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genius guitarist RAW novel - Chapter 58
멀고 먼 우상의 기타 (1)
곰 같은 인상의 박부장은 묘한 분위기를 풍기며 나를 지긋이 쳐다보기만 했다.
추가로 일을 맡긴다거나, 게임 OST를 발주한다거나.
그런 희망찬 이야기를 꺼내지는 않았다.
꿀꺽.
침을 삼킨다.
내 오리지널 곡이 게임에 삽입된다면 어떨까.
내 이름이 온전히 박힌 음원을 수많은 사람들이 듣는다면 어떨까.
그보다 더 행복한 상황은 없을 것이다.
근데 뭐 이건 내 순수한 바람이자 욕심 같은 거다.
어디 세상만사 일이 그리 쉽게 풀리겠어.
‘블루 퍼플 바 완성해놔야겠네 ···’
편곡 하는데도 시간이 엄청 잡아먹히는데.
자작곡 작업 들어가는 순간 진짜 잠은 다 잤다고 봐야 한다.
우선은, 대회에 집중해야겠다.
인지도를 넓히는 방법이 ‘곡’에만 있는 것은 아니니까.
나라는 존재 자체를 알려야 한다.
“레브소닉6! 발매된지 얼마 지나지 않은 따끈따끈한 ···”
송아린과 찰떡처럼 붙어 다니던 연장자 멤버.
그녀는 마이크에 대고 들뜬 목소리로 게임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이름이 ··· 뭐였더라.
선희? 주희?
기억이 안 나네.
나는 아이리즈 멤버들이 응원 메시지를 녹음하는 걸 멍하니 지켜보았다.
레브소닉 너무 재밌어요~ 대작이에요~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저 여섯 명이 진짜 레브소닉 유저인지 아닌지는 모른다.
대본 들고 있잖아.
에이트라는 매니저와 열띤 협의를 하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
“그걸 어떻게 좀···”
둘이 하는 얘기가 어느 정도 짐작이 갔다.
연예 기획사에서 돈을 받고 하꼬들을 띄워 주는 에이트라.
유튜브 출연 관련 내용이겠지.
나는 귀를 기울이며 비밀스런 얘기를 훔쳐 들었다.
에이트라는 한 달에 얼마를 벌까?
채널에 내 영상만 올라가는 것도 아닌데.
광고 들어오는 것까지 합치면 수익이 정말 상당할 거다.
“이미 스케쥴이 꽉 차있어서 당장 인터뷰는 어렵다네요 ···”
“아쉽네요.”
인터뷰를 따 내려고 했던 건가.
실패한 모양이다.
쟤들이 나처럼 시간이 남아돌지는 않을 테니까.
휴일인데 열심히 일하고 있는 거 봐.
이래서 아이돌은 힘들다니까.
락스타들은 맨날 어디 쳐박혀서 술 처먹는 게 일인데.
“고생하십시오! 들어가 보겠습니다!”
“수고하셨어요.”
“곡 잘 들었어요! 빨리 올려주세요!”
“옙!”
나는 황프로듀서와 박부장한테 꾸벅꾸벅 고개를 숙이며 정리를 시작했다.
트랙과 원본 파일을 추출해서 노트북에 담는다.
이제 집에 가서 다듬기만 하면 된다.
“끄응!”
삼각대 네 대에 카메라 네 대.
나는 에이트라를 도와 장비들을 들고 차로 이동했다.
“아유~ 감사합니다.”
“에이, 뭘요.”
“태워다 드릴까요?”
“아뇨 괜찮아요. 들릴 데가 있어서.”
“아하. 수고하셨습니다!”
에이트라는 흰색 자가용을 몰며 고개 너머로 사라졌다.
저 사람도 한 공격운전 하네.
이래서 한국에선 방어운전 효과가 별로 없다니까.
공격1을 방어1로 막으면 결국 0이잖아.
그럼 그게 일반운전이지.
일이 끝났다.
지하철 역이 코앞이다.
스윽-
나는 기타 가방을 고쳐 멨다.
해야 할 일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등에 고이 업혀 있는 스콰이어 기타.
산지는 2달밖에 안 됐지만, 꽤 밀도 높게 썼다.
이걸 팔지는 않을 거다. 처음 번 돈으로 산 기타라 나름 의미 있는 놈이니까.
나는 핸드폰을 꺼내어 박작곡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어 그래. 수재구나.
“슈퍼에 계세요?”
-있지. 왜?
“기타 좀 보려고요.”
나는 시계를 확인했다.
오후 1시 20분.
시간은 충분했다.
-기타? 돈 생겼어?
“옙.”
