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genius interpreter RAW novel - Chapter (238)
웨딩드레스 차림의 레아라.
얼마나 아름다울까, 하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간다.
“유정 언니 보러가자.”
그 길로 신부 대기실에 들어가자, 먼저 들어온 동기들이 이미 진을 치고 있었다.
“오, 찬영이랑 레아 왔다!”
“얼른 같이 사진 찍어!”
누나에게 축하의 말을 할 새도 없이, 우리는 곧바로 누나 곁에 앉아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찰칵, 찰칵, 찰칵-
셔터음이 정신없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대기실에 들어선 유정 누나의 지인들이 날 보며 눈을 동그랗게 뜨는 게 보였다.
“어? 저 사람 설마···.”
“맞지 맞지? 이번에 통역한···.”
“말 걸어보고 싶은데···.”
전에는 아는 사람이나 아는 정도였다면, 의 화제성이 워낙 대단한 덕분인지 이제는 길거리만 다녀도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제법 있었다.
그때, 유정 누나가 내 쪽을 돌아보며 웃었다.
“유명인 다 됐네, 찬영이.”
오늘의 유정 누나는 정말로 근사했다.
주름이 풍성한 웨딩드레스를 입은 모습이 누가 봐도 오늘의 주인공 같달까.
“누나, 진심으로 축하해요.”
“언니, 진짜 예뻐요.”
항상 행복하라는 나와 레아의 말에, 유정 누나가 화사하게 미소 지었다.
“고마워, 근데 진짜 정신이 없다.”
메이크업과 드레스 때문에 새벽부터 일어나 지금까지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는 누나의 말.
그러자 수용이 형이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말했다.
“난 며칠간 굶어도 괜찮으니까 결혼하고 싶다···.”
그 말에 여자 동기들이 까르르 웃어댔고.
“어우 형, 짠내 나요 짠내 나.”
“여기 바다인 줄.”
추와 하늬의 농담에 유정 누나마저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잠시 후, 식장 안.
– 지금부터 신랑 정상민 군과 신부 한유정 양의 결혼식을 시작하겠습니다.
양가 어머니가 화촉 점화를 하고, 주례가 입장하고, 그다음엔 신랑이 들어오고···.
“언니 나온다.”
레아의 속삭임에 뒤를 돌아보자.
양옆이 꽃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길 위를 유정 누나가 천천히 걸어오는 게 보였다.
남편 될 분과 맞절을 하는 모습을 보니 괜한 감상에 젖어들었다.
‘···진짜 친한 사람의 결혼식에 오는 게 정말 오랜만이기도 하고.’
회귀 전에는 어땠더라.
유정 누나의 결혼식에는 안 갔을 뿐더러.
인간관계에 소원했던 걸 보여주기라도 하듯, 거래처 관계자나 지인 몇몇의 결혼식에 간 게 전부였다.
그저 의무감에 참석한 자리여서 그런지, 그때는 결혼식이 참 지루하게 느껴졌는데···.
‘지금은 많이 다른 기분이네.’
나는 옆에 앉은 레아의 옆얼굴을 돌아보았다.
꿈꾸는 듯한 눈빛으로 유정 누나를 응시하는 그녀의 모습이 사랑스러워 보인다.
‘결혼이라.’
···누군가와 평생 함께한다는 약속을 한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솔직히 말해 회귀 전엔 한 번도 결혼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일단은 내 코가 석 자였고.’
함께하는 미래를 그려볼 만한 상대를 만난 적도 없었다.
연애를 한 적은 있지만 어디까지나 스쳐지나가는 정도였으니 말이다.
혼자 지내도 외롭지 않고, 취미만으로도 충분히 즐겁고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와 생각해보면, 결혼은 더 행복해지기 위해 하는 일은 아닌 것 같다.
‘아니, 오히려 불행해질 가능성이 더 높겠지.’
