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genius guitarist RAW novel - Chapter 63
본선에 부는 바람 (4)
레일라 연주는 예선 때와 같았다.
바뀐 거라곤 앰프뿐.
근데 뭐, 앰프 바뀌면 다 바뀐 것이기도 하다.
난 ‘레스폴’에서 쓰던 톤값 그대로 스트랫에 물렸다.
결론부터 말하자.
이거 꽤 괜찮다.
기타로 톤메이킹을 할 때는 보통, 앰프와 이펙터의 노브로만 조정한다.
그게 정밀하니까.
하지만 … 앰프에 가까이가지 않더라도 톤을 만질 방법은 있다.
나는 ts808을 밟아서 꺼버리고, sd-1을 새로 켰다.
스트라토캐스터의 미들-리어 하프톤으로 픽업 위치를 잡고,
치솟아 있던 트레블을 기타와 이펙터의 노브를 조절해 깎았다.
이러면 이리저리 무대를 누비며 요란스럽게 움직이지 않아도 톤 컨트롤이 ‘대강’은 가능하다.
따라라라라란~
나는 또다시 레일라를 연주했다.
차가운 인상의 심사위원은 여전히 내게 강렬한 시선을 보냈다.
대머리 아저씨는 가만히 눈을 감으며 쭈욱 의자에 기대었다.
어머니 아버지는 ···
꿀이 떨어지는 듯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계신다.
뭔가 좀 낯간지럽네.
세연는 뒷자리에 앉은 여자애들이랑 작은 소리로 대화를 하고 있었다.
친구들을 데려온 모양이다.
좌아아아앙-!
이미 손에 익을 대로 익어버린 연주가 끝났다.
심사위원들은 그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수상식 때 감평이 기대되는구만.
“두 번째 연주 ‘레일라’였습니다! 엄청난 무대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수고해준 우리 김수재군에게 힘찬 박수 부탁드립니다!”
나는 밀려오는 갈채의 파도에 꾸벅, 고개를 숙였다.
반짝-
에이트라의 카메라 플래시가 무대 조명을 뚫고 나에게 도달했다.
그는 검지와 엄지로 o를 만들어 손을 들어 올렸다.
잘 찍혔다는 뜻이겠지.
피식,
나는 웃음을 흘렸다.
암, 잘 찍어야지.
트립티크 짤리는 거, 뭐 이해할 수 있다.
레일라를 시작할 때 녹음을 안 돌렸다? 용서할 수 있다.
하지만 ‘쌍기타 돌리기’만은 절대로 짤리면 안 된다.
그건 내 자존심이다.
혁오는 에이트라의 옆에서 같이 엄지를 치켜 올렸다.
짜식 수고하는구만.
본선 첫 번째 무대는 이걸로 끝이 났다.
나름 할 건 다 해서 만족스럽다.
나는 장비 정리를 마친 후, 무대에서 후다닥 내려왔다.
“수고했어!”
“이열~”
최유진과 도현이가 손바닥을 내보이며 내게 다가온다.
나는,
짜악-!
강하게 더블 하이파이브를 했다.
“와 ··· 트립티크 진짜 쥑이네. 연습 얼마나 한 거냐?”
“한 10년쯤 했을걸?”
“지랄마셈.”
진짠데 병신아.
“기타는 왜 두 개 멘 거야?”
최유진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얘 ··· 기타로 밥 벌어 먹고 살 생각이 없는 건가?
이걸 이해 못 하다니.
아직 멀었구나. 멀었어.
나는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깨달음을 얻지 못한 불쌍한 자일 지어다.
“수고했어 ··· 그리고 ··· 엄청 멋있었어!”
“고맙다!”
소이의 눈동자에는 수많은 광채가 맴돌고 있었다.
얘는 아무래도 ‘멋’을 이해한 모양이다.
감각이 좋구만.
이게 기타리스트지.
“기타 돌리는 건 어떻게 하는 거야 ···?”
“음 ··· 말로 설명하기 좀 어려운데 ···”
애초에 기타를 돌리는 퍼포먼스 자체가 어렵다.
박살 낼 각오를 해야 하니까.
쌍기타 돌리는 건 더더욱 존나 어렵다.
나는 이번만큼은 방법을 얼버무렸다.
도저히 추천을 못 해주겠네.
