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genius interpreter RAW novel - Chapter (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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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기자회견에서는 유난히 많은 질문이 쏟아졌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질의응답이 전부 다 끝난 후, 팀 전원과 나는 따로 접근해오는 기자들을 피해가며 VIP 대기실로 이동했다.
“···하아.”
그리고 거기서, 나는 100미터를 쉼없이 질주한 사람처럼 숨을 몰아쉬는 중이었다.
진짜로 과장이 아니라, 단거리 달리기를 한 사람처럼 양쪽 갈비뼈가 들썩일 정도로 거칠게 숨쉬고 있었으니까.
‘왜 오늘 따라 유난히 더 힘든 걸까.’
대기실 한켠에 마련된 소파에 앉아 반쯤 넋이 나간 채로 있는데.
“자, 마셔요 박 선생님.”
지영찬 감독이 친히 생수 물병을 따서 내게 건넸다.
감사합니다, 하며 그것을 받아 입안으로 들이붓는데···.
‘달다, 달아.’
그냥 물이 이렇게 달 수가 있나.
바짝 말라 있던 입안으로 시원한 물이 들어가니 그야말로 가뭄의 단비가 아닐 수 없었다.
“하, 꿀맛이네요 꿀맛. 물이 왜 이리 맛있지.”
이마에 송골송골 나 있던 땀을 닦아내며 말하자, 지 감독이 대꾸했다.
“남들보다 두 배로 말하셨으니 힘들 수밖에요.”
“어, 그러네요.”
멍하니 말하자, 지 감독은 이제야 깨달은 거냐며 하하 웃었다.
‘전에도 영화 기자회견을 통역해본 적이 있지만.’
그러니까 부산국제영화제의 시사회에서 말이다.
마찬가지로 수많은 질의응답을 통역했지만, 그때는 한국인 기자들이 주요 질문자라 좀 더 수월했던 것 같다.
‘왜냐면, 한불통역보다 불한통역이 피로도가 더 크거든.’
아무래도 모국어인 한국어는 한두 단어 놓쳐도 맥락만으로도 파악할 수 있는 범위가 큰 반면.
프랑스어는 조금만 놓쳐도 질문자의 의도를 잘못 통역할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한 번에 못 알아들으면 끝이야, 라는 생각으로 기를 쓰고 화자의 말에 집중하게 되는데.
한 사람의 말을 일방적으로 통역하는 강연이나, 일대일의 면담 통역은 그나마 낫지만.
‘이번엔 다대다(多對多)의 통역, 그것도 오늘 처음 보는 프랑스인 기자들이 대상이었잖아?’
불특정 다수의, 발음이나 말버릇이 익숙지 않은 외국인 화자들.
그들의 쏟아지는 질문을 옮기는 것은 체력이 좋은 편인 내게도 상당히 버거운 일이었다.
내 옆얼굴을 보던 지영찬 감독은 ‘고생 많았다’라고 말한 뒤, 농담조로 덧붙였다.
“괜히 통역 맡았다고 후회하신 건 아니죠?”
“후회라뇨, 무슨 말씀을.”
“아니, 생각해보니 제가 골치 아픈 말을 너무 많이 했더라고요. 이놈의 감독은 무슨 이런 말을 다 하나 싶으셨을 것 같아서.”
그 말에 풋 웃은 내가 말을 받았다.
“물론 애를 좀 먹긴 했습니다만, 저로서도 의미 깊은 경험이었으니까요. 그리고···.”
방금 전, 시사회장 안에서의 기억을 떠올리며 말을 이었다.
“아까 시사회에서 봤던 영화가 너무 좋았거든요. 아직도 그 여운이 강하게 남아 있습니다.”
“그래요?”
내 감상이 궁금하다며 집요하게 묻는 지 감독.
“음, 영화를 잘 아는 편은 못 되지만 그냥 관객 중 한 명으로서 말씀드리자면···.”
일단 첫 번째 감상은, 무척이나 새롭다는 것.
‘후반 작업만으로 이렇게 최종 결과물이 달라질 줄은 상상도 못했거든.’
영화의 후반 작업, 즉 포스트프로덕션.
