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genius guitarist RAW novel - Chapter 199
207화. 천국의 문턱에서 (5)
“[곡을… 봐준다고요?]”
화면 속 마크 메이어는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고개를 끄덕인 건지 그냥 음악 비트에 맞춰서 까딱거리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긍정하는 것처럼 보이기는 했다.
“….”
나는 핸드폰에 이어폰을 끼웠다.
소리를 조금이라도 더 잘 듣기 위해서.
음원 자체가 매우 구리긴 하지만, 핸드폰 스피커보다는 조금 더 나은 소리를 기대하면서.
“… 진짜 잘 치네.”
티끌 없이 순수한 감상이 입에서 자동으로 터져 나왔다.
잘 친다.
잘 치는데…
기분이 이상하다.
객관적으로 따져보면 잘 치는 건 윤대혁 선배도, 다른 세션 기타리스트들도 마찬가지일 텐데.
달랐다.
귀에 들리는 이 소리는, 내가 아는 ‘잘 치는’ 것과는 궤가 달랐다.
구체적으로는 뭐가 어떻게 다른 건지는 지금의 내가 표현하기란 불가능하지만,
적어도 삶이 음악에 녹아들어 있는 것만은 이해할 수 있었다.
카아앙-!
어둠침침한 광원 때문에 앰프가 정확히 어떤 것인지는 잘 보이지 않았다.
다만, 발 등치를 보니 이펙터는 단 하나도 연결되어 있지 않다는 것은 알겠다.
기타는 스트라토캐스터의 형태에 가까웠다.
그리고 나는.
내가, 저 사람이 쓰는 ‘장비’를 무심코 분석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럴 수가….”
왜, 초보 때는 다들 그러잖아.
뭔가 ‘좋은 연주’를 들으면 그걸 연주한 연주자가 어떤 장비를 쓰는지 괜히 찾아보고 싶어지잖아.
장비를 똑같이 맞추는 것만으로는 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더라도.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잖아.
“….”
기타를 시작하고서 반년 정도가 지났을 때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저질의 음질과 구린 화질 앞에.
나는, 초보자가 됐다.
“[오우… 내가 지금까지 본 네 표정 중에 제일 바보 같다.]”
“….”
“[엥? 화 안 내내?]”
나는 지금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도저히 핸드폰 구석탱이의 셀프 얼굴 화면을 확대해볼 용기가 나지 않는다.
그렇기에, 그냥 개 바보 같고 멍청한 표정을 짓고 있으리라 멋대로 추측했다.
“[화 안 나요. 사실이니까.]”
“[….]”
“[다시 한번 물을게요. 저 사람… 누굽니까?]”
영국이라고 했나?
하필이면 진짜 뮤지션의 나라 그 자체네.
미국이랑 영국만 아니면 누군지 딱 집을 수 있을 텐데.
“[유명한 … 아주 유명한 사람이라고만 해둘게. 괜히 내가 입 놀려서 유명인의 신상을 유출할 수는 없잖아?]”
마크 메이어는 만취한 상태임에도 말실수 하나를 하지 않았다.
괜히 아시아 지부장 자리까지 올라간 게 아니구나.
존나 철저하구나.
“[그건 그렇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자. 저 양반이 널 꽤나 좋게 보고 있어.]”
“[저, 저를요?]”
“[그래서 내가 통화를 건 거고.]”
“[절 위해 일부러 부탁하신 겁니까?]”
“[아니, 저 양반이 먼저 말을 꺼냈어.]”
….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기타에 혼을 쏟으며 연주를 하고 있는 저 사람이, 내가 알 정도로 유명한 사람일 거란 게 소름이 돋았다.
그리고 동시에, 가슴이 답답해짐을 느꼈다.
당장이라도 화면 속으로 뛰어든 다음에 등을 돌려버리고 싶다.
저 거대한 자의 얼굴을, 확인하고 싶다.
그러고 싶다.
그저 단순하고 비대한 욕망이었다.
“[어쨌든, 들어보라고.]”
….
나는 계속해서 그의 연주를 들었다.
이어폰을 빼던지고, 영국행 비행기 표를 끊고 싶은 욕구가 무럭무럭 올라왔지만, 이내 참아냈다.
“….”