– 내가 저번에 명함 준 데 있지? 우선 거기 들려봐라.
바로 오라고 할 줄 알았는데.
박작곡가는 나에게 다른 제안을 했다.
나는 지갑을 뒤적였다.
박작곡가에게 받았던 명함 두 개.
하나는 이상한 공장이고 나머지는 ···
악기점이네.
타타뮤직.
위치는 종로다.
낙원상가에 입점해 있는 건가?
“못 봤는데 ···”
낙원상가가 워낙 넓긴 하지만, 내 기억 속에 타타뮤직이라는 점포는 없었다.
– 거기 아는 사람이 별로 없을 거야. 간판도 되게 작아서 찾기도 힘들어. 지하실이 좀 크긴 한데···
“지하실이요?”
-어. B, C 스탁 쌓아놓고 파는 데야. 낙원 점포들에 물건 대 주는 거지.
도매겸 소매상이라는 소리인가.
흥미가 끓어 올랐다.
뉘앙스를 들어보니 낙원 입점 점포는 아닌 모양이네.
재빨리 휴대폰 지도를 켜서 위치를 검색한다.
낙원 근처의 다른 건물이었다.
“감사합니다. 우선 여기 한번 들려볼게요.”
-그래. 근데 뭐 사려고? 펜더냐? 드디어 펜더 사냐?
“가서 결정해야죠.”
-잘 알아보고 사. 끊어라. 연락 자주하고.
박작곡가는 터프하게 자기 할 말만 하고 전화를 끊었다.
나는 계단을 내려가 때마침 도착한 지하철을 탔다.
“흠흠~”
콧노래를 부르며 핸드폰을 켠다.
인스타나 할까?
나는 추천친구에 떠 있는 ‘신채원’을 팔로우했다.
내 1호 팬이다.
그러니 의미가 아주 각별했다.
보통 좋아요 눌러주면 좋아하지 않나?
나는 1호 팬의 게시물에 모조리 좋아요를 눌렀다.
내 팔로워는 ···
아이리즈 멤버 여섯이 전부다.
찰칵-!
즉석에서 셀카를 찍어본다.
딱히 못생기진 않았네.
머리가 좀 떡지긴 했는데 얼핏 보면 스타일링 한 거 같기도 하고.
그냥 올리면 되는 건가?
나는 인스타에 첫 사진을 올린 후, 무릎에 노트북을 펴놓고 작업을 시작했다.
– 이번 역은 ···
종로에 도착했다.
5월 연휴 초입의 날씨는 아주 적절했다.
구름 반 푸른 하늘 반.
햇빛이 그리 강렬하지도, 기온이 너무 높지도 않다.
딱 적당하다.
나는 낙원상가 근처를 서성이다, 붉은 벽돌로 된 건물 앞에서 멈춰 섰다.
지도 네비게이션이 가리키는 위치였다.
“···응?”
적막했다.
보통 악기점은 창쪽에 악기들을 진열해 놓는다.
이런거 팔고 있어요~ 라고 어필을 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이곳은, 단순 거무튀튀한 선팅 유리창만이 1층을 감싸고 있었다.
Tata music
간판이 코딱지만 하네.
나는 벌컥 문을 열고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흐읍.
코를 적시는 적당한 습도.
악기에 최적화된 적당한 온도.
보통 ‘습온도’ 관리를 하는 악기점은 드물다.
대충 은은한 조명 붙여 놓고 대충 기타 걸어놓는 게 전부다.
하지만, 이곳은 ···다르다.
관리가 되고 있었다.
“누구슈?”
쇳소리가 섞인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백발의 할아버지였다.
“안녕하세요. 기타 좀 보러 왔습니다.”
“겨? 으린 아가 으찌 여길 알았을까.”
할아버지 말투는 충청남도 사투리와 전라도 사투리가 섞여 있는 느낌이었다.
나는 꾸벅, 고개를 숙였다.
“천천히 둘러봐~ 난 저 안에 들어가 있을라니. 젊은 친구가 오늘 둘이나 찾아오네~ ”
백발의 할아버지는 뒷짐을 지시더니 시끄러운 TV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으로 걸어가셨다.
젊은친구?
누가 또 온 건가?
나는 1층에 놓인 악기들을 둘러보았다.
B, C스탁 제품을 판다고 들었는데 ···
없는데?
하자가 있는 악기는 보이지 않았다.
“저기 ···”
나는 tv 놓인 쪽으로 걸음을 옮겨 다시 한번 할아버지를 불렀다.
하지만 그때,
“뭐하나?”
바로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내 고막을 두들겼다.
“…?”
나는 휙, 고개를 돌렸다.