잘못해서 스트랩 풀리면 그냥 다 날아가 버리잖아.
타타탁-!
3학년 처럼 보이는 학생이 기타를 들고 급하게 무대 위로 뛰어 올라간다.
예선에서는 ‘학교 순번’ 대로 무대에 올랐지만, 본선은 아니었다.
소이가 4번, 최유진이 5번.
김태현은 ··· 끝번인 13번이다.
1,2,3위한테 정기장학금이 지급되니까…
‘2,3위 쟁탈전인가?’
김태현이 뭘 칠지는 모른다.
다만, 윤대혁 선배가 경고할 정도로 좋은 곡을 준비했으리라 예상이 간다.
나는 무대 뒤에서 참가자들의 연주를 훔쳐 들었다.
다 나름 잘 친다.
전국각지에서 수많은 기타쟁이들을 무찌르고 올라온 이들이니까.
뭐 그래도 ··· 역시 애들은 애들이다.
심사위원이 대회 진행을 끊고 질문을 하는 경우는 더 이상 없었다.
꾸우욱-
소이는 미간을 엄지로 비비고 있었다.
“긴장돼?”
“응··· 조금.”
소이는 힐끔힐끔, 내 얼굴을 쳐다보다가 이내 다시 고개를 돌려버렸다.
-일렉기타 4번 참가자 백소이 양···
“끄응!”
소이는 크게 기지개를 켠 다음에 무대 위로 올라갔다.
-백소이 화이팅~
소이 어머니의 목소리가 관객석에서 울려 퍼진다.
아주머니, 그러면 괜히 더 쪽팔려요 ···.
카아아앙-!
톤세팅을 마친 소이가 앰프의 볼륨을 크게 올렸다.
역시, 좋다.
역시 천만 원 짜리 기타 소리다.
아마, 참가자들을 통틀어 소이가 가장 비싼 기타를 쓰는 게 아닐까 싶다.
neil zaza의 Celestine과 joe satariani의 summer song.
아주 모던한 선곡이었다.
난이도가 낮은 곡이 절대로 아닌데.
잘하네.
소이도 점점 성장하고 있었다.
실수가 조금 있었지만, 크게 눈에 띄는 수준은 아니었다.
“으으으으···.”
나는 옆에서 벌벌벌 떨고 있는 최유진의 등를 존나쎄게 두들겼다.
퍼억-!
“아악! 왜 때려!”
양손을 등 뒤로 돌려 피격부위를 쓰다듬는 최유진.
“불안을 고통으로 지우는 거지.”
“이게···”
빠악-!
역시 가만히 있을 놈이 아니구만.
최유진도 내 가슴팍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나는 헛숨을 토하며 가슴을 움켜잡았다.
명치에 맞아서 존나 아프다.
“크흑 ···”
비열하기 그지없는 사파의 기술을 쓰다니.
정파의 권세가 지하로 처박혔구나.
“고마워 죽겠다 진짜! 하나도 안 긴장 되네!”
최유진은 코를 흥, 풀더니 기타를 고쳐 맸다.
나는 무대에서 내려오는 소이를 반기며 최유진을 보냈다.
평소대로만 해라 평소대로.
“되게 잘하는데?”
“수재가 열심히 알려줬으니까···. 와우 페달 살살 밟으라고 한 거 ··· 왜 그런지 잘 몰랐었는데···”
“에이, 다 그렇게 배우는 거지 뭐.”
소이는 푸욱 고개를 숙였다.
나도 joe satariani 진짜 좋아한다.
소이랑은 은근 취향이 잘 맞네.
나는 소이가 summer song을 친다고 할 때, 잠시 말렸었다.
와우페달을 다룰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하고 싶다길래, 그냥 도와줬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저 멀리서, 두텁고 먹먹하며 부드러운 레스폴의 소리가 들려온다.
같은 ‘기타’라 하더라도 연주자에 따라 소리는 천차만별이다.
음계만이 변화하는 것이 아니라, 소리 그 자체가 변화한다.
수많은 톤과 수많은 연주기법.
이것이 일렉기타의 진정한 장점이다.
디웅- 디이잉~
웨스 몽고메리와 짐 홀.
재즈 기타의 대부들.
두 대부의 연주를, 최유진은 최대한 따라가려 발버둥쳤다.
