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genius guitarist RAW novel - Chapter 75
정열적인 야외 무대의 혜성 (5)
“아 비 씹.”
“너 핸드폰 방수 되냐?”
“내 건 됨. 개꿀.”
행사 진행요원들이 힘껏 달리며 관객들에게 우비를 나눠주기 시작했다.
한 4000명은 되어 보이는데.
우비가 4000개나 있는 건가?
“으 다 젖는다.”
우리는 급하게 비닐 우비를 입었다.
뭐, 나름 버틸 만은 한 거 같다.
각자 다른 패션을 뽐내던 관객들은, 모두 하나같은 차림이 됐다.
빨강, 파랑, 투명.
그리고 노랑.
“수재랑 같은 색깔 ···”
소이는 나랑 똑같은 노란색 비옷을 입으며 후드를 꾸욱 눌러썼다.
꼭 병아리 같다.
병아리 소이.
“색깔 예쁘네. 싸구려는 아닌가 봐.”
“응···.”
하늘을 올려다본다.
빗줄기가 그리 선명하지는 않았다.
투두두두둑-
수 천명의 비옷에 물방울이 떨어진다.
조금은 시끄럽기도 하고, 나름은 감성적이기도 한 소리가 관객석을 메운다.
“비온다고 페스티벌 끝내진 않겠지?”
“절대 안 끝낼걸? 오다 그칠 거 같은데?”
하늘에 점점 먹구름이 끼고 있었지만, 애들은 희망 섞인 말만을 내뱉었다.
비와서 집 간다고 하는 나약한 놈은 없었다.
이곳에 온 이상,
버티는 이상,
남녀노소 따질 것 없이 그 누구나 어엿한 전사였다.
-갑작스럽게 비가 내리네요! 분명 기상청에서는 강수확률이 20%라고 했는데 말이죠~
남자 사회자가 힘껏 파라솔을 설치하며 멘트를 쳤다.
– 비 온다 하면 ~ 안 오고. 안 온다 하면~ 오고.
– 기상청 체육대회가 비와서 취소됐다는 소문도 있던데요~ 그래도, 우리가 여기서 멈출 수는 없겠죠!?
– 그럼요! 가수 임소혜씨가 정말 정열적이고 멋진 무대를 준비하셨는걸요! 이 자리에서 못 본다면 너~ 무 아쉬울 것 같습니다! 자, 다 같이 불러 볼까요?! 임소혜씨~!?
와아아아아아-! 임소혜! 임소혜!
대단하다.
돌발상황이라 대본보고 읽은 것도 아닐 텐데.
그냥 입에서 줄줄이 말이 나오네.
저 사람들의 얘기대로 별문제는 아닐 거다.
애초에 전생의 이때 당시에도 비가 왔을 테니까.
리비다가 훌륭한 무대를 선보이며 확 떠오르게 되니까.
적어도 ··· 적어도.
라비다가 무대를 마칠 때까지, 관객들이 떠나가지는 않을 것이다.
“진행자 누나 너무 예쁨.”
“인정.”
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최유진은 세상 심기 불편한 표정으로 스마트폰을 두들겨댔다.
“아··· 스피커에 물들어갔네···. 김수재 너 몇 시에 해?”
“일곱 시.”
“폰카로 잘 찍어줄게.”
“고오 맙다.”
메인 카메라가 날 찍긴 하지만, 폰카로 찍은 건 폰카만의 감성이란 게 있지.
“닭강정 그렇게 먹었는데 안 졸려? 난 뭐 먹고 나면 졸리던데.”
“전혀, 또 먹고 싶음.”
“돼지.”
페스티벌이라고 근처에 노점도 있더라.
우리는 이미 한 번 노점을 돌며 배를 채운 상태였다.
“닭강정···”
“엄청 맛있었지?”
“응···.”
분식집은 곧잘 가던데.
소이는 길거리 닭강정을 먹어본 적이 별로 없나 보다.
이런데서 파는 음식이 유독 맛있긴 하다.
뭔가 맛있을 거 같은 걸 다 때려넣으니까 맛이 없으면 그게 문제 있는 거지.
나는 친구들과 떠들며 공연도 보고, 행사가로 사온 음료수도 홀짝였다.
하늘을 덮어버린 구름 탓에 점점 주변이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어두워진다고 분위기가 다운 되기는 커녕,
“예쁘다 ···”
물빛무대는 더더욱 화려해졌다.
