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genius interpreter RAW novel - Chapter (254)
그리고 그 시각.
단톡방에서 오가는 대화에 미소 짓는 것은 비단 김수용뿐이 아니었다.
“무슨 일로 이렇게 기분이 좋아 보여?”
“아, 응.”
남편의 말에 한유정은 생긋 웃으며 본인의 스마트폰을 가리켰다.
“수용 오빠가 프로젝트 리더 됐대서.”
“이야, 좋은 소식이 많네.”
42기 중 제일 먼저 결혼한 한유정은 여전히 평화로운 결혼 생활을 유지하는 중이었는데.
통대에 다닐 때부터 42기들과 안면을 트고 지낸 사이이다 보니, 그녀의 남편 또한 이제는 42기들을 제 지인처럼 여기는 분위기였다.
“모여서 술 마시잔 소리는 안 해?”
“했어, 수용 오빠가 쏜다는데?”
“거기에 나도 끼면 어색하려나?”
“어색하긴, 좋아하겠지.”
42기 중 남자 동기들, 특히 추성원과는 의형제 수준으로 친해진 남편의 말에 유정이 픽 웃으면서 대꾸했다.
“아 근데 성원이는 못 올 거야, 지금 영국이라.”
“성원 동생 안 오면 조금 어색할 것 같은데.”
“찬영이랑도 친하잖아.”
“아니 친하긴 한데.”
말 끝을 흐린 그녀의 남편이 머리를 긁적이며 덧붙였다.
“음 뭐랄까, 찬영 씨는 동생이 아니고 꼭 인생 선배 같은 느낌이 든다고 해야 하나···.”
“그게 뭐야.”
푸훗, 하고 웃어버린 유정은 이내 진지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근데 말야, 오빠.”
“응?”
“이렇게 여전히 통번역에 매진하는 동기들 얘기 들으면··· 나도 그냥 하던 거 할 걸 하는 생각이 가끔 드는 것 있지.”
기껏 몇 년을 공들여 언어를 배우고 경력까지 쌓았는데.
그걸 전부 내던지고 새로운 길을 택한 것이 과연 옳은 결정이었을까.
이제 와 후회하는 것은 아니지만, 불현듯 고민이 고개를 드는 것만은 어쩔 수가 없다.
그 같은 그녀의 속내를 읽은 것인지, 유정의 남편은 어깨를 으쓱하며 거실 한쪽 벽을 가리켜 보였다.
“무슨 소리야. 지금 훨씬 더 잘 나가고 있잖아?”
그곳에는 한유정이라는 이름 세 글자가 적힌, 커다란 단독 전시회 포스터가 붙어 있었으니.
“난 통번역사 한유정도 좋지만, 본인이 하고 싶어하는 일을 하는 한유정이 훨씬 더 좋아.”
언제나 그녀를 든든하게 지지해주는 남편의 말에 한유정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오빠 말이 맞아.”
소중한 가족의 응원 한 마디에 머릿속의 모든 걱정이 단번에 사라지는 것을 느끼며.
“근데 볼 때마다 느끼는 건데, 저거 아무리 봐도 너무 큰 것 같지 않아?”
“크긴 뭐가 커, 더 확대해서 뽑아놓고 싶은 걸 간신히 참았는데.”
“오빠도 참.”
···아무튼 팔불출이라니까, 뒷말을 입안으로 삼킨 유정이 남편을 보며 배시시 웃었다.
*
레아의 대통령 취임식 동시통역이 성공적으로 끝나고, 수용 또한 프로젝트 리더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그다음 주 주말.
42기들은 손님으로 제법 붐비는 일본식 주점에 자리한 터였다.
“이렇게 모이는 것도 간만이네.”
수용의 리더 임명 소식을 축하하는 한편, 42기들끼리 한 번이라도 더 얼굴을 보자는 취지로 만들어진 만남.
“그러게. 제일 마지막으로 봤던 게 작년 겨울이었던가?”
