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genius guitarist RAW novel - Chapter 62
본선에 부는 바람 (3)
쌍기타 하면 떠오르는 인물은 역시 지미페이지가 아닌가?
지미 페이지의 심볼인 깁슨 쌍두 sg.
갖고 싶은 기타였다.
다만, 지금 상황에 어울리는 놈은 아니다.
나는 다른 방식으로 쌍기타를 해석했다.
‘일렉기타’ 하면 딱 떠오르는 이미지인 스트라토캐스터와, 미적으로 아름답기 그지없는 레스폴.
반대되는 성향의 두 기타를 쓴다.
두 개의 기타를, 내 몸에서 떨어뜨리지 않는다.
이것이, 나의 쌍기타다.
턱-
나는 무대에 발을 걸쳤다.
700석은 족히 넘어 보이는 좌석에 사람들이 빽빽이 들어찼다.
자리배정을 받지 못한 관객들은 입구 쪽 벽에 기대어 있었다.
··· 수 백 쌍의 시선이 전부 나에게 향한다.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었다.
“어 ··· 어···”
스피커를 타고, 더듬거리는 사회자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예선에서 봤던 키가 훤칠한 남성이었다.
그는 테이저건에라도 맞은 듯 그저 나를 보며 어버버버 말을 더듬을 뿐이었다.
이러나 저러나, 톤 세팅은 해야 한다.
나는 모델 워킹에 버금가는 걸음걸이로 앰프를 향해 걸었다.
몸에 걸려 있는 쌍기타의 헤드가 대롱대롱 날갯짓 하듯 흔들린다.
기타의 신이 있다면.
그가 날개를 가지고 있다면.
아마, 이런 형태가 아닐까 싶다.
괜스레 쓸데없는 생각이 머릿속을 뒤덮는다.
드르륵-
정적이 흐르는 무대 위에서 나는 어김없이 노브를 돌려댔다.
톤값은 이미 다 정해둔 상태였다.
컴퓨터 앰프 시뮬레이션으로 몇 번이고 테스트를 했다.
집에서 ‘시험’해두었던 소리를, 아까 전 리허설에서 완성시켰다.
나는 관객석의 맨 앞줄을 눈으로 훑었다.
심사위원이 다섯이나 있네. 예선에선 네명이었는데.
세 번째 줄에는 엄마, 아빠, 세연이가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었다.
예선 1등이라 그런지 대우가 은근 좋다.
일등석에 앉은 부모님께 내 연주를 들려 드릴 수 있다니.
나는 세연이에게 찡긋, 윙크를 보냈다.
“우, 우리오빠 개쪽팔려어 ···!”
적막한 관중석에 중3 여자애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세연이는 부끄러운 듯 푸욱 허리를 숙이며 손바닥에 얼굴을 파묻었다.
“어 ··· 어··· 저, 전국 청소년 음악 장학대회 1번 참가자 ··· 김수재군입니다!”
사회자는 마이크를 내려놓지도 않은 채 박수를 쳤다.
둥둥둥둥-!
스피커에서 굉음이 터져 나왔다.
당황이 불러온 실수였다.
“죄, 죄송합니다.”
짝,
짝짝짝짝-!
스턴건을 30초정도 맞은 관객들이 하나 둘 씩 정신을 차렸다.
당황에 물들었던 얼굴들에 피식, 웃음기가 떠오르기 시작한다.
표정들이 존나재밌다.
이맛이지.
이걸 보려고 쌍기타 메지. 암.
“기타 뭐야? 왜 두대나 메고 있어?”
“개웃겨 진짜.”
“흐흐흐흫.”
웃음소리도 같이 터져 나온다.
나는 피크를 손에 쥐고 무대의 맨 앞에 섰다.
좌아아아앙-!
‘깁슨’의 레스폴에서 나온 전기신호가,
명기 ts808을 타고,
명기 마샬앰프에서 흘러나온다.
이 기타가 최상급은 아니다.
깁슨은 히스토릭라인부터 진짜라는 말을, 사람들은 종종 하니까.
하지만.
지금의 나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충분한 기타다.
지이이이잉-!
소리는 묵직하면서도, 날카롭고, 시원했다.
대머리 아저씨는 눈을 크게 뜨며 옆에 있던 심사위원들에게 감상을 털어내었다.
“··· 레스폴로 저 곡을 치다니 ···”
“트립티크였죠?”
“··· 자만인지 자신감인지 모르겠네요.”
자기들 딴에는 작은 소리로 말하려는 것 같은데.
다 들린다.
자만인가, 자신감인가.
딱 잘라 말하자.
이건 자신감이다.
초보 시절부터 들었던 ‘트립티크’에 대한 이해.
그리고 재해석.
나는 내 스타일로 트립티크를 재해석했다.
물이 가득 담긴 다라이에 얼음을 잔뜩 띄우고 발을 담글 때의 시원함.
대접에 쌓인 빙수를 입에 털어 넣을 때의 짜릿함.
그것이 트립티크가 가져다주는 감상이었다.
나는, 이 단순한 감상에 ‘여름’을 접목시켰다.
