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genius interpreter RAW novel - Chapter (253)
2022년의 어느 날 아침.
레아는 그 어느 때보다도 긴장되는 마음을 다스리는 중이었다.
“후우···.”
오늘은 다름 아닌 제26대 프랑스 대통령 취임식이 거행되는 날.
이 중차대한 행사에서 취임식 생중계 방송의 동시통역을 맡게 된 터였다.
‘오늘만큼은 실수해서는 안 돼.’
매순간 자신에게 한 치의 오차도 용납하지 않는 그녀였지만, 오늘 느끼는 중압감은 평소와 차원이 달랐다.
그 탓인지 손 끝이 바르르 떨리던 그때, 식탁 맞은편에 앉아 있던 둘째 민호가 입을 열었다.
“엄마.”
“···응?”
“오늘 엄마 예뻐.”
그러면서 배시시 웃는 것이 아닌가.
어린 아들의 말에 레아의 마음이 사르르 풀어지던 그때, 민호가 덧붙였다.
“근데, 엄마는 왜 아빠한테 자기라고 해?”
“…응?”
“여보라고 해야 하는데.”
그 말에 픽 웃은 레아가 뭐라고 설명해줘야 할지 잠시 고민하자, 첫째 연호가 다가와 말했다.
“야, 여보나 자기나 다 똑같은 거야.”
“그래?”
“사랑하는 사이에 쓰는 말이란 거지.”
“우와.”
“···.”
레아가 민망해 아무 말도 못 하던 그때, 찬영이 따끈따끈한 오믈렛을 들고 식탁으로 왔다.
“오믈렛 다 됐습니다.”
“···고마워, 잘 먹을게.”
“잘 먹겠습니다!”
레아에게 중요한 날인 만큼, 찬영은 오늘만큼은 자신이 아침을 차리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평소에도 요리를 취미로 하는 그답게, 치즈와 버섯을 듬뿍 넣은 오믈렛은 아주 맛있었다.
한 입 먹자마자 탄성을 낸 레아가 말을 이었다.
“맛있어. 어쩜 자기는 요리도 이렇게-”
“봤지? 엄마는 자기라고 하는 게 습관이 된 거야.”
“습관이 뭔데?”
“습관은, 음··· 그런 게 있어.”
“형도 몰라?”
“내가 모르긴 왜 몰라.”
엄마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유심히 듣고 있던 형제의 대화에, 레아와 찬영은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잠시 후, 채비를 마친 레아가 현관 앞에 섰다.
“다녀올게.”
“응. 평소 하던 대로만 해, 알지?”
찬영의 부드러운 격려에 레아가 환한 미소를 지었다.
‘매번 그렇지만.’
중대한 일을 앞둘 때면 찬영은 꼭 이렇게 시간을 내 아이들과 함께 레아를 배웅해준다.
그저 그뿐이지만, 그 미소와 말 한 마디가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얘들아.”
그런데 오늘은 한 가지가 더 있었나 보다.
찬영이 은근한 눈빛을 보내자, 연호와 민호가 씩 웃으며 엄마를 돌아본다.
“···?”
레아가 영문을 몰라하던 그때, 아이들이 재잘거리듯 노래하기 시작했다.
“엄마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어머.”
언제 이런 걸 준비한 거야, 그런 눈빛으로 돌아보자.
찬영은 장난기 가득한 미소만 지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너무 고마워, 얘들아. 엄마 기분 좋게 잘하고 올게.”
그렇게, 뭉클해진 가슴을 안고 레아는 세계뉴스TV 스튜디오로 향했다.
*
“신 선생 왔어?”
먼저 도착해 자리를 잡은 성주원 교수가 그녀를 반겼다.
졸업 직전 레아의 첫 동시통역 현장에서 파트너 역할을 해주었던 성 교수.
처음만 해도 그저 제자의 데뷔를 도와준다는 이유였지만.
‘와, 레아 씨 나랑 진짜 잘 맞네. 그냥 나와 계속 같이 하는 거 어때?’
그 후로 레아는 성 교수와 지금까지도 동시통역 파트너로 지내고 있었다.
그런 만큼 성 교수도 이제는 자연스레 ‘신 선생’이라고 그녀를 부르는 터.
“대망의 통역날에 얼굴이 아주 좋아 보이네. 역시 강심장이다 이건가?”
“강심장은요. 그냥, 오늘 아침에 애들이 배웅해주는데 노래까지 불러줘서···.”
레아의 설명에 성주원 교수는 상상만 해도 귀엽겠다며 난리법석을 떨었다.
“연호랑 민호 노래 부르는 거 동영상으로 좀 찍어놓지! 엄청 귀여웠겠다.”
“맞다, 생각도 못 했네요.”
“내가 내가 이럴 줄 알았어.”
“대신 이거라도···.”
주말에 다 같이 놀러 가서 찍은 영상.
그중에서도 둘째 민호가 두 손을 파닥거리며 노래하는 모습에, 성 교수는 꺅 비명을 질러댔다.