오늘의 자리에는 추성원과 송하늬를 비롯, 외국에 있는 동기를 제외한 대부분이 나온 터였다.
“와 그러네. 진짜 오랜만에 보는 거네요, 우리.”
권세미의 말에 은새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렇게 말을 받았다.
“물론 이 중에서도 몇몇은 가끔씩 얼굴을 봤지만 말이야.”
그 말에 피식 웃는 권세미.
통대에 다닐 적 스터디 파트너 사이였던 두 사람은 졸업 후에도 꾸준히 친분을 유지하더니, 지금은 아예 함께 일하는 사이가 된 터였다.
“같이 일하는 걸 보면 성격이 잘 맞나 보네.”
무심한 듯 던진 서이준의 한마디에 은새와 세미가 고개를 끄덕인다.
“응, 아무래도 학교 다닐 때부터 손발이 맞아서 그런지 일할 때도 편하더라고.”
“흐, 부럽네. 나도 동기들이랑 같이 일하고 싶다···.”
그 둘을 보며 그렇게 말한 김수용은 찬영과 레아 부부를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그건 그렇고, 오늘은 웬일로 둘이 같이 나왔네?”
이 둘은 한창 두 아이를 키우느라 번갈아서 한 명씩 나오곤 했으니 말이다.
“오늘 어머님 아버님이 와주셨거든요.”
찬영과 레아는 유난히 밝은 낯으로 고개를 끄덕였는데, 간만에 누리는 자유가 몹시 반가운 모양이었다.
“잘됐네. 애들이 이제 많이 컸지?”
“그럼요, 형. 요즘은 할머니 할아버지랑 있으면 엄마 아빠는 찾지도 않더라고요.”
그 말과 함께 수용에게 사진을 보여주는 찬영.
레아를 닮아 둘 다 얼굴은 예쁘장했지만, 덩치는 찬영을 닮았는지 또래 아이들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느낌이었다.
“야 진짜 쑥쑥 자라는구나. 물론 우리 애들도 그렇지만.”
“형은 형수님 허락 받고 나온 거?”
찬영의 말에 수용이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 오늘은 코가 삐뚤어지게 마시라던데?”
“흐흐, 좋네요.”
간만에 누리는 자유에 얼굴이 밝은 것은 수용 또한 마찬가지였으니.
“그럼 주문해볼까?”
주문한 메뉴가 나오길 기다리며 42기들은 통대 선후배들의 근황을 주고받았다.
제일 먼저 이야기가 나온 것은 41기이자 원우회장을 지냈던 최호성.
42기들에게는 고마운 존재이기도 하며, 찬영과는 주기적으로 연락을 주고받는 사이였는데.
“···그러니까 최호성 대표님이 여전히 잘 나가신다 이 말이지?”
“호성 씨면··· 한 기수 위의 선배라고 했지?”
“응, 우리 결혼식 때도 왔잖아.”
한유정의 말에 그녀의 남편이 아 하며 탄성을 내뱉자, 찬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왜 그, 결혼식 며칠 전에 형님이랑 주량 배틀도 했잖아요?”
“맞다, 거기서 제일 힘들어하셨던 분이 호성 씨였지?”
“하하, 맞아요.”
오기 전만 해도 어색할 것 같다니 어쩌니 하더니.
지금은 찬영과 함께 지난 추억을 떠들어대는 남편을 보며 유정이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호성이 형이 안 그래도 발이 넓은 편인데···.”
몇 년간 다양한 일감을 받으며 프리랜서로 활동하며 인맥을 넓힌 최호성은 졸업한 지 7년 만에 자신만의 에이전시를 만들었고.
여기에 자신의 기수인 41기들을 비롯해 다양한 인력을 영입했다.
그것이 바로 HS 통번역 에이전시였는데, 다른 곳과 차별화되는 지점이 있다면 프랑스어와 영어뿐 아니라 스페인어, 아랍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언어를 구사하는 인력풀을 갖추고 있다는 것.
