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genius interpreter RAW novel - Chapter (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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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의 언론 시사회가 열리는 극장 고몽 파르나스.
수많은 기자들로 북적이는 시사회장의 모습은 이 이 많은 이들의 기대를 모은 작품임을 입증해주는 듯했다.
프랑스의 천재 아역배우라 불리는 레오 카슬이 주연을 맡았다는 것만으로 관심의 대상이 되기에는 충분했지만.
해외 유수 영화제에서 꾸준히 두각을 나타냈던 지영찬 감독의 첫 헐리우드 데뷔작이자, 한국영화로서는 이례적으로 세계 156개국 개봉이 확정되었다는 사실 또한 한몫했다.
물론 엄밀한 의미에서 ‘한국영화’라고 부르기엔 어폐가 있었는데.
레오 카슬을 제외한 배우는 전부 영미권 출신이고, 극중 ‘김건’이라는 이름의 한국인 캐릭터마저 한국계 미국인 배우가 연기하니 말이다.
영어권 국가는 워너브라더스가, 유럽과 남미 지역은 와일드사이드가 배급을 맡았다고 들었다.
‘···둘 다 대규모 메이저 배급사들이지.’
제라르 카슬의 매니저 가브리엘은 유난히 열기가 뜨거운 시사회장 안을 둘러보는 중이었다.
영화 기자들은 벌써부터 열띤 토론을 벌이는 분위기였는데, 그 가운데 일부 낯익은 이들을 보니 쓴웃음이 나왔다.
‘또 오늘은 어떤 질문으로 상대를 당황하게 하려나.’
한편.
애초 이 영화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가브리엘이 이 자리에 온 것은, 순전히 그가 담당하는 배우이자 레오 카슬의 아버지 제라르 때문이었다.
‘가비, 자네가 좀 보고 오지 그래.’
‘···내가?’
황당해하며 반문한 말에 제라르 카슬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늘 저런 식이지 싶어 ‘정 그렇게 궁금하면 직접 보고 오지···’라고 궁시렁거리자.
제라르는 미간을 확 구기며 역정을 냈다.
‘내가 거길 가긴 왜 가나.’
가브리엘은 혀를 차며 알겠다 대답했다.
제라르가 말은 저렇게 해도, 실은 아들의 출연작 시사회에 관심이 아주 많으며.
‘레오에게 쏠려야 할 스포트라이트가 제게 쏠릴까 봐 못 가는 거지.’
그럼 그렇다고 말하면 좋을 텐데, 제라르는 늘 그런식이었다.
내심 신경 쓰고 아끼면서도 말을 함부로 해서 주변인에게 상처를 주기 일쑤였으니.
그나마 어린 시절부터 절친이었던 가브리엘은 그런 친구를 이해했지만.
한때 일생일대의 사랑이라 불렸던 제라르의 아내마저 못 견디고 떠나버렸다.
‘레오가 막 나가는 아이가 된 것도 제라르 때문이라는 얘기도 많지.’
늘 곁에서 지켜본 자신이 보기에도 아예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세간에서 말하는 것처럼 제라르가 제 아들을 돈벌이 수단으로만 생각하거나, 방치하는 것은 절대로 아니었다.
오히려 제 나름으로는 여느 부모보다 훨씬 더 자식을 생각하고 사랑하는 편이지만, 그 방식이 좀 잘못되었다는 것.
가브리엘의 머릿속에서 제라르 카슬의 목소리가 생생히 울리는 듯했다.
‘가비, 사자는 제 새끼를 절벽에서 떨어뜨리는 법이야.’
‘이 정글 같은 영화계에서 살아남으려면, 무르게 키워서는 안 돼.’
그걸 자신은 집안에서부터 가르쳐줄 뿐이라고, 그게 아버지로서의 역할이라고 굳게 믿었던 듯했지만···.
‘결국 그 방식은 틀렸다는 게 드러났으니.’
