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genius guitarist RAW novel - Chapter 34
예고정벌 (1)
“이야 ··· 이거 잘 나왔네.”
모자를 푹 눌러쓴, 대포 같은 카메라를 든 이방인.
평소 이 모습으로 교내를 어슬렁거린다면, 여부없이 경찰에게 잡혀갈 것이다.
수상하기 그지없는 복장이니까.
하지만 오늘만큼은 괜찮다.
요즘 학교 행사에서 카메라맨은,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필수 요소였다.
‘재능이 넘쳐 흐르는군 ···’
관심을 돈으로 바꿔 먹고사는 유튜버는, 사람들의 이목을 끌어야 한다.
‘자기 자신’을 컨텐츠화 시키던, ‘다른 요소’를 컨텐츠화 시키던, 조회수를 올려야만 한다.
대다수의 유튜버가 전자인 반면, 서재원은 압도적으로 후자의 성향이었다.
그는 이미 있던 상황에 살을 붙여 가공하는 재능은 뛰어났지만, 컨텐츠를 처음부터 구상하는 능력은 그리 뛰어나지 않았다.
“ ··· 멘트를 어디서 써온 건가?”
그는 카메라로 찍어둔 영상을 빨리감기로 재생시켰다.
맛깔난 언변은 물론이거니와 그걸 뒷받침해줄 실력까지 갖추고 있다니.
터무니 없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터무니가 없어 터무니가 ···”
서재원의 머릿속에, 자연스레 과거의 기억이 떠올랐다.
촬영은 원래 취미였다.
풍경이나 인물을 찍고 가공해서 인터넷에 올리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취미였다.
원래 직업은 대형 음악학원의 피아노 보조강사. 스펙도 특출난 것 없는, 음악에 대한 열정만 가득한 보조강사.
하지만 인생에는 수많은 전환점이 있다고 하지 않던가.
원생 문제로 원장한테 한바탕 깨지고 거리를 배회하던 그날,
카메라를 들고 있던 그날.
취미가 직업으로 바뀔 만한 기회가 찾아왔다.
서재원은 당시 그게 버스킹인지 뭔지 잘 몰랐다.
쏟아지는 네온사인과 낡은 피아노, 젖은 아스팔트 바닥에서 번지는 형형색색의 잔광.
우연히 들고 있던 초고가 카메라로.
운 좋게 가방에 들어있던 외장 마이크로.
서재원은 그 몽환적인 광경을 영상으로 담았다.
결과는 상상 이상이었다.
조회수 120만.
거의 빈집이었던 유튜브 채널에, 갑자기 고객들이 몰려든 것이다.
순식간에 구독자를 확보한 서재원은, 사람들이 ‘연주하는’ 모습을 촬영하기로 결심했다.
유튜브 채널 이름을 ‘에이트라’로 바꾸고,
곧 구독자 60만을 바라보고 있는, 음악채널로 성장시켰다.
“스토리가 있어 ··· 저번에 달았던 댓글이 ···”
예술고와, 예술계열 일반고의 대결.
상황도 상황이거니와 이야기의 중심인물 자체가 좋았다.
이거 뜰 거다.
그리고 저 아이도, 반드시 뜰 거다.
어쩌면 하민서 보다도 더욱.
지금껏 수많은 연주자를 봐 왔던 자신의 눈이, 가슴이, 그리 외치고 있었다.
엄청난 재능과 재치.
자신이 저 아이를 만난 것은, 아마 하늘이 내려준 천운이 아닐까.
날개를 달고 날아오르기 직전의 음악인을, 카메라에 담을 기회가 주어진 게 아닐까.
지금 이 상황이, 인생의 또다른 전환점이 아닐까.
서재원은 기타 가방을 멘 남학생의 뒤를 쫓았다.
“잠깐만요!”
***
“화장품 어디다 쓸 거냐?”
“글쎄 ···”
“그냥 바르지?”
“스킨로션은 그렇다 쳐도 이 슬리핑 수분 마스크 ··· 는 쓸모가 없는데.”
난 딱히 피부가 나쁜 편은 아니다. 그냥 가끔 피곤할 때 뾰루지 나는 정도.
“하민서한테 줘.”
“미쳤냐?”
나는 주절주절 친구들과 노가리를 까며 굶주린 배를 부여잡고 급식실을 향해 걸었다.
문뜩 등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
“잠깐만요!”
아, 인터뷰한다고 그랬었지.
“허억 ··· 허억 ··· 인터뷰좀···”
강당부터 여기까지 거리가 얼마나 된다고.