촬영이 끝난 후 효과음과 사운드트랙을 더하고 색감을 조절하며 특수효과를 추가해 영상 편집을 최종 마무리하는 단계를 말하는데.
촬영장도 근사하긴 했지만, 어딘가 세트스러운 느낌이 남아 있었다면.
후보정을 거친 은 우리가 흔히 상상할 법한 디스토피아를 황폐하고도 매혹적으로 그려내고 있었다.
‘시각적으로 근사하다고 해야 할까.’
하지만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배우들의 연기를 담아내는 방식이었다.
후반부 연구소 폭파씬 속의 레오 카슬이 특히 인상적이었는데.
촬영 현장에서 연기 장면을 두 눈으로 봤을 때도 압도적이었지만.
스크린 속의 레오는 배우 레오 카슬이 아닌, 대체 불가능한 존재가 되고 싶어하는 복제인간 231번 그 자체였으니 말이다.
그리고 객석에 앉은 채 감상하던 나는, 나 자신의 존재를 완전히 잊어버린 채.
그저 한 명의 관객이 되어 영화 속 세계에 빠져들었던 터.
“···그 정도로 몰입감이 상당했다, 라는 말씀이시죠.”
나의 감상에 지 감독은 무척이나 흡족해했는데.
내가 유난히 더 깊은 인상을 받은 것은, 회귀 이전에 봤던 과 상당히 달라졌기 때문이다.
십 년도 더 지난 일이지만, 워낙 독보적인 영화이기도 했고 수차례 반복해 봤던 만큼 여전히 기억이 남아 있었는데.
‘그때도 대단하다고 생각했지만, 이 정도의 퀄리티는 절대 아니었단 말이지.’
비단 나의 개인적 감상이 아니다.
당시만 해도 시도는 좋았지만, 완성도가 1퍼센트 아쉽다는 평이 대부분이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최종의 최종 단계에 이르기까지 세심하게 손 썼다는 게 피부로 느껴질 정도로, 완성도가 높다는 게 일반 관객인 내 눈에도 보이니까.
이쯤 되자 궁금해졌다.
···대체 어떤 변화가, 무엇이 감독을 자극해서 이런 결과로 이어진 것인지.
무심코 옆을 돌아보자, 지영찬 감독은 어쩐지 감개무량한 얼굴로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
시사회와 기자회견이 무사히 끝난 뒤, 팀은 파리의 어느 레스토랑에서 축하 자리를 가졌다.
홍합탕과 와인의 만남을 골자로 하는, 가족적 분위기의 레스토랑 룸을 빌려 회포를 풀기로 한 터.
기다란 테이블에 감독과 배우, 스태프, 통역사까지 전원이 둘러앉은 가운데.
지영찬 감독이 영어로 외쳤다.
「Ladies and gentlemen, start your livers!(여러분, 이제 간 운동을 해볼까요!)」
술을 진탕 마셔보자, 라는 센스 있는 건배사에 와하하 웃음이 터져 나왔다.
다들 긴장했다가 편한 자리에 와서인지, 와인을 물 마시듯 신나게 홀짝거리는 분위기.
“아까 기자회견 분위기 진짜 좋지 않았어요?”
“맞아요, 통역을 워낙 잘해주셔서 술술 넘어가는 게···.”
「Wow, this mussel soup is absolutely delicious!(와, 이 홍합탕 완전 맛있는데요!)」
「Chan, are you a heavy drinker?(찬, 술 잘 마시는 편이에요?)」
테이블 여기저기서 화기애애한 대화가 오가는 가운데.
지영찬 감독은 옆에 앉은 찬영을 지켜보며 생각에 잠겼다.
오늘 기자회견에서 그는 평소 생각만 해오던 것들을 입 밖으로 꺼내놓은 터였는데.
통역하기 까다로운 이야기들이지만, 프랑스인 기자들에게 100퍼센트 전달됐으리라는 강한 확신이 들었다.
‘어디 그뿐인가.’
기자회견 후반부, 극좌파 기자가 던진 난감한 질문.
찬영이 센스 있게 미리 귀띔해주지 않았다면, 꽤나 위험하게 해석될 여지가 있는 발언을 했을지도 모른다.
