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genius guitarist RAW novel - Chapter 35
예고정벌 (2)
나는 선생님께 꾸벅, 인사를 한 뒤 교무실에서 나왔다.
“G 선상의 아리아가 뭔데 씹덕아.”
“너희 한 번도 안 들어 봤냐? 클래식이잖아.”
“아 클래식임? 만화 이름인 줄 알았네.”
진짜 뭐하는 새끼들이지.
나는 깊은 의문이 들었다. 아무리 실음전공에 클래식을 안 듣는다고 해서 G선상의 아리아를 모를 수가 있나?
“한번 들어봐.”
나는 유튜브로 ‘G 선상의 아리아’ 락버전을 틀어서 혁오와 도현이에게 건넸다.
그렇다. 락버전.
내가 칠 것은 락버전이다.
기타로 편곡된 G 선상의 아리아는 크게 클래식 기타 버전과 락버전으로 나누어진다.
나는 둘 다 칠 수 있다.
뭐가 치기 편하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후자다.
전자도 못 치는 건 아닌데, 회귀하고 나서는 한 번도 잡아본 적이 없다.
‘오른손은 ···’
안 좋은 버릇을 극복하려 핑거스타일 연습을 많이 해서 그런지, 굳은살이 조금 생기긴 했다.
“꽤 괜찮은데? 이거 이미 다 외워놓은 거지?”
“그렇지.”
“라인 따고 코드만 잡으면 될 거 같은데.”
“타브 있어?”
“있을걸?”
준비는 척척 진행됐다.
문제점은 드럼 노트 하나를 더 찍어야 돼서 귀찮다는 것뿐.
그냥 타브 보고 베껴서 만들어야겠다.
“타브 찾아서 톡에 올릴게.”
혁오는 손을 휘적이며 복도 반대편의 자기반으로 걸어갔다.
나와 도현이는 곧바로 교실로 돌아갔다.
그런데 뭔가 ··· 분위기가 이상하다.
“··· 뭔 일이야.”
하민서는 혼자 책상 앞에 멀뚱히 서 있었다.
반 아이들은 나와 하민서를 번갈아가면서 쳐다보기만 할 뿐.
교실 공기는 유난히 무겁고 탁했다.
“이거 ··· 이거 뭐야?”
하민서는 말을 더듬으며 자신의 책상 위에 있는 것을 가리켰다.
“··· 어?”
“어?”
나와 도현이는 무심코 탄성을 내뱉었다.
··· 내가 받은 1등 상품이네.
기초케어 화장품 종합세트.
처치가 곤란했었는데··· 그렇다고 공짜로 줄 생각은 없는데?
“그게 왜 거깄냐?”
“내가 물었어 ···”
누가 망치로 대가리라도 찍은 듯 멍한 느낌이 들었다.
왜 저게 저기있냐.
하민서를 줄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 쟤네 둘 사이 안 좋잖아.”
“일부러 올려놓은 거야?”
“와 김수재 인성 ···”
반 애들이 쑥덕쑥덕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내가 인성 파탄자가 되어가는 소리가 들려오네. 뭐야씨발.
나는 오해를 쌓을 생각이 전혀 없었다.
“선생님이 불러서 급하게 나가느라 아무 데나 올려뒀나 봐. 미안하다.”
“··· 가져가.”
나는 하민서가 내미는 화장품 선물세트를 받아들었다.
애들 앞이라서 그런가, 하민서는 평소처럼 땍땍거리지는 않았다.
“실수인거 같은데?”
“에이 설마 진짜 그랬겠어.”
태세전환보소.
4등한 애 책상에 일부로 1등 선물을 올려놓는다라 ··· 엿먹일 수 있는 좋은 방법이긴 한데 난 그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었다.
“혁오가 타브 찾았대.”
“오케이.”
나는 자리에 앉아 혁오가 보내준 타브파일을 열어 곡을 샅샅히 분석했다.
윤수빈이 뒤를 돌아보며 나에게 일렀다.
“나 안 나갈 거니까 자꾸 매달리지 마!”
“알았어 알았어.”
곡도 하나 더 늘어버려서 이젠 부탁을 못하겠다. 이걸 어떻게 3일만에 다 외워. 쟤도 스케쥴이 있을 텐데.
금광을 찾아 헤매던 골드러시가 이렇게 실패하는구나.
나는 나를 더 갈아 넣기로 했다.
드르륵-
5분정도 시간이 지나자 채미현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자 오늘 신입생 음악회 하느라 수고 많았고! 예고 음악회 참가하는 애들은 준비 열심히 하고! 아, 수재야.”
“넵.”
