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genius guitarist RAW novel - Chapter 50
작은 작곡가 (2)
Blue purple bar
아주 직관적인 이름의 곡이다.
자작곡이지만, 심혈을 쏟은 놈은 아니었다.
이 곡은, 번뜩이던 아이디어를 붙잡아 두기 위해 만들어졌다.
달리 말하면 미완성작이라는 소리다.
촤아아앙-
딴 다다단-
초반부터 울려 퍼지는 크런치한 코드 스트로크 사운드.
그 뒤를 따라가는 대충 친 피아노 라인.
피아노 튜닝이 나가 있었는지 음정이 약간 어색하긴 하다.
그래도, 머릿속에 특유의 풍경을 그려주기에는 충분했다.
챵 챠챵- 챵~
왕와 웅 왕!
이색적이고 미래적이면서, 또 현대적이기도 한 분위기였다.
회귀 전의 나는 여기에 ‘일부러 인위적이게 만든’ 드럼 비트를 넣었다.
미래풍의 바.
어둠침침한 공간에 스믈스믈 빛나는, 푸른색과 보라색 led.
하얀 수염을 기른 노년 주인장은 유일한 손님에게 압생트를 내어준다.
예술가들이 너무나도 사랑한, 싸구려 초록색 압생트를 입에 머금는 듯한,
그런 느낌이···
들려고 할 때.
툭.
곡이 끝났다.
“아···”
류혜진 선생님은 아쉬운 듯이 탄성을 내뱉으셨다.
머릿속에 살금살금 그려지려고 하던 풍경은, 순식간에 쪼그라들었다.
먼지 쌓인 연습실만이 내 시야에 비쳤다.
“···.”
내가 만들었지만 참 괜찮다. 오랜만에 들어서 그런가.
나는 피아노 의자에서 일어나 두 사람의 얼굴을 살폈다.
아주 ··· 아주 ···.
복잡 미묘해 보인다.
“··· 작곡경험이 꽤 있구나?”
류혜진 선생님은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
있긴 ··· 하죠.
편곡이든, 작곡이든. 밥 벌어 먹고살려고 발버둥을 쳤으니까.
나는 대답을 망설였다.
어떻게 대답해야 듣기에 좋을지,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린다.
“한 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야. 대충 코드를 끼워 맞춘 구성도 아니고. 진짜 네가 만든 거 맞아?”
“제가 만든 거 맞아요. 의심하시는 거예요?”
내가 만든 곡을 딴 사람이 만들었으리라 의심받다니.
기분 좋으면서도 씁쓸하다.
“아니아니, 그런 건 아니고 ···. 미안. 그냥 칭찬이라고 생각해 줄래?”
“진행이 아주 괜찮네. 녹음 장비 잘 갖추고, 베이스도 좀 넣고 하면 딱 좋을 텐데 ···”
문명래 선생님은 아쉽다는 듯이 입맛을 다셨다.
마치, 스쳐지나가는 광고에서 괜찮은 노래를 찾은 듯한 느낌일 거다.
맘에 드는데.
하지만 이름은 모르겠는데.
광고가 끝나버렸을 때의 기분.
나는 쑥스러운 기분에 뺨을 긁적였다.
지금은 괜한 허세를 부리기보다, 열정 있는 모습을 보이는 게 나을 것 같다.
“제가 오래전부터 생각해둔 곡인데 ··· 완성은 못 했어요.”
“왜?”
나는 우수에 젖은 듯한 눈빛을 띄웠다.
우수에 젖은 눈빛이 뭔지는 잘 모르겠는데.
어쨌든 슬픈 표정을 지었다.
“··· 작곡을 하려면 ··· 컴퓨터도 있어야 하고, 프로그램도 있어야 하는데 ···”
“집에 컴퓨터가 없어?”
“있는데 많이 낡아서요···”
나는 괜히 스콰이어 기타를 주물럭거렸다.
다른 애들이 200, 300짜리 기타를 들고 연습할 때,
나는 이걸 쓴다.
열정은 있는데 돈이 없다.
사실이지 않나. 우리 집이 그렇게 유복한 것도 아니고.
“아 ··· 그렇구나 ···”
류혜진 선생님은 안쓰러운 듯 고개를 끄덕이셨다.