Led가 덮인 돔에서 뿜어져 나오는 형형색색의 빛깔들.
번쩍이는 스크린과 가수의 열창.
먹먹한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 다채널 스피커.
참,
뭐랄까.
즐겁다.
얘들이랑 이러고 있는 것 자체가 너무 즐겁다.
“너 막 이제 TV 같은 데 나가는 거 아니야?”
“유튜브에는 나갈걸?”
“유튜브엔 나도 나왔음.”
“나도 나옴.”
그건 그렇네.
혁오랑 도현이도 에이트라 채널에 올라갔긴 했지.
김수재 코인을 잘 탔구만.
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앞으로 두 팀 남았네. 가야겠다. 이따 보자!”
“잘해! 망치지 말고!”
“비오니까 분위기 딱 맞네.”
“노린 거냐?”
“내가 날씨를 어떻게 맞추냐?”
“그건 그럼.”
비올걸 예상하고 정한 곡은 아닌데.
라비다의 갬성적인 무대에서 잉베이 곡을 칠순 없을 거 같아서 정한 곡인데.
이정도 빗줄기가 계속 유지된다면, 의도치 않게 도움을 받을 것 같았다.
나는 간이 대기실로 뛰어가 천막 문을 젖혔다.
공연이 끝난 뮤지션들이 하나둘씩 자리를 비웠기에, 천막 안이 꽤나 널찍했다.
“여긴 안 젖었네요?”
“방수인가봐~”
탁자에 누워 있는 황정태 형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다.
아주 살판 났구만.
밖에 있는 사람들은 신나게 비 맞고 있는데.
그새 입장이 역전됐다.
“이젠 긴장 안 하시는 것 같네요.”
멤버들의 표정은 아침과는 사뭇 달랐다.
“누가 긴장했다고 그러냐?”
나는 적당히 의자에 앉아서 놓아둔 기타를 꺼냈다.
기타줄 사이로 천을 넣어 슥슥 닦는다.
공연 들어가기 전에 미리 닦아줘야 슬라이딩할 때 맛이 산다.
“줄 관리 잘 해둬. 솔로 때 끊어지면 낭패잖냐.”
“괜찮아요. 두 대니까 바로 바꾸면 돼요.”
“너 설마 ···”
“아니, 난 아이돌이랑 무대 같이 하려고 기타 두 대 가지고 온 건 줄 알았거든? 왜, 백킹할 때는 레스폴이 잘 어울리잖아. 근데 스트렛 쓰더라?”
연지선 누나가 말을 이었다.
뭐, 아이리즈 곡을 스트랫으로 녹음했고 스트랫에 맞춰놨으니까.
레스폴을 쓰지는 않았다.
준비할 시간 자체도 부족했고.
“··· 솔로 곡도 스트랫 쓴다고 하지 않았나?”
“맞아. 좋은 거 새로 샀잖아.”
“스트랫 써요.”
나는 쌍기타를 라비다 멤버들 앞에서 선보였다.
“··· 참 우습군.”
“멋있는데?”
“멋지다!”
“안 무거워?”
반응이 참 제각각이다.
보컬 형이 유난히 눈을 빛내는 것 같다.
역시 이 사람이 제일 관종끼가 심하다니까.
“기타도 돌릴 거예요.”
“··· 뭐?! 연습 때는 안 보여줬잖아!?”
“아까 돌린다고 말하던데?”
“거긴 너무 좁아서 못 보여 드렸죠. 지금이라도 잘 보세요~”
촤아아악-!
내 비기이자 결전기.
쌍기타돌리기.
관심 없다는 표정을 짓던 윤대혁 선배조차, 입을 쩍 벌릴 정도의 파괴력을 가진 퍼포먼스가 작디작은 천막에서 펼쳐졌다.
“···!”
“대박 ··· 기타가 왜 안 날아가? 어떻게 해?”
“수강비 백만원되겠습니다.”
나는 우쭐한 표정을 지으며 기타들을 케이스에 넣어 눕혀두고, 차례를 기다렸다.
라비다의 무대를 멋지게 장식을 해야 한다.
괜히 실수해서 망칠 수는 없다.
추가 곡 포지션을 넘겨받은 거니까.
연지선 누나, 윤대혁 선배도 적극 멜로디에 개입하니까.
혼자가 아닌, ‘모두’가 만드는 무대다.
지익-
윤대혁 선배가 의자를 끌고 내 옆에 앉았다.
그의 얼굴을 보자마자, 예전부터 묻고 싶었던 것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 라비다의 초기 명곡 세 개.
