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genius guitarist RAW novel - Chapter 59
멀고 먼 우상의 기타 (2)
스트라토캐스터로는 메탈을 못 하는가?
텔레캐스터로는 ccm을 못 하는가?
할로우바디 기타로 락은 무리인가?
100명의 기타리스트에게 물어봤자, 각기 다른 대답이 돌아올 뿐이다.
장르에 맞춰 기타를 선택해야 한다는 사람도 있을 거고,
기타 하나로도 어느 정도의 장르적 확장이 가능하다는 사람도 있을 거고,
그게 뭔 상관이냐는 사람도 있을 거다.
솔직히 나는 2번과 3번의 중간 성향이다.
싱싱싱 스트라토캐스터라도 메탈을 할 수 있고,
텔레캐스터로도 ccm을 칠 수 있다.
그냥 다 할 수 있다.
다만 ···
연주자가 노력을 더 쏟아야 하는 것뿐이다.
디이잉-!
펜더 디럭스 리버브 앰프에서 굵직한 기타 소리가 울렸다.
“이야 ···”
입에서 자연스레 감탄이 터져 나왔다.
레스폴 진짜 오랜만이네
거의 두 달 넘게 안 썼으니까.
갑자기 회귀 당일날이 생각난다.
이걸 주우려다가 내가 뒤졌지 참.
투두두두둑-
클린톤으로 하이프렛 크로메틱 속주를 갈겨본다.
4번줄 20프렛에 약지가 잘 안 닿는다.
뭐, 대충 이런 거다.
레스폴로도 속주 곡을 칠 수는 있다.
기타 때문에 곡을 못 친다고 하는 건 ‘불평’ 일 뿐이다.
레스폴이 속주 하기에 알맞은 기타는 아니지만, 속주가 아예 불가능한 기타도 아니다.
“톤 세팅은?”
“날카롭고 시원하게 할 겁니다.”
“흐음 ···”
윤대혁선배는 못마땅하다는 듯이 턱을 괴었다.
슈퍼스트랫 빠돌이 윤대혁.
머지않은 미래에, 기타 하나를 더 들이겠지.
2019년부터 광풍이 불기 시작하던 ‘헤드리스’ 기타 말이다.
참 편리한 거 좋아하고, 빠른 거 좋아하는 양반이다.
그에비해 나는 어떤가.
솔직히 빈티지 기타도 좋고, 모던 기타도 좋다.
정확히 따지자면 나는 사도이면서 근본파다.
진짜 근본파들은 58,59 레스폴, 57, 62 스트랫 같은 것들만이 진리라 추앙하지만, 나는 빈티지스러움과 현대적인 소리가 섞여 있는 게 더 좋다.
현대의 취향을 포용함과 동시에, 과거의 소리를 잃지 않은 기타들.
내가 쓰는 스콰이어 클래식바이브 50s도 그렇다.
현대적이면서 빈티지한 소리를 내 준다.
지금 들고 있는 이것 또한 ···
치이이잉-!
ts808과 sd-1이 중첩된 강력한 오버드라이브 사운드가 지하실에 왕왕 울려 퍼졌다.
빈티지 하면서 모던하다.
“어우 ···”
드라이브 진짜 잘 먹네.
스트랫에 이펙터 물려 쓸 때는 게인노브를 끝까지 돌렸었는데.
이건 2/3만 돌려도 비슷한 수준의 자글거림이 만들어진다.
“이거 스탠다드예요?”
“맞어.”
“B스탁인가요?”
“C스탁~”
“네!?”
나는 기타를 훑었다.
헤드가 부서진 흔적은 없었다.
픽업 밑쪽에 큼지막한 기스가 좀 있긴 했지만, 감당 가능한 수준이었다.
“픽업도 빠가나고, 배선도 새로 했고, 프렛도 다 갈아낸 거여. 너트 깨진 건 딴것에서 뽑아다 붙였셔.”
뭔 프랑켄슈타인 기탄가?
그래도 깁슨의 소리가 ··· 난다. 잘 난다.
듣자마자 알 수 있었다.