나는 툭툭, 내 페달 보드를 발로 차서 앰프 뒤에 숨겼다.
3000달러 이상의 값어치를 가진 ts808을 알아보게 할 수는 없지.
“노력파네.”
문명래 선생님도 같이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는 굳은 결심을 한 사람처럼 말했다.
“난 너한테 장학 추천서 써 줄 거다. 채미현 선생님이랑 같이.”
“···!”
장학추천서 !
교무실에서 아우성치는 학생들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울려퍼지는 것 같았다.
장학금이 정확히 얼마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있는 돈과 합친다면 ‘기초’ 환경은 충분히 구축할 수 있을 터.
“만약에··· 장학금 받으면 뭘 할 거니?”
“제대로 음악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보고 싶어요. 특히 작곡을 ···”
나는 말끝을 흘렸다.
장학금이 얼마인지 모르니까.
맥북이랑 교육용 번들세트만 해도 200이 넘는데.
사두기만 하면 마음이 아주 든든할 것이다.
“···작곡이라 ···”
류혜진 선생님은 턱을 괴며 고민에 잠기셨다.
“류선생님. 장학금은 열정이 있고 재능이 있는 학생이 받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문명래 선생님은 류선생님을 설득하듯 말씀하셨다.
나는 그저 고개를 푹 숙였다.
“곡이 ··· 곡이 참 좋아요. 대충 생각나는 대로 구성한 게 아니라, 고뇌의 흔적이 보여요.”
번뜩 떠오른 이미지와 멜로디.
그리고 영감.
내 자작곡들은, 대부분 즉흥연주를 통해서 만들어졌다.
코드나 스케일을 후리다 보면, 어느새 ‘어 이거 좀 괜찮은데?’하는 리프가 툭 튀어나온다.
그런 리프들을 녹음해 뒀다가, 나중에 다시 치고. 또다시 치고 하다 보면 점점 길이가 길어진다.
거기에 살을 붙이고, 백킹트랙을 깔면 기타 솔로 자작곡이 된다.
“···”
이 곡은 초봄 밤에 탄생했다.
세션 녹음을 마치고, 피곤에 찌든 채 편의점에서 소주랑 오징어를 사가지고 집에 왔을 때.
소주잔 없이 병나발로 한가득 술을 넘기고, 오징어를 씹으며 원룸 밖 풍경을 멍하니 바라봤을 때.
저 멀리 빛나는 형형색색의 번화가와, Led 조명으로 덮여 있는 ‘modern bar’ 간판.
가보고 싶었다.
하지만 갈 돈이 없었다.
나는 그때, 바에 가는 상상을 했다.
“하아 ··· 문쌤이 왜 그러시는지 잘 알겠어요. 좋네요. 기타 연주도 그렇고 ···”
나는 꾸벅 고개를 숙였다.
못을 박아야 할 때다.
“장학 추천서 써주세요! 열심히 하겠습니다!”
나의 부탁에도 류혜진 선생님은 한참을 고민하셨다.
결국, 끝끝내 작게 고개를 끄덕이셨다.
“열정도 보이고, 재능도 있어. 좋아. 대신에···”
선생님은 갑자기 말을 끊으셨다.
“꼭 작곡에 투자 해야 돼. 알았지?”
“···네!”
“그리고 ··· 피아노는 실력이 좀 부족하네. 이거 완성시킬 생각이면 다른 애들한테 부탁해 보는 게 어떠니?”
“··· 오. 그럴게요.”
류혜진선생님은 단점을 콕 집어 주셨다.
역시 피아노 그냥 야매라니깐.
대충 신디로 두들긴 다음에 후보정하는게 내 스타일이다.
남들 앞에 보여줄 만한 실력은 아니지.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웃으며 문을 열고 나가시는 두 선생님께 연신 고개를 숙였다.
이제 백킹트랙 같은것도 직접 만들 수 있을 거다.
다른 사람이 만든 bgm 갖다 쓰는 것보다는 훨씬 낫지.
문명래 선생님이 무슨 바람이 불어 나를 추천한 건지는 모른다.
하지만 ··· 내 연주를 듣고 그러시는 거라면.
