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genius guitarist RAW novel - Chapter 93
폭발하는 광기 (4)
이 곡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이 과연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 되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인터넷 사용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반드시 들어본 곡.
제목을 몰라도, 관심이 없어도.
도입부를 딱 듣는 순간
‘아~ 그거~’
라는 반응을 할 수밖에 없는 곡.
이루마의 River flows in you.
유명하다.
정말 유명하다.
한 분야에 모든 것을 쏟아부은 자라 할지어도 음악 하는 사람이 이 곡을 모르는 건 말이 안 된다.
아마 간첩도 알 거다.
딩딩, 딩딩, 딩딩 딩 딩-
원재선이 당당하게 인트로에 들어갔다.
반복적인 멜로디 덕에 피아노 초보라도 완주까지 이주채 걸리지 않는 간단한 난이도.
하지만 ‘난이도’만으로 좋은 곡을 판가름할 수는 없는 법이다.
음악은 좋아야 듣는다.
이 곡은, ‘좋아서’ 떴다.
좋기에, 수천, 수억의 사람들이 들었다.
“···.”
원재선이 나에게 시선을 보낸다.
나는 아주 작게 고개를 끄덕인 다음,
지잉!
방금 원재선이 선보인 멜로디를, 똑같이 따라했다
일렉기타와 피아노의 협연.
클래식에서는 ‘있을 수 없는’ 조합이다.
일렉기타는 당시에 존재하지도 않았으니까.
존나 당연한 얘기다.
그건 그렇고 진짜 좋네.
듣기 편안한 뉴에이지의 성향에 반복적이면서도 머릿속에 각인되는 특유의 리프.
“···.”
나는 관객들의 얼굴을 살폈다.
음악을 받아들이는 것은 각자의 자유다.
절대로 강요할 수는 없다.
원재선은 일방적으로 선곡 변경을 통보했고, 언제든 취소할 수 있도록 고객에게 안내했다.
심지어 공연 하루 전까지는 취소 수수료를 아예 안 받겠다고까지 했다.
근데도 보아라.
꽉 찼다.
이 넓은 대극장이, 빈자리 하나 없이 꽉 찼다.
불만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하더라도, 토로를 들어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제발로 찾아왔으니까.
배짱.
배짱이 만들어낸, 협주곡.
나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서, 소리를 느꼈다.
나는 피아노에 대해 잘 모른다.
하지만, 가까이서 들으니 직감적으로는 알 것 같다.
스타인웨이의 아름다운 소리.
아름답기 그지없고, 섬세한 소리.
장인이 만들어낸 악기.
그것을 연주하는 또 다른 장인.
오늘은 정말 귀가 호강하는 날임이 틀림이 없다.
지이잉-!
나는 힘차게 현을 튕겼다.
이게 과연 될까? 싶었는데.
된다.
이게 왜 되지? 싶은데.
되고 있다.
주우우웅-!
프론트 픽업의 사운드.
까랑까랑하면서도, 미들이 살아있는 사운드.
원재선의 피아노는 2억이 넘어간다.
그에 비해 내 기타는 250만 원이다.
모든 장비를 다 합쳐도 1000만 원이 조금 넘을 뿐이다.
하지만 가격이 어떠랴.
돈이 어떠랴.
어차피 악기인데.
연주하는 것은 결국 사람인데.
초반부는 원재선의 멜로디 라인을 받쳐 주듯이, 코드 아르페지오에 기교를 섞어서,
서로가 서로에게 말을 건네듯.
멜로디를 한 마디씩 주고받는다.
“···.”
웅성거렸던 관객석에 정적이 몰아닥쳤다.
강이 네 안에 흐른다, 라는.
정말 추상적이기 그지없는 이름의 곡이 그리 만들었다.
서정적이며, 고요하다.
수 천 쌍에 달하는 눈빛이 내게 날아와 꽂힌다.
기대에 찬 시선, 흥미가 섞인 시선, 방해물을 보는 듯한 시선.
마지막 시선은 참 오랜만이다.
멘탈 단련에는 상당히 도움이 될 것 같네.
강이 흐르는 듯한 멜로디가 내 귀에 반복적으로 맴돈다.
머릿속에, 물줄기가 그려졌다.
“···.”
왜, 가끔 그런 상상 하지 않는가.
스트레스가 쌓였을 때, 주변이 조용해지길 바랄 때.
다 사라져버렸으면 좋겠을 때.
그냥 머릿속으로 어리광 피우듯 하는 생각.
이 세상에 나만 남는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
머릿속에는 강이 그려지지 않았다.
그보다 더 작았다.
강이 아닌, 천.
청계천.
하늘을 뒤덮고 있던 흉물스러운 고가가 사라진,
요즘의 청계천.
겨울이든, 여름이든, 언제나 사람이 북적이는 냇가지만,
머릿속 회색 풍경에는,
사람이 없었다.
오직 나만이, 산책로를 걷고 있었다.
화아아악-!
좁은 풍경이 넓은 풍경으로 서서히 변해간다.