“도현이랑 2반 혁오랑 하는 건 ‘밴드’로서 참가하는 거고, 나중에 하는 건 네 ‘솔로’랑 ‘백밴드’ 인걸로 괜찮지?”
“넵.”
이른바 눈 가리고 아웅이다.
프리티 플라이는 밴드로서 참가.
G 선상의 아리아는 개인으로서 참가인데 둘이 보조자.
뭐 딱히 내가 신경 쓸건 없다.
예고 애들도 똑같이 했으니까. 이거 가지고 시비 걸면 진짜 속 좁은 사람이 되는 거다.
“뭐야 쟤네 두 번 나가 ···?”
“4반 애들이 나간다고 하지 않았어?”
“4반 혜영이 손에 염증 생겼대.”
“자, 자. 신입생 음악회에서 수고해준 소이랑 수재에게 박수 한번 쳐주자!”
교실에 있는 모든 시선이 나와 소이에게 향했다.
약간의 부러움 섞인 얼굴들을 보니 아주 기분이 좋았다.
소이는 여전히 부끄러운 모양이다.
-바로 연습실로 집합.
-ㅇㅋ
-ㅇㅋ
나는 도현이와 혁오에게 카톡을 보낸 뒤, 선생님 말씀이 끝날 때를 기다렸다.
“그럼 오늘은 이만 해산~ 내일부터 정상수업이니까 넋 놓지 말고! 중간고사 얼마 안 남은 거 알지?”
“···.”
그렇네. 중간고사가 얼마 안 남았다.
학교 다닐 때 공부한 내용은 완전히 다 까먹었는데. 그냥 조진 거 같다.
일과가 다 끝나니 오후 3시였다.
나는 소이와 인사를 나눈 뒤, 바로 연습실 자리를 꿰찼다.
휴대폰으로 타브를 보며 곡을 외우는 두 사람.
나는 락 버전으로 편곡된 G선상의 아리아를 힘껏 후렸다.
“근데 G선상의 아리아가 왜 G선상의 아리아임?”
“바이올린 4번줄이 G인데 4번줄만 가지고 연주하라는 뜻이야.”
“아하.”
“기타도 3번줄이 G 아니냐? 그럼 3번 줄로만 연주해야지.”
그렇게 따지면 피아노로 편곡된 G선상의 아리아는 대체 정체가 뭔데.
딱히 한 줄로 연주하지 않아도 멜로디 자체가 아주 낭만적이고 좋은 곡이다.
선선한 여름날, 인적 드문 숲 속 계곡에서 신나게 뛰어노는 듯한 느낌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아직 4월인데도 말이다.
대충 코드를 다 외운 둘은 타브 악보를 동시에 실행시키며 합주에 들어갔다.
훌륭하게 백킹을 소화하는 혁오와, 저음을 딱 붙들어 잡아주는 도현이.
“아, 실수했다.”
“이거 베이스라인 은근 재밌네.”
“··· 너희 진짜 곡 모르던 거 맞냐?”
이놈들이랑 합주하면 뭔가 느낌이 좋다.
마음이 맞는다고나 할까, 편안하다.
셋 다 병신이라서 그런가 보다.
“두개 번갈아가면서 연습하자.”
“드럼노트 오늘 찍을 거냐?”
“어. 너희도 도와 줘야 돼.”
“오케이.”
나혼자 열심히 드럼 찍어봤자 소용없지.
얘들도 도와줘야 한다. 서로가 조율해야 완벽한 음악이 만들어지니까.
“혹시 예고에 아는 애 있는 사람?”
“왜?”
“앰프 종류 뭔지 물어봐야되잖아.”
“너희 학원에 성예린 있잖아.”
“전화번호는 없어.”
“기달. 나 추천친구에 뜰수도 있음.”
도현이랑 성예린이 같은 학교였댔나.
“아, 여깄다.”
“전화 고.”
나는 도현이의 핸드폰을 빼앗아 곧장 전화를 걸었다.
뚜루루루루-
– 여보세요?
“어 난데.”
– 누구?
“누구긴 누구야 납치범이지. 요구사항을 말하겠다.”
– ···.
전화 너머에서 정적이 흘렀다.
혁오와 도현이는 재밌다는 듯이 키득거린다.
– 김수재?
성예린의 옆에는 친구들이 있었는지 재잘거리는 여자애들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 아 ··· 너희 때문에 우리 학교 지금 개난리났는데···
개난리가 났다니, 너무 기분이 좋았다.
입꼬리가 찢어지려고 한다.
“치욕과 굴욕을 당하고 싶지 않으면 지금 당장 앰프 정보를 넘겨라.”