“형이 원우회장이었잖아요? 그래서 타과에 친한 학생들이 많았거든.”
어디 그뿐인가.
설립 초창기에 찬영이 이 HS에이전시의 홍보를 해준 덕분에 지금은 어느 정도 업계에서 자리를 잡았을 뿐 아니라···.
“어, 나 지난번에 기사 본 것 같은데. 어디 대기업에서 투자 받았다고 하지 않았어?”
수용의 말에 찬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형.”
“이야, 대박이네.”
“그러게, 다들 왜 이렇게 잘 나가?”
권세미의 말에 은새가 끼어들었다.
“아, 호성 오빠 얘기하니까 지혜 언니 생각난다.”
최호성의 동시통역 파트너였던 41기 김지혜의 이름이 나오자, 그때껏 조용히 듣기만 하던 레아가 입을 열었다.
“지혜 선배는 주불 한국 대사관에서 일한다고 들었어.”
“오, 레아랑 연락하고 지내는구나.”
“따로 연락하는 건 아니고, 성주원 교수님 통해서 가끔 소식 듣거든.”
그렇게 시작된 근황 이야기는 꽤 오래도록 이어졌다.
천상욱을 비롯, 불어과 42기들과 친하게 지냈던 아랍어과 졸업생들 이야기도 나왔는데.
“상욱이 형은 여전히 국정원에 있나?”
“지금은 법무부에서 일하고 있다던데요. 연락할 때마다 술 마시자고 얼마나 성화인지, 하하.”
이번에도 대답한 것은 찬영.
타과생들과 가장 친하게 지낸 것이 그였던 만큼, 지금도 계속 연락을 유지하는 중이라고 했다.
“오늘 이 자리에 연락할까 했는데, 오늘은 또 상욱이 형이 시간이 안 된대서.”
“오랜만에 상욱이도 보고 싶었는데, 아쉽네 쩝.”
수용의 말에 찬영이 웃음 띤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자, 이번엔 권세미가 말을 받았다.
“아 그리고 43기 후배들 기억나요? 정욱이랑 민서 말인데···.”
그 두 사람 또한 업계에서 제법 자리를 잡았는데, 주로 북아프리카 개발 프로젝트 관련해서 일하고 있다고.
그 둘과 업무상 종종 얼굴 볼 일이 있었다는 권세미의 말이 이어지던 중.
“주문하신 메뉴 나왔습니다.”
점원의 말에 42기들의 얼굴이 환해졌다.
참치 다다끼, 치킨 가라아게, 도미 간장조림, 감자 고로케···.
다양한 요리의 냄새가 식욕을 자극하는 가운데, 점원들이 접시를 바삐 나른다.
본인의 기호에 맞춰 주문한 맥주나 사케, 소주 등의 주류 역시 눈앞에 놓였다.
“맛있겠네.”
찬영은 사케를 입안에 잠시 머금었다가 이내 목 뒤로 넘겼다.
특유의 부드러운 향이 여전히 코 끝을 맴도는 한편, 갓 나온 참치 다다끼 한 점을 입에 넣자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다.
‘수용이 형이 자주 오는 맛집이라더니 진짜 맛있네.’
그는 저도 모르게 탄성을 내뱉고 말았다.
“크으, 좋네.”
일본 요리만화의 한 장면 같은 리액션에 서이준이 헛웃음을 지었다.
“표정이 아주 살아 있네.”
“내 표정이 뭐가.”
“광고 모델다운 리액션이다 이거지.”
이준의 말에 한유정이 웃음을 터뜨리며 덧붙였다.
“찬영이는 아예 전문 모델로 나가도 될 것 같던데?”
“누나까지 놀리다니.”
“놀린 거 아닌데? 멋있다는 거지.”
“···.”
찬영이 민망해하며 아무 말도 못 하자, 은새가 히죽 웃으며 끼어들었다.
“맞아 맞아, 그런 의미에서 찬영 오빠가 우리 쪽 모델도 해주기로 한 거 알아?”