분명 좋은 노래들이다.
근데, 다른 노래가 안 좋냐면 그것도 아니다.
“저, 궁금한 게 있는데요.”
“뭔데?”
윤대혁선배의 얼굴에 대고 물었지만, 대답하는 건 연지선 누나였다.
“곡 원래부터 세 개만 하기로 하신 거예요?”
“다 우리 수재 잘되라고 세 개만 하겠다고 한 거지~ 이 누나가 큰맘먹고 양보를···”
연지선 누나가 우쭐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 가로챈다.
“원래 세 개만 하려고 했다.”
윤대혁 선배는 그런 연지선 누나의 말을 아주 자연스럽게 잘라먹었다.
“야!”
“사실이잖냐.”
“··· 왜요?”
“그 세 곡이 제일 잘 만들어졌으니까.”
그건 알겠는데.
이해 못 하는 건 아닌데.
그래도 곡 하나 더 하는 게 노출 시간을 늘릴 수 있어서 좋지 않나?
“··· 나머지곡은 확 와 닿지가 않아.”
“너도 같이 쓴 곡을 그렇게 말하면 어떡하냐? 멤버 실격 아니야?”
“우우우우-! 실격이다~ 사죄해라~”
“남도 아니고 얘인데, 그 정돈 말해도 되잖냐.”
윤대혁선배는 오늘따라 말이 많았다.
다른 곡들이 확 와닿지가 않아서 네 번째 무대를 일부러 포기했다니.
알 수 없었던 정보였다.
“제가 무대 오르는 건 괜찮아요?”
“괜찮아.”
윤대혁선배는 즉답했다.
비가 와서 그런가,
아니면 점심에 뭐라도 잘못 먹은 건가.
평소에는 절대 하지 않을, 그런 말을.
윤대혁 선배는 내뱉었다.
“네 연주는 확 와 닿으니까, 괜찮다.”
···.
뭔가··· 뭔가.
개소름돋는다.
나는 즈으으윽- 의자를 끌어서 멀찍이 떨어졌다.
“오올~ 자기 제자라고 은근 아끼네~”
“윤대혁 개소름돋네. 나한테 그거 반만이라도 해주면 안 되냐?”
머쓱하게 머리를 긁적이는 윤대혁 선배.
그 또한 기타 줄을 천으로 닦기 시작했다.
언제 봐도 플로이드로즈 브릿지는 정말 개극혐이다.
저걸 대체 어떻게 쓰는 거지?
“라비다 준비하실게요~”
진행요원이 대기실에 들어오며 시작을 알렸다.
멤버들은 각자 장비를 챙기기 시작했다.
나와 윤대혁선배, 황정태 형은 기타와 페달보드를,
보컬 형은 연지선 누나랑 같이 무거운 신디사이저를.
드럼형은 유유적적 드럼스틱만을 돌렸다.
기타가 참 애매하단 말이야.
무거운데 남한테 들어달라 하기도 뭐하고.
그나마 나는 장비가 간소한데 이 양반은 진짜 ···
“··· 안 무거워요?”
나는 질척질척한 땅을 밟으며 물었다.
“별로.”
“대혁이가 원래 센 척 많이 해.”
“···.”
센 척 하는 게 아니라, 이펙터 10개가 박혀 있는 보드를 맨날 들고 다니면 자연스럽게 강해질 수밖에 없을 것 같은데.
약한자는 살아남을 수 없는 세계.
그것이, 기타리스트의 세계였다.
타이밍은 정말 딱 맞았다.
전 타임의 가수가 내려오고, 곧바로 직원들이 뛰쳐나와 라비다의 무대 세팅을 돕는다.
나는 물빛무대의 입구에서 비를 피하며, 멍하니 그들의 공연을 감상했다.
··· 본 적 있는 무대였다.
과거에,
유튜브에서.
라비다의 채널에서.
참. 뭐랄까.
잘한다.
라비다가 이 시기에 유난히 감정을 자극하는 듯한 곡들을 많이 냈었지.
특히 ‘나뭇잎 아래서’는 센티멘탈 그 자체였다.
방금 전의 발라드 가수와는 전혀 느낌이 다르다.
한 명이 아닌 다섯 명이, 서로 같은 감정을 표현해 낸다.
··· 좋다.
나는 그들을 멍하니 바라보며 괜히 기타줄을 튕겼다.
휘익 우비를 벗어 던지고, 옷매무새를 정리한다.
