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genius guitarist RAW novel - Chapter 215
222화. 기타의 제왕 (9)
결국, 오글거리던 팔을 펴는 것은 불가능했다.
김태현이랑 같이 도전해 보긴 했는데, 남정네 둘이서 이게 대체 뭐 하는 짓거리인지를 모르겠더라.
“그냥 듣자.”
“그래.”
아주 잠깐 찾아온 현자타임.
그리고 이어진 합리적이기 그지없는 선택.
나는 의자에 앉아 힘을 뺀 후, 소이의 연주에 이끌렸다.
눈을 감고, 온 신경을 청각에 집중시켰다.
간들거리면서도 달콤한, 한 쌍의 연인이 길을 거니는 모습과,
파스텔톤 필터를 진득하게 먹인 로맨스 드라마의 한 장면이 뇌 한구석에 서슴없이 자리를 잡는다.
손발이 오글거리는 느낌은 곡이 끝날 때까지 사라지지 않았고, ‘기타 연주’로서는 조금 생소한 감상이 들기도 했지만 …
나는 나도 모르는 새에, 소이가 곡에 녹여둔 풍경을 그리고 있었다.
“익숙하진 않은 맛인데 … 오히려 좋아.”
그렇게 생각했었다.
집중하고서 한 1분까지는.
과거에 겪었던 시행착오가 끄집어 올려지기 전까지는.
“…오 신이시여.”
사실 그렇잖아.
본의든 본의가 아니든 간에 이성 앞에서 엄청나게 창피한 짓 정도는 한 번쯤은 해본 적이 있잖아.
나도 똑같다.
그렇기에 회귀하기 전에는 잠들기 전마다 이불을 작살낼 듯이 뻥뻥 차대곤 했다.
“와~ 느낌 되게 이상하다! 흐흐.”
김태현은 눈을 휘둥그레 뜨며 웃어댔다.
“웃어 …?”
“몰라! 그냥 자동으로 나오는데?”
여자 앞에서 개뻘짓 해본 경험이 없는 모양이다.
잘생겨서 그런가?
열받네.
뭐 어찌 되었건.
그런 의미에서 소이의 무대에 대한 내 개인적인 감상을 표현하자면,
당근과 채찍.
병 주고 약 주고.
단쓴단쓴.
대략 이 정도일까.
물론 이게 다는 아니다.
아직 더 남았다.
“준비 진짜 열심히 했나 봐. 아, 혹시 수재가 도와줬어?”
“… 놉.”
“그렇구나.”
지금 이 모든 것이 내 도움 없이 소이 혼자 이룩했다는 감격스럽기 그지없는 사실이 남았다!
“내가 한 게 없긴 한데, 근데 기분은 되게 좋다.”
“응?”
나는 동그랗게 말린 손가락으로 코를 슥슥 닦았다.
소이의 성장에 감동하는 것도 이제는 무덤덤해지나 싶었는데.
그게 그렇게는 안 되는 모양이다.
“흐흐흐흐.”
“엄청 좋아하네~ 역시 곡 주제 때문이야?”
곡 주제.
그래, 곡 주제도 참 인상적이…
…었
지.
아니 잠깐만.
“어…?”
오글거림 때문에 순간 잊고 있었는데.
집중하느라 신경을 못 썼는데.
“….”
안태식이는 ‘나’를 곡에 녹여냈다고 말했었다.
그리고 그 사실 자체가 심히 오글거렸었다.
다만 그건 어디까지나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일 뿐, 다른 사람들이 듣기에는 괜찮았을 거다.
박진감 넘치는 연주였으니까.
객관적으로 ‘불호’의 요소가 거의 없었으니까.
근데 문제는… 지금은 다르다는 거다.
소이가 ‘나’를 생각하면서 썼다는 게 최중요점 이란 거다.
요 몇 분 동안 내가 그렸던 풍경들이, 소이가 곡에 녹여두었던 모든 감정이.
전부!
‘나’를 가리키고 있었다는 거다!
“오.”
부르르르.
아주 일순간 몸이 떨렸다.
전기가 흐르는 느낌보다는, 경련에 가까웠다.
-와아아아아아아아!
이번에도 역시나,
연주가 끝나자마자 거대한 함성이 밀려 들어왔다.
– [상상 이상, 예상 밖의 무대군요…!]
– [이럴 수가….]
얼이 빠진 얼굴로 심사평을 입에서 쏟아내는 심사위원들.
안태식이 때와 비슷하게, 입꼬리를 씰룩거리는 두 명의 조언자들.
“[기타와 교감을 하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멋들어진 사각 선글라스를 낀 ‘기타교감꾼’은, 도저히 참지 못하겠다는 듯, 심사위원의 말이 끝나자마자 입을 열었다.
