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genius guitarist RAW novel - Chapter 64
본선에 부는 바람 (5)
터벅터벅-
김태현이 기타를 들고 무대에서 내려왔다.
나는 두 거장의 말씀에 집중하면서도, 김태현의 연주 또한 놓치지 않았다.
잘 친다.
재능이 있다.
··· 17살에 이 정도의 블루스 명곡을 소화할 수 있다니···
감탄은 자연스레 의문을 불러왔다.
왜일까.
대체 왜, 내 기억 속에 김태현이 없을까.
왜 저 기타가 외국에서 돌아다니게 되는 걸까.
“···.”
나는 그에게 느릿느릿 다가갔다.
“궁금한 게 있는데.”
“응?”
김태현의 얼굴은 평온 그 자체였다.
이미 무대에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건가.
하긴, TV에도 나온 놈인데.
“왜 기타소리가 달라졌냐?”
“아~”
크크큭,
김태현은 밥맛같이 웃어댔다.
“눈치챘어? 역시 수재는 귀가 좋네 ···”
“그거 오리지널이야?”
“··· 아니?”
··· 아니라고?
나는 텔레캐스터의 헤드 뒷면를 멋대로 확인했다.
딱 made in u.s.a 라 적혀있어야 간지인데.
··· 아니네.
Made in Mexico.
멕시코 펜더의 기타였다.
“··· 어?”
“이번에 픽업을 새로 교체했거든. 전에 쓰던 건 너무 낡아서. 소리 좋지?”
“··· 좋네.”
번개가 기타에 어떤 변화를 일으켰는지는 모른다.
번개를 맞음으로서, 어떤 식으로 소리가 변화되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엔지니어가 아니니까.
하지만 ··· 이 기타.
이 특유의 소리.
진심으로 좋다.
번개맞은 텔레캐스터가 수많은 뮤지션들의 손을 거쳐 간 이유.
가격이 천정부지로 솟은 이유.
희소성이란 요소를 제외하더라도, 소리 그 자체가 좋기 때문이다.
악기는 소리가 좋아야 한다.
아주 단순 명쾌한 이유였다.
차가운 인상의 심사위원··· 아니,
‘원재선’은, 서병훈 피아니스트 옆에 다가가 꾸벅, 고개를 숙였다.
둘은 반갑기 그지없다는 듯이 인사를 나누었다.
“···.”
원재선과 서병훈.
사제지간의 피아니스트들.
전생에 둘을 직접 만난 적은 없지만, 워낙 유명해서 잘 안다.
한 명은 암을 ‘딛고’ 일어서 연주를 펼치는 아시아의 명장.
한 명은 건반 위의 태크니션 ···
거창한 칭호가 붙어 다니는 대단한 양반들이다.
내가 원재선 피아니스트를 못 알아 본 이유는, ‘살’ 이 안 쪄 있어서이다.
퉁퉁하면서도 불만 가득한 불독같은 표정이 트레이드 마이크인 양반이었는데.
지금은 되게 날씬하다.
“연주 잘 들었다~”
나선생님이 우리 쪽으로 다가오셨다.
“준비도 철저히 했고, 뉘앙스도 아주 좋아.”
“감사합니다!”
김태현은 꾸벅, 고개를 숙였다.
“근데 혹시···. 기타 어디서 샀니?”
나숙호 선생님의 눈에 호기심이 감돌고 있었다.
역시 선생님도 소리에 이끌리셨구만.
“산 건 아니고, 아는 분한테 받은 거예요.”
“아~ 그렇구나.”
나숙호 선생님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셨다.
선생대 학생이 아니라 같은 기타리스트로서 이해가 간다.
좋은 기타를 보면, 갖고 싶은 마음 말이다.
“잠깐 와봐라.”
까딱까딱.
서병훈 피아니스트는 검지를 구부리며 나를 불렀다.
“나중에 픽업 산 곳 좀 알려줘.”
“응.”