“시작하겠습니다.”
“아, 아··· 네!”
착착착-
하이햇 소리가 대형 스피커를 타고 흘러나온다.
트립티크의 백킹트랙이었다.
나는 주저 없이 곧바로 곡의 도입부에 들어갔다.
치이잉-칭-! 치잉!
날이 선 소리.
그면서도, 묵직한 느낌이 죽지 않은 소리.
그런 소리가, 적막했던 공간에 가득 채워졌다.
대회의 가장 첫 순번인 ‘일렉기타’
일렉기타 참가자의 가장 첫 순번인 ‘나’
그러므로,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
대회가 진행되는 동안, 내 모습과 연주를 잊지 않도록,
강렬하게!
나는 불편하기 그지없는 하이프렛을 짚어나가며 강렬한 피킹을 시작했다.
두텁지만, 날카롭다.
약간의 무거움과 시원함이 적절히 융화됐다.
나는 이 곡을 전생에 진짜 많이 쳤다.
특유의 풍경을, 정말 많이 그렸다.
음악이 그리는 그림.
내 기타는, 이 순간만큼은 큼지막한 붓과 같았다.
한여름 아침의 바닷가의 색채가 머릿속에 슥슥 그려진다.
여름 특유의 높은 습도와 무거운 공기.
모두가 알고 있는 그 풍경.
숨을 쉴 때의 그 느낌.
그리고 ··· 바닷길을 달리는 작은 경차 한 대.
회귀전의 나는 차가 없었다.
있었는데, 굴리기 힘들어서 금세 팔았다.
그럼에도, 첫차를 몰고 짧은 여행을 떠났을 때의 풍경은 잊지 못한다.
낡고 작은 경차 한 대.
기타를 뒷자리에 눕혀두고, 한적한 동해안 바닷길을 달릴 때의 기억.
여름은 공기가 무겁다.
낮에도, 밤에도 말이다.
하지만 ‘기온’만큼은, 아침이라면 그리 높지 않았다.
나는 시원하고 청량한 곡들을 좋아한다.
정말 많이 들었다.
그런 곡들을 듣다 보니 자연스레 욕심도 같이 들었다.
욕심은 어느새인가 도전심으로 바뀌었다.
나만의 분위기로 트립티카를 재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시원하기만 한 게 아니라, 다양한 감상이 들도록 연주하지는 못할까?
도전심이 새로운 풍경을 만들어 냈다.
경차가 작은 소음을 흩뿌리며 바닷길을 달린다.
새파란 하늘.
어디가 위인지, 어디가 아래인지 구별이 잘 안 되는 파스텔톤 하늘색의 바다.
창문 사이로 흘러들어오는 묵직하면서도 시원한 여름 바람.
한적한 아침 특유의 향기.
차는 길가의 쉼터에 잠시 멈춰 선다.
나는 쉼터의 계단을 내려가, 파도가 쓸어 내려가는 작은 모래사장에 발을 내디뎠다.
만물을 태워버릴 듯한 여름 햇살도, 아침에는 제법 상냥한 법이다.
팔을 훑고 지나가는 묵직 시원한 감각과, 왼손에 들린 푸른색 이온음료.
청량하다.
아직은 오지 않은, 여름의 냄새가 난다.
“···.”
둥둥 거리는 드럼비트가 고막을 두들겼다.
새까만 에보니 지판 위를 미끄러져 내려가는 나의 손가락들.
눈을 뜸과 동시에 관객들의 얼굴을 살핀다.
참 자유분방한 표정들이었다.
“후우.”
카아아아앙-!
나는 크게 숨을 토하며, 넥을 뒤로 잡아제꼈다.
트립티카는 슈퍼스트렛으로 연주된 곡이다.
슈퍼스트렛에 빠질 수 없는 게 바로 ‘아밍’이다.
줄을 잡고 있는 ‘브릿지’의 높낮이를 조절하여, 음을 올렸다 내렸다 하는 기술인데, 문제는 레스폴로는 아밍을 못한다.
브릿지가 아예 고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한 거야 ···?”
“저거 뭐예요?”
하지만 나는 아밍할때와 비슷한 소리를 내었다.
간단하다.
‘브릿지’를 올리고 내려서 음 조정이 가능하다면, 반대로도 가능하다.
줄이 바디에만 묶이지는 않으니까.
헤드에도 묶인다.
그러므로 넥을 잡아 당기면, 기타줄이 팽팽해지며 음정이 올라간다.
카아아앙-!
나는 하모닉스와 동시에 넥밴딩을 하여 음을 끝까지 밀어 올렸다.
레스폴이 낼 수 있는 고음의 한계였다.
“···.”
게임회사의 대머리 이사 아저씨.
이름 모를 중년 여자 심사관 둘.
뽀글머리 아재.
그리고 ···
20대 후반의, 젊은 청년.
날카로운 시선이 나에게 날아와 강렬히 꽂힌다.
얼굴이 뭔가 익숙하다.
하지만 기타리스트는 아닐 거다. 기억 속에 없으니까.
나는 피크를 입에 물었다.
