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genius guitarist RAW novel - Chapter 212
219화. 기타의 제왕 (6)
시간이 꽤 많이 흘렀다.
10시 즈음에 시작해서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덧 12시 20분.
무대 전환이 상당히 빨랐기에 순서는 이미 10번대 중반까지 밀어닥친 상태였다.
그리고,
“다들 정신을 못 차리는구만.”
“….”
나는 현 사태를, 참으로 믿기가 힘들었다.
뭐랄까.
저 광경을 대체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파블로프….”
“그래 그거!”
소이도 나랑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나 보다.
맞다.
파블로프의 개.
무대를 보러 와준 고마운 분들한테 개 같다고 표현하는 게 좀 그렇긴 하지만, 이보다 더 잘 어울리는 단어가 없다.
관객들은, 좋은 소리에 반응했다.
이상하리만치 곡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톤에, 청각 신경을 집중시켰다.
물론 이 대회는 천하제일 톤 메이킹 대회가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실력.
얼마나 좋은 연주를 선보이느냐가 최중요점이다.
문제는 …
“심지어 실력도 좋네….”
여기 모인 인간들이, 실력이 ‘조금은’ 부족할 수는 있을지언정 기준미달일 리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무조건 ‘하위권’ 참가자들로만 세력을 꾸린 것도 아니란 것이다.
“눈 깜짝하는 사이에 걸려들었어.”
진짜로 덫에 걸린 느낌이었다.
지금은 자리를 피한 이탈리아인 여자의 말대로.
아주 보기 좋게 말이다.
“어떡할래?”
김태현이 턱을 슥슥 쓰다듬으며 물었다.
“어떡하냐니?”
“너희 위기 상황인 거 아니야? 이대로 가다간….”
“….”
이대로 가다간,
‘세력’에 의해 조교 되어버린 관객들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심사위원들까지 세력의 농간에 놀아나지는 않을 것 같지만,
관객들의 환호성이 없다면 연주하는 맛이 떨어질 것이다.
그러면 결국, 연주력 감퇴가 일어날 수도 있을 것이다.
“….”
나는 마땅한 해답을 내놓지 못했다.
머리를 쥐어 짜내고는 있는데, 도통 전혀 모르겠다.
“으으…”
한참을 끙끙거리고 있자, 소이가 내 소매를 잡아끌었다.
“우선 커피라도 마실래…?”
구석에 놓여 있던 24개들이 캔박스가 눈에 들어온다.
free라고 적혀 있는 걸 보니 자유롭게 갖다 마셔도 되나 보다.
“그래.”
우리는 우선 카페인의 힘을 빌려보도록 했다.
뭐, 커피를 들이켠다고 해서 지능이 올라가는 건 아니었지만.
“나도 하나 받자.”
한참을 홀짝대고 있자 조금 어색한 억양의 한국어가 들려왔다.
안태식이었다.
“… 어디 갔다 왔냐?”
“나?”
안태식이는 캔커피를 건네받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게임 하다 왔는데?”
“게임!?”
이 상황에 게임을 한다고?
진심인가?
의문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자, 안태식이는 핸드폰 화면을 내게 들이밀었다.
눈동자가 이상하리만치 반짝이는 미소녀 캐릭터 아홉이 눈알을 강타했다.
“너 그런 거 하니?”
“이거 재밌어.”
안태식이 씹덕이었구나.
그건 몰랐네.
“아, 그리고 네가 저번에 말한 ‘카스미’란 이름도 게임 캐릭터 이름이더라?”
아니면 혹시 ‘개찬’된 건가 …?
내가 회귀함으로 인해서?
얘랑 만나서!?
머릿속에, 안태식이가 초고가 씹덕 기타를 들고 무대를 누비는 광경이 생생하게 그려졌다.
너무나도 충격적이라서 바로 지워버렸다.
“되게 여유로워 보인다 야.”
“글쎄?”
“아니야?”
“….”
나는 안태식이를 지긋이 쳐다보았다.
설마 체념한 건가?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아닐 거다.
안태식이는, 아시아에서 최상위권으로 예선을 통과했으니까.
그는 체념할 만큼의 약자가 절대로 아니다.
“지금 상황이 상당히 심각한 건 알고 있지?”
“대충은. 울면서 나가는 사람도 있더라.”
“….”
다 알고 있네.
그러면서 게임을 조진 거구나.
나는 가만히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자,
“음! 되게 현명해!”
김태현이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끼어들었다.
“현명?”
“응!”
“손은 이미 풀어 뒀고, 지금 뭘 더 노력한다고 해서 바뀌는 것도 없고.”