애초 사자에 관한 이야기부터가 사실이 아닌 속설에 불과하며, 인간은 뇌가 큰 만큼 성장하는 데 가장 오랜 시간이 걸리는 동물이 아닌가.
그러니 관심과 애정, 인내심을 갖고선 아이를 대해야만 올바르게 키울 수 있는 법.
‘자네, 요즘 레오 만나봤나?’
레오가 잘못된 행동을 할 때마다 따끔하게 가르쳐야 한다고 굳게 믿던 제라르는, 한국에 촬영차 다녀온 뒤 눈에 띄게 달라진 아들의 모습에 깊은 인상을 받은 듯했다.
레오의 말에 따르면, 한국에서 만난 찬이라는 통역사의 말을 듣고 조금씩 노력해보기로 마음먹었다는 것.
‘레오 얘기를 들으니 갑자기 그런 생각이 나지 뭔가.’
태양과 북풍의 이야기.
아무리 태풍이 세차게 불어와도 코트를 벗지 않던 나그네는, 따사로운 햇살 아래서 저도 모르게 코트를 벗어던진다.
‘···그리고 어쩌면, 내가 그간 계속 잘못했는지도 모르겠군.’
그제야 비로소 제라르는 자신이 틀렸음을 인정했다.
한동안은 밤낮으로 과음해가며 괴로워했지만, 그럼에도 그는 앞으로 한 발을 내디뎠다.
‘매주 목요일 오후 스케줄은 빼주게.’
‘알겠어, 근데 왜?’
‘···레오랑 상담 가는 시간이라.’
‘아.’
아동정신과와 연계된 심리상담센터의 상담을 레오에게 받게 하는 것은 물론, 아버지인 본인도 함께 받는다는 것이다.
‘···갈 때마다 반성하게 되더군. 그리고···.’
잠시 망설이던 제라르 카슬이 덧붙였다.
‘2주에 한 번씩은 애엄마랑 만나게 하기로 했네.’
‘···.’
아예 안 하는 것보단 늦게라도 하는 게 낫다는 말(Mieux vaut tard que jamais)이 있지 않은가.
옛말 치고 틀린 게 없는 법.
그리고 그렇게 첫 걸음을 내디딘 제라르는, 이제 제대로 된 길로 조금씩 나아가는 중이었다.
비뚤어진 부자 관계를 오랫동안 곁에서 봐왔던 가브리엘은, 그런 제라르의 발전을 그 누구보다도 기꺼워하고 있었다.
「···레오의 말 한 마디도 빼놓지 말고 다 적어가야겠군.」
그리고 일종의 촉매제 역할을 해준, 카슬 부자에게는 은인이나 다름없는 박찬영 통역사.
그의 활약 또한 잘 지켜보고 와달라는 제라르의 부탁이 있었던 참이니.
– 잠시 후 의 상영이 시작되겠습니다.
안내멘트와 함께 영화가 시작되었다.
이미 한참 전에 착석을 마치고 상영을 기다리던 가브리엘은 흡족한 기분으로 스크린을 시야에 담았고.
‘···.’
어느샌가부터 -입을 살짝 벌린 채- 영화에 온전히 빠져들었다.
*
그로부터 세 시간 가까이 지난 뒤.
「···아.」
마치 오랜 꿈에서 깨어나기라도 하듯, 자그마한 신음을 내뱉으며 고개를 들자.
저와 비슷한 느낌으로 멍하니 눈을 껌벅거리는 이들이 보였다.
관객 대부분이 영화의 여운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던 그때, 사회자의 멘트가 들려왔다.
– 곧바로 의 기자회견이 시작되겠습니다.
저 앞 기다란 테이블에 지영찬 감독, 박찬영, 레오 카슬, 그 외 미국 배우 두 명과 영불통역사까지 총 여섯 명이 앉은 가운데.