한창 성장통을 겪은 후, 간신히 홀로서기에 성공해 나름 생계를 책임지며 이제야 인생이 좀 안정됐다고 느낄 시기에-
또 다른 예측 불가의 요소가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즉, 새로운 변수가 생겨난다는 것.
평생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온 두 사람이 갑작스레 함께하려면 얼마나 많은 난관을 겪게 되겠는가.
‘하지만.’
결혼은, 그러니까 새로운 지평 너머로 한 발을 내딛는 과정이다.
평생 즐겨하던 게임의 장르가 한 번에 바뀌어버리는 셈이라고 할까.
그런 만큼 중대한 동시에 두려운 결정이 될 수도 있지만.
이건 어쩌면 누구와 함께하느냐가 전부인 문제일지도 모른다.
···그 어떤 상황에도 이 사람과 함께라면 괜찮다, 라는 말도 안 되는 확신이 있다면 말이다.
‘마음가짐의 문제랄까.’
머나먼 미지의 여정.
이는 마음 먹기에 따라 고난의 행군이 될 수도, 모험과 여행의 길이 될 수도 있는 법.
그리고 나는 그 여정을···.
‘레아와 함께라면.’
그 무엇도 헤쳐나갈 수 있다는, 근거 없는 믿음이 내 안에 단단히 자리잡았음을 깨달았다.
*
유정 누나가 결혼식을 마치고, 남편분과 함께 발리로 신혼여행을 떠난 지 얼마 뒤 주말.
“레아 씨, 많이 먹어요.”
“그래 그래, 편하게 들어요.”
지금 나는 우리 집, 그러니까 파주의 본가에 와 있었다.
그리고 내 옆에 앉은 사람은 다름 아닌···.
“네, 잘 먹겠습니다!”
···어머니 아버지와 마주 앉은 채 활짝 미소를 짓는 레아.
‘그러니까 이게 어떻게 된 거냐면.’
유정 누나의 결혼식에 참석했다가 나오는 길에, 레아가 내게 문득 이렇게 묻는 것이 아닌가.
‘근데 자기 부모님은 어떤 분들이야?’
‘어?’
‘···아니 궁금하기도 하고, 한 번도 뵌 적이 없으니까.’
그러고 보니 나는 레아의 어머니와 할머니를 만나 뵀지만, 레아는 우리 가족을 본 적이 없다는 것에 생각이 미쳤고.
‘그럼 한 번 만나뵐래?’
무심코 꺼낸 말에, 레아는 몹시 반가워하더니 일사천리로 약속을 잡자고 했고···.
‘뭐? 여자친구가 인사하러 온다고? 그럼 진작 말해야지, 제대로 식사 대접을 해야 할 거 아니니!’
‘아니, 인사하러 온다기보단 그냥 얼굴 한 번 뵈러···.’
‘여보 여보, 지금 바로 수산 시장에···.’
‘어? 아니 그런 게 아닌데···.’
그리하여 오늘.
어머니 아버지는 거하게 점심상을 차려놓은 것이었고, 여기에 설상가상으로···.
‘···형?’
2~3주에 한 번씩 본가에 들르곤 하는 형네 부부까지 와버린 것.
부모님이 미리 언급하는 걸 깜박하셨는지, 두 사람은 오늘 이 자리에 관한 얘기를 전혀 못 들었다는 것이다.
‘뭐, 여자친구 분이 오셨다고?’
‘어머 미안해요, 우린 그런 줄도 모르고 수아까지 데리고 와버렸네···.’
음.
그냥 인사만 하려고 한 게 어쩌다 대가족 모임이 되어버렸는지 모르겠다.
···여기에 레아 부모님만 계시면 상견례 자리가 되겠는걸.
그렇게 생각하자, 괜히 마음이 복잡해지며 식은땀이 삐질삐질 나는 것이 아닌가.
“···미안, 이런 자리가 돼버려서.”
작게 귓가에 속삭이자, 레아는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뜬다.
“왜? 난 좋기만 한데.”