내 연주가 그의 마음이 움직인 거라면.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 * *
이잉이잉-
교무실의 대형 프린터가 열심히 굉음을 토한다.
요란한 소리 끝에 내뱉는 종이는 단 두 장 뿐.
문명래는 따끈따끈한 A4용지를 손에 쥐었다.
“베이스 직접 쳐주고 싶을 정도네요.”
“아까 말씀하시지~”
“하하 ··· 학생 곡에 멋대로 숟가락 올리는 것도 조금 그래서 ···. 완성곡, 꼭 들어보고 싶어요.”
“저도요.”
점심시간이 거의 끝나갔다.
두 사람은 주저 없이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 쾅- 종이에 도장을 내리찍었다.
-장학 추천서-
뛰어난 학업성취를 보이는 위 학생을 추천합니다.
특별반 교사 류혜진
···
류혜진은 털썩- 자리에 앉아서 펜을 굴렸다.
보통은 자기가 담당하는 학생을 추천하는 게 관례인데 ···
‘마땅히 없긴 했어.’
이번 3학년 작곡 전공생들.
모난점은 딱히 없고, 다들 고만고만했다.
고만고만 ··· 했다.
작곡의 재능이란 밖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법이다.
음악의 분야가 넓기도 넓거니와 모든 장르에 두루두루 재능을 갖춘 사람은 특히 보기 힘들다
.
하지만 교사로서,
작곡을 전공한 사람으로서.
류혜진은 직감했다.
크게 될 아이다.
비록, 커버할 수 있는 분야가 좁아 보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재능이 없는 건 아니다.
분야의 탑.
멀티 플레이어가 아닌, 온리 원.
정말 온리 원이 된다면.
이름만 들어도 누구나 아는, 그런 기타리스트가 된다면.
교사로서, 음악인으로서. 지금까지 느껴본 적 없는 뿌듯함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류혜진은 종이컵에 탄 커피를 홀짝였다.
동시에, 맞은 편 자리에 앉아 있는 채선생님에게 손을 흔들었다.
“선생님~ 봐봐요.”
“네···?”
안경 너머의 시선이 방금 인쇄된 종이에 고정되었다.
“선생님도 수재 추천하셨어요?”
“물론이죠~ 이거 한 번 들어보실래요?”
류혜진은 활짝 웃음을 지으며 가방 속에 들어 있는 노트북을 열었다.
30초 정도의 짧은 곡이, 교무실에 울려 퍼졌다.
* * *
시험이 끝났다.
평소에 열심히 공부를 하던 애들은 해방감에 소리를 질렀고,
진득하게 망쳐버린 애들은 절망에 젖은 표정을 지으며 좀비처럼 복도를 배회했다.
도현이랑 혁오도 개망했다.
맨날 기타만 치고 싸돌아다녔으니 당연하지.
우리는 가장 등수가 높은 사람이 다섯 대씩 맞자는 내기를 하며, 어기적어기적 하굣길을 걸었다.
“너희 대회 곡 뭐할거냐?”
“난 캐논락. 김수재 캐논 개멋있음~”
4월 26일 화요일 오후 5시 30분.
도현이의 핸드폰에서 오케스트라 캐논락이 흘러나왔다.
“베이스로 캐논락을 한다고? 편곡된 게 있긴 있어?”
“찾아보니까 있음. 베이스디스토션 하나 사려고.”
“미친 ···”
나는 도현이의 똘기에 감명받으며 유튜브에 베이스 캐논락을 검색했다.
이걸 친 사람이 있네.
저 장력으로 어떻게 저런 밴딩을 하는 거지?
대단하다.
“이걸 네가 친다고?”
“물론.”
도현이는 자신감이 넘치는 표정을 띄웠다.
나는 다시 에이트라의 채널을 확인했다.
오케스트라 캐논 락 조회수가 ···
27만.
높다···
상당히 높다.
점점 인지도가 쌓이는 느낌이다.
다음달 10일 쯤에 유튜브 정산금이 들어오니 한동안 돈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다.
학교 장학금도 은근 빨리 나왔다.
오늘 아침에 부모님 통장으로 입금 됐다.
약 100만 원.
어머니는 네가받은 장학금이니 알아서 쓰라고 하셨다.
