맛이 갔나?”
잘 닦아놓기만 했지 같은 앰프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였다.
내가 따져 묻자, 아이들 사이에서 웅성거리는 소음이 터져 나왔다. 심사위원 한 명의 표정은 그야말로 똥 씹은 듯했다.
‘이게 대체 뭔 일이냐.’
짜고 치는 고스톱 뭐 그런 건가? 이런 작은 대회에서 번호표를 조작하면서까지?
진짜 그렇다면 난 지금 눈 밖에 난 셈이다. 그러므로 100만 원도 물 건너 가겠지.
근데 그게 무슨 상관이야?
어차피 짜고 치는 거면 내가 1위 할 수도 없는데.
“··· 확실히 스피커에 이상이 있네요. 잠시 중지.”
짧은 스포츠머리 아저씨가 심사를 멈추더니, 이내 앰프를 들고 나갔다.
돌아오기까지는 약 10분.
돌아온 그의 손에는 조금 더 작은 앰프가 들려있었다.
“이제 마음에 들어요?”
“예.”
“눈치가 빠르네요. 기대할게요.”
“…네?”
피식.
까까머리 아저씨는 미묘한 표정으로 웃었다. 그리고서, 손톱을 물어뜯고 있는 다른 아저씨에게 시선을 돌렸다.
“2번, 4번, 6번은 다시 테스트 봅시다.”
고장난 앰프로 연주한 애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차이가 난다.
예술고 애들이 조금 더 좋은 앰프이다.
나는 의자에 앉았다. 진이 빠져서 톤 세팅은 적당하게만 했다.
앰프드라이브는 쓰지 않을 거다. 쓸 만큼 좋은 퀄리티의 앰프도 아니고.
스피커는 10인치짜리라 그나마 다행이네.
“8번 시작하세요.”
나는 곧바로 im alight의 초반부에 들어갔다.
“··· 유명한 곡이네.”
“그러게요.”
“무난한데요?”
그래, 무난하지.
아주 무난한 곡이다.
대학 입시에서 쓰일 정도로 유명하고, 이름 빨 날리는 곡.
하지만 결코 만만한 곡은 아니다.
초반부는 그리 빠른 템포가 아닌데도 손이 꼬인다. 애초에 닐자자가 노트를 그렇게 찍어 놨다.
“··· 깔끔하네.”
“라이브 버전이라 했나?”
스튜디오 버전도 나름 어렵지만, 라이브 버전은 더하다.
스윕피킹이 왕창 들어가고, 찐득한 애드립이 묻어 있는 라이브버전.
비교하면 거의 다른 곡처럼 느껴진다.
기타의 모든 지판을 청소하듯 훑고 지나가는 스윕은, 전공생이라 하더라도 쉽게 따라 하기가 힘들다.
칠 수는 있어도, 표현하기가 난해하다.
멜로디가 가져다주는 전율. 붉은 노을을 떠올리게 하는, 그런 감성적인 부분을 말이다.
카아아앙-!
애드립으로 피킹 하모닉스를 넣었다. 찌릿하면서도 감성적이고, 자연스럽게 생각에 잠기게 하는 곡.
신나는 분위기는 아니다. 그저 가방을 들쳐메고, 하굣길에 붉게 물든 하늘을 바라보는 느낌만이 머릿 속에 맴돈다.
톤이 날카로워도 그리 느껴지지 않도록, 날서지 않은 감성적인 부분을 표현해야 한다.
어렵다.
실수로 다른 줄을 건드리기도 쉽고, 그러면 그냥 분위기가 아예 망가진다.
하지만 난···
“잘 치는데··· 진짜 유산고 학생이야?”
“1학년이라는데요?”
이 곡을 진짜 많이 쳤다.
어느 정도 실력이 쌓이면 연습할 때 적당히 손 풀 곡을 찾게 된다.
이게 진짜 손 풀기에 딱이다.
초반부는 빠르지는 않으면서 손가락만 꼬이는 그런 구조고,
후반 스윕피킹은 전력을 쏟아야 한다.
게다가 감성충전에도 좋으니 아주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셈.
픽업 셀렉터를 리어로 바꾸었다.
연주가 슬슬 막바지에 치닫는다. 나는 닐 자자 특유의 욱여넣는 듯한 헤머링을 하면서, 스윕피킹에 대비했다.
드르르르르륵-!
“··· 왜 실수를 하나도 안 해?”
아까 내 기타를 보고 비웃었던 예고 남학생은 그리 중얼거렸다.
실수라 ···
끊김 없이 현을 타고 내려가는 이코노믹 피킹.
그리고 이코노믹 피킹과 구조가 비슷한 스윕피킹.
나는 두 기술에 자신이 있었다. 손목에 부담이 안 가니까 연마하기가 편했다.
“··· 쟤가 김태현이야?”
“아니, 김태현은 저기 있잖아.”
쟤는 진짜 유명하네. 최유진한테 듣기론 아주 어릴 때 tv에 나온 적이 있다던데.
왜 기억을 못 했지?
나는 라이브 버전의 후반 뇌절 파트를 쳐내고, 적당하게 곡을 끝냈다.