유튜버양반은 거친 숨을 푹푹 토했다.
근데 뭔가 되게 기분 좋아 보이는 표정이네.
··· 뭐지?
“아네, 하세요.”
“고맙습니다 ···”
나는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인터뷰라 ···
내가 손해볼 요소는 없다.
악플은 좀 달리겠지만, 상관없다.
이 세상에는 변호사 채널에도 악플을 다는 놈들이 존재하니까.
사람들한테 관심 좀 받으면 좋잖아.
에이트라는 대포같은 렌즈를 뽑고 단렌즈로 갈아 끼웠다.
카메라에는 복슬복슬 털이 덮인 마이크와 육중한 짐벌이 달려 있었다.
자세 좀 나오네. 진짜 전문가 같다.
그는 크게 심호흡을 하더니, 큼큼, 목을 가다듬었다.
도현이와 혁오는 살짝 옆으로 몸을 비켰다.
“우선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유산고등학교 1학년 8반 김수재입니다.”
나는 일부러 목을 조여 미성을 낼까 싶었지만 관두었다.
괜히 하민서 따라 하는 것 같잖아.
“기타 경력이 어느 정도 되나요?”
“20년이요.”
“하하하하! 이번에도 그러시네~ 좋아요, 힘을 숨기는 컨셉? 인거죠?”
딱히 힘을 숨긴 적은 없는데.
진짜 20년 쳤고, 20년짜리 연주를 했을 뿐이다.
“이번 ‘예술고’ 학생의 침공을 막아내고 공격태세로 들어갔는데, 소감이 어떠신가요?”
“음 ···”
단어 선택 참 맛깔나네.
저 질문들은 다 즉석에서 만드는 건가?
마치 스포츠 선수 인터뷰 하는 상황 같다.
나는 적당한 대답을 짜내었다.
“금요일이 너무 기다려지네요. 빨리 예고 학생들을 앞에 두고 공연을 하고 싶습니다.”
“오오 ··· 저도 기대됩니다 ···”
뭐지 이 사람.
하민서 찍으러 온 거 아니야?
구독자 수 많은 유튜버랑 하민서 회사랑 이러쿵저러쿵 하는건줄 알았는데.
예고까지 따라와서 또 날 찍으려는 건가?
나는 에이트라의 채널을 떠올렸다.
솔직히 ··· 편집은 꽤 잘한다.
내 영상도 그냥 찍은 대로 띡 올린 게 아니라 이런저런 효과를 주고, 최대한 신경을 쓴 게 보였다.
“예고에서 연주할 곡은 ···”
“그게 사실··· 아직 안 정했어요.”
그는 눈을 크게 떴다.
동시에 즐거운 듯 웃음를 지었다.
보통은 ‘그걸 아직도 안 정했다고?’ 라며 놀라는 모습을 보여야 정상 아닌가.
그는 오히려 흥미진진하다는 듯 더욱 고양 돼 보였다.
“지금부터 곡을 정하고, 연습에 들어간다는 의미인가요?”
“그렇죠.”
“크 ··· 잘 알겠습니다! 이번 연주에 사용하신 악기 소개 부탁드립니다!”
개 귀찮네.
난 가방에서 기타를 꺼내 손에 쥐어 보였다.
“오 ··· 색깔이 되게 예쁘네요! 기타는 펜더?가 유명하지 않나요?”
“이것도 펜더 소리가 나긴 합니다. 중고지만.”
“그렇군요! 그럼 마지막으로 구독자님들께 한 말씀!”
나는 대충 채널 많이 사랑해달라, 좋아요 구독 박아달라 같은 상업적인 멘트와 함께,
“실수는 좀 너그럽게 봐주세요. 계속 발전하는 중입니다.”
라는 말을 남겼다.
이런다고 악플이 덜 달릴지는 확신치 못하겠다.
에이트라는 만족스럽게 웃으며 카메라를 내렸다.
“정말 감사합니다. 오늘 인터뷰 혹시 ···”
“아, 네 올리셔도 돼요.”
“감사합니다!”
구독자 50만급의 유명인이라 이미지 관리를 하는 건지, 아니면 그냥 본성인지.
에이트라는 참 예의 바른 청년 같았다.
나이는 ··· 겉으로 보기엔 30이 안 넘어 보이는데.
지금 이 시기면 떼돈 벌겠구만. 커버곡 저작권 이슈가 터지는 게 2019년 즈음부터니까.