삭막하기 그지없는 도심이었다.
사람도 없고, 나무도 없다.
거리를 꾸며주는 두 존재가 사라졌다.
시야에 비치는 것은 유리창과 콘크리트, 시냇가에 흐르는 물뿐.
나는 물줄기를 따라 걸었다.
그냥 걸었다.
별 볼 것도 없는, 이상하기 그지없는 풍경을 바라보면서.
바람 한 점 없는 공간을 느끼면서.
가슴속 깊은 곳에는 지독한 고독감이 자리 잡고 있었다.
“···.”
아니, 말은 바로 하자.
이건 내가 느끼는 고독감··· 이 아니라,
원재선의 고독감이다.
이 풍경은,
혼자서 그려낸 게 아니다.
나와 원재선의 그려낸 풍경이었다.
이렇게 감성적인 선율에서 이런 풍경이 튀어나오다니.
진짜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나는 고개를 돌려 원재선의 표정을 확인했다.
그는 아주 얕게 끄덕였다.
들어갈 때였다.
카아아앙-!
나는 픽업을 미들- 리어의 하프로 바꾸며 힘차게 밴딩을 했다.
거대한 실내 곳곳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기타의 날카로운 고음이 뿜어져 나온다.
약하게 넣은 딜레이가 잔향이 되어 멜로디를 풍성하게 꾸며 낸다.
이왕 협연하는데.
안 나서면 좀 그렇잖아.
일렉기타와 피아노의 협주 버전,
편곡 버전.
나는 원래 있던 선율에 ‘다른 감성’을 섞었다.
일렉기타만이 섞을 수 있는.
반항하는 듯한,
울부짖는 듯한,
카아아앙-!
하모닉스 암업.
이색적인 소리에 놀란 관객들은 깜짝 몸을 떨었다.
나 메인 연주자라며.
그러면, 내 소리를 들려줘야지.
수 많은 편곡 버전을 섞어 버무려버린
조금은 ‘무질서’한.
나의 솔로.
두두두두둑-!
나는 5번 줄부터 풀피킹 속주를 시작했다.
앞으로 튀어 나가는 오버드라이브 사운드를, 더욱 격해진 피아노 소리가 휘감아 진정시킨다.
이게 이렇게 되는구나.
걱정이 없었던 건 아니다.
‘합을 맞춰보지 않고 공연하는 경우’는 거의 없으니까.
다만 ···
이런 상황이 기타의 세계에서 ‘아예 없는가?’라고 묻는다면, 그렇지는 않다.
누군가가 난입할 때.
지인이 잠깐 무대 위로 올라올 때.
시시각각 변화하는 연주환경을 맞이해본 적이 ···
나는 있었다.
나는 피아노 소리 위에 올라탔다.
원재선은 눈치껏, 기타 소리를 떨어뜨리지 않도록 연주법을 변화시켰다.
일종의 눈치 싸움이기도 했지만, 내가 여기서 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머릿속에 다시 회색 풍경이 그려졌다.
“···.”
계속 해서 물줄기를 걸었다.
원래 물줄기라는 게 그렇지 않은가.
좁아질 때도 있고, 넓어질 때도 있다.
일정하지 않다.
언제나 변화한다.
지금 살아가는 ‘사람’처럼 말이다.
지이이잉-!
나는 일그러지는 풍경에 맞춰 만들어둔 리프를 버렸다.
즉흥이다.
즉흥연주다.
손가락이 가면 가는 대로.
튕기면 튕기는 대로,
메이저 스케일에서 뿜어져 나오는 나도 모르는 솔로.
이런 정적인 무대와는 어울리지 않는, 날것의 음계.
나는, 원재선이 이 곡을 선정한 이유를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이 무대는, 무언의 선포였다.
흘러가는 물줄기처럼,
정처없이 떠도는 하나의 흐름처럼.
자신 또한 고여있지 않고,
어디론가 흘러갈 것이라는,
관객들에게 발산하는 외침.
카아아앙-!
삭막하기 그지 없는 회색 산책로의 끝에는 머리를 빗어 넘긴 한 남자가 서 있었다.
풍경이 현실적이지가 않다.
걸어온 거리가 얼마 안 되니까.
눈앞에 저게 보이는 게 말이 안 되니까.
다만, 상상 속에서는 그 어떤 사람이든 간에 자유로울 수 있는 법이다.
난 대충 납득하며 그의 옆에 섰다.
동시에, ‘한강’ 앞에 섰다.
작은 줄기와 큰 줄기가 만난다.
모든 물줄기라는 게 그렇다.
고여 있으면 썩지만, 움직이면 변화한다.
사람과 달리 음악은 참 ‘고이는 경우’가 많은 느낌이다.
음악은 과연 썩는가.
모르겠다.
말로만 썩었다 썩었다, 들었지 실제 제대로 썩은 모습은 본 적이 없다.
나는 회색 풍경 속 원재선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이 사람은 왜 클래식을 시작하고 왜 피아노 앞에 앉았을까.
왜 음악의 길을 걸었을까.