나는 김태현에게 소소한 부탁을 하며 원래 자리로 돌아갔다.
서병훈 피아니스트는, 다짜고짜 내 등을 텅텅, 두들겼다.
“··· 그래서, 얘가 1등이라고?”
“결과는 수상식 때 발표되는 겁니다, 선생님.”
“어허···”
그는 말을 아꼈다.
참가자들 눈이 몇인데. 함부로 입을 놀리면 안 되지. 암.
“담배라도 한 대 어떠십니까.”
“좋지. 같이 가자.”
“그래.”
나선생님과 사제지간 두 사람은 자리를 벗어났다.
다음 악기 부문까지 짧은 시간이 남아있었다.
“와 ···저 사람 서병훈이지? 그치···?”
스턴건 맞은 듯이 벙쪄있던 최유진이 물었다.
“그렇네.”
“··· 암 걸렸다고 하지 않았어?”
··· 암환자라고는 하지만 앞으로 10년 이상 더 살 거다.
할 일 다 하고 죽는다.
내가 안다.
“맞음.”
“··· 실물이랑 사진이랑 똑같네 ···”
“리얼. 좀 스텀프 느낌남”
벌컥-
무대 뒤편의 문이 열리며, 어쿠스틱, 클래식 기타를 든 참가자들이 들어왔다.
개중에서 하민서는 독보적으로 눈에 띄었다.
“쟨 계속 예뻐진다···”
하민서를 응시하던 최유진이 멍하니 중얼거렸다.
“그러게.”
“너 민서랑 친하지 않아?”
“··· 내가?”
최유진의 어이없는 물음에 소이는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하민서의 본모습을 알고 있는 것이다.
“아니야? 대화 자주 하잖아.”
“대화는 소이랑 자주 하고.”
“흠···”
“그보다 수재야··· 궁금한 게 있는데 ···”
소이는 타다다닥- 급하게 앱을 띄우며 나에게 핸드폰을 내밀었다.
“이거 뭐야···?”
인스타그램이었다.
그것도 내 계정 메인화면.
“··· 인스타?”
“아 맞다 맞아. 나도 궁금했는데.”
최유진도 맞장구를 쳤다.
단 한 장 올라가 있는 사진이 쫘악- 확대된다.
떡이 진 것인지 왁스를 바른 것인지 구별이 안 되는 이상한 각도에서 찍은 셀카.
좋아요가 한 개 박혀 있었다.
“···.”
개쪽팔리네 진짜.
“너 팔로우 한 사람이 일곱 명··· 이던데. 여섯은 연예인이고, 일반인은 딱 한 명이더라?”
여섯은 아이리즈.
그리고 나머지는 ···신채원.
내 1호 팬이다.
인스타 팔로우 해달라고 해서 해줬다.
“…”
소이가 내 인스타를 염탐한 건가?
근데 염탐한 걸 본인 앞에서 이렇게 자랑스럽게 물을 수가 있나?
의문이었다.
“아는 애야.”
“아는 애···?”
소이가 반문했다.
“그··· 내 팬이라고 하더라고. 길가다 몇 번 만난 적 있어.”
“아 ···.”
“팬? 너한테 팬?”
“너도 본 적 있잖아?”
난 최유진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빙수먹다가 같이 봤었는데 왜 모르지?
궁금증은 순식간에 해소되었다.
신채원 ··· 의 인스타···.
보정을 떡칠해놔서 나도 못알아보겠다.
이건 인정이지.
흐읍.
소이가 작게 콧김을 뿜었다.
“사실 이거 수빈이가 알려준 거야···.”
“윤수빈?”
염탐 범인은 윤수빈이었구나.
아주 시간이 남아 도는구만.
“··· 수재 여자친구 생긴 줄 알았어 ··· 안 하던 인스타 까지 하고···”
“에이, 그런 거 아니야.”
“응. 다행이다.”