매니저 가브리엘은 찬영과 레오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질문해주시길 바랍니다, 라고 사회자가 말하기 무섭게 객석 여기저기서 손이 올라왔다.
「전 세계 150여 개국의 개봉이 확정되었는데 소감이 어떠신가요.」
「은 대중적인 서사 속에 모험적인 시도를 녹여낸 수작이 아닐지···.」
「세자르영화제를 비롯해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 초청되었는데, 한국 내 반응은 어떤가요?」
가브리엘은 흐음,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게 말하면 시의적절하고, 나쁘게 말하면 평범한 질문들이 이어졌지만.
‘뭐, 그래도 분위기는 제법 괜찮은걸.’
기자들의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절반은 영화 자체가 좋았기 때문이며, 나머지 절반은···.
‘저기 앉은 통역사 찬 덕분이 아닐까.’
대부분의 질문이 감독과 레오 카슬에게 쏟아지는 만큼, 박찬영은 통역의 80퍼센트 이상을 담당하는 중이었는데.
‘프랑스에서 오래 살았나.’
말이 워낙 술술 흘러나와서인지, 통역이란 사실을 문득 문득 잊어버릴 정도로 편안하게 느껴졌다.
···그러고 보니 오노레그라스의 새 향수 이미지 모델도 했다고 들었는데.
기자들의 얼굴을 보니 저 찬이라는 통역사 개인에게도 질문하고 싶지만, 영화 시사회장인 만큼 다들 꾹 참고 있는 눈치였다.
화제성 있는 인물에게서 어떻게든 새로운 정보를 입수하고자 하는 것.
그거야말로 기자들의 본능이니 말이다.
‘좀 더 편안한 인터뷰 석상이 되면 저 통역사에게도 꽤나 질문이 쏟아지겠는걸.’
가브리엘은 흡족한 얼굴로 기자회견에서 오가는 질의응답을 지켜보았다.
그러다 막바지에 거의 다 이른 순간, 객석 한구석에서 누군가가 손을 들며 말했다.
「의 자크 르프랑입니다.」
그가 제 이름을 말한 순간, 객석 분위기가 일순 싸늘해졌다.
그리고 그 이유를 가브리엘은 알 것 같았다.
‘아, 저 사람.’
은 극좌파 성향으로 유명한 언론이다.
프랑스 공산당의 후원을 등에 업고, 일간지인지 당 홍보지인지 알 수 없는 기사를 곧잘 내놓는 곳.
프랑스야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최우선으로 보장하는 만큼, 극좌부터 극우까지 다양한 정당이 있는 나라이니 저 일간지의 성향이야 상관없지만···.
‘문제는, 저 기자가 늘 영화를 정치적으로 편향되게 해석하는 리뷰를 내놓는단 거지.’
진짜로 그런 의도를 지닌 영화면 상관없겠지만.
안 그런 영화까지 온갖 억지 설명을 붙여가며 자신들에게 이로운 식으로 해석하기 일쑤였으니 말이다.
그 사실을 가브리엘보다 훨씬 더 잘 아는 기자들의 반응이 싸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얘기.
그러거나 말거나.
자크 르프랑은 영화에 관한 간략한 찬사를 늘어놓은 뒤, 지영찬 감독을 지목해 말하기 시작했다.
「지영찬 감독님은 전작들에서도 지배층과 피지배층 사이의 갈등을 줄곧 그려오셨는데, 이번 작품 또한 그 배경이 가상의 미래로 옮겨갔을 뿐 주제는 동일하다고 봅니다. 특히···.」
후반부에 들어 제페토 박사의 연구소를 폭파하는 장면.
「이 은 워낙 상징과 비유가 넘쳐나는 작품인 만큼, 이 장면 또한 일종의 사회주의적 전복으로 해석할 수 있을까요?」
질문이 끝나자마자 관객석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고.
이 질문을 한국어로 통역해야 하는 박찬영이 살짝 난감한 얼굴을 하는 것이 보였지만.