이 사람은, 자신이 이 위치에 서리라 예상을 했을까?
모르겠다.
하지만, 그가 고독했다는 것은 알겠다.
고여있는 것을 싫어한다는 것 또한 잘 알 것 같다.
그는 원재선이다.
그는 고여 있는 걸 싫어한다.
그는, 변화를 맞이하고 싶어한다.
그리고 나는, 그를 존중했다.
디리리링-
곡이 종막에 달했다.
나는 숨을 진정시키며, 아주 차분하게.
그가 이끄는 멜로디를 따라 아주 약하게 피킹을 넣으며 ···
끝맺음 리프와 함께 곡을 마무리했다.
“···.”
관객석을 쭉 훑어본다.
불만이 있어 보이는 사람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백발이 무성한 할아버지의 얼굴에서, 안 좋은 감정이 씻겨 내려갔다.
소이, 백윤서, 최유진, 윤수빈.
그 뒤에 앉아 있는 이름 모를 여성 다섯,
그 뒤, 그 뒤.
모두가, 모든 관객이, 충격에 휩싸여 있었다.
나는 몸을 돌려 뚜벅뚜벅, 원재선에게 다가갔다.
뭔가 좀 쑥스럽다.
깊은 대화를 나눈 것도 아닌데,
그의 심연을 훔쳐본 듯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수고하셨습니다.”
“그래, 수고했다.
이 곡은 쉽다.
피아노를 배운지 얼마 안 된 사람조차, 마음 편히 도전할 수 있을 정도로 쉬운 곡이다.
다만, 모든 곡이 그렇지 않은가.
따라 할 수 있는 것과 표현하는 것은 다르다.
두 개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다.
방금 내가 쳤던 연주, 들었던 연주는 ···
정말 최고였다.
턱-!
원재선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와 그가 무대의 끝으로 나아간다.
앞자리에서부터 뒷자리까지,
마치 파도가 치듯이.
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
강이 또다시 바다와 만나듯이.
갈채의 물결이, 우리를 덮쳤다.
연설을 끝내고 내려온 지도자의 기분이라고나 할까.
실내에 울려 퍼지는 거대하기 그지없는 박수소리를 듣고 있자니,
정말, 바보 같이 웃을 수밖에 없었다.
“흐흐.”
피식,
원재선은 내 얼굴을 보며 실소를 토하더니, 마이크를 잡고 입에 가져다 댔다.
그의 얼굴에도 환한 미소가 띄워져 있었다.
나랑 똑같네.
이 사람도.
밝게 웃을 줄 안다.
“솔직히 물읍시다. 안 좋았나요?”
“···.”
고요했다.
아무도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제가 듣기엔 좋았습니다. 이색적이다··· 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그냥 좋았습니다.”
좋았다.
색다르면서도, 감성적이면서도, 무질서했다.
“조금 난잡한 감이 없지는 않았지요. 다만, 두 멜로디가 만남으로써 새로운 광경이 탄생한 건 부정할 수 없습니다. 솔직히 말합니다. 저 이런 거 좋아해요.”
“···.”
웅성임이 작게 터져 나온다.
그의 선포는 곡에서 끝나지 않았다.
“클래식 피아니스트 관둡니다.”
말투에 정중함은 없었다.
다만, 진정성이 있었다.
정중하게 양해를 구하더라도, 반발은 있을 것이다.
어차피 반발 맞이할 거 그냥 배짱이나 부리자는 심보가 아주 잘 느껴진다.
“뭐 ··· 뭐?”
“관둔다는 거야 ···?”
“뭐야? 이게 무슨 소리야?”
“전부 관두는 게 아니라 클래식 피아니스트라는 타이틀을 관둔다는 겁니다. 전 이제부터 그냥 피아니스트입니다.”
원재선은 웅성임을 뒤로하고 다시 피아노에 다가갔다.
그리고 ···
피아노 발판 밑에 놓아둔 ‘망치’를 잡아 들었다.
“이번 연주회의 테마는, 질서에서 무질서입니다. 처음 곡은 극히 질서했고, 방금 곡은 조금 무질서했죠.”
“···”
-디유유우웅!
원재선은 그랜드 피아노의 건반을 밟고 올라갔다.
“뭐 ··· 뭐하려는 거야 저거!”
“엥?”
“미친 거 아냐···?”
그리고 손에 쥔 망치로,
후웅!
피아노의 현을, 두들겼다.
티이이이잉-!
도저히 피아노에서 흘러나왔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파괴적인’ 톤이 귀를 강타한다.
“남은 한 곡으로는 ‘극히 무질서한’ 상태를 표현하겠습니다.”
팅 -! 팅팅!
이거지.
어차피 할 거 제대로 해야지.
그래 시발.
“안 올 거냐?”
“아예~ 갑니다.”
간다 시발!
나는 다시 기타를 튕겼다.
무질서의 상징.
지미 헨드릭스의 명곡
‘voodoo Chile’
초점은 이미 비싸디비싼 메사부기 앰프에 고정되어 있었다.
병신을 만들어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