소이는 자기가 내뱉은 말이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급히 입을 틀어막았다.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알았어 알았어.”
최유진은 버둥거리는 소이를 붙잡았다.
나는 크흠, 괜한 기침을 하며 시선을 돌렸다.
여기서 더 놀렸다간 소이의 얼굴이 홍당무가 되어버릴 것 같았다.
“들어가라고~”
“예~”
어른들이 담배를 피우고 돌아왔다.
원재선 피아니스트는 찌릿, 나에게 강렬한 시선을 보낸 다음, 심사위원석으로 돌아갔다.
나선생님과 서병훈 피아니스트는 비어있던 관객석으로 향하셨다.
“수고해라~”
“감사합니다!”
나는 두 사람에게 꾸벅, 고개를 숙였다.
클래식기타의 무대가 시작되었다.
화려하게 번쩍거리던 일렉기타 무대와는 달리, 클래식 기타의 무대조명은 평온 그 자체였다.
디잉~ 디이잉-
감미로운 나일론 줄 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솔직히, 클래식 기타에 대해 잘 모른다.
소유해본 적조차 없다.
일렉과 어쿠스틱은 큰 접점이 있다.
연주법을 많이 공유하니까 말이다.
어쿠스틱과 클래식도 마찬가지다.
클래식기타의 주법을 어쿠스틱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하지만 일렉기타와 클래식기타는?
“소리 좋다 ···”
“응 ···”
소이와 최유진이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기타’라는 분야에서는 대척점이다.
클래식기타에서 어쿠스틱기타로, 어쿠스틱 기타에서 일렉기타로.
딱딱 정확하게 분화된 것은 아니지만, 대충 진화순서를 나열해 보자면 이랬다.
“···.”
하민서는 도도한 표정을 지으며 무대에 올랐다.
-디디디디딩~
오른 손가락이 현란하게 움직인다.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유럽풍 배경의 궁전 아래에서, 달빛을 바라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 곡이었다.
나는 클래식기타를 ‘만져본’적은 있지만 소유한 적은 없다.
취향도 아니고, 쓸 일도 없으니까.
“잘하네 ···.”
“그러게.”
도현이도 같은 감상을 토했다.
나는 관중석을 살폈다.
다들, 하민서의 연주에 몰입하고 있었다.
“근데 클래식 기타도 클래식 아니냐?”
“그러게.”
“왜 오늘함?”
“그러게?”
피아노, 바이올린 같은 것들은 이미 전날에 본선 다 치렀다는데.
기타라도 클래식은 클래식인데.
‘기타’ 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실용음악 사이에 끼어 버린 건가.
나는 유심이 그녀의 연주를 감상했다.
동시에, 벽에 세워둔 레스폴을 가지고 살살 따라 했다.
“올~ 저것도 칠 줄 암?”
“앞부분밖에 못 쳐.”
“여윽시.”
도현이는 뭐가 그리 재밌는지 혼자서 낄낄 웃어댔다.
··· 어렵네.
오른손 테크닉 연습 비중을 더 늘려야겠다.
나는 하민서의 연주를 보면서, 조용히 다짐했다.
아무리 오른손만이라도 쟤한테 질 수는 없지.
클래식 기타 부문이 끝나고, 우리는 각자 찢어져 점심을 먹었다.
소이와 최유진은 부모님이랑 같이, 나는 도현이랑 혁오랑 부모님이랑 같이.
저 멀리 소이네 어머니와 서경훈 피아니스트가 서로 격한 악수를 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이산가족 상봉한 듯이 반가워 하네.
‘프로들이 모이니까 빛나는구만.’
지금의 내가 낄 자리는 아닐 듯하다.
우리는 근처 불고깃집으로 걸음을 옮겼다.
“많이 먹어라~”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존나많이 쳐먹네 미친놈들이?
엄마아빠는 안색 하나 구기지 않으시며 흐뭇한 미소만을 지으셨다.
세연이 친구 둘도 같이 합석했다.