뱁새가 황새 쫓아가려다 가랑이 찢어진다 하지만, 그래도 멍하니 바라보는 것보다는 쫓아가는 게 낫다.
참 바른 자세다.
나는 친구의 곡을 곱씹듯이 음미했다.
“최유진 새 기타 살 수 있겠네.”
“···.”
최유진도 우리 집처럼 가정형편이 썩 그리 좋지 못하다.
원채 ‘음악’이란 게 있는 집 자식들이 많이 하긴 하지만, 음악인 모두가 있는집 자식들은 아니다.
···.
짝짝짝짝짝-!
박수 소리가 홀에 왕왕 울려 퍼진다.
심사위원들의 표정도 썩 나쁘지 않았다.
“가, 감사합니다!”
최유진은 삑사리 섞인 목소리로 꾸벅, 인사를 한 다음에 후다닥 도망쳐 나왔다.
“소이야아 ···!”
최유진은 소이에게 가장 먼저 안겼다.
긴장 풀어준 건 난데···!
이런식으로 은혜를 무시하다니.
이래서 깁슨 스튜디오나 쓰는 사파놈들이란 ···.
“나는? 나는?”
“고맙다아~? 등 엄청 아파서 긴장 하나도 안 됐어!”
“잘됐구만.”
최유진은 얻어맞은 것에 아직도 불이 안 풀리는지 내 정강이를 퉁퉁 두들겨댔다.
“우선 한 시름은 덜었고 ···”
나는 도현이에게 고개를 돌렸다.
아까부터 뭘 저렇게 보고 있는 거지?
“뭐하냐?”
“흠 ···”
도현이의 핸드폰에 띄워져 있는 것.
이건 ···
“어…? 메이플? 게임?”
“함 쳐보려고.”
“진심이냐?”
“물론.”
개미친놈이네.
여기선 좀 더 안정빵으로 가는 게 맞지 않나?
“···.”
생각해보니 얘가 대회에서 정상적인 곡을 친 걸 본 기억이 없는 것 같다.
나는 조용히 납득했다.
속속히 일렉기타 참가자들이 무대에 올라갔다.
다들 역시 한 실력 한다.
다만 ···
역시 톤 메이킹이 어딘가 조금씩 부족했다.
무대 경험이 적은 기타리스트는, 순발력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환경이 바뀔 때마다 감을 못 잡는다.
인터넷에서 떠도는 잘못된 정보, 레슨 선생님이 알려주는 편향된 정보만을 맹신한다.
안 된다.
믿을 것은 오로지 자신의 귀뿐이다.
이 톤이 좋더라.
이렇게 만들면 괜찮더라.
안 된다.
내가 소이와 최유진에게 톤세팅 조언을 해 줄 수 있는 것은, 두 사람의 ‘연주 스타일’을 자세히 파악했기에 가능했다.
자세히 알기에, 현장에서 도와줄 수 있었다.
반대로 말하자면, 남의 톤을 그대로 가져오기만 해서는 소리가 제대로 안 난다.
연주는 손끝에서부터 시작하니까.
‘톤 메이킹’은 어디까지나 손끝에서 나온 소리를 다듬는 과정에 불과했다.
-자, 이제 일렉기타 부문의 마지막입니다! 김태현 학생은 무대 위로 ···
뚜벅뚜벅-
김태현의 어깨에는 텔레캐스터가 걸려 있었다.
누렇게 익은 메이플 넥이 불길하게 그을렸다.
곳곳에 칠이 벗겨진 선버스트색 바디와 반쯤 깨진 픽가드.
언뜻 누더기 같지만, 연주에 지장이 갈 만한 부분만은 새것처럼 말끔했다.
“잘해라.”
나는 무심코 응원을 내뱉었다.
“네가 그렇게 말해 줄 줄은 몰랐는데.”
“···.”
김태현은 피식 미소를 지으며 무대에 올라 연주를 시작했다.
첫곡은 예선 때와 같은 곡이었다.
두 번째 곡은 ···
“올, 소리 은근 좋네?”
도현이가 곧바로 나와 같은 감상을 토했다.
Roy Buchanan의 sweet dreams
··· 준비했다는 게 이거였구나.
무명의 블루스 기타리스트이자, 자살로 파국을 맞이한 기타리스트 로이 부캐넌.