월요일마다 보던 익숙한 얼굴이었다.
이 사람이 왜 여깄는 거야.
손에는 또 왜 기타가 두 대나 들려 있어.
그는 턱턱, 상태가 안 좋은 기타를 거치대에 걸었다.
“후우 ··· 어제는 왜 학원에 안 나왔지?”
윤대혁 선배는 한숨을 푹 쉬며 물었다.
휴일에 만나자마자 학원 얘길 꺼내다니.
그의 눈이 이글거린다
눈으로만 감정표현을 하는 별종 인간이다.
“…”
뭐,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중대한 일을 맡아놓은 상태였으니까.
학원에 틀어박혀 있을 수는 없었다.
“선생님이야말로 어제 학원 나오셨어요? 보통 수요일에는 안 나오시잖아요.”
나는 말을 돌렸다.
“그래. 일부러 시간 내서 나왔다.”
아이고야.
나는 노트북을 열어 작업물을 윤대혁 선배에게 공개했다.
급냉각된 분위기를 좀 풀어보기 위해서였다.
“이건 …?”
“레일라예요.”
지하철에서 미리 합쳐놓은 트랙들이 재생됐다.
윤대혁선배는 말없이 뚫어져라 노트북을 쳐다보았다.
“너 ··· 맥북도 가지고 있구나.”
··· 보통 곡에 대한 감상을 먼저 말하지 않나?
“태현이한테 얘기 들었다. 심사 위원이 흥분해서 마구 떠들 정도의 연주였다고.”
··· 에이 그 정도 까지는···
머릿속에 대머리 아재의 얼굴이 스쳐 지나간다.
반은 사실이었다.
“들어보니 ··· 잘 알겠다.”
윤대혁선배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 칭찬을 잘 안 하는 사람이다.
닳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오히려 악평을 하면 했지.
입을 다물고 있다는 것은 즉슨, 긍정의 의미일 터.
은근 알기 쉬운 양반이다.
“작곡 경험은 원래부터 있었나 보군.”
“아 예, 취미로.”
“전체적인 밸런스가 아주 좋아. 딱 어디 써먹기 좋은 구성이다. 영상 BGM 이라던가 ···”
윤대혁 선배의 예상은 소름이 돋을 정도로 날카로웠다.
어디 써먹기 좋은 노래라 ···
“맞아요. 어디 써먹기 좋죠.”
“왜 바로 긍정하지?”
“어디 써먹히니까요.”
“···?”
나는 피식 웃음 지었다.
“이거 리듬게임에 들어갑니다.”
“···호오.”
윤대혁선배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선생님이 여기 계셨다면 잘했다며 등을 마구 두들겨 주셨을 텐데.
반응 진짜 개싱겁네.
“17살에 프로 활동이라 ··· 태현이보다 경력이 적은데도···.”
“애가 아직 어린데 곡도 다 쓰고. 대단혀~”
할아버지도 우리의 대화를 엿듣고 계셨나 보다.
“작곡이 아니라 재편곡입니다.”
“기나 기나.”
백발의 할아버지는 바둑 TV를 끄시더니 의자에서 일어나셨다.
“아가야, 기타 뭐 찾니?”
“아 ··· 우선 둘러보고 결정하려구요.”
“그려. 저 밑에로 내려가자고. 둘은 알든 사이인겨?”
“제 학생입니다.”
“촌뜩이가 애기들 데려다 가르치기도하고. 다 컸네 다 컸어.”
대체 저 사투리의 기원은 어디지?
별거 아닌데 되게 신경 쓰인다.
나는 주인 할아버지와 윤대혁 선배를 따라 지하로 내려갔다.
지하인데 지하 냄새가 나지 않는다.
신기하다.
이렇게까지 관리 하기가 힘든데.
“신기하네요 ··· 지하인데 상쾌해요.”
“나무도 숨을 쉬니까 말여.”
할아버지는 별것 아니라는 듯이 말씀하셨다.
악기를 진심으로 사랑하시는 게 느껴진다.
“오 ···”
나는 본능적인 감탄을 토했다.
뭐랄까, ‘기타리스트’로서의 감탄이다.
수많은 악기들이,
환한 지하에 늘어서 있었다.
“··· 저짝은 미국 펜더. 저짝은 멕시코 펜더. 여 부턴 깁슨.”
B, C 급 스탁제품.
‘스탁’ 이란 단어가 가리키는 범위는 상당히 넓다.
다만, 악기에서의 스탁제품은 ‘하자품’이라는 의미였다.
“B급은 외관만, c급은 ‘수리품’ 이다.”
윤대혁 선배가 설명을 시작했다.