“···응?”
내게서 수아와 형네 부부 얘기를 들으며 꼭 한 번 만나보고 싶었단다.
‘그러고 보니 수아를 보고 싶어했었지.’
오늘 이 자리에 온 이후 “수아 너무 귀엽다”를 지금까지 열 번은 족히 반복했던 레아가 아닌가.
“그리고 뭣보다···.”
그녀가 상다리가 부러질 듯한 상차림을 보며 살짝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자기 부모님이 날 이만큼이나 진지하게 생각해주시는 것 같아서.”
“···.”
음, 내가 괜히 다 가슴이 두근거리는걸.
그러나 저러나.
식사 분위기는 몹시 화기애애했다.
어머니의 특기 요리인 LA갈비와 수산시장에서 갓 떠온 회 등 이러저러한 음식이 식탁 가득 펼쳐졌는데.
“맘껏 먹어요, 호호.”
“···엄마, 그러다 체하겠어. 레아 씨, 편히 드세요.”
형의 말에 레아가 웃으며 고개를 젓는다.
“아녜요, 다 너무 맛있어서. 그리고 저 원래 잘 먹는 편이거든요.”
그 말마따나 레아는 원래 복스럽게 먹는 편이다.
‘첨엔 배 속에 들어간 음식이 대체 다 어디로 사라지나 했지만.’
본인 말에 따르면 살이 안 찌는 체질은 아니고, 몸매를 유지하려고 운동을 굉장히 많이 하는 편이라고 했다.
실제로 통대 다닐 때도 하루도 빼놓지 않고 체력단련실에 가던 그녀가 아닌가.
“호호, 안 그래도 내가 찬영이 여친 얘기를 자주 들어가지고···.”
어머니가 주변 팬카페 회원들에게 들었다며, ‘박찬영의 여신 여친’ 이야기를 줄줄이 늘어놓자.
레아가 뺨을 붉히며 민망해했다.
“과찬이세요.”
“어머 어머, 과찬은. 진짜 우리 찬영이한테 어쩜 이런 여친이 생겼는지 우리가 다 놀랐다니까요?”
그렇게.
‘완벽한 레아’를 향한 주접과 칭찬이 이어지는 가운데, 중간 중간 아들내미에 대한 어머니의 험담이 섞여들었고.
그때마다 레아는 어쩔 줄 몰라하면서도 까르르 웃었다.
“크흠, 험.”
거기에 아버지는 갑자기 돼도 않는 무게를 잡지 않나···.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말았다.
그나마 개중 제일 자연스러운 것이 형네 부부라고 해야 할까.
“편하게 있어요, 레아 씨.”
“말이 편하게이지, 이렇게 우리까지 와가지고 너무 부담스러울 것 같은데···.”
멋쩍게 웃는 형과 형수의 말에 레아는 고개를 저으며 대꾸했다.
“부담스럽다뇨, 그리고 다른 것보다···.”
그리고는 저쪽 거실에서 할머니가 구워둔 쿠키를 열심히 먹는 수아를 돌아보며 말을 잇는다.
“찬영 씨한테 수아 얘기를 많이 들었거든요. 꼭 한 번 만나보고 싶었어요.”
그리고 사실, 레아는 꽤 오래전부터 수아의 팬을 자처했던 터였다.
사진을 보여줄 때마다 꺅꺅거리는 건 물론, 만져보고 싶다고 엄청 난리였다.
‘흐으, 뺨이 엄청 부드러워 보여··· 하얀 찐빵 같다···.’
‘···.’
레아와 나는 둘 다 아기와 귀여운 동물을 좋아한다는 공통점이 있었으니.
오죽하면 서로 심심할 때마다 귀요미들의 영상을 공유하는 게 일상이었을까.
여하튼.
레아는 수아를 향해 귀여워 죽겠다는 눈빛을 발산 중이었고.
인사치레가 아니라 진심인 것이 느껴졌는지 형과 형수가 안심하며 미소 지었다.