“그리고 전화번호 좀 받을 수 있을까요?”
“제 전화번호요?”
“예.”
미심쩍긴 하다.
나를 이용해서 조회수를 빨아먹으려는 건가?
저번에 보니까 내 영상은 조회수가 4만 정도가 성장한계 같던데.
뭐 딱히 거절할 이유는 없다.
이 사람이 나를 빨아먹으려 한다면, 나도 같이 이 사람을 빨아먹으면 된다.
내 동영상을 올리고 싶으면 올려라.
나는 절대 손해는 안 본다.
나중에 유튜브 채널을 개설할 때가 온다면, 빨아 먹힌 조회수 만큼 구독자를 흡수할 수 있을터.
나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여깄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다음에 연락 드릴게요!”
에이트라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주차장 쪽으로 달려갔다.
“와 50만따리 유튜버가 두 번이나 영상 올려주는 거? 바로 유명인 되겠네. 부럽다~”
“욕먹는 것도?”
“그건 안부럽드아~”
나는 꺼내놓은 기타를 가방에 집어넣으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밥 먹으러 안 가니?”
나선생님께서 나를 부르셨다.
“아 네··· 선생님은 식사 안 하세요?”
“하하, 나는 나가서 먹으려고. 여기 밥이 참 그래~”
괜찮게 나올 때는 괜찮게 나오는데 가끔가다 폭탄이 걸리는 슈뢰딩거의 급식.
이사장 돈 많아 보이던데 급식에 신경 좀 쓰지.
“그거 혹시 ··· 거기서 샀니?”
나선생님이 대뜸 물으셨다.
나는 그의 질문을 단번에 이해했다.
“네. 나선생님께서 소개해주신 곳에서 업어왔어요.”
“흠 ···.”
허리를 숙여 유심히 내 기타를 살피시는 나선생님.
조합이 특이한 놈이긴 하다.
“이거 설마 ···.”
나선생님은 의문스럽단 표정을 지으며 손으로 기타를 훑으셨다.
“김수재 사기당한 거 아니야?”
“혹시 가품인가요?”
도현이와 혁오가 피식피식 웃으며 물었다.
친구가 짝퉁 사왔길 바라는 인성이라니.
너희 기타도 합판으로 만들어 졌길 간절히 소망한다.
나선생님은 고개를 저으셨다.
“아니 ··· 가품 같은 건 아니야. 살펴보니 전 주인이 아무래도 ‘그 사람’ 같구나.”
“전 주인 ··· 이요? 그 사람?”
윤대혁선배랑 같은 말을 하시네.
전 주인.
나는 이런 구성을 좋아하는 사람을 모른다.
하지만 나선생님이 알고 있을 정도라면, 무명 기타쟁이는 아니라는 뜻일 터.
“그 사람이랑 마주치게 된다면, 말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그 사람은···”
나선생님은 내 기타를 가리키셨다.
“펜더기타를 싫어하거든.”
“···.”
나는 기타를 들어서 헤드를 확인했다.
이거 스콰이언데
by fender가 적혀 있긴 하지만.
“혹시나 싶어 말해두는 거야. 그 기타 알아보는 사람은 조심하라고. 그럼, 점심 맛있게 먹으렴.”
우리는 멀어져가는 나선생님의 뒷모습에 꾸벅 인사를 했다.
윤대혁 선배가 중얼거렸던 건 별 신경이 안 쓰였는데, 나선생님까지 같은 말씀을 하시니 무지 신경쓰인다.
‘전 주인 이라니···’
나는 주섬주섬 기타를 챙겨서 곧장 식당으로 향했다.
“와 ··· 닭튀김이야?”
도현이와 혁오는 냄새를 맡자마자 굶주린 늑대마냥 뛰기 시작했다.
나도 같이 뛰었다.
“늦게 와서 개이득이네.”
배식 조절을 하느라 그랬는지, 반찬이 꽤많이 남아 있었다.
우리는 닭튀김을 한 움큼 퍼서 식당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좌작콰작-
튀김옷에서 은은한 카레 맛이 난다. 음식이 들어가니 좀 살 것 같네.
“야 근데 ···”
헉오가 말을 이었다.
“곡 뭐 할거냐?”
우리는 여러 밴드의 곡을 카피했다. 셋 다 락을 많이 들어서인지 웬만한 곡은 다 알고 있었다.
“프리티 플라이 가자.”
“그래 그게 제일 낫겠다.”
“예고 애들 개빡쳐할듯.”