안태식이는 덤덤하게 말하더니, 드르륵-!
의자를 끌어 기타를 눕히고 줄을 닦기 시작했다.
“그건 ….”
“매일 쓰던 거.”
“….”
“뭐든지 빌려준다고는 하는데 끌리지가 않더라고.”
“아무것도 안 빌린 거야?”
“아무것도. 다 내 거야.”
안태식이는 페달 보드도 꺼냈다.
그라운드 루프를 신경 쓰는 것인지, 모든 이펙터가 대용량 보조배터리에 물려 있었다.
하지만, 그 구성은 …
“부띠끄는?”
“거의 다 팔았지.”
이전과 상당히 달라졌다.
“드라이브 페달 한 개 빼고, 다 다시 샀어. 예쁜 소리는 나지 않는데 … 생동감 넘치더라고. 네가 보여줬던 무대처럼.”
안태식이는 피식, 웃음을 지었다.
“너도 깨달았을 텐데.”
“….”
“좋아 장비를 빌려주겠다. 최고의 소리를 만들어서, 최고의 컨디션으로 최고의 무대를 만들어라. 듣기에는 좋지만 말이야 ….”
그런 다음 기타를 어깨에 걸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완전히 새로운 장비에 적응해서 ‘내 소리’로 만들려면, 몇 달을 써도 부족하더라고.”
– 자, 관객은 지쳐도, 참가자는 지치지 않습니다! 당연하지요! 단 한 곡밖에 연주하지 않으니까요! 지치는 것은 여러분뿐! 그러므로 여러분에게 활기를 불어넣는 것도 참가자들의 몫! 다음 순번은 17번입니다!
지칠 줄 모르는 사회자의 부름에 따랐다.
묵묵히.
일본 특유의 장인정신을 직접 내게 보여주려는 듯이.
“먼저 나가볼게. 그리고, 기대할게.”
“….”
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동시에, 머릿속에 저장되어 있던 안태식이에 대한 정보를 다시 써 내려갔다.
그는, 더 이상 내가 알고 있던 인물이 아니다.
‘예쁘고 듣기 좋은 소리’에만 집착하던, 재패니즈 유튜버 기타리스트가 아니다.
그는,
일렉기타 역사상 유례없이 거대한 대회를 앞두고 당당히 씹덕 게임을 하는,
권모술수를 인지한 채로 정면 돌파를 시도하는!
“야수의 심장…!”
야수의 기타리스트였다!
“으… 응?”
“… 내가 잘못 생각했어. 아니, 이미 일고 있었는데 잊고 있었어.”
“응…?!”
나는 소이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이어서, 소이의 기타도 바라보았다.
평소에 쓰던 핑크색 기타였다.
“소이야.”
“응.”
“흐름이 바뀔 거야.”
“… 그런 거야?”
“그럼.”
무대는 컴컴했다.
세팅 과정을 관객들에게 보이지 않도록 심사가 끝나는 대로 암전되었다.
다만,
심사위원석만은.
불이 꺼지지 않았다.
“봐봐.”
마치 사이버펑크 세계관의 ‘왕좌’같이, 화려한 네온사인이 비추는 테이블.
그곳에 앉아 있는, 여섯의 남정네들.
그들 중 절반의 표정은,
“뭔가 좀 이상하지?”
유독 심드렁해 보였다.
***
기타가 됐든 베이스가 됐든 바이올린이 됐든 지식은 중요하다.
음악은 과학이니까.
과학적인 파장, 패턴, 왜곡으로 좋고 그름이 결정되니까.
과거라면 몰라도, 현대 음악 시장에서는 지식이 없으면 말짱 도루묵이다.
물론 그 지식을 ‘실전’에 적용시키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이지만,
다 알지 않는가.
버클리급의 음악대학은, 그런 실력이 없는 자를 받질 않는다는 걸.
그러므로 졸업하는 자들 중에 실력과 지식이 없는 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그리고 그들을 ‘가르치는 사람’이라면?
과연 실력과 지식이 모자랄까?
대외적인 유명세가 없더라도, 일반인들이 단 한 번도 못 들어봤더라도.
아서 크리스턴은, 명실상부 자타공인 고수였다.
그리고 그 ‘고수’는 지금,
“[대체…]”
‘당황감’을 느끼고 있었다.
지이잉-!
기타의 소리가 들려왔다.
아까부터 계속.
처음 들어보는 참가자들만의 ‘자작곡’도 들려왔고, 커버곡도 들려왔다.
하지만 중간중간에, 유독 눈에 띄는 참가자들이 문제였다.