이 특유의 소리는, 절대로 다른 회사가 흉내낼 수 없다.
펜더의 하위 브랜드 ‘스콰이어’ 에서는 펜더의 소리가 나지만,
깁슨의 하위 브랜드 ‘에피폰’ 에서는 깁슨의 소리가 잘 안 난다.
에피폰도 충분히 좋지만, 노선이 아예 다른 것이다.
자회사도 이런 실정인데 다른 회사는 오죽할까.
절대로 깁슨의 소리를 따라할 수 없다.
“음··· 상태는 괜찮네요.”
“그체?”
근데 이거할아버지께서 직접 리페어 하신 건가?
진짜 그렇다면, 리페어 장인 급 실력을 갖고 계신 것이다.
“기대하겠다.”
나는 윤대혁 선배의 응원 아닌 응원에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펙터와 앰프의 노브들을 조절하여 트레블을 왕창 먹인다.
레스폴은 ‘두껍고’ ‘기름진’ 소리가 특징인 기타다.
속이 꽉 찬 중음.
부족하지 않은 고음.
필요 여하에 따라 딱 잡아주는 저음.
범용성이 스트랫 보다 좋다.
하이프렛 연주하기가 좆같은 게 문제지만.
쥬우우웅-!
나는 핸드폰으로 트립티크 BGM을 검색해서 스피커에 흘렸다.
툭툭툭-
그리고, 주저 없이 연주에 들어갔다.
지지징- 징! 키이잉-!
레스폴의 리어픽업.
드라이브를 강하게 먹인, ‘트레블’이 완만하게 솟아있는 소리.
트립티크의 원곡은 탐 앤더슨의 슈퍼스트랫으로 연주되었다.
전형적인 형태의, 전형적인 험버커픽업의, 무난하기 그지없는 기타로 말이다.
쥬우웅-!
귀를 타고 전해지는 두터우면서도 찌르는 듯한 감각.
스트라토캐스터와는 전혀 다르다.
스트랫이 입에서 톡톡 터지는 팝핑캔디 같은 맛이라면,
이건 묵직한 레몬이다.
혓바닥을 조지는 점은 똑같지만, 방향성이 다르다.
따라라란 -따라란 란!
나는 머릿속에 저장되어 있는 악보를 짚어나갔다.
트립티크는 기타쟁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고, 누구나 도전하는 곡이다.
입문후 실력이 올라 중수쯤에 걸치면,
캐논락을 적당히 건드리다 보면,
이 곡이 자연스레 시야에 들어오게 된다.
“···.”
윤대혁 선배는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레스폴로 트립티크 치는 게 그리 신기한 건가.
뭐, 어려운 곡이니까.
중수 단계에서 많이 건드리고, 곡을 완주하는 경우도 은근 많긴 하지만,
쉽지는 않다.
오히려 ‘중수 난이도’ 처럼 보이는 곡이라, 더더욱 연주자에게 엿을 먹이는 놈이다.
“잘 치는디? 너 아가 보는 눈은 좋다야. 저번에 갸보다 맛이 좋아 맛이.”
“더 들어 봐야죠.”
윤대혁 선배는 말을 아꼈다.
스윽-!
나는 힘차게 하이프렛으로 손을 꺾었다.
손목이 아프다.
역시, 하이프렛 연주하기가 힘들다.
슈퍼 스트랫이 ‘너 편하라고 내가 미리 준비해 놨어.’ 라며 희생정신을 한껏 발휘하는 기타라면,
스트랫은 ‘하이프렛 치려면 쳐라.’ 라고 양보하는 느낌.
레스폴은 ···
-하이프렛 친다고? 뒤질래?
대충 이런 느낌이다.
마치, 여기를 건드리면 너의 손목을 조져버리겠다며 경고하는 것 같다.
드르르르르릉-!
나는 태핑을 시작했다.
“호오 ···”
동시에, 윤대혁 선배의 입에서 감탄사가 터져나왔다.
트립티크가 어려운 이유.
태핑 노트가 진짜 괴상하게 찍혀 있기 때문이다.
귀로 따기 난해하게 만들어 놨기 때문이다.