– 즐~
성예린은 그렇게 말한 뒤 자기 맘대로 전화를 끊었다.
나는 몇 번이나 끈질기게 전화를 걸었지만 돌아오는 정보는 없었다.
“이렇게 된 이상 ··· 굴욕과 치욕을 안겨줄 수밖에 없어.”
“맞아.”
“저질댄스 출 사람?”
“내가 추지 뭐.”
프리티플라이에는 저질댄스가 제격이니까.
우리는 닫는 시간까지 학교에 남아 합주를 하다가 찢어졌다.
나는 곧바로 집에 돌아가 컴퓨터를 켠 뒤, 가상 악기 프로그램을 실행시켰다.
‘가상악기’는 프로그램마다 퀄리티가 천차만별이다.
퀄리티가 좋은 놈은 들은 용량이 어마 무시하다. 하나에 200GB가 넘어가는 놈들도 흔하다.
내가 쓸 건 mt power drum kit 2
현시점에서 무료 프로그램 중에 가장 쓸만한 놈이었다.
나는 샘플을 두 사람에게 보냈다.
-야 이거 괜찮냐?”
-거긴 킥을 좀 세게 때려야 할 듯
타브에 있는 노트를 베낀다고 해서 다가 아니다.
드럼 튜닝, 강약의 조절, 잔음 화음 처리를 다 내가 해야 한다.
-이런건 대체 어떻게 만드는 거야?
-다 짬밥이다 이 말이야.
자작곡 만들 때는 되게 신경 많이 썼는데.
유튜브가 포화상태라 많은 사람들에게 들려주진 못했지만.
우리는 남은 사흘 동안 죽어라 연습했다.
처음에는 버벅이던 둘도, 훌륭히 G선상의 아리아 반주를 소화할 수 있게 되었다.
무대 퍼포먼스를 고민하는 건 덤.
그리고 마침내, 그날이 찾아왔다.
“잘 갔다 와라!”
“예고 애들 털어버려!”
“수재 오빠 화이팅~”
아침의 학교 주차장.
창문을 활짝 연 선배들은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며 그리 외쳤다.
후배 놀려먹기 좋아하는 바람직한 선배들이다.
“수재야 잘 다녀와 ···”
“고마워.”
“8반 화이팅!”
“2반 혁오도 화이팅!”
“민서야 잘해!”
미리 마중 나온 우리 반 애들, 혁오의 2반 애들.
우리는 그들에게 손을 마주 흔들며 채미현 선생님의 차에 올랐다.
“준비는 잘했어?”
“옙.”
차는 학교를 벗어나 좁은 도로를 달렸다.
하민서는 다른 선생님의 차를 얻어타고 가는 모양이다.
··· 1등도 내가 가져가고, 화장품을 실수로 하민서 자리에 올려놓았던 사건까지 있었는데.
이유는 모르겠지만 하민서는 요즘 조용했다.
“진짜~? 예고 애들이 먼저 도발했다고 해서 너무 이상한 짓 하면 안 된다?”
“···.”
이상한 짓 하려고 예고 가는 건데.
안 그러면 예고에 왜 가요 선생님.
“뭔가 불안 한데? 민서좀 보고 배워. 얌전하잖아.”
“··· 얌전···”
혁오와 도현이는 실실 웃었다.
“걘 곡 뭐한데요?”
“인생의 회전목마. 너희도 잘 아는 곡이지?”
클래식을 할 줄 았았는데.
선곡이 의외네.
저 멀리 예고 입구가 보인다.
야밤에 찾아왔을 때랑은 상당히 다른 풍경이다.
우리학교 애들이 위축될 만 하구만.
우리학교도 나름 깔끔한 편이지만 여긴 차원이 다르다.
건물 자체가 세련됐다.
각종 전공관의 다채로운 건물들과 우리 학교보다 자유분방한 학생들의 외견.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게 개였고, 학교 곳곳에 심어진 벚나무에는 활짝 꽃봉오리가 열려 있었다.
정말 낭만적인 분위기다.
여기가 예술고등학교구나.
차는 신입생 음악회가 열리는 다목적 체육관 앞에 멈춰 섰다.
“대기실 가서 안내받으면 돼. 나는 끝날 때 다시 올게. 그럼 수고~”
우리를 내려준 채선생님은 차를 몰고 다시 학교로 돌아가셨다.
수많은,
정말 수많은 시선이 우리에게 내리꽂혔다.
“와 ··· 쟤네야? 우리 1학년 애들이 졌다며?”
“대박.”
“···.”
신기하게 쳐다보는 애들, 아니꼬운 듯 우리를 노려보는 애들.