‘기존의 위계질서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체제를 구축하는 미래를 예고하는 결말이니까.’
괜히 곧이 곧대로 대답했다 꼬투리를 잡힐 뻔했다고 생각하자, 뒤늦게 머리카락 끝이 쭈뼛해지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방금 전, 대기실에서 이 부분을 콕 짚어 감사하다고 말하자.
‘뭘요, 당연한 거죠.’
찬영은 어깨를 으쓱하며, 본인에게는 정말로 너무도 당연한 일이라는 듯 대꾸하는 것이 아닌가.
‘배려가 몸에 배어 있는 타입이란 말이지.’
여하튼.
그 극좌파 기자의 질문은 오히려 위기를 기회로 삼는 계기가 되었다.
그 후로 좀 더 깊이 있는 질문들이 쏟아져 나왔으니, 현지 기사 또한 꽤 괜찮게 나오지 않을까 하는 희망도 생기고 말이다.
그때, 찬영이 옆자리의 스태프에게 의 포스트프로덕션에 관해 묻는 것이 들려왔다.
“아, 그랬군요. 감독님이 다시 처음부터 손보신···.”
“왜요?”
“아뇨, 그냥. 제가 촬영 현장을 보며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근사해서요.”
“하하, 보통 그런 말들 많이 하시죠.”
“그리고 약간, 예상이랑 달라진 부분도-”
“···예상이요?”
지영찬 감독이 저도 모르게 끼어들어 묻자, 찬영은 당황하는 눈치였다.
“아, 아뇨 별건 아닌데.”
그럼에도 계속 얘기해달라고 재촉하자, 잠시 주저하던 그는 이러저러한 의견을 내놓았다.
“그러니까, 초반의 고아원 파트와 중반 이후의 파트를 시각적으로 대비시키는 형태가···.”
“또, 배우들 각각, 특히 레오 배우의 초근접샷을 유난히 더 자주 활용하신다는 느낌이···.”
찬영의 말이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지영찬 감독의 살갗에 오스스 소름이 돋았다.
‘···!’
왜냐하면.
그건 애초 자신이 이 를 기획할 때 머릿속에 구상했던 초안이었기 때문이다.
‘내공이 상당한걸.’
찬영이 10년을 거슬러 왔으며, 회귀 이전에 이미 이 영화를 여러 번 봤음을 모르는 지 감독으로서는 충분히 착각할 만한 일이었다.
“맞아요, 방금 말씀하신 게 제 원래 의도였습니다, 하지만···.”
감독은 내심 감탄하며 말을 이었다.
“이렇게 결과물이 달라진 가장 큰 계기를 꼽자면, 레오 배우가 제게 처음으로 솔직하게 마음을 드러내 보였을 때였을 거예요.”
온 용기를 끌어모아 입 밖으로 꺼낸 의견.
그리고 그것이 받아들여지자,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어 연기해내는 아역 배우의 모습에, 지영찬 감독 또한 내면의 무언가를 자극받았다.
“그리고 돌이켜보니, 나야말로 내 한계를 규정짓고 ‘안전하게’ 영화를 만들려 했음을 깨달았지 뭡니까.”
세간에는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은 처음부터 여러 종류의 장애물에 수없이 봉착했었다.
첫 헐리우드 도전인 만큼 우여곡절도, 시련도 많았는데.
해외 투자나 인터내셔널 배급 문제는 물론이고, 하다 못해 외국 배우들과의 소통 문제에 이르기까지···.
아마 그 때문에 자신도 꽤 지쳤던 모양이라고, 지 감독은 담담하게 말했다.
“80퍼센트 정도의 완성도면 충분하지 않겠어? 라고 생각하며 어떻게든 일정 속에 구겨넣으려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고 할까요.”
“···.”
진지하게 경청하는 찬영 덕분인지, 지 감독은 속내를 털어놓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근데, 레오 배우의 그 연기를 본 후로는···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설령 일정이 딜레이되는 한이 있더라도, 80이 아니라 100으로 완성도를 끌어올려야 한다고 말이죠.”
그래서였다.