“··· 유산고 1학년 8반 김수재 학생. 잘 들었어요.”
심사위원은 다른 애들에게 그랬듯이 별다른 감상평을 내지 않았다.
감상평은 본선에서나 해주는 걸까.
하지만 ···
나에게 쏟아지는 시선들이, 연주 전과 비교해서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것은 잘 알겠다.
“···유산고를 왜 간 거야 저 실력인데.”
“김태현도 갔잖아. 동류 아니야?”
“예고 입시 떨어질 정도가 아닌데 ···”
지금의 나보다 한 두살 많아 보이는 예고생들이 묵묵히 의견을 냈다.
만약내가 반년만 더 일찍 회귀했어도 유산고에 왔을까.
예고는 빡세다니까 좀 그런데.
김태현은 멀리서 나에게 엄지를 치켜세웠다.
은근 고맙네. 나도 똑같이 답했다.
“··· 뭐야? 왜이리 잘 쳐?”
“아 맞다. 너 내 연주 들은 적이 없지.”
“콜트 맞아? 소리가 좀 좋던데 ···”
최유진은 나의 기타를 아주 유심히 쳐다보았다.
어제 동판 테이프 작업을 해서 톤이 좀 정돈됐지. 엣햄.
“이제 가도 되는 건가?”
“내 연주는!?”
“보고 갈게.”
얼마 지나지 않아 최유진의 차례가 다가왔다. 입시로 유명한 재즈 스타일의 곡을 멋들어지게 후리는 최유진.
레스폴이 사기라니까. 클린톤도 예쁘고 메탈까지 소화 가능하고.
근데 하이프렛 치기가 너무 힘들어서 당장 메인으로 쓰기에는 좀.
“쟤도 유산고인가?”
“유산고 애들 은근 실력 좋네.”
삼수라고는 하지만 최유진은 음대에 붙는다. 그리고서, 유튜브 병행 기타강사로 활약하지.
회귀 전의 나보다 나은 삶을 살아가는 기타쟁이였다.
거의 끝번이 돼서야 김태현이 나왔다. 김태현의 기타는 ···
슈퍼스트랫인가.
완전 올 블랙의 멋들어진 esp기타였다. 난 저거 돈 주고 사려면 좀 아깝던데.
Esp까는 건 아닌데 그냥 그렇다고.
특히 저 플로이드 로즈 브릿지를 용서할 수 없다. 튜닝하기가 기가 막히게 힘든 ‘저것’을 나는 정말 진심으로 싫어한다.
가끔 뮬장터에 올라온 것을 보고 구매욕이 생길때도 있지만, 튜닝할 생각에 금세 팍 식어버린다.
“와 ··· 이건 좀 대단하네.”
“뭐가?”
“곡 듣다 보니 기타에 시선이 안가잖아.”
“어··· 그건 그래.”
락킹한 디자인의 슈퍼스트랫으로 블루스를 조지네.
생각해보면 외견 빼고는 그다지 이상한 조합이 아니었다. 건전지가 들어가는 emg픽업은 아주 뭉툭하고 따듯한 소리를 내준다.
게인을 걸면 메탈머신으로 변화하지만, 클린톤도 좋다.
‘잘 치네 ···’
고등학생 시절의 나보다 잘 친다.
모든 학생들의 연주가 끝났다. 심사위원 아재들은 서류를 정리하고서 수고하셨어요~ 라는 말만을 남긴 채 자리를 떴다.
“야, 방금 그 앰프···”
“노린 게 아니길 바래야지.”
마음이 찜찜했다.
“수재야!”
김태현이 여자애들 무리를 따돌리고 나와 최유진에게 다가왔다.
“너 역시 잘 치더라. 대단해. 몰래 연습한 거야?”
“아니. 내가 원래 좀 치지.”
자만감인가?
아니, 자신감이다.
“으엑, 개극혐이야.”
최유진은 구역질하는 시늉을 했다. 진짜 개때리고싶네.
“야, 근데 너도 앰프 이상한 거 느끼지 않았냐?”
얘도 귀가 트였을 거다. 고장난 앰프를 구별하는 것쯤이야 식은 죽 먹기일 텐데.
“나도 눈치챘었어.”
“··· 응?”
김태현은 씨익 미소 지으며 내 어깨를 툭툭 치고서는 사라졌다.
“뭐지?”
“그러게.”
나랑 최유진만이 바보 같은 표정으로 의문을 띄울 뿐이었다.
“소이 힘내라.”
난 스쳐 지나가는 반듯한 앞머리에 인사했다.
“어 ···응. 고마워”
기타 치는 애들이 많긴 많구나. 소이는 두 번째로 들어가나 보다.
찌릿,
수수하게 차려입은 중년 여성이 나를 강하게 노려보았다. 소이 어머님인가? 닮은 곳은 없는 것 같은데 ···
나는 고개를 숙였다.
꾸벅.
중년 여성 또한 작게 고개를 까딱인 뒤, 소이를 안으로 들여보냈다.
“··· 싱겁구만.”
“난 긴장돼서 죽는 줄 알았는데.”
“짬밥의 차이라는 거지.”
