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genius guitarist RAW novel - Chapter 76
정열적인 야외 무대의 혜성 (6)
우와아아아아아-!
저게 목소리인지, 천둥소리인지 당최 모르겠다.
그만큼 엄청나게 우렁찼다.
-빨기좌! 빨기좌!
-개멋있다아아아악!
빗소리에 섞여 울려 퍼지는, 나의 이름을 부르는 관객들의 목소리.
뿌듯하다.
아주 뿌듯하다.
비를 맞은 보람이 있다.
우레탄이 잔뜩 올라가 있는 기타가 비 좀 맞는다고 죽을까?
사실 잘 모른다.
반반이겠지.
사후 대처에 따라, 기타의 상태에 따라 다르다.
뭐, 열심히 말리면 되긴 될 거다.
넥이 갈라져 죽어버린 기타도 어떻게든 살려내는 게 리페어 장인들이니까.
애초에 기타 바디는 우레탄으로 덮여 있고,
넥 지판 또한 우레탄 코팅이 올라가 있다.
깁슨은 좀 위험하긴 한데, 우리 관리 장인 박작곡가한테 가져가면 어떻게든 해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지릿지릿-
기타줄을 타고 손에 미미한 전기가 오른다.
···이거 감전되는 거 아니야?
접지가 되어 있긴 할 텐데 ···
짜릿함이 그리 심하지는 않았다.
마치 오래된 냉장고나 세탁기를 만지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뭔가 최신식 손 마사지를 받는 기분까지 든다.
피로도 풀리고 개이득이네.
디잉!
찐득하고 먹먹하면서도, 날이 죽지 않은, 내가 만든 클린톤 소리.
rain은 g.o.d에 소속된 ‘타카지’라는 기타리스트의 곡이었다.
G.O.D.
Guitarists on demand
일본에서 시작된, 솔로 기타리스트들의 그룹이다.
출범한지는 지금 시점에서 10년이 안 됐을 거다.
멤버들 모두 기타계에서 한 가닥 하는 양반들이라 아무 노래나 들어도 되게 좋다.
특히 리프가 어렵지 않으면서, 감정 살리기에 중심을 둔 곡들이 대박이다.
시선을 끄는 데에는 속주 만한 게 없긴 하지만, 계속 속주만 듣다가는 쉽게 물려버리니까.
이곡이, 지금의 ‘라비다’와 어울리는 락의 한계선이다.
디이이잉~
참, 뭐랄까.
반주로 울리는 피아노 키보드의 소리나,
기타의 오픈 코드 소리나.
내가 지금 치고 있는 솔로 라인의 클린톤이나.
여러가지 음이 융화되어 비가 잔뜩 내리는, 외로운 도심을 걷는 느낌을 만들어 내는 것 같다.
어려운 리프는 많지 않았다.
하지만···
“와 ··· 소리 봐···.”
청중들의 감상을 이끌어내기에는 충분했다.
물빛 무대의 led 패널이, 너무 잔망스럽지 않게, 그러면서도 확실히 존재감을 알리려는 듯이 빛난다.
두웅-!
관객석을 비추고 있던 조명의 절반이 꺼졌다.
비내리는 무대.
일부러 비를 맞는 기타리스트.
습하게 올라오는 물안개.
··· 축축해서 찝찝하고,
기타를 두 대나 메고 있어서 힘들고,
전기도 오르지만.
그리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살금살금 체력을 잠식해가고 있단 ‘악조건’을, 음악이 치유해 주는 것 같았다.
나는 아주 천천히, 관객들의 모습을 확인했다.
빨강, 파랑, 투명, 노랑.
각기 다른 색상들.
각기 다른 얼굴들.
내리는 빗줄기가 무대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줄기를 머금는다.
마치, 하늘이 별을 흩뿌리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페달 보드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 ts808과 sd-1을 동시에 밟았다.
그리고 또다시, 비를 맞으러 나왔다.
치징 -지이이잉!
살짝 먹먹하기도 하면서, 찌르는 느낌이 들면서, 노이즈리스 픽업 특유의 정제된 느낌이 들기도 하는···
그런 오버드라이브 사운드가 커다란 음량으로 증폭되어 울려 퍼진다.
익살스러운 밴딩 비브라토.
소리는 날카롭고, 짜릿했지만, 동시에 잔잔했다.
원래는 마무리를 장식하려고 골랐던 곡인데.
‘비’ 라는 이름의 곡이, 비가 오는 무대를 힘껏 표현하게 되었다.
“좋다···”
“와 ···”
카아아아앙-!
중간중간에 나만의 하모닉스를 섞는다.
기타리스트라면, 기타 키드라면 한 번쯤은 들어본 rain.
‘아주’ 어렵지는 않은 난이도 덕이 많은 사람들이 커버에 도전했다.