[무꼬기! 무꼬기 귀어워.] [아기 상어 뚜루루루뚜루~ 엄마 상어 뚜루루루뚜루~]“어머 어머 어쩜 이렇게 이쁘니.”
“후후, 요즘 말이 부쩍 늘었어요.”
뭐든 다 빨랐던 첫째 연호에 비해 민호는 말이 좀 늦은 편이었지만.
얼마 전 말문이 터지더니 매일처럼 새로운 단어를 써서 레아와 찬영을 기쁘게 했다.
“그래, 그래. 이 맘때가 참 예쁘지.”
성주원 교수는 꿈꾸는 듯한 눈빛으로 영상 속 아이들을 본 뒤, 레아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오늘 마음의 준비는 잘했고? 뭐 신 선생이라면 그런 거 없이도 잘하겠지만.”
“저만 강심장인 것처럼 말씀하시네요.”
이쪽 업계에서 알아주는 강심장 중 한 명인 성주원 교수를 마주 보며 레아가 한마디하자, 성 교수가 웃음을 터뜨렸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지만, 오늘은 또 사안이 사안이다 보니 나도 조금이지만 긴장되더라고.”
“얼굴만 보면 모르겠는데요.”
“그래서 우리 강 심장 신 선생의 기운을 받을까 했지.”
“오히려 제가 받아야 할 것 같은데···.”
그렇게 10여 분간 농담을 주고받고 나자, 레아는 아까보다 훨씬 더 마음이 차분해진 것을 느꼈다.
제자의 긴장을 풀어주려고 일부러 너스레까지 떤 성 교수에게 내심 감사하는 가운데.
오늘 동시통역을 진행할 부스에 들어가 앉으니 묘한 감회가 밀려들었다.
‘십여 년 전만 해도 이곳에 앉기를 그렇게 소망했는데.’
그것도 무려 프랑스 대통령 취임식의 생중계 동시통역이 아닌가.
십여 년 전, 한창 통대에서 공부할 시기의 레아 신이 지금의 자신을 봤다면.
“꿈을··· 이뤘다고 하려나.”
언젠가 우리나라 최고의 프랑스어 동시통역사가 되겠다는 꿈.
그것은 이제 거의 현실이 되었을 뿐 아니라, 그때로선 상상도 하지 못한 일들이 이루어져 있었다.
‘예전의 나는 나 자신을 증명하는 데 필사적이었지.’
그녀에게 동시통역은 하고 싶은 일이라든가, 좋아하는 일 같은 것이 아니었다.
자신을 증명할 수 있는 손 쉬운 수단인 동시에, 남들의 편견 어린 시선으로부터 도망치기에 적격인 일이었으니.
그런 만큼 찬영이 ‘좋아하는 일’로서 통역을 꼽을 때 잘 공감할 수 없었으나···.
‘언제부터였을까.’
찬영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늘면 늘수록, 그녀의 마음속에도 조금씩 여유가 생겨났다.
필사적으로 공부하고 필사적으로 성과를 내려는 대신.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돌아볼 기회가 생겨났고.
그렇게 돌아본 후에도 결국, 통역이야말로 자신에게 가장 맞는 옷임을 확신하게 된 터.
‘그리고 이젠 이 일을 온전히 즐길 수 있게 되었지.’
학교 다닐 적만 해도 통역 부스에 들어가 앉으면 긴장감과 중압감에 시달릴 때가 많았지만.
이제는 오히려 그런 감각을 즐기는 경지에 도달했다고 해야 하나.
언젠가 한 번 찬영과 그런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는데.
‘내가 스피드광은 아니지만, 그런 걸 즐기는 사람들의 마음은 좀 알 것 같아.’
‘레아, 아무리 그래도 과속은-’
‘아니, 통역 부스에 앉을 때 말야.’
동시통역을 할 때의 그 긴장감이, 더더욱 달콤한 쾌감으로 치환되어 박진감을 한층 더해주는 것 같다.
-라고 말하자 찬영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볼 때마다 느끼지만, 우리 레아는 전사의 심장을 가졌다니까.’
‘···자기야말로 하나도 안 떨잖아?’
‘무슨 소리야, 자기에 비하면 난 쫄보지 쫄보.’
큰 덩치를 하고서 몸을 벌벌 떠는 흉내를 내는 찬영.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레아는 제 안에서 그를 향한 사랑이 샘솟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 마음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커져만 가고 있으니.
“통역사님, 준비되셨어요? 곧 시작합니다.”
스태프의 말에 레아는 자세를 바로했다.
헤드폰을 쓰고 마이크 전원을 켜자 부스 안에 완벽한 적막이 감돌던 그때.
“지금부터 아르튀르 튈롱 제26대 프랑스 대통령의 취임식 생중계 방송을···.”
아나운서의 멘트가 시작됨과 동시에, 레아의 눈빛이 변했다.
*
바로 그 시각, 서울의 어느 대형 로펌 사무실.
“···히야.”
모니터 화면 속, 취임 연설을 하는 프랑스 대통령의 모습을 보며 김수용은 연신 감탄성을 냈다.
대통령의 연설도 훌륭하긴 했지만, 딱히 그 연설 때문에 감탄하는 것은 아니었다.