“[연주자가 자신 있는 소리, 혹은 자신 없는 소리. 기타가 낼 수 있는 소리, 내기 힘든 소리. 이 모든 것들은 악기와의 교감이 있어야 알 수 있는 것들이니까요.]”
“[악기를 도구로만 여긴다면, 도구로서의 역할만을 다할 겁니다.]”
“교감… 이라.”
듣자마자 선뜻 이해하기는 힘든 말이다.
다만,
-[그런 의미에서 소이 백… 백소이 씨는 기타와 깊은 교감을 나누는 사람인 걸 알 수 있었습니다. 잘 들었습니다. 훌륭한 연주였습니다.]
소이가 아주 잘했다는 ‘팩트’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곡에 녹여낸 풍경 … 욕망을 꼭 이루시기 바랍니다.]”
기타 교감꾼의 마무리 멘트와 함께
오오오오오오오오-!
동그랗게 말려 있던 관객들의 팔이 펴짐과 동시에,
소이의 무대가 끝났다.
짝짝짝짝-!
여기서 박수를 친다고 소이에게 들리지는 않겠지만, 나는 그 어느 때보다 힘차게 박수를 쳤다.
그리고,
둥-
무대의 조명이 암전되며, 장비를 챙겨 돌아온 소이를 향해,
척-!
“수고했어!”
팔을 벌렸다.
…벌리자마자 후회했다.
순간 뭔가 경기를 마치고 돌아온 선수를 반기는 감독 같은 기분이 들긴 했는데,
여기서 안 뛰어들어주면 그대로 흑역사 페이지에 한 문단 추가되는 거잖아.
하지만 아주 다행히도,
“응…!”
와락-!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듯하다.
소이가, 내 품에 안겨 왔다.
“응원해줘서 … 고마워.”
안겨 온 것뿐만 아니라 얼굴까지 가슴팍에 파묻었다.
내색은 안 하는 중인데 조금 쑥스럽네.
소이가 만든 곡… 그 달달한 곡이 날 생각하면서 만든 거라니.
그리고 내 흑역사에 문단을 추가해 주지 않다니.
진짜 고문관급 눈치가 아닌 이상에야 이게 뭘 의미하는 건지는 알아챌 수밖에 없다.
“나도 … 응원할게.”
“그래.”
나와 소이는 서로를 향해 눈을 맞췄다.
간질간질거리는 느낌이 끊이질 않아서, 꼭 소이의 곡이 계속 귀에 맴도는 것 같다.
정말 이상한 기분이었다.
“[사이가 좋아 보이는군요. 이게 바로 사랑의 힘입니까?]”
약 30초.
격앙되어 있었던 감정이 원래대로 돌아오고,
남녀 둘이서 부둥켜안고 있는 게 약간 창피하다는 생각이 들었을 즈음,
간이 대기실 입구 쪽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이작 웨스트우드였다.
“사, 사랑의 힘 …!”
소이가 벌벌 말을 더듬었다.
“[대체 어떤 요소가 곡의 씨앗이 되었나 궁금했습니다만 … 두 분을 보자마자 이해했습니다.]”
“[음… 뭐 대충 그런 거지]”
“…!”
평정심을 유지하려 내뱉은 대답인데.
소이의 귀랑 볼이랑 아주 그냥 시뻘건 색으로 물들어간다.
터지는 거 아니야 …?
나는 소이를 놓아주었다.
그러자 얼굴색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안 터졌다.
다행이다!
“[그거 말하려고 왔냐?]”
“[그렇기도 합니다만, 이게 다는 아니죠.]”
“[다는 아니다라….]”
“[아무래도 무대 반응만 보는 것보다는 여러분의 반응까지 같이 보는 게 더 즐겁지 않겠습니까?]”
“[…?]”
“[소이 백? 씨의 무대는 끝났습니다. 하지만 곧바로 시작될 겁니다. 그것이 ‘대회’니까요.]”
“[뭐라는 거야…?]”
아이작은 미래에 등장할 펀쿨섹좌 같은 말을 해댔다.
육성으로 들으니까 좀 신박하긴 하네.
“[아… 아!]”
셋이서 의문스럽다는 표정을 지고 있자, 아이작은 뭔가를 깨달았다는 듯이 이마를 탁 쳤다.
“[제가 말씀을 안 드렸군요…?]”
“응?”
“[다음 순서요. 저희 대장입니다.]”
….
응 …?
아니 그걸 이제 와서 밝힌다고!?
“[제가 왜 굳이 이쪽에 붙은 줄 아십니까?]”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왜 수많은 참가자들이, 그녀의 편에 선 줄 아십니까?]”
아이작은 우리의 당황 따위는 개의치 않았다.
그저 묵묵히, 자기 혼자 말을 이어나갈 뿐.
마치 벽을 보고 대답하는 듯한 기분이었지만, 이내 나는,
아이작이 왜 저리 ‘기대된다’는 표정을 짓는지 이해했다.