태핑을 위해서.
원래는 할 때마다 오른손에 전기 오르는 느낌이 났었는데.
중지를 강하게 내려칠 때마다, 기분이 나빴는데.
디잉-!
오른손 검지와 중지를 꼬아 강하게 현을 두들겼다.
이제는 태핑이 두렵지 않았다.
르르르르르륵-!
약식으로 할까, 원곡대로 칠까. 고민 참 많이 했었다.
다이타 본인조차도 라이브에서는 약식태핑을 하는데, 17살짜리가 대회에서 약식으로 친다고 문제 될 건 없지 않을까?
하지만 나는 타협하지 않았다.
원본대로 간다.
나는 오른발을 무대 스피커에 올렸다.
아주 건방진 자세로, 기타를 골반에 고정해 놓은 채, 신나게 기타줄을 손으로 두들겨댄다.
“··· 이거··· 이거.”
“아니···”
뽀글머리 아저씨와 대머리 아저씨는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괴상한 소리를 내뱉으셨다.
어이가 없는 거겠지.
태크니션 곡을 레스폴로 들고와서 치겠다니.
그러면서도 타협을 안 하겠다니.
키이이잉-!
나는 특유의 하모닉스를 잔뜩 넣으면서 곡을 이어나갔다.
온갖 기술들이 난무하는 곡.
특유의 느낌을 살리기가 어려운 곡.
많은 기타쟁이들이 트립티카가 그려주는 ‘시원함’에 홀려 악보를 훑는다.
그리고, 좌절한다.
난이도에서 한번.
숨겨진 테크닉과 잘못 쓰여진 악보에서 한 번.
그리고, 감정표현에서 한 번.
곡에 잡아먹히고 만다.
감정을 그려내야 하는데, 감정을 그릴 만큼의 여유를 가질 수가 없는 것이다.
나는 곡을 내 마음대로 주물렀다.
특유의 풍경을 그려내었다.
상상 속 풍경의 나는, 푸른 색 이온음료를 힘차게 들이켰다.
살얼음이 낀 시원한 액체가, 식도를 타고 흐른다.
무겁고 시원한 바람이 피부와 부딪친다.
트립티카가 그려준 풍경은, 여름 바닷가의 아침이었다.
좌아아아앙-!
연주가 끝났다.
700이 넘는 사람들의 얼굴.
대회 첫 곡을 감상한 사람들의 얼굴.
아직 5월인데.
따로 온도관리를 안 해도 될 만큼, 포근하고 좋은 날씨인데.
그들의 얼굴에는 ,무더위를 피해 에어컨이 틀어진 건물로 도망쳐 들어온 사람 같은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꿀꺽-
사회자는 마이크를 들고 침을 삼켰다.
침소리가 마이크를 거쳐 스피커에서 뿜어져 나온다.
오늘 참 실수 많이 하시는 구만.
사회자는 크게 심호흡을 하더니, 프로다운 멘트를 내뱉었다.
“김수재 학생이 보여준 첫 번째 곡 ‘트립티크’! 아주 멋진 연주였습니다!”
원래는, 일정상 곡 두 개를 연달아 해야 한다.
중간에 감상평을 넣을 시간 따위는 없었다.
하지만 ···
번쩍-!
20대 후반의 날카로운 미남상 남자가 손을 들었다.
그는 일말의 주저 없이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대회 진행 중에 죄송합니다만, 질문 하나 해도 되겠습니까?”
“··· 네?”
“곡에 맞춰 기타를 두개 쓴다 ··· 뭐 이건 이해가 갑니다만…”
옆에 앉아있던 대머리 아저씨가 절레절레 고개를 흔든다.
예선에서의 아저씨랑 반응이 똑같네.
자신의 과거를 보는 듯한 표정이었다.
“뒤에 메고 있는 것이 스트라토캐스터이지요? 그걸 쓰는 게 실수할 가능성이 적지 않습니까? 왜 레스폴을 고집했습니까?”
“···”
뭐, 맞는 말이지.
스트랫이 더 연주하기 편하니까.
스트랫도 이 곡에 잘 어울린다.
다만 ···
“레스폴에서 제가 원하는 소리가 나니까요.”
나는 원론적인 대답을 내놓았다.
어떤 기타가 연주하기 편하던.
어떤 기타가 가격이 비싸던.
그런건 상관없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소리’다.
“···.”
날카로운 시선을 보내던 남자는,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
그의 냉철한 표정을 나는 읽기가 힘들었다.
“바, 바로 두 번째 곡 준비 부탁드립니다!”
나는 메고 있던 기타의 스트랩을 잡고
주와아아악-!
강하게 돌렸다.
레스폴이 등 뒤로 가고, 스트라토 캐스터가 앞으로 나왔다.
위치 변경이다.
“와… 간지난다…”
“저거 어떻게 하는 거야?”
“몰라…”
남자들의 입에서 순수한 감상이 터져 나왔다
좆간지나지?
사실 이거 연습하는데 10시간 썼어.
따라 라라라라란~
새로운 소리가, 다시금 무대에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