딱히 만들어져 있는 곡은 아니었다.
그저, 즉흥 연주.
동시에 너무나 치밀하게 짜여져서 ‘이런 곡이 있었나?’라며 의문이 들만한 연주.
황홀했다.
그리고 어김없이, 황홀한 시간은 너무나도 짧게 느껴졌다.
“아 ….”
그가 무대에서 일어나자, 가장 먼저 아쉬움이 입에서 터져 나왔다.
하지만 이내,
터벅 터벅.
그가 화면 가까이로 다가오니, 다시금 가슴이 뛰었다.
뭐랄까.
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모르지만,
존경심이 생겨났다.
팬심이 생겨났다.
나는 찰나의 순간에 그의 팬이 되었다.
“[안녕 꼬마야.]”
주변 잡음이 섞여 있었음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남자의 목소리는 쉬어 있었다.
“[여, 연주 정말 쟐 들었습니다!]”
머릿속 번역체계가 박살이라도 난 듯 영어를 더듬어버렸다.
아직도 어안이 벙벙한 상태이니 어쩔 수가 없다.
아마 한국어로 말했어도 더듬었을 거다.
“[그래, 고맙다. 나도 네 연주를 항상 잘 듣고 있어.]”
“….”
“[지켜보고 있었단다.]”
“…!”
“[잘 치더라고. 그냥 잘 치는 게 아니라, 맛있게. 맛깔나게.]”
나는 크게 숨을 삼켰다.
맛깔나게라 ….
들어본 적이 있는 표현이었다.
그리고, 회귀 전의 나를 항상 따라다니던 표현이기도 했다.
다만,
“[… 조잡하진 않던가요?]”
“[글쎄, 그렇지는 않아. 그저 맛깔날 뿐이야. 그래서 내가 지금 너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거고.]”
그는 조잡하다는 표현을 붙이지 않았다.
언제나 ‘맛깔난다’라는 표현 뒤에 따라다니던 문장이, 덧붙여지지 않았다.
나는 그게 너무나 기뻤다.
“[그럼, 나도 들어볼까.]”
그는, 인사가 끝나자마자 그리 말했다.
내 연주를 들려줬으니, 너도 내게 연주를 들려주라고만 말했다.
영상통화의 화면은, 여전히 영국 펍의 구석탱이만을 비추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예.]”
그 영국 펍의 구석탱이에, 연주를 전할 준비를 했다.
탁- 타탁-!
쓰레기장에서 주워온 판떼기로 만든 페달 보드를 감동 슈퍼마켙의 명물, 트윈리버브에 직렬로 꽂는다.
그리고서, 내 나름의 돼지 두루치기 같은 ‘확정적인’ 레시피로 톤 세팅을 한다.
쟈아아아앙-!
개조에 개조를 거친 기타의 소리가, 앰프에서 뿜어져 나왔다.
알던 소리, 나만의 소리였다.
“[들리는군.]”
핸드폰으로 수음도 무사히 잘 되는 모양이다.
“[치겠습니다.]”
딱히 대답이 돌아오지는 않았다.
그러므로 그냥 멋대로 시작했다.
백킹 트랙도 없이, 기타만 딸랑.
내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던 멜로디를, 거침없이 튕겨 나갔다.
카아앙-!
펜더 노이즈리스 리어픽업의 날카로운 소리.
그리고, 그 날카로운 소리가 한껏 표현해 주는 날카로운 음율.
첫 타자는 도현이와 혁오가 가장 좋은 반응을 보였던 멜로디였다.
훅뿐이지만 자신이 있었다.
쥬우우웅-!
두 번째 멜로디는, 학원에서 시간 될 때마다 마구 치며 틀을 잡아 놓았던 놈이다.
학원 애들이나 윤대혁 선배가 ‘신곡이냐?’물을 만큼 완성도가 괜찮은 녀석이다.
“[… 나쁘지 않아.]”
“[이게 바로 빨기좝니다. 저걸 다 곡으로 만들면 흐흐흐 돈이 그냥…]”
긍정적인 반응들이었다.
그러므로 나는, 더더욱 심혈을 쏟았다.
1절에 그랜절에 뇌절까지 걱정 없이 다 했다!