“수리품이요?”
“갯수는 적지만 있어. 예를 들어 ···”
그는 입구 바로 옆 레스폴을 들어 보였다.
“··· 어후.”
나는 한숨을 토했다.
헤드가 동강나버린 기타였다.
“이런게 c급 중에 하급이지.”
“··· 전 안 살래요.”
레스폴의 최대 단점이다.
기타를 잘못 쓰러뜨리면 헤드가 부서져 버리는 것.
스트라토캐스터 같은 경우, 기타를 정면으로 눕히면 넥과 헤드가 땅바닥에 닿지 않는다.
하지만 레스폴은 다르다.
헤드가 먼저 닿는다.
그러니 운 안 좋으면 이런 식으로 개박살이 나버린다.
“이거 그 뭐냐, 뽄드로 잘 붙여서 팔면 팔려~”
“··· 영감 참 대단하십니다.”
“이쟈 알았어?”
칭찬이 아닌 거 같은데.
친할아버지는 아닌 모양이다.
나는 머릿속에서 두 사람의 긴가민가한 관계를 정리했다.
터벅. 터벅.
넓디 넓은 지하실을 천천히 둘러본다.
박작곡가네 슈퍼마’켙’이 ‘고가품’들의 향연이었다면, 여기는 하자품들의 천국이었다.
누가 못으로 긁은 듯이 도장이 파인 스트라토 캐스터.
픽업이 거꾸로 박혀 있는 정신 나간 슈퍼스트랫.
대체 저런 불량은 왜 나오는 걸까.
QC를 제대로 안 하는 건가?
나는 본능에 이끌려 깁슨기타가 놓여있는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펜더 ··· 가 좋긴 한데.
레스폴도 있어야 한다.
무조건 가지고 있어야 한다.
펜더와 깁슨.
지미 헨드릭스, 에릭 클랩튼, 잉베이 말름스틴 등.
‘펜더’로 대표되는 뮤지션이 있는 반면,
‘깁슨’을 사랑하는 뮤지션도 있었다.
레스 폴, 잭 와일드, 커크 해밋, 웨스 몽고메리, 그리고···
지미 페이지.
지미 페이지.
내가 동경하는 기타리스트.
나는 알 수 없는 무언가에 이끌리듯, 그가 사용한 것과 같은 기타를 손에 집었다.
레스폴 말이다.
지미 페이지는 레스폴을 손에 달고 살았다.
물론 쌍두 sg 기타도 그의 시그니쳐이기는 하다.
stairway to heaven 라이브 버전 등에서 자주 등장했다.
하지만 그래도 지미 페이지는 레스폴을 사랑한다.
이러나저러나, 깁슨이다.
“지미 페이지 좋아한다면서?”
“어떻게 아셨어요?”
“태현이가 말해줬다.”
··· 김태현한테도 말한 적 없는 것 같은데.
멋대로 훔쳐 들은 건가?
“그러니 다음 기타는 레스폴이라고 예상했지.”
“···.”
나는 입을 다물었다.
개소름돋네.
나에대해 말 한마디 없이 분석하고 있었다는 거 아냐.
“··· 레스폴 연주 한 번 듣고 싶군.”
윤대혁선배는 대수롭지 않은 듯이 말했다. 다만,
“음 ··· 그럴까요?
눈에서 불타고 있는 ‘호기심’을 숨길 수는 없었나 보다.
“본선 곡. 하나 더 준비했겠지?”
본선이라…
준비 안 했는데?
곡 하나를 더 쳐야 하긴 하는데.
적당한 게 뭐가 있을까.
“아, 트립티크 어때요?!”
“···!”
윤대혁 선배의 얼굴이 급히 밝아졌다 다시 어두워졌다.
뭔 표정 명암이 저렇게 변화무쌍한지.
“트립티크라 ··· 그걸로 치겠다고?”
“뭐여? 요즘 곡이여?”
“영감은 왜 요즘 걸 안 듣습니까.”
“옛날 게 좋으니께.”
윤대혁선배는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그걸로는 힘들 거다. 트립티크라는 곡이 그리 간단하지···”
“아뇨, 이걸로 칠게요.”
“뭐?”
“이걸로요.”
그는 잠시 멍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큽, 하고 코웃음을 쳤다.
“쳐 봐라. 그걸로 실수가 안 나면…. 뭐, 콩고물이 떨어질지도 모르지.”
“내뱉은 말 꼭 지키세요!”
나는 호기롭게 앰프가 놓여있는 곳으로 달려가 페달 보드를 펼쳤다.
오랜만에 잡은 레스폴의 넥은 너무나 두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