“안 그래도 수아도 삼촌 여친 보고 싶다고 얼마나 난리였는데요.”
그리고 잠시 후 식사가 끝난 뒤.
거실 탁자에 둘러앉아 차와 후식을 먹으려는데, 형수가 수아를 불렀다.
“수아야, 이리 와봐. 삼촌 여자친구분께 제대로 인사드릴까?”
“···.”
그 말에 수아가 번뜩 고개를 들더니, 슬금슬금 발을 움직여 형수 옆으로 왔다.
“···수아 말야, 낯 가리는 시기인가?”
레아가 내게 작게 속삭인 순간.
수아는 형수 뒤에 몸을 숨긴 채, 고개만 빼꼼 내밀어 레아를 쳐다보았다.
‘무슨 미어캣도 아니고.’
유난스레 쑥스러워하는 아이의 반응에 내가 입안으로 혀를 차는데.
“윽, 귀여워···.”
레아가 가슴께를 붙잡으며 탄성을 내뱉었다.
“···.”
그 광경을 지켜보던 나는, 조금 어이가 없어졌고 말이다.
평소 활동량이 어마어마한 데다, 어린이집에서도 웬만한 남자아이들보다 훨씬 에너지가 넘친다는 나의 조카.
수아는 최근 들어 내 어깨를 타고 올라가는 데 맛을 들였는데, 장난이 하도 심한 탓에 형수가 이렇게 말할 정도였다.
‘수아 얘, 삼촌은 가구가 아니야!’
그래. 삼촌은 가구가 아니라고 수없이 말해도 신경 안 쓰던 수아가···.
‘이렇게 내숭을 떤다고?’
약간의 배신감마저 느껴지던 그때, 형수의 등 뒤에서 수아가 슬슬 나오더니 이쪽으로 왔다.
그리고는 -나를 완전히 지나쳐- 레아 앞에 가 섰고.
“와···.”
입을 멍하니 벌린 채 그녀를 올려다보며 “엄청 예뻐”라고 중얼거리는 것이 아닌가.
그 말에 쑥스러워하면서도, 수아가 귀여워 어쩔 줄 모르겠다는 눈빛으로 대꾸하는 레아.
“···정말? 고마워.”
“응, 진짜 진짜. 완전 공주님 같아.”
“수아 너도 엄청 귀여워.”
“히히, 내가 그런 말 좀 많이 들어.”
수아가 배시시 웃으며 필살기인 ‘귀여운 표정’을 해 보이자, 레아는 또 꺅, 비명을 질렀고···.
“근데··· 공주님 옆엔 왕자님이 있어야 하는데.”
그 말과 함께 수아의 눈이 내게 향했는데.
그 묘한 눈빛에 가슴 한구석이 아려왔다.
‘수아 너마저···.’
그때, 레아가 무릎을 꿇고 앉아 수아와 눈높이를 맞추더니.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모한텐 찬영 삼촌이 왕자님인걸.”
···아 민망하다.
민망해 죽을 것 같은 내 심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둘은 딴 세상의 대화를 나눴다.
“···정말?”
“응, 세상에서 제일 멋진 왕자님.”
“히히, 다행이다. 우리 삼촌이 저렇게 거인 같아도 마음은 되게 따뜻하거든.”
그래도 가만히 들어보니, 수아는 나름 내 걱정을 해준답시고 저렇게 말했나 보다.
어린 마음에도, 이 초미녀 여자친구에게 삼촌이 많이 부족하다고 느낀 걸까.
‘걱정해주는 건 고맙지만, 어딘가 눈물이 날 것 같은 이 기분은 뭘까···.’
*
그렇게 레아와 우리 가족과의 만남이 무사히 잘 마무리된 후.
어느덧 시간은 훌쩍 흘러 2월 하순이 되었고.
한영외대 통번역대학원의 2012년도 전기 학위수여식, 그러니까 졸업식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