정말 최고의 분위기다.
우리는 당당하게 어깨를 펴고 체육관으로 들어갔다.
가장 먼저 할 일은 인파를 뚫고 무대 위에 있는 앰프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 마샬이네. 좋았어.”
“어후 다행이다.”
“베이스맨 개이득.”
다행히 예술고에는 평소 쉽게 접할 수 있는 앰프가 비치되어 있었다.
이거면 톤 세팅도 문제없겠지.
“쟤네 뭐야 ···? 왜 갑자기 무대에 올라가?”
“유산고애들 정신 나갔나봐···”
예고애들은 이방인인 우리를 가리키며 수근댔다.
도현이는 미친놈처럼 찡긋, 예고애들을 향해 윙크를 날리더니 폴짝 무대에서 내려왔다.
저 군중들 속에,
투블럭 펌의 장원영이 보인다.
그래, 도망가진 않았구나.
잘 지켜봐라. 나와 우리의 무대를.
대기실에서 받는 시선은 정말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였다.
어마어마한 적대감이 느껴진다.
우리 학교 신입생 음악회는 밝고 재밌게 하는 분위기였는데 여기는 상당히 경직돼 있다.
학교 행사도 내신에 반영되니까 그런건가?
“야, 예고에 예쁜 애들 진짜 많다.”
“그러게.”
“이것이 [예고]의 클라스인가.”
“밥은 여기서 주나?”
“완전 미슐랭 스타급이라잖아.”
“크··· 이건 거덜 내야지.”
하지만 우리는 위축될 생각이 없었다.
신입생 음악회 대기자들은 우리를 한껏 노려보다가도, 딱히 반응이 없자 얼떨떨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성예린이다.”
“머리색깔 봐.”
나는 대기실 한켠에서 친구 여럿과 모여 있는 성예린을 가리켰다.
“··· 예린아 아는 애들이야?”
“아, 응. 같은 학원.”
“쟤들이 성악과 애들 이겼대?”
“··· 맞아.”
충격적이라는 표정을 짓는 성예린의 친구들.
“김수재 너 곡 뭐 할 거야? 3번이잖아.”
“너도 잘 아는 곡이야.”
“··· 뭐?”
“한 번 들려준 적 있는 것 같은데.”
성예린의 친구들이 ‘뭐야뭐야~’ 라며 괜히 자기들끼리 신나보였다.
나와 도현이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어헝 어헝.”
···
“설마 너 ···”
“키킥.”
우리는 대기실에 앉아 노가리를 까며 시간을 보냈다.
그냥 대충 하면 될 것을 뭘 그리 유구한 전통이니 뭐니 훈화하며 시간을 끄는 건지.
장원영은 대기실에 얼굴을 내비치지 않았다.
아무래도 나랑 순번이 상당히 떨어져 있는 모양이다.
“흠 ···”
솔직히 예고 공연에는 딱히 관심이 없다.
실음과 보다는 성악이나 클래식 악기 쪽의 규모가 크고 머릿수도 많기 때문이다.
– 다음 차례는 유산 고등학교에서 온 1학년 8반 밴드의 ···
“가자.”
“그래.”
bgm은 이미 선생님을 통해서 예고 측에 전달이 됐을 터.
우리는 기타와 이펙터를 들고 무대에 올라가 정열적으로 잭을 꼽았다.
“··· 쟤네 왜 저래?”
“우우우우우우-!”
왜 그러긴. 신나서 그러지.
“드럼은 없나봐.”
“··· 뭐야 진짜.”
“곡명은 ··· pretty fly이라네요. 그럼 준비되는 대로 ···”
“음악 주세요!”
내가 손수 제작한 드럼 bgm의 도입부가 흘러나왔다.
우리는 기타를 메고 있지 않았다.
“···”
서로 텔레파시를 주고받은 듯, 들고 있던 기타를 바닥에 내려놓는다.
훌렁-
그리고, 윗옷을 벗어던졌다.
-Give it to me baby
“어헝! 어헝!”
-Give it to me baby
“으허엉 으헝!”
“뭐야 뭐야?”
“왜 갑자기 옷을 벗어!?”
“꺄아아악! 쟤네 뭐해!”
반응 진짜 혜자네.
-Give it to me baby
“으허엉 으헝!”
기타를 다시 들쳐멘다. 그리고 아주 진지한 표정으로, 가사를 읊었다.
“And all the girls say, i’m pretty fly for Goof Guy.”
(여자애들이 말하길, 난 병신같지만 예쁘대.)
누군가가 던진 양말이 내게 날아왔다.
이게 무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