··· 처음 보는 애들이라 말을 많이 섞지는 않았다.
그저, 자상한 오빠처럼 보이려 접시에 국을 덜어줄 뿐.
“가, 감사합니다···”
“에이 뭘.”
세연이는 웃겨죽겠다는 듯한 얼굴로 나를 지긋이 바라본다.
맞고싶은 건가?
맞을 쿨타임이 돈 건가?
집에가서 개때려야겠다.
50분정도의 점심시간이 끝나고, 또다시 본선무대가 진행됐다.
대회의 마무리는 묵직한 저음의 악기였다.
끝번호에 당당하게 걸친 도현이는
“커~ 커커 ~ 커닝 시티~”
멋드러진 슬랩을 치며 피날레를 장식했다.
베이스버전 캐논 락과 커닝시티.
진짜 근본이라곤 하나도 찾아볼 수 없는 조합이다.
재즈 베이스나 열심히 치던 참가자들은, 도현이를 연주를 보며 얼떨떨한 표정을 띄울 뿐이었다.
캐논락··· 많이 연습했나 보네.
예선보다 훨씬 낫다.
“진짜 개 노근본이네.”
“왜 그러는 거냐 대체?”
“그곳에 간지가 있으니까 ···.”
존나 멋있는 새끼군.
우리는 다리를 덜덜덜덜 떨며 수상식만을 기다렸다.
한달간의 준비.
그리고, 호명.
1순위로 기타를 친 내가, 1순위로 불렸다.
“우선 일렉기타 부문부터 발표하겠습니다. ‘김수재’ 학생! 무대 위로 올라와 주세요!”
와아아아아아-!
귀를 찢을 듯한 박수소리가 나에게 덮쳐온다.
세연이와 세연이 친구들이 꽥꽥 소리를 지른다.
3 여중생이 내뿜는 괴음은 실로 대단했다.
그다음에는 소이, 그 다음에는 김태현···
그리고 ··· 최유진.
“··· !”
최유진은 눈을 크게 뜨며 제자리에서 방방 뛰었다.
일렉기타 부문에서 수상식의 턱을 밟은 학생은 총 여섯이었다.
원재선 피아니스트가 종이 한 장을 들더니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의 표정은 감격스러운 수상발표 순간에도 냉철하기 그지없었다.
“부문별로 3위까지 정기장학금이 지급됩니다. 1등은 분기당 300만 원, 2등은 분기당 200만 원, 3등은 150만 원입니다.”
“···.”
두 손을 꼭 모아 기도하는 듯이 고개를 숙이는 최유진.
“1등, 유산고등학교 김수재.”
“···”
짝짝짝짝짝짝-!
우레같은 박수소리가 또다시 들려온다.
나는 머쓱하게 머리를 긁적였다.
예상은 했지만, 그래도 기쁘다.
너무 기쁘다!
원재선 피아니스트는 스르륵, 종이를 넘기며 쓰여진 것을 읽어내려갔다.
“심사위원 총평입니다. 완벽한 무대였습니다. 곡에 대한 이해가 깊고, 감정 표현이 뛰어나며, 테크닉에 한 치의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곡 전환 당시 대단한 퍼포먼스를 보여주기도 했지만, 점수에 반영되지는 않았습니다.”
꿀꺽.
나는 침을 삼켰다.
뭐, 당연하지.
이런 대회에서는 퍼포먼스가 평가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퍼포먼스 까지 점수를 쳐준다면, 나는 당장에라도 저 앰프들을 때려 부술 것이다.
“김수재 학생이 1등으로 선별된 이유는, 순전히 실력 때문입니다. 압도적이었습니다. 이상입니다.”
“···”
내가 1등으로 호명되자마자 환호가 울렸고,
평가가 시작되자마자 침묵이 흘렀다.
갑자기 들이닥친 고요.
나는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 이다음은 제 개인적인 의견입니다. 그리고, 연주력에 관한 평가가 아닙니다.”