“무슨 ··· 아, 맞다 너 진짜 1년 쳤어?”
“몰라.”
난 애매하게 대답한 뒤에 건물에서 나갔다. 계단에서 하민서랑 잠깐 마주쳤지만 당연히 씹었다.
최유진이랑 그냥 찢어지기도 뭐해서 편의점에서 열라면이랑 삼각김밥을 박살내버렸다.
역시 얘 잘 먹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대회냐.’
참 의문이다.
***
“제 말이 맞죠?”
“그러게.”
김태현은 스포츠머리를 한 중년 남성을 올려다보며 만족스런 표정을 지었다.
건물 근처의 흡연장.
기타리스트와 담배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라고나 할까.
김태현은 매퀘한 연기를 참으며 대화에 집중했다.
“태현이 네가 긴장할만하다. 진짜 잘 쳐. 경력은 분명 네가 더 길다고 했지?”
“네.”
“스읍 ··· 하. 아니야, 거짓말 같아.”
“전 여덟 살 때부터 쳤는데요.”
“그렇구나. 너보다 길게 쳤다는 건··· 역시 말이 안 되네.”
중년 남성은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그리고 ··· 예고 애들한테는 실망이다.”
“번호는 우연이에요?”
“예고생들이 많아. 그러니까 예고, 일반고 학생들을 번갈아가면서 봐야 돼. 예고생이 많다고 칼질해서 떨어뜨리면, 그건 그거대로 형평성에 어긋나니까.”
“그럼 앰프는···”
“내 짓 아니다. 난 아침에야 여기 왔어.”
두사람은 한 두번 마주친 사이가 아니었다.
김태현의 스승인 윤대혁의 지인. 한 다리를 건너서 이어진 인연.
외부활동을 거의 안 하는, 교회 반주에서나 코드를 튕기는 은거 기타리스트.
김태현은 담배를 든 중년남성의 왼손을 유심히 쳐다보았다.
약지가 없었다.
“처음 들었을 때 왜 안 말했냐? 고장난 앰프를 네가 쓸 수도 있었잖아?”
“제 차례가 올 때까지 기다리려고 했어요.”
“··· 하, 것 참. 능구렁이 같네. 소리가 애매하긴 했어. 연주자가 ‘언뜻’ 실수한 것처럼 보이게 고장나 있었지.”
“그걸 김수재는 알아냈고요.”
“문제는, 반대편 앰프 쓰던 예고 애들은 입 싹 닫고 있었다는 거다. 귀가 안 좋은 건지, 아니면 그냥 무시한 건지.”
턱턱.
중년남성은 담배를 잿덜이에 털었다.
“아무리 경쟁이라고는 해도, 아닌 건 아닌 거야. 괜한 피해자가 나올 뻔했어. 난 가서 따져 물을 생각이다.”
“괜찮으시겠어요?”
“괜찮아. 짤려도 저작권료가 있으니까.”
“라면 값은 나와요?”
“이놈 봐라. 한 박스 값은 매일 나온다.”
중년 남성은 씨익 웃으며 담배를 하나 더 꺼내려다 김태현의 표정을 보고 도로 집어넣었다.
“본선 열심히 준비해야 할 거야. 김수재라고 했나 ··· 걘 전혀 긴장하질 않았어. 오히려 적당히 치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 그래야겠어요.”
“대체 저런 애가 어디서 튀어나온 건지 원 ···”
***
등교후 담임 시간. A4용지를 팔랑거리며 교실에 들어오시는 채미현 선생님.
“자, 어제 콩쿠르 예선 있었지? 결과가 벌써 나왔어. 기타부문 합격자 김태현 김수재 하민서 베이스 이도현 드럼은 ··· 없네. 너무 기죽지 말고. 다음에 잘하면 되니까. 어제 예고 옆에서 예선 본 애들은 이 세 종목이 다지? 바이올린은?”
“수요일이에요~”
“그래? 열심히 하고.”
난 정신이 멍했다.
“…어?”
붙었네.
뭔 흑막이 있을 것 같았는데.
의외로 쉽사리 붙었잖아? 김태현도 붙었고.
“김태현 하민서는 ··· 그렇다 쳐도, 김수재도 잘 치긴 하는데··· 좀 이상해.”
“이도현도 붙었잖아.”
“쟤들 맨날 앰프도 안 꼽고 교실에서 ···”
“김수재는 금요일에 왔는데?”
“아, 하루밖에 안 됐구나.”
“재능을 주면 하나를 가져간대잖아 ···”
반 대표 병신은 나랑 도현이가 된 모양이다. 하민서는 병신이 아니라 또라이니까 납득.
“··· 합주콜?”
얜 진짜 병신이네.
“콜.”
나는 바로 대답했다.
“월요일은 전공지원 수업이야. 4교시까지 정규수업 잘 마치고 밥 먹은 다음에 수업 받으면 돼. 이상 전달사항 끝.”
“선생님도 들어오세요?”
“난 보조~”
채미현 선생님은 환하게 웃으셨다.
전공지원 수업이라 ···
나선생님을 만나뵐 수 있다는 사실에 나는 벌써부터 가슴이 벅차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