고수에게 육성으로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기회이자 앞으로 두 번 다시 찾아오지 않을지도 모르는 기회니까 당연했다.
카아앙-!
나는, 내 모든 것을 쏟아냈다.
그리고,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훔치며 피크를 내려놓았다.
“…”
연주가 끝나니 침묵이 찾아왔다.
그가 말을 꺼낸 것은 약 1분 뒤였다.
다만, 감상평은 아니었다.
“[예선 동영상을 봤는데… 일부러 어려운 길을 가더라고. 굳이 기타 개조를 하지 않아도 본선에 오를 수 있었을 텐데. 왜 그랬던 거지?]”
….
갑작스러운 질문에 순간 뇌 정지가 오기는 했지만,
나는 필사적으로 생각을 가다듬고야 말았다.
왜 그랬냐,
왜 굳이 이상한 짓을 하느냐.
그딴 짓을 하지 않더라도 예선 1위는 쉽게 먹을 수 있지 않느냐.
그곳에 있던 관객이라면,
내 예선 동영상을 봤던 사람이라면, 당연히 들 수 있는 의문이었다.
“[특별해 보이고 싶었던 건가?]”
“[맞습니다.]”
나는 즉답했다.
팩트였기 때문이다.
수많은 참가자들 사이에서 가장 특별해지고 싶은 욕망.
뮤지션인 이상에야 아주 당연하고 또 당연한 욕망이었다.
하지만,
“[근데, 그것 때문만은 아닙니다.]”
다른 이유도 있었다.
“[그럼?]”
“[제가 특별해지는 것도 좋지만, 제 연주를 들으러 온 팬들에게 특별한 경험을 시켜주고도 싶었습니다.]”
“….”
“[조금이라도 더 좋은 소리를 들려주고 싶었습니다.]”
“[그게 다른 참가자들의 의심을 낳더라도?]”
“[누가 저한테 ‘개조빨’이라고 하던가요?]”
“[글쎄, 그런 의견이 없지는 않지.]”
뭐, 확실하게 ‘실력’으로 찍어누르는 모양새가 조금 더 좋기는 하겠지.
인정한다.
다만,
“[관객들의 돈이랑 시간은 공짜가 아니잖아요.]”
같은 돈을 쓰더라도 조금 더 질 좋은 음식을 먹고 싶지 않은가.
공연도 마찬가지다.
같은 돈과 시간이 들어간다면, 조금 더 재밌고 새로운 공연이 좋다.
끝나고 나서도 사람들과 공연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면 좋다.
그러므로, 이야기를 나눌 거리가 있으면 좋다.
나는 이야깃거리를 만들었다.
신기한 경험을 만들었다.
그리고, 아주 만족스러웠다.
“[그렇군.]”
모습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가 작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연주는 훌륭해. 멜로디도 훌륭해. 그 멜로디들로 곡을 만들면 성공할 거야. 많이 팔리겠지.]”
“[…!]”
무수하고 거센 칭찬의 향연이었다.
하지만,
역시나.
대가(大家)의 시선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도 까마득히 예리한 모양이었다.
“[근데, 중요한 건 그게 아닐 거야.]”
“….”
“[그 정도 멜로디를 갖고 있음에도 고민을 한다면, 노림수의 경지가 상상을 초월한다는 것. 지나친 욕심이지.]”
“….”
“[더욱, 지금보다 더더욱 유명해지고 싶은 건가? W-legc의 본선과 결선을, 자신의 이름을 세상에 전파할 기회로 삼고 싶은 건가?]”
그는, 이 세상 제일가는 욕심쟁이를 앞에 둔 듯한 어투로 이야기했다.
… 뼈가 아프다.
다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나를 간파하고 있었다.
근데 그게 기분 나쁘지는 않았다.
“[맞습니다.]”
“[역시.]”
“[그곳에 모일 모든 사람들이 제 연주를 듣고서 평생 안 잊었으면 좋겠습니다. 제 이름도요.]”
본선에 찾아올 관객 중엔 내 이름을 모르는 사람도 있을 거고,
딱히 기타에 관심이 없음에도 그냥 친구 따라 가족 따라오는 사람도 있을 거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내 욕심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네 연주와 곡에는 스토리가 있고, 배경이 있어. 듣는 순간 머릿속에 풍경이 그려지지. 떠올리는 풍경은 사람마다 다를지라도 뇌가 놀지는 않을 거야.]”