샴 쉐이드 본인들이 악보를 공개할 리 없으니,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트립티크의 악보는 대부분 유저들이 ‘직접’ 귀로 딴 것이었다.
2016년 현재는 ··· 두 세 종류 쯤 블로그 같은 데서 돌아다니겠네.
다 틀린 악보다.
실제 트립티크는, 태핑이 훨씬 복잡하고 어렵다.
다이타 본인 조차도 라이브에서 약식으로 된 태핑을 연주할 정도니까.
귀 뿐만 아니라 눈까지 같이 써야 완전한 카피를 할 수 있는 곡이다.
드르르르륵-!
나는 힘차게 오른손 검지와 중지로 지판을 눌러댔다.
꽈배기 태핑.
오른손에 신경장애가 있을 적, ‘저릿거림’을 피하고자 직접 개발한 기술이었다.
머릿속에 또다시 그 풍경이 아른거린다.
레스폴 특유의 기름진 톤.
Eq 조절로 하이를 팍 올려버린 톤 밸런스.
기름지면서, 상쾌하다.
마치··· 마치.
초여름에 자동차를 몰며, 창문을 연 채 해안 도로를 달릴 때의 기분 같다.
조금 덥지만, 시원한 느낌.
여름 특유의 무거운 공기가 피부와 부딪히며, 오묘한 청량감이 온몸을 휘감는다.
기분 좋다.
정말 기분 좋은 소리다.
나는 이 ‘광경’이 머릿속에 떠오른 것에 안도하며, 곡을 끝냈다.
쟈아아아앙-!
박자는 하나도 어긋나지 않았다.
단 한 번 피킹이 씹히긴 했지만, 레스폴에 쉐입에 적응이 되지 않은 탓이었다.
이건 연습이 해결해줄 문제다.
좋아.
성공적이다.
나는 윤대혁 선배의 얼굴을 살폈다.
눈빛으로만 감정표현을 하던 별종은, 지금 ‘눈썹’까지 이용해서 자신의 기분을 표출하고 있었다.
“··· 트립티크라 ···”
윤대혁 선배는 지하실 벽에 쭈욱 몸을 기대며 고개를 치켜들었다.
백발의 할아버지는 조용히 웃으시며 내 머리를 슥슥 쓰다듬으셨다.
“끌끌, 나이가 을마라고?”
“열일곱입니다.”
“겨 아직 청청하네! 그려, 기타는 업으로 할 거고?”
“그렇습니다.”
나는 당연한 질문에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자글거리는 눈주름에서 이어진 노년의 눈동자는, 아주 날카로웠다.
“잘 되겄네. 큰 사람 되겄어. 야이노무자식아. 넌 아가들 가르치는 놈이 연주 감평좀 하고 그려!”
할아버지는 괜히 윤대혁 선배를 나무라셨다.
윤대혁 선배는 핸드폰을 켜더니, 투투두두두둑- 양 손가락으로 화면을 두들기기 시작했다.
“보통 그 곡은 레스폴로 잘 안 친다. 유튜브로 검색해 봐도 ···”
그는 내게 핸드폰을 내밀었다.
트립티크 연주 검색 결과가 띄워져 있었다.
레스폴 영상은 별로 없네.
뭐, 당연하겠지.
회귀전에 그냥 호기심으로 쳐 본 거다.
근데 쳐보니까 은근 느낌이 좋아서 계속 쳤다.
그러다가 결국, 커버가 완성됐다.
“뭐랄까···. 테크닉 자체는 부족하지 않다. 속주 부분에서 약간 씹히는 느낌이 있었긴 했지만 ···”
··· 역시 태크니션 기타리스트.
칭찬보단 까는 게 먼저구만.
“거북한 수준은 아니다. 톤 세팅도 듣기 적당히 좋았다. 즉석에서 만든 건가?”
윤대혁 선배의 시선이 내가 쥐고 있는 레스폴에 향했다.
일반 스트라토캐스터도 그닥 안 좋아하는 양반인데.
레스폴은 대체 얼마나 싫어하는 걸까?