커버 유저들은, 주로 기타리스트 az의 커버스타일을 따라 했다.
이른바 커버의 커버다.
일본 곡인데 한국인 커버가 더 많은 이상한 곡.
나는, 이 곡을 ···
카앙-!
나만의 뉘앙스로 덮었다.
원작자 버전도 아니고,
Az 버전도 아니다.
내 버전이다.
내가 처음 이 곡을 카피할 때에는, 나만의 뉘앙스를 넣지 못했었다.
다만, 거듭되는 연주 끝에 차츰 내 소리가 섞였다.
쿵쿵 거리는 베이스음을 뚫고, 빗소리가 내 귀에 박힌다.
피아노 코드 소리를 뚫고, 빗소리가 내 귀에 박힌다.
빗소리와, 곡이 어우러진다.
빗소리는, 붓이 되었다.
눈앞에 비치는 광경과,
머릿속에 떠오르는 풍경이 오버랩됐다.
덤덤하게 내리는 비.
덤덤하게 비를 맞고 가는 사내.
저 아스라이 저물어가는 햇빛.
짙은 남색으로 물든 하늘.
··· 내 기억이다.
갑작스레 떠오르는, 내 기억이다.
나는 기타를 치는 게 즐거웠다.
언제나 즐거웠다.
돈을 못 벌어도, 손이 아파도, 기타를 쳤다.
회귀하기 직전에도,
그 이전에도,
그 이전에도.
입학하고 보니 음악 하는 애들이 널려 있고,
아무 생각 없이 학교에 온 애들도 취미 삼아 악기를 하나 둘 씩 잡던,
그런, 고등학교 시절.
나는 완전히 기타에 미쳤었다.
수많은 곡들을 카피하고, 카피하고, 또 카피하고.
레슨? 수업? 특별반?
그딴 거 없었다.
그냥 쳤다.
가끔 반 애들한테 정보나 팁 같은 걸 묻고, 인터넷에 질문에 질문을 또 하고.
다시 생각해보면 참 웃긴 질문들이 많았다.
새끼손까락 잘 쓰는 법, 피킹 강도 유지하는 법.
어떻게 하나요ㅠㅠㅠ? 라며
그냥 존나 질문을 올렸다.
전자는 ‘의식해서’새끼손가락을 쓰라는 답변을 가장 많이 받았고 후자는 ···
티이잉-!
강렬한 하모닉스와 동시에, 윤대혁 선배가 앞으로 나왔다.
시원하게 뻗어 나가는 ESP 특유의 드라이브 사운드가, 나의 날카롭고 먹먹한 소리와 화음이 되어 섞인다.
– 와아아아아아아아!
– 윤대혁! 윤대혁!
– 빨기좌! 빨기좌!
서로가 만들어내는 화음에, 관중들의 환호가 더 높이 솟아올랐다.
어째 비가 더 거세지는데도, 저들은 한껏 분위기에 취해 달아오를 뿐이었다.
나는 윤대혁 선배와 시선을 마주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잠시 뒤로 빠진다.
검은색 ESP기타가, 비에 흠뻑 젖는다.
그도 나와 같은 결론을 내린 모양이다.
쫌 하네.
그래, 한 번밖에 없는 기회인데 사리면 되겠어?
놓치지 말아야지.
꽉 잡아야지.
나는 윤대혁 선배의 솔로를 지켜보며, 다시 한 번 추억을 더듬었다.
고등학생 때의 나.
‘녹음해서 들어보라’라는 네티즌의 충고.
나는 시키는 대로 했다.
녹음하라니까, 이걸 녹음했다.
타카지의 레인.
진짜 정말 많이 친 것 같은데.
처음 본게 az커버였나?
커버의 커버의 커버까지 다 들었다.
너무 멋있었으니까.
나도 치고 싶었으니까.
싸구려 멀티이펙터와 똘똘이 앰프, 그리고 엄마를 졸라서 중고로 들인 멕시코 펜더 스탠다드 스트랫.
갖추고 있던 장비로 열심히 따라했다.
하지만 나는···, 곧바로 엄청난 실망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커버곡을 듣다 보면 뭔가 잘 치는데 이질적인 영상들이 있지 않은가.
잘치는데, 실수도 안 하는데?
색이 없다.
뉘앙스가 없다.
색이 옅든 적든, 있어야 맛이 사는데.
맛이 안 나는 연주들이 있었다.
반면, 음 몇 개 틀리고 박자 실수가 좀 있어도 뭔가 맛깔난 사람들도 있었다.
나는 내 연주가 후자 같으리라 예상했다.
근데 막상 녹음본으로 들었던 소리는, 내 예상과는 한참 달랐다.
뭔가 어색했다.
분명 칠 때는 잘 쳤다고 생각했는데, 어색했다.
완벽하다고 생각했던 박자가 약간 틀어지고, 밴딩음이 이탈하고, 그리고 무엇보다,
맛이 살아있지 않았다.