오버드라이브와 리버브가 섞인, 텔레캐스터의 깽깽거리는 소리가 경기장 내에 울려 퍼졌다.
“잘하네 ···”
진짜 달콤한 꿈속에서 허우적거리는 듯한 느낌이 난다.
소리가··· 상당히 좋다.
상당히.
상당···
“··· 어?”
문뜩, 머릿속에 의문이 차올랐다.
왜 좋은 거지?
실력이 좋긴 하다.
하지만 지금 이건 ··· 실력과는 다른 차원의 감상이었다.
깽깽 거리는, 진짜 ‘텔레캐스터’ 그 자체의 소리.
뭔가 이상하다.
예선에서 들었던 것과 다르다.
이건··· 내가 회귀 전에 들었던 ‘그 소리’와 가장 근접해 있었다.
“일렉기타는 벌써 다 끝났나?”
복도 쪽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뒤를 돌며 아주 본능적으로,
꾸벅-
머리를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하하, 그래. 다 여기 모여 있었구나?”
나숙호 선생님이셨다.
“여긴 어쩐 일로 ···”
“지나가는 김에 들렸다. 너희 얼굴도 볼 겸. 분위기를 보아하니··· 실수는 안 한 모양이지?”
껄껄껄,
나숙호 선생님은 호쾌하게 웃으셨다.
직접 보러 와주시다니.
기쁘다.
정말 기쁘다.
동시에, 약간 아쉬운 감정도 들었다.
한 1시간만 일찍 오셨다면 ··· 내 연주를 들려 드릴 수 있었을 텐데.
나는 표정을 가다듬으며 최대한 감정을 억눌렀다.
“어떻게 한 학교에서 다섯이나 전국대회에 나간대?”
문 뒤에서 쇳가루가 갈려나가는 듯한 쉰 목소리가 들려왔다.
“···.”
나는 그의 얼굴을 확인한 순간, 숨이 턱 막혔다.
“다 나선생이 수고해주셔서 그런가~”
“애들이 잘난 거지 내가 한게 뭐가 있겠어.”
“그래도 부럽수다~ 선생 소리 들으러 학교 간다길래 머리에 총이라도 맞았나 싶었는데.”
“뭐 이놈아?”
··· 심사위원석에 남아있던, 냉철한 얼굴의 남자.
기억속에 있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단번에 알아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 사람의 얼굴을 보니까.
생각난다.
이제는 잘 알겠다.
그 누가 한국 기타계의 그림자 ‘나숙호’의 면전에서 함부로 망발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근데 저 사람은 예외다.
“몸이 맛 가는 것보다는 낫지 않나? 걔가 얘야?”
턱-
길다란 손이 내 머리 위에 올려진다.
190정도 되는 거대한 신장.
사막 한가운데의 나무처럼 빼빼 마른 뼈마디.
꼭 병에 걸린 사람 같다.
··· 사실 맞다.
암환자니까.
“어허, 남의 학생한테 손대지 마라.”
“뭐 어때? 네가 김수재구나. 얘기 많이 들었다. 귀에 딱지가 앉도록.”
한국 피아니스트의 대부
서병훈.
한국 기타계의 그림자.
나숙호.
두 거장이··· 코찔찔이들이 벌이는 무대 뒤에 섰다.
꼴깍.
침을 삼킨다.
나뿐만 아니라 무대 뒤에 있는 학생들 ‘모두’가.
“연주 소감은 ··· 쟤한테 들으면 되겠지. 오네.”
서병훈 피아니스트는 관객석 쪽을 가리켰다.
냉철한 얼굴의 심사위원이 김태현의 연주가 끝나자마자 헐레벌떡 이리로 달려오고 있었다.
“3시까지 끝날라나?”
“모르겠네…”
“이참에 피아노 전공생들 얼굴 잘 봐둬야지. 넌 왜 전공생들한테 관심을 안 가지냐? 후계 걱정이 안 돼?”
“기타는 말이다,”
나선생님은 내 어깨를 툭툭 두들기셨다.
“피아노랑 달리 물만 줘도 잘 큰다.”
“참나. 양반 말하는 꼬라지 하고는.”
이래서구나.
이래서, 시상식이 3시에 끝나는 거구나···
나는 뼈저리게 이해했다.
어쩔 수 없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