“예전부터 구상은 해뒀던 건데 ··· 그냥, 잡자마자 딱 느꼈어요. 트립티크가 원래 귀 시리듯 시원한 느낌이 있잖아요?”
“그렇지.”
“근데 커버곡들도 다 톤을 시리게만 잡으니까 좀 물리더라구요.”
“··· 그런가.”
빙수를 한 사발 들이킨 듯한 시원한 곡.
난 그것을 레스폴의 소리에 맞게 재구성했다.
여름바람 특유의 묵직하면서도 시원한 느낌을 담아서 말이다.
윤대혁선배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래, 잘 들었다. 본선에서 친다고?”
“예.”
“1위는 따놓은 당상이겠군.”
··· 그의 말은 아주 직설적이고 솔직했다.
윤대혁 선배는 터벅터벅, 지하실 구석으로 다가가 박스를 뒤적였다.
“야이놈아 뭐 혀!”
“제가 예전에 맡겨둔 거 있지 않습니까.”
“잉?”
윤대혁 선배의 손에는, 양철 도시락통 하나가 들려 있었다.
이펙터 페달이라도 주는 건가? 싶었지만 아니었다.
진짜 도시락통이네.
안에는 ··· 종이 한 장이 들어 있었다.
꼭 쿠폰 같이 생겼다.
-물건값의 20%를 깎아 줍니다.-
-주인 백-
“···.”
백발의 할아버지와 시선이 맞았다.
“이거 얼마예요?”
나는 쥐고있던 레스폴 들어 올렸다.
“어··· 그거시 ··· 오래돼서 기억이 가물가물 한디.”
“잘 받아야 150 정도 아닙니까?”
“그건 도매가고 이놈아! 소매가는 좀 달··· ”
“이거 써서 120에 주면 되겠네. 자, 가져가라.”
윤대혁 선배는 ‘깁슨’ 마크가 박힌 소프트케이스를 내게 던졌다.
보통 깁슨 새거 사면 하드케이스도 주던데.
역시 거기까지는 무리인 모양이다.
“흐흐흐~”
수리 진짜 말끔하게 해두셨네.
픽업도 깁슨 버스트버커고.
쫘악-!
나는 실실 웃으며 픽업 스티커를 떼버렸다.
이맛이지.
“어휴 ··· 뭐 그려. 가져가.”
“감사합니다!”
나는 백발의 할아버지께 꾸벅, 고개를 숙였다.
좌펜더 우깁슨.
좌 스콰이어이긴 한데 ···
뭐, 어쨌든 완성이다.
“아 그리고 ···”
나는 할아버지께 내가 찾고 있는 기타에 대해 말했다.
“그건 여기 잘 안 들여와~ 찾는 사람이 별로 없잖여.”
“··· 그렇군요.”
“의외군. 펜더 좋아하는 건 알고 있었지만 ···”
“그 색깔이어야만 해요.”
“들어 오면 야한테 말해 주면 되제?”
“옙.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나는 주섬주섬 페달 보드를 정리했다.
동시에, 윤대혁 선배가 등 뒤에서 아주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긴장해라. 예선을 1위로 통과했다고 너무 안도하지 말고. 태현이 이번 곡도 아주 잘 뽑혔으니까.”
“김태현이요? 좋은 거 준비했나 보네.”
의미심장하게 말하니까 괜스레 궁금하다.
확실히, 나를 제외한다면 우리 학년 기타 탑은 김태현이다.
뭘 준비했을까.
저번처럼 번개 맞은 기타 들고 나올까?
나는 쌍기타를 메고 페달 보드가방을 손에 쥐었다.
더럽게 무겁다. 거의 완전군장 수준이다.
-티링!
-티링!
두 개의 핸드폰에서 경쾌한 소리가 뿜어져 나왔다.
계좌이체 완료.
“들어가 보겠습니다~”
“그려~”
나는 들뜬 기분으로 건물에서 나와 집을 향해 걸었다.
깁슨 레스폴 스탠다드 플러스탑 선버스트.
학교에 이걸 가져가면 ··· 애들이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
개쓸데없이 기대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