“오 정말?”
“완전 대박!”
동기들의 호들갑에 두 손을 내저어 보이는 찬영.
“아니 뭐 그렇게 대단한 거라고···.”
“대단한 거지 그럼.”
참고로 말하자면, 은새의 사업체는 상당히 승승장구하는 중이었다.
시작은 프랑스 화장품을 국내로 수입하는 게 전부였지만, 매출이 꾸준히 늘어난 덕에 해외 투자를 받게 되었고.
이번에 정식 브랜드를 론칭하면서 찬영이 모델이 되어주기로 했던 것.
“전에 찬영 오빠가 모델했던 것들, 다 대박난 거 알지?”
“···너무 기대하면 내가 부담스러운데, 은새야.”
“부담은 무슨. 근데 이 얘기 꺼내고 보니까 예전 생각 나네.”
동기들의 빈 잔에 자연스레 술을 채워주며 은새가 말을 이었다.
“전에 내가 로헤알에서 나와서 사업 시작하겠다고 했을 때 말이야.”
“그때가 벌써 몇 년 전이네.”
시간 참 빠르다, 찬영이 중얼거리는데 은새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때 찬영 오빠만 도전해보라고, 찬성이라고 했던 거 알아?”
“그랬나?”
“하긴, 나도 그때 은새 말렸지.”
한유정의 한마디에 다른 동기들도 고개를 끄덕이자 찬영의 눈이 커졌다.
“진짜? 다들 말렸다고?”
“그럼. 사실은 나부터가 확신이 잘 안 생겼는데···.”
은새의 진솔한 말이 이어졌다.
“그때 오빠 말을 듣고 나니까 복잡했던 머릿속이 좀 정리가 되는 거 있지.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게 이 일이라는 것에 확신도 생겼고.”
“···.”
“신기한 게, 찬영 오빠는 남들 마음을 참 잘 알아주는 것 같아.”
어떤 때는 본인조차 깨닫지 못한 걸 알아차려 주는 것 같다, 라는 그녀의 말에 찬영은 머리를 긁적였지만.
“나도 동감.”
서이준의 한마디에 은새가 픽 웃었다.
“봐, 이준 오빠도 그렇다잖아.”
“아니 뭐···.”
“내가 지금까지 결혼 안 하고 있는 것도 남들은 다 의외라고 하는데, 찬영 오빠만 별 얘기 안 하는 것 알아?”
“···.”
그 말에 찬영이 입을 다물었다.
그 누구보다도 사교적이고 인기도 많은 편인 황은새가 여지껏 결혼하지 않은 것을 다들 신기해하고는 했지만.
찬영만큼은 자연스레 여겼던 터였다.
‘그도 그럴 것이, 회귀 전에도 마찬가지였으니까.’
겉보기와는 달리 황은새는 연애보다는 일이 늘 우선인 성격이었다.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가 되고,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싶다는 야망이 상당한 스타일.
그렇기에 회귀 직전에도 여전히 미혼이었던 황은새를 기억하는 찬영으로서는, 딱히 신기한 일이 아니었던 것.
“뭐 결혼을 하고 안 하고야 자기 선택이지.”
각자에게 맞는 삶의 방식이 있고, 속도가 있는 법 아니겠냐고 찬영이 말하자, 레아가 그 말을 거들었다.
“중요한 건 자신과 맞는 사람을 만나는 것 같아.”
그러자 은새의 얼굴에 부드러운 미소가 번졌다.
“맞아, 그런 의미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그녀가 꺼낸 것은 다름 아닌 청첩장.
동기들의 눈이 튀어 나올 듯 커졌다.
“···!”
“좀 갑작스럽긴 한데, 오늘 아니면 주기 어려울 것 같아서.”
그렇게 말한 은새가 김수용을 돌아보았다.
“수용 오빠, 오늘은 나랑 반반 쏘는 거 어때?”
“···아주 좋지.”
또 하나의 아주 좋은 소식에, 42기들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