기존의 구상을 전부 뒤엎고, 처음부터 다시 퍼즐 조각을 하나 하나 맞추듯 세심하게 작업하기 시작한 것은.
‘어차피 최종 편집권은 내게 있으니까.’
제작사와 오랜 실랑이 끝에 지영찬 자신이 쟁취해낸 최종 편집권.
이를 이용해 그는 개봉일과 해외 배급 일정을 미루면서까지 자신의 고집대로 밀고 나갔고···.
“결국은 세자르 영화제에 초청까지 받았으니, 전화위복인 셈이군요.”
찬영의 말에 지영찬은 뒤늦게 고개를 들었다.
그래, 전화위복.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생각하면서.
“그리고 어쩌면···.”
웃는 낯의 찬영이 농담조로 말을 이었다.
“세자르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하라고, 영감의 신이 지 감독님에게 메시지를 보낸 게 아닐까요?”
“하하, 수상이라뇨. 수상은 무리이겠지만, 생각만 해도 기분 좋네요.”
지영찬은 그렇게 대꾸했지만.
내심 마음 한구석에는 그게 정말이면 좋겠다는, 실낱 같은 소망이 생기는 것이 아닌가.
*
그로부터 이틀간.
팀의 매체 인터뷰를 하루에 몇 개씩 진행한 뒤.
파김치가 된 채 숙소에 돌아가는 일정이 지속되었다.
‘물론 팀에서 마련해준 호텔이 근사해서 좋긴 했지만.’
그렇게 며칠을 정신없이 보낸 뒤 그주 목요일 저녁, 레드카펫 행사가 시작되었다.
앞서 부산영화제에서도 경험했던, 쏟아지는 카메라 플래시와 함성, 환호성이 이어졌고.
「지영찬 감독님! 잠깐만 인터뷰에 응해주시면···.」
「무슈 카슬, 소감이 어떠신가요?」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할 확률을 어떻게 점치시는지···.」
입장을 마친 뒤, 그 뒤편에서 진을 치고 있던 기자들이 우리에게 달려들었다.
이른바 레드카펫 인터뷰였다.
‘진짜로 죽겠네.’
한국 감독의 첫 헐리우드 데뷔작이 세자르상 외국어영화상 후보에 오른 것도 모자라.
프랑스의 천재 아역 배우라 불리는 레오 카슬이 주연을 맡았으니, 팀의 화제성은 단연코 최고라 할 수 있었다.
그렇다 보니 인터뷰 요청도 우리 팀에게로 쏟아진 것 또한 당연지사였는데.
질문 열 개 중 다섯 개가 지영찬 감독, 네 개가 레오 카슬에게 던진 것이라면, 단 하나 정도가 두 명의 유명 영미권 배우의 몫이었다.
‘저 두 사람도 헐리우드 간판스타 중 하나인데···.’
팔은 안으로 굽는 법이라고, 아무래도 프랑스에선 레오 카슬을 중심으로 하는 분위기가 형성된 듯했다.
여하튼.
그렇게 쏟아지는 질문 속, 남들보다 두 배는 더 말하고 있는 내가 벌써부터 입안이 바짝 마를 지경이던 그때.
「Bonjour, Marie Germain de BFTV(안녕하세요, BFTV 방송국의 마리 제르맹입니다).」
카메라와 함께 우리 팀에 접근한 또 다른 인터뷰어에게, 나는 기계적으로 웃으며 대꾸했다.
「Oui, qui aimeriez-vous interviewer(네, 누구를 인터뷰하실 건가요)?」
「Vous(당신이요).」
「···Pardon(네)?」
잘못 들은 줄 알고 눈만 껌벅거리던 그때, 레오가 깔깔 웃음을 터뜨렸다.
「찬한테 질문하겠다는 거잖아.」
「···?」
멍하니 돌아보자, BFTV의 마리라는 인터뷰어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받았다.
「네 맞아요. 팀의 통역사이자 오노레그라스의 이미지 모델인 화제의 인물, 박찬영 씨에게 궁금한 게 많아서요.」
“···진짜 저요?”
얼마나 당황했는지.
나도 모르게 한국어로 말이 튀어나오고 말았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