보면서 ‘에이, 저게 뭐야.’라며 비웃었던 연주들이,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 사람들은 나랑 똑같았다.
오만이 불러온 사실이, 날카롭고 아프게 다가왔다.
그냥 개 빡쳤다.
나는 원인을 찾으려 비가 잔뜩 내리는 거리에 우산 없이 뛰쳐나갔다.
다시 생각해봐도 진짜 미친놈이었네.
계속 빗길을 걸었다.
곡 이름이 레인이니까 뭔가 비 처맞으면 해결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었다.
아주 짧게, 방황했다.
근데 도저히 모르겠더라.
축축하지, 춥지, 가랑이 가렵지.
대체 뭘 하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냥 집에 돌아왔다.
시원하게 씻고, 엄마한테 우산 잃어버려서 비 맞고 왔다고 얼버무리고, 다시 연습하려 기타를 잡았다.
똑같이 연주했는데 ··· 달랐다.
곡에는, 감정이 서려 있었다.
비를 맞을 때의 눅눅함, 좆같음, 집에 왔을 때의 해방감.
감정을 느끼니, 감정을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감정을 표현할 수 있게 되니, 상상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생긴 상상력이, 또다시 새로운 감정을 만들어내었다.
나는 그렇게 성장했다.
비를 맞으며.
쥬웅-!
윤대혁선배가 힘차게 파워코드를 튕기고서 뒤로 물러난다.
나는 교대하듯 다시 앞으로 나가며 곡의 마무리에 들어갔다.
지금이 딱 적당하겠네.
구웅-!
나는 힘차게 케이블을 뽑았다.
비를 엄청나게 맞아서 그런지 스트랩이 엄청나게 미끌거린다.
이거 개이득이잖아.
더 잘 돌려질 것 같다.
주와아아아악-!
나는 힘차게 기타 스트랩을 잡아당기며, 괴상한 회전운동을 관객들에게 선보였다
-와아아아아아아아!
웅성이던 소음이, 그야말로 ‘폭발’했다.
기타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도, 그저 입을 쩍 벌릴 수밖에 없게 하는 묘기.
나의 쌍기타돌리기.
나는
파악-!
레스폴에 케이블을 꼽으며 연주를 이었다.
비를 덤덤하게 맞는 듯한 곡.
덤덤하게 맞다가 문뜩,
내면의 감정을 폭발시키듯이, 억누르고 있던 목소리를 한계까지 지르는 곡.
비,
감정의 폭발.
잔잔하게, 화려하게.
라비다의 훌륭한 무대를 훌륭하게 장식하듯이.
치이이이잉-!
나는 격한 비브라토를 넣으며, 무릎을 꿇었다.
동시에,
챠라라랑-!
연지선 누나의 신디 소리가 들려오며,
곡이 마무리되었다.
많이 쳐본 곡이지만, 비를 맞으면서 쳐본 적은 없었다.
애초에 비 맞아가면서 기타 치는 미친놈이 세상에 어디 있어.
하지만 그렇기에, 내가 이런 무모한 짓을 했기에,
잘 전해졌을 것이다.
분위기와 잘 어우러졌을 것이다.
비를 맞을 때의 기분 나쁜 감정과, 몸을 씻어내리며 느끼는 해방감.
아주, 성공적이었다.
“···.”
모든 이들의 시선이 나와 라비다 멤버들에게 몰린다.
멤버들은 각자의 악기를 내려놓고, 뚜벅뚜벅, 이리로 걸어 나왔다.
둥-!
반쯤 꺼져 있었던 관객석 쪽의 조명이 다시 들어왔다.
온몸이 축축하고, 어딘가가 막 가렵지만,
지금 이 순간보다 더 좋을 수가 있을까.
저 해방감 섞인 표정들을 보는 것보다, 이 세상에 짜릿한 게 있을까?
““라비다였습니다!””
다섯은 짜맞추기라도 한 듯이, 꾸벅, 관객들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나는 손을 짚고 일어나 기타를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기타리스트 김수재였습니다!”
– 우오오오오오오오오오!
– 라비다! 라비다!
– 김수재! 김수재!
– 라비다! 라비다!
포 데이지를 보면서, 아이리즈를 보면서.
나도 저런 호응을 받을 수 있을까 내심 기대했었는데.
기대는, 나를 배신하지 않았다.
저 멀리까지 울려 퍼지는,
4000명의 성대에서 뿜어져 나오는 함성소리가,
나를 끌어안듯이 맞아주었다.
““감사합니다!””
우리는 서로의 어깨에 팔을 걸치며, 무대를 마무리 지었다.
Veze의 카메라가 우리를 비춘다.
잊지 못할 기억과 기록이 새겨졌다.
라비다는 그날,
3위가 아닌,
2위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