“[문제 … 라.]”
이상했다.
연주 잘하고.
실수 없고.
화끈한 곡은 화끈하게, 시원한 곡은 시원하게.
묵직함이 중요시되는 곡이라면 묵직하게.
딱딱 잘 맞아떨어지는데 대체 왜.
자신은 이것을,
‘문제’라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앰프에서 뿜어져 나오는 소리를 바로 수음해서 레코딩해도 되겠다 싶을 퀄리티다.
그런데, 마음이.
마음 한구석이.
석연치 않았다.
– 와아아아아아아아!
함성이 또다시 들려왔다.
16번 참가자의 연주가 끝나고, 평가 시간이 찾아왔다.
아서의 손에 마이크가 쥐어졌다.
“[좋은 연주였습니다. 곡과 톤의 조화가 훌륭하군요. 귀가 즐거웠습니다]”
….
감상평은 바로바로 말한다.
붙느냐 떨어지느냐 결과는 마지막의 백미로 남겨둔다 하더라도, 관객과 참가자가 대강 유추 정도는 할 수 있어야 하니까.
“[가, 감사합니다!]”
이상하리만치 좋은 톤을 바탕으로 좋은 연주를 보여준 흑인 여성은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자신도, 미소를 지었다.
잘못된 것은 없었다.
불만을 가지는 이들 또한 … 없었다.
“….”
“….”
심사위원 네 명의 평가가 끝나자, 무대가 또다시 암전되었다.
조언자인 두 사람은, 11번 즈음부터 계속해서 입을 다물고 있는 상태였다.
“[이야, 상상 이상이네요.]”
자신의 옆에 있던 다른 교수, ‘딜런’이 씨익, 미소를 지으며 가장 먼저 말을 꺼냈다.
“[그러게 말입니다.. 이렇게까지 정교한 무대를 준비하다니 ….]”
나뭇가지같이 마른 팔목을 가진 데이몬드가 맞장구를 쳤다.
“[오, 같은 인상을 받으셨군요. 맞아요. 아주 정교해요. 마치 세공된 보석 같달까 …. 특히 2번, 5번, 8번… 11번 … 그리고 지금 16번. 세션 쪽 인재들이 아주 많이 보이네요.]”
“[세션뿐만 아니라 나중에 솔로 기타리스트 데뷔도 충분히 ….]”
두 사람은 마음이 맞는 듯 하하호호 떠들어댔다.
그리고,
“[크리스턴 교수님도 그렇게 생각하시지요?]”
자신에게 ‘같은 생각’을 하냐며,
확인을 요구해왔다.
“[저는 ….]”
아서는 볼을 긁적였다.
그리고 볼을 긁은 김에 코도 긁었다.
코도 긁은 김에 조금씩 비어가는 정수리도 좀 긁었다.
“[교수님?]”
대답을 … 할 수가 없었다.
자신은 교수니까.
의문이 든 명제에, 확언을 할 수 없으니까.
“[… 잘 모르겠습니다.]”
“[네…?]”
“[잘 모르겠네요.]”
“[그게 무슨….]”
참나.
방금 전까지만 해도 잘 들었다고, 조화롭다고 입에 발린 칭찬을 해댔으면서.
아서는 스스로가 웃겼다.
좀 븅신 같았다.
하지만,
타앙-!
조명이 켜지고, 전형적인 일본 헤어 스타일의 소년이 무대 위에 올라,
“[제 목표는 2위입니다.]”
아주 당당한 얼굴로 당당하지 않은 목표를 내뱉었을 때.
“[1위는, 다들 아실 겁니다. 그러므로 저는 2위입니다. 이 곡은, 그 1위를 맹렬히 추격하는 곡입니다.]”
턱-!
다 합쳐도 2000달러가 채 안 되어 보이는 페달보드와 너무 평범하기 그지없는 jcm2000 앰프를 내보였을 때.
“[저 자신을 담은 곡을 들어주십시오.]”
비로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자신이 느끼고 있었던, 의문의 정체를 해소할 수 있었다.
“[오리지널리티….]”
쥬우웅-!
1번 참가자와 17번 참가자.
그들의 손에서, 연주에서, 강렬히 뿜어져 나오던 것.
다른 참가자에게는 없거나 미약하던 것.
그것은,
‘자기 자신’ 이었다.
그리고,
-꿀꺽.
아서는, 저리 강렬하게 ‘자신’을 분출하던 두 사람 또한.
누군가의 영향 아래에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
거대한 철근 구조물의 천장을 두른, 거대한 검은 천을 보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