기껏 피부톤 정리니 뭐니 메이크업도 받았는데. 비와서 좀 말아먹은 거 같네.
쥬와아아앙-!
디리링~
연달아 연주되는 라비다의 곡.
몰입한 관중들이 외치는 환호성.
세 번째 곡이, 끝났다.
원래라면 여기서 멈춰야 할 무대.
회귀 전이었다면, 인사를 하고 끝마칠 타이밍.
이번에는 아니었다.
“입장하실게요!”
“옙.”
나는 후다다닥 앰프로 달려가 수 십 번 시뮬레이션 돌렸던 톤세팅에 들어갔다.
-자 다음 곡은 ··· 어!? 이건 라비다의 곡이 아닌데요!?
-뭘까요 뭘까요~ 지금까지 화려한 퍼포먼스를 보여준 윤대혁 기타리스트가 솔로 무대를 선보이는 것일까요?!
– 아닙니다! 이번 무대에 ‘윤대혁’ 기타리스트가 참여하긴 하지만 ··· 이미 여러분이 알고 계시는 ‘그분’이 라비다의 피날레를 장식하게 되었습니다!
– 우리가 알고 있는 ‘그분’ 이라고 하며는 ···!?
-나와주세요!
-나와주세요! 빨간 기타 소년!
나는 딩딩딩- 작은 볼륨으로 기타를 튕기며 톤 확인을 끝마쳤다.
“와! 쟤가 또 서!?”
“왜 기타를 두 개나 메고 있어?”
이름 모를 대학생들이 중얼거린다.
이유는 없다.
이것이, 쌍기타니까.
“쌍기타다!”
저 사람은 뭘 좀 아는 구만.
“쌍기타 빨기좌!”
“빨기좌! 빨기좌!”
“빨기좌 사랑해!”
알았어 나도 사랑한다고.
“김수재 화이팅!”
친구들이 합을 맞춘 듯이 크게 소리를 지른다.
나는 그것에 보답하듯,
징이잉- 드르르륵!
노근본 리프를 후리며 당당하게 앞으로 걸어나갔다.
-오오오오오오!
화르르륵-!
비가 와서 그런지 드라이아이스 대신 불꽃이 뿜어져 나오네.
솔직히 존나 무서운데···?
장작기타 장작기타 하는데 진짜 기타가 장작이 될 거 같다.
– 이번 곡은, 타카지의 ‘rain’입니다!
와아아아아아아아-!
뭔 곡인지는 모르지 않을까?
그냥 소리치는 거다.
그게 분위기니까.
그만큼, 분위기란 놈은 아주 위대했다.
“준비됐지?”
“예! 바로 들어가요!”
“하나 둘 셋!”
드럼 형의 우렁찬 목소리와 함께,
틱틱틱-
하이헷 소리가 들려왔다.
동시에, 윤대혁 선배와 지선누나의 인트로 코다가 시작됐다.
나는 딜레이가 걸린 까랑한 클린톤으로 두 사람 과같이 정확한 박자를 밟았다.
디리리링-!
아이리즈 때와는 다르다.
이것은, 누군가를 받쳐주는 것이 아닌,
기타가 주인공이 되어 앞으로 드러나는,
‘솔로’ 곡이다.
지잉-!
근데 근데 ···
“어?”
우르르르릉-!
순간, 내 기타소리가 묻힐 만큼 번개가 크게 쳤다.
어째 빗줄기가 점점 굵어지는 느낌이다.
비뿐만 아니라.
후우우우웅-!
비의 경로를 바꿀만한 강풍도 세트로 따라왔다.
“···.”
관객들이 갑작스러운 비바람에 비명을 지르며 얼굴을 가린다.
비는 내 얼굴에도 들이쳤다.
연주가 중단되지는 않았지만, 라비다 멤버들은 비를 피해 지붕 아래로 슬슬 뒷걸음질 치고 있었다.
안쪽으로 박히기만 한다면, 무대를 덮고 있는 돔 덕에 비를 맞지 않아도 된다.
나는···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뒤로 빠져야 할까?
내 무대인데?
이 순간을 손꼽아 기다렸는데?
문뜩, veze라고 큼지막하게 적힌 카메라가, 눈에 들어왔다.
그래, 두 번 다시 없을 기회인데.
놓칠 수는 없지.
‘앞으로 나간다.’
나는 400만 원어치 쌍기타를 멘 채, 비와 맞섰다.
이것이 상남자의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