“[… 감사합니다.]”
“[근데, 방금 전의 멜로디는?]”
“…!”
“[어떻게 살을 붙일지, 어떤 방향으로 분위기를 잡아야 할지 고민했었나?]”
“[그건 ….]”
“[생각 없이 살을 붙였나? 아니면 아직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았나? 뭐, 어찌 되었건.]”
그는 내게 대답을 요구하지 않았다.
여기서 뭐라 말하든 간에, 변명처럼 들릴 게 확실하기 때문에.
그도 그걸 알고 있는 것이다.
“[자네는, 관객석에 있는 모든 사람이 비슷한 풍경을 떠올리길 바라는 거겠지. 인종과 국적이 다 달라도 말이야.]”
“[네.]”
“[그리고 그런 곡을 갖고 싶은 거겠지.]”
“[… 네.]”
“[런던에 가본 적이 있나?]”
그는, 다짜고짜 이야기를 시작했다.
풍경에 대한 이야기를.
런던에 대한 이야기를.
“[런던은 비가 자주 와. 이맘때쯤이면 더 날씨가 개판이지. 그런데 우산을 들고 다니는 사람은 거의 없어. 비가 또 거세게 내리지는 않거든.]”
그가 말하는 것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냥 비를 맞아. 맞으면 스웨터에 방울방울 습기가 맺히는데, 그걸 손으로 훑으면 땟국물이 묻어나와서 손이 더러워지지.]”
생생한 풍경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길은 미끄러운데 쇠파이프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은 브레이크가 없어. 근데 막상 사고가 나는 모습은 보기가 힘들어. 그들이 네 옆에 지나가면, 빗방울이 튀어서 눅눅한 냄새가 더욱 짙어질 거야.]”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음에도.
나는 그것을 느꼈다.
눅눅한 냄새.
런던의 냄새.
그리고 동시에,
“…!”
“[네가 보게 될 풍경이자, 그곳에 모일 모든 사람들이 보게 될 풍경.]”
머릿속이 전기로 지져지는 듯한 느낌이 드는,
“[어떤가? 런던을 배경으로, 스토리를 만들 수 있겠나?]”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 예!]”
그렇구나.
배경.
그것이 문제였다.
어떤 배경을 선정하고 곡을 만들어야 할지 고민이었는데.
그곳에 올 사람들이 어떤 배경에 공감할지 고민이었는데.
일순간에 해결되었다.
런던에 사는 사람은, 런던의 풍경을 알고 있을 것이다.
런던에 살지 않는 사람도, 공연을 보러오며 런던의 풍경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런던을 배경으로 하는 음악의 풍경을 쉽사리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습기 차고 눅눅하면서도 짜증 나지 않는 멜로디를 만들어 낸다면!
절대로, 잊지 못할 것이다!
“[그렇군.]”
“[만들 수 있습니다. 그곳에 모일 사람들이 모두 공감할만한 곡을, 만들 수 있습니다.]”
“[다행이야.]”
나는 재빨리 기타를 잡아들었다.
한시라도 더 빨리, 머릿속에 떠오른 이 느낌을 확정 짓기 위해서.
하지만,
“[곡은 다음 달에 듣도록 하지. 기대할게.]”
그는 가장 맛있는 부분을, 나중에 맛보려고 하는 모양이었다.
“[… 질문이 있습니다.]”
“[응?]”
“[당신은 누구입니까?]”
“[내가 누구인지에 따라서 너의 곡이 바뀌나?]”
“[아뇨.]”
그럴 일은 없다.
절대로 말이다.
“[그냥 당신의 앨범을 사고 팬클럽에 가입하려면 이름은 알아둬야 할 거 같아서요.]”
“[흐흐흐하하하.]”
쇳소리가 담긴 웃음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그래서 나도 그냥 같이 웃었다.
“[그래, 내 이름은 …]”
휙, 카메라가 돌아간다.
주름진 남성의 얼굴이, 천정에 달린 잔잔한 조명과 함께 비친다.
알고 있는 얼굴.
그리고, 익숙한 얼굴이었다.
“[제프. 그래, 제프라고 부르면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