‘원래도 잘하는 건 알고 있었지만.’
수용이 귀에 낀 이어폰에서 누군가의 청아한 목소리가 끝없이 이어졌다.
–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지난 5월 7일에 우리는 역사적인 선택을 해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그의 동기 신레아의 목소리였다.
– 전 세계가 우리 프랑스의 대선을 지켜보았고, 그 향방에 주목했습니다. 우리가 지난날의 과오를 반복할 것인지, 혹은 실패로 점철된 시간과의 단절을 선택하고···.
속도, 성량, 발성 모두 완벽한 것은 물론이고.
단어 선택 하나 하나까지 세심하기 이를 데가 없다.
김수용은 자신이 통대에 다니던 시절의 습관대로 통역을 분석하고 있음을 깨달았지만.
‘그렇게 분석해봐도 뭐 하나 크리틱할 점이 없는데?’
들으면 들을수록 그저 감탄이 나오는 통역이라고밖에는 말할 수 없다.
아마 내일쯤이면 그녀의 통역을 두고 또 한 차례 기사가 쏟아져 나오지 않을까.
이제는 정말 어떠한 경지에 다다른 동기의 동시통역을 들으며 속으로 혀를 차던 그때.
직원이 그를 불렀다.
“김 프로님, 대표님이 잠시 사무실로 오시라는데요.”
“아, 바로 갈게요.”
김수용은 그 말과 함께 귀에 꽂았던 이어폰을 내려놓았다.
지금 그가 일하는 곳은 법률번역을 전문으로 하는 중견기업 리걸트랜스.
대형 로펌에서 법무 전문 번역사로 경력을 쌓던 수용은 스카웃 제의를 받아 이곳으로 이직한 터였다.
전문 변호사 출신의 대표가 중심이 되어 만들어진 이 회사는 애플이나 구글을 비롯한 해외 유수 기업을 고객으로 두었는데.
수용이 온 지 몇 년 만에 회사는 부쩍 성장했고, 지금도 그 성장세를 이어나가는 중이었다.
“대표님, 부르셨습니까.”
웃는 낯으로 그를 반긴 대표가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고, 김수용은 사뭇 긴장하며 그 말을 경청했다.
‘안 그래도 기다리고 있었지.’
지난 주, 수용이 중심이 되어 진행한 프로젝트 미팅이 있었다.
여러 건의 소송이 복합적으로 연결된, 그리하여 규모가 클 수밖에 없는 대형 프로젝트였는데.
그 결과에 따라 프로젝트의 수주 가능성이 결정되는 중요한 미팅이기도 했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프로젝트 따냈어요.”
“네?”
대표의 입가에 걸린 미소가 한층 짙어졌다.
“김 프로가 이끈 미팅이 대성공이었단 말입니다.”
그 자리에 참석했던 클라이언트가 굉장히 만족스러워했으며, 이번 프로젝트를 맡기면서 이렇게 덧붙였단다.
“꼭 ‘수용 킴’에게 이번 번역 프로젝트의 지휘를 맡겨달라고. ···그게 저희에게 이번 일을 맡기는 조건이라고 말이죠.”
“···!”
수용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
두 귀로 듣고도 여전히 어안이 벙벙해하는 그를 보며 대표는 말을 이어나갔다.
“김 프로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은 역시 발군입니다, 허허.”
대표의 입에서 연신 너털웃음이 터져 나왔다.
“통대 출신들이 통번역만 잘하는 줄 알았는데, 미팅까지 이렇게 잘할 줄은···.”
“···.”
수용은 감개무량한 기분을 애써 감추며 대표의 방에서 나왔다.
곧바로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이 기쁜 소식을 알린 뒤, 단톡방에도 메시지를 남겼다.
[얘들아] [나 프로젝트 리더 됐다]김수용이 그런 메시지를 남긴 지 얼마 되지 않아 메시지 옆의 숫자가 순식간에 줄어들더니.
이내 톡이 다다다 올라왔다.
그 후로도 권세미, 신레아, 송하늬, 서이준까지···.
42기들 대부분이 질세라 축하의 말을 남기는 탓에 알림 진동이 쉴 새 없이 울리는 스마트폰을, 김수용은 흐뭇한 미소를 지은 채 눈에 담았다.
[성원이 : 흐흐 형 오늘 술 한잔 콜?] [찬영이 : 너 영국에 있는 거 아냐?] [성원이 : 아] [성원이 : 맞다]성원의 톡이 연달아 올라왔다.
[성원이 : 난 왜 영국에 있는가 여긴 왜 한국이 아닌가] [성원이 : 나는··· 슬프다···] [하늬 : 추성원 씨 톡방 도배를 멈춰주세요] [은새 : ㅋㅋㅋㅋㅋㅋ] [찬영이 : ㅋㅋㅋㅋ 추야 내가 니 몫까지 마셔줄게] [이준이 : ㅇㅇ 걱정 ㄴㄴ]톡방에서 오가는 대화에 픽 웃어버린 수용이 자신 또한 한 문장을 작성했다.
– ㅇㅇ 오늘은 형이 쏠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