후우.
원재선은 숨을 크게 토하더니, 들고 있던 종이를 의자에 내려놓았다.
“··· 음악에 있어서 감정표현은 아주 중요합니다. 피아니스트들이 항상 강조하는 것이기도 하고요. 자연스레 ‘감상’이 떠오르느냐가 관건인데 ··· 솔직히 중, 고등부에서 단순한 감정표현 외의 복잡한 구상을 듣기는 많이 힘듭니다.”
말 한 번 직설적이네.
“청량하면서도 묵직한 소리가 ··· 상당히 좋았습니다. 일렉기타의 ‘톤’과 특유의 주법이 만들어낸 결과물이었습니다. 시원하고 묵직한 여름 아침 ··· 머릿속에 잘 그려지더군요. 이 정도일 줄 몰랐습니다. 잘 들었습니다. 이건 평가가 아니라, 피아니스트 원재선의 소감입니다.”
원재선은 작게 고개를 까딱였다.
건반 위의 테크니션.
신경질적인 불독.
··· 솔직히, 이렇게까지 긍정적으로 말해 줄 줄은 몰랐다.
뭔가 윤대혁 선배랑 비슷한 성격이리라 예상했는데.
이 사람은 좋다고 느낀 것을 숨김없이 그대로 말하는 성격이구나.
나는 씨익, 미소를 지으며 손을 가지런히 했다.
“일렉기타 부문 2등은 ···”
알다마다, 김태현이다.
이미 예상했다.
나는 감상평을 한 귀로 흘려들었다.
마지막 3등.
3등 ···.
“3등, 유산고등학교 최유진 학생.”
최유진은 멍하니 입을 벌렸다.
스윽 스윽,
자기 스스로도 결과를 못 믿겠는지, BGM처럼 들려오는 감평에 귀를 기울이지도 않은 채, 정신이 달나라로 떠나 버리려는 듯이 몸을 떤다.
툭툭툭툭-!
나는 최유진의 머리통을 두들기며 빠져나가려는 영혼을 강제로 집어넣었다.
“흐읍···!”
왈칵-
최유진의 커다란 눈망울에서, 눈물이 쏟아져 나온다.
나와 소이는 최유진의 등을 토닥였다.
“…”
뭔가,
뭔가.
되게 뿌듯했다.
내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뿌듯했다.
전생의 최유진은 첫 콩쿠르에서 낙방한다.
첫 콩쿠르에서 낙방함으로 인해, 전국 장학대회에 출전할 수 없었다.
출전할 수 없었으므로, 금전적인 문제에 부딪혔다.
최유진의 집···
아마, 예상컨대.
우리집보다 못 살 거다.
양친은 다 계시지만, 금전적으로 여유롭지 못하다.
최유진은 돈이 없어서 알바를 병행했다.
알바를 병행하다 보니 자연스레 연습시간이 줄어들었다.
실패가 실패를 만들었다.
그녀가 간신히 실패의 연쇄를 끊어내는 것은, 고등학교 졸업 후 2년이 지나던 때였다.
3수.
대학 입시를 위한 고된 나날들.
10대의 가냘픈 정신과 몸에, 번뇌와 절망이 찾아왔을 것이다.
전생의 나는 최유진과 아주 친하지는 않았다.
서먹하진 않았지만, 부랄친구 수준은 아니었다.
그때의 나는, 그저 열심히 하라며 작은 응원만을 보낼 뿐이었다.
“최유진 학생···?”
얼굴에 당황에 물든 심사위원들.
나와 소이는 최유진의 손을 잡아주었다.
순위권에 들지 못해 분할 법도 한데.
소이의 얼굴에는 그저 환한 미소만이 떠올라 있었다.
최유진은 소매로 슥슥 눈물을 닦았다.
“가자.”
나는 낡은 나무단상을 가리켰다.
한 달간의 노력이, 결실을 맺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