사람 하나를 붙잡고 마구잡비로 비꼬는 듯한 노래.
심지어 가사 안에 ‘시비 걸지 말라고, 범생아’, ‘너흰 아부나 떨어라’ 라는 문장도 들어가 있다.
너무 멋지다.
과연, 음악으로 사람을 얼마만큼 분노하게 만들 수 있을까?
나는 벌써부터 가슴이 두근거렸다.
개털어 준다 하고 호언장담한 후 역으로 털려버린 예고 애들,
거기서 또 꼬집듯 조롱하면 ···
그래, 그게 진짜 터는 거지.
“보컬은?”
“네가 해야지.”
나는 도현이를 가리켰다.
가창력이 크게 필요없는 곡이긴 하다. 코인 노래방에서 확인해 본 결과, 도현이가 우리 중에 노래실력이 제일 뛰어났다.
“너희도 불러.”
“물론이지.”
“드럼은 bgm으로 쓸 거냐?”
“만들어 놓긴 했는데···”
“김수재 대박.”
곡을 귀로 따서 내가 직접 드럼노트를 찍었다.
핸드폰에 깔려있던 개러지 밴드로 때우려다가 우연히 발견한 무료 가상악기 프로그램을 썼는데 ···
퀄리티는 나름 합격점이긴 하다.
우리는 급하게 점심을 흡입하고 본관으로 돌아갔다.
괜히 들고 다니기 걸리적거리는 종합 화장품세트.
이걸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까···.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이마가 넓은 윤수빈이 보인다.
나와 도현이는 여느 때와 같이 그녀에게 다가갔다.
“제발 제발제발 드럼 제발 ···”
“제발 부탁이다 제발 ···”
“제발 드럼님 제발.”
“아 저리가!”
우리는 윤수빈의 뒷꽁무늬를 졸졸 쫓았다.
금같이 귀한 드럼.
왜 이렇게 치는 사람이 없는 걸까.
금드럼이다 금드럼.
한참 윤수빈을 쫓아다니던 도중, 복도에서 소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수재야, 선생님이 부르셨어.”
“진짜?”
“응. 도현이도 같이 오래.”
나랑 도현이를 부르셨다고?
뭐지?
도현이까지 부른 거 보니 아까 전 공연 때문은 아닌 것 같은데···
“바로 오라셔?”
“응.”
“전달 땡큐. 오늘 수고했다!”
“응 ···!”
나와 도현이는 골드러시를 그만두고 교무실로 향했다.
툭툭, 볼펜으로 서류를 두들기고 계시는 선생님.
혁오는 이미 와있네.
“수재랑 도현이 왔구나? 음악회 수고했어~ 우리 1등 학생!”
“선생님 덕이죠.”
“내가 뭘 해줬다고~”
우리는 선생님과 함께 교무실 구석 상담실로 향했다.
“무슨 일 있나요?”
“그게 사실은 ··· 우리 학교에서 세 팀이 예술고로 원정 가잖아?”
“그렇죠.”
“한 팀이 취소됐어.”
“··· 취소요?”
예고 애들은 우리학교에 서로 가려고 난리인 모양이지만,
우리 학교애들은 예고에 가는 것을 싫어한다.
당연하다
쟤들 입장에서는 ‘실력자랑’
우리 입장에서는 ‘실력증명’인 셈이니까.
“어디 다쳤대요?”
“바이올린이랑 첼로 협연이었는데, 첼로 전공하는 애가 손을 다쳤대. 혹시 ···”
한 곡 더 해줄 수 있겠니? 라고,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왜, 예고 애들도 사실상 협연 형태로 중복 공연했잖아? 그래서 ···”
선생님도 본인도 무리한 부탁이라는 건 잘 알고 계실 거다.
예고 원정은 8일이니까.
즉, 연습할 시간이 오늘을 포함해 3일밖에 없다는 소리다.
“취소한 애들 곡은 뭐였어요?”
“G선상의 아리아였을 거야.”
“G선상의 아리아라 ···”
나는 혁오와 도현이를 쳐다보았다.
둘 다 모르겠다는 얼굴이다.
“에이, 아무리 그래도 일렉기타로 클래식을 ···”
“G선상의 아리아 하죠.”
“··· 어?”
“제가 할게요.”
나는 피식 미소를 지었다.
우선 pretty fly로 빡치게 만든 다음에,
G 선상의 아리아로 실력을 증명한다 ···
나름 괜찮은 작전 아닌가?
선생님은 이렇게 쉽사리 수락할 줄 모르셨는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