아버지는 ···
평소에 지원을 못 해줘서 미안하다는 말씀을 하셨다.
마음이 좀 아프다.
“장학금 진짜 개이득이네. 펜더 살 거냐?”
“놉.”
“다른 기타? 레스폴?”
“놉.”
“아 뭐 살건데~”
나는 핸드폰을켜서 메시지를 확인했다.
-아 네 그럼 4번 출구 앞 다람 카페에서 거래 가능할까요?
-네 ^^
솔직히 맥북 존나비싸다.
돈 많이 버는 프로들도 살때마다 욕짓거리를 내뱉는 게 맥이다.
··· 2016년식 15인치 기본형이 한 240만 원 정도 하네.
“너 노트북사려고?”
“이 돈이면 게이밍 pc 사겠다.”
내 핸드폰을 훔쳐보고 있던 도현이와 혁오가 놀란 듯한 목소리를 냈다.
“설마 진짜 살 거냐? 다시 생각해봐. 이돈이면 ···”
“중고로 살 거야.”
“이거 뭐하는 데 쓰는 거임?”
“뭐 녹음도 하고 작곡도 하고.”
“녹음?”
음악인들이 맥을 쓰는 이유.
그건 바로 쓸데없는 분노를 피하기 위해서이다.
윈도우 pc와 맥은 작업 안정성에서 큰 차이가 난다.
윈도우도 많이 좋아졌다, 이제 괜찮다 라는 말은 어딘가에서 계속 들려오는데, 정작 근원지는 찾을 수가 없다.
윈도우에서 작업하다 프리징 걸리고 오토세이브 날아가 버린 경험 ··· 은 뭐 음악인이라면 다들 몇 번씩은 가지고 있다.
개빡친다.
열불나고, 속이 터지고, 머리가 하얘진다.
나는 그런 경험을 다시는 하기 싫었다.
“작곡쌤이 이걸로 시작하면 좋댔어.”
“그런 건가?”
“그렇단다~”
나는 류혜진 선생님의 이름을 팔았다.
괜찮겠지 뭐.
“연습수고~”
“내일 봐!”
학원에 가기 전, 잠시 역 앞 카페에 들렸다.
카운터 바로 앞자리에 갈색 머리 여성이 보인다.
거래자다.
나이는 한 20대 초반처럼 보이네. 대학생인 거 같다.
“음악 작업에 썼어요. 지금도 프로그램 잘 돌아가요.”
어디보자 ···
나는 컴퓨터 정보에 들어가 스펙을 확인했다.
뭐, 나쁘진 않다.
램도 16기가는 되고.
급매하느라 가격도 싸고.
벤치마크 돌려봐도 이상 없고.
“여기요.”
“감사합니다~ 수고하세요~”
100만원을 건네 받은 이름 모를 대학생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카페에 앉아 노트북을 확인했다.
외관은 깔끔 그 자체다. 모니터에 연결해두고 쓴 모양이다.
포멧은 안한 거 같은데 ··· 찌꺼기 파일이 거의 없다.
나는 폴더를 탐색하다가, 문뜩 사진 한 장이 눈에 들어왔다.
딱 한장.
이상한 사진이 아닌 ··· 가족사진.
“···.”
나는 노트북을 내려놓고 냅다 밖으로 달렸다.
문짝에 달린 종이 마구 울어댄다.
창창- 창!
“아 ···”
그세 어디로 사라졌는지, 갈색 머리의 대학생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구나.
회귀하고 나서는 거의 잊고 지냈다.
어차피 2학년 될 때까지 볼 일 없을 거라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이번 대회는 ‘전국대회’다.
전국에 있는 애들이 전부 모인다.
각 지역의 콩쿠르에서 수상한 애들이, 장학 지원을 받기 위해.
“허어 ··· 대학생 땐 저런 얼굴이었구나. 왜 못 알아 봤지.”
나는 카페로 돌아가 노트북을 챙겼다.
만날수도 있겠네.
노트북에 남아있던 가족사진에는, 중학생 정도의 남자애가 어색하게 웃음을 짓고 있었다.
나는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내 오랜 친구 민수.
나는 괜스레 복잡해지려 하는 머릿속을 정리하고, 학원을 향해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