“···.”
이내 고개를 끄덕인 그가 곧바로 뭐라 뭐라 통역하더니, 속삭이듯 한 문장을 더 덧붙이는 것이 보였다.
‘무슨 말을 한 걸까.’
가브리엘이 궁금해하는데, 감독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내 대답을 시작했다.
그로서는 전혀 알지 못하는 한국어가 이어졌다.
높낮이 변화가 없는 평이한 어조라서 그런지 꼭 자장가처럼 들렸다.
‘꽤 오래 말하네.’
살짝 지루하다 싶을 때쯤, 답변이 끝났고 곧바로 박찬영이 배턴을 넘겨받았다.
「C’est un peu gênant(이건 조금 곤란한걸요)···.」
그 말에 기자들의 시선이 한층 집중된 가운데, 찬영의 통역이 이어졌다.
「음, 제가 사는 한국이라는 나라가 아직 휴전 중인, 몇 안 되는 분단 국가라는 건 다들 알고 계시겠죠? 여기서 함부로 그런 식의 발언을 했다간 다음 번엔 여러분을 시사회장에서 보기 어려울지도 몰라요, 하하.」
그 말에 북한의 존재를 상기해낸 기자들이 와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감독의 센스가 상당한걸.’
민감한 대북관계를 농담처럼 에둘러 표현한 것은 물론, 분위기까지 환기하는 효과를 냈다.
「농담이고요. 일단 질문주신 것에 대답하자면··· 저는 영화를 ‘상징과 비유’로 읽어내는 것만큼이나 위험한 독해법이 없다고 봅니다.」
이내 곧바로 치고 들어온 본론에, 관객석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부담감을 느낄 법도 하건만 박찬영은 흔들림 없는 통역을 이어나갔다.
「왜냐면 저는 영화를 찍을 때 그저 A를 보여주고자 하거든요. 근데 거기서 ‘상징과 비유’라는 미명 하에 B를 읽어낸다면, 이 A와 B 사이의 간극에서 필연적으로 왜곡이 생겨나기 마련이라고 봅니다.」
한층 더 고요해진 가운데.
통역사의 듣기 좋은 목소리만이 시사회장 안을 울렸다.
「제 작품을 봐주시는 분들께 그저 그 영화에 담긴 것만을 있는 그대로 읽어달라 부탁드리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이고요. ···하지만.」
박찬영은 -방금 전의 지영찬 감독처럼- 웃음 띤 얼굴로 좌중을 한 차례 둘러보더니, 이내 말을 이었다.
「그럼에도 관객분들께서 B를 읽어내주신다면, 저로서는 어쩔 도리가 없는 법이죠. 즉, 감독의 손을 떠난 순간부터 영화는 관객의 것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관객의 감상.
이를 통해 영화는 새로운 차원의 의미를 부여받으며, 이 과정을 거쳐야만 비로소 온전한 작품으로 완성이 된다는 것.
「그러니 저는, 이 작품을 한시라도 빨리 관객분들에게 보여드리고 그 다양한 감상을 듣기를 애타게 고대하는 중입니다.」
···와.
가브리엘은 저도 모르게 탄성을 내뱉었다.
‘실로 우문현답이 아닌가.’
그리고 그 순간.
객석 여기저기서 박수가 터져나왔다.
마찬가지로 진심에서 우러난 박수를 치고 있는 가브리엘은 이미 지금 이것만으로도 차고 넘치게 감탄하는 중이었지만.
···방금 전, 질문을 통역하며 박찬영이 감독에게 속삭였던 말을 알아들었더라면 더더욱 놀랐을 것이다.
‘음, 지 감독님. 저 기자분이 속한 이라는 곳이 극좌파 언론이거든요···?’
그리고.
그 한 문장으로 모든 것을 알아들은 지영찬 감독이 영리한 대답을 내놓았다는 것을 말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