뼈저리게 말이다.
둥-!
무대가 밝아졌다.
그리고 언제 흥분했었냐는 듯이, 진중한 표정을 되찾은 사회자가 마이크를 잡았다.
– 자, 다음 참가 순서는 19번. 페데리카 모레티 입니다.
“너희 저 기타 보여?”
“각도 때문에 잘 안 보여….”
“나도. 혹시 펜더 … 인가?”
그들은 최고의 소리를 지향한다고 했다.
그렇기에 정상급 사운드 엔지니어의 힘을 빌려, 개인전인 대회에서 팀을 꾸렸다.
좀 아니꼽긴 한데, 그렇다고 기대감이 아예 ‘전무’하냐 묻는다면 그건 또 아니었다.
“펜더는 아니야. 아니, 아닌 건 아닌데 ….”
“응?”
“그게 무슨 소리야?”
아무리 그녀가 ‘매혹적인’ 제안을 참가자들에게 흩뿌렸다고 하더라도.
집단의 우두머리질이란 게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
사람들을 끌어들이기 위해서 우선 ‘예시’를 보여줬을 거 아니야.
이러이러한 소리를 만들어 줄 테니, 나와 함께하자라며.
그리고 그 ‘설득’에 다들 넘어간 거고.
“[눈치채신 모양이군요.]”
“[뭘 들고 나올지 엄청 기대했는데, 저거였군.]”
“하하하하하하하!”
아이작은 웃었다.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이탈리아 억양의 여자.
그리고 이번 대회를 좀먹으려는 ‘세력’의 우두머리.
그녀가 들고 나온 것은 호화롭기 그지없는 커스텀이나, 만져보기도 힘든 오리지널 빈티지 기타가 아닌,
– G&L
한국에서는 구경조차 힘든, 프로 세계에서도 생소한 브랜드였다.
그리고,
“[레오 펜더가 직접 만든 물건이라더군요.]”
‘일렉기타의 대부’가 마지막으로 몸담은 아주 작은 회사의 것이기도 했다.
***
태어나 ‘자신’을 인지할 때부터 매일매일 스파게티만 먹는다면 사람은 어떻게 될까?
벌레 먹은 밀가루 면을 삶아 마늘 꽁지를 우려낸 기름에 넣어 10년 동안 비벼 먹는다면 과연 어떻게 될까?
참 괴상하기 그지없는 의문이다.
하지만 매우 궁금해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올해 20세가 되는 페데리카 모레티는 그에 대한 해답을 알고 있었다.
‘먹는다는 건 참 별로야.’
그건 바로, 미각도 퇴화할 수 있다는 것.
음식을 먹는 것과, 영양제를 먹는 것의 차이점이랄 게 없어진다는 것.
삼시세끼 같은 것을 ‘배부르게’ 먹는다면,
미각의 다양성이 인생에서 배제된다면.
인간의 혀는 퇴화한다.
이것은 실제로 일어난 일이었다.
페데리카 모레티는 미각이 퇴화한 인간이었다.
“[갔다 올게요.]”
여러 대의 모니터가 환하게 웃는 소녀를 비추는 널찍한 대기실.
반쯤 곱창난 공기를 타고서 그녀의 ‘선고’가 울려 퍼지자, 움찔, 모두가 몸을 떨었다.
예상외 참가자의 선전과, 반전된 대회장의 분위기.
순조롭게 진행될 것 같았던 계획은, 격하게 삐걱대기 시작했다.
다만,
“[표정 풀고, 지켜보세요.]”
다 같이 한 배에 탄 이상, 이제 내릴 수는 없었다.
아니, 그 이전에.
내릴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는지 묻는 게 먼저일까.
“[… 잘 듣겠습니다.]”
격려도, 응원도 아니다.
그것은 그저 감사였다.
페데리카 모레티는, 감사를 등진 채 대기실을 나섰다.
그리고 암전된 무대에 올라가,
수년에 걸쳐 설계한 ‘소리’를 차분히 만들어냈다.
텅-!
조명이 들어왔다.
그리고 이번에도 어김없이.
참가자는 줄을 누르고, 현을 튕겼다.
십수 번째 반복되는 상황.
다만 이전과 아주 약간 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은,
열아홉 번째 순번을 받은 그녀가, 음악을 단순히 귀로 즐기지 않는다는 점이다.
소리를 즐기는 것을 넘어, 잃어버린 미각을 귀를 통해 추구한다는 점이다.
“…!”
페데리카 모레티는 줄을 튕겼다.
눈알이 튀어나올 듯 크게 뜨는 심사위원을 바라보며.
넋을 놓기 시작하는 관객들을 주시하며.
지금 이 순간.
그녀는 기타 연주가임과 동시에, 쉐프이기도 했다.
소리는 곧 맛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