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knight in a fantasy novel RAW novel - Chapter 120
120. 뜻밖의 여정
‘교국에선 단순 실종으로 결론 지었나 보구나.’
과거 프리미오 공작으로부터 아고르를 비롯한 성직자들이 나를 찾느라고 오스카 전역을 뒤졌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그러다가 교국의 호출을 받아 귀환한 것으로 알고 있었다.
‘교국에선 아카데미의 로지를 오스카 때의 로지로 확신하고 있나 보군.’
교국의 관심을 받게 된 인기남(?) 로지를 향한 심심한 위로를 표했다.
“……저희는 끝내 제르다의 화신을 찾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그분께서는 타락한 우리에게 실망하여 다시 순백 달로 승천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다른 건 몰라도 아고르는 정말 순정파 성직자인 듯싶었다.
그의 말에서 진정성이 너무나 강렬하게 느껴졌으니까.
“그렇게 교국에서 기도 수행을 하던 중, 놀라운 사실을 듣게 되었습니다.”
“오스카의 전대 여왕을 살해한 제르다의 타락한 화신이, 이곳 아카데미에 재학 중인 로지 메이슨이라는 건가요?”
그때, 마리아가 아고르의 말 중간에 끼어들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아고르는 고개를 끄덕이며 마저 말했다.
“로지, 그자의 진짜 정체는 과거 몰락한 아르미다츠 왕실의 왕세자인 로지스트 마누스 룬 아르미다츠라는 겁니다.”
‘이제야 알아챘군. 오스카의 주교 오르페스가 내 정체는 끝내 얘기 안 해 준 것이 그나마 다행이야.’
‘하긴 명색이 교단인데, 지금까지 이를 몰랐으면 그게 이상한 거지. 아무리 부패했어도 상병신은 아니군.’
나와 마리아는 속으로 생각했다.
“아고르 형제님의 감정이 격해진 것 같군요. 여기부터는 제가 설명하겠습니다.”
아고르의 말을 묵묵히 듣고 있던 크샤트가 다시 대화에 개입했다.
“상황이 이쯤 되니까, 저희는 제국의 의도를 다르게 파악하게 되었습니다. 제국은 이 로지라는 왕자를 타락시켰고, 그를 이용해 체스카드 왕국을 먹어 치울 것이라고.”
아고르와 달리 크샤트 추기경은 여전히 로지나 로니가 제르다의 화신이 아니라고 여기고 있었다.
그는 당시 로지가 보여 준 행동도 마누스의 적통이라 가능했던 거라고 생각했다. (사실 그랬고 말이다.)
“그렇다면 지금 이렇게 아카데미로 교단의 높으신 분들이 오신 것은?”
“예, 조만간 방문은 하려고 했지만 이렇게 갑작스레 무례하게 오려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제르다께서 성녀님을 안내자 삼아 이렇게 인도해 주셨군요. 아한-제르다.”
성녀의 돌발 행동을 핑계로 아카데미에 오긴 했지만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라는 크샤트의 말.
그 말을 누가 믿어?
“어찌 되었든 상황이 이렇게 된 거, 아카데미에 온 김에 로지스트, 그자를 직접 봐도 되겠습니까? 제국에서 선수 치기 전에 저희 교단에서 그를 회개시키고 지원할 겁니다.”
“지금 말을 현 체스카드 왕실에서 들으면 굉장히 안 좋아하겠군요.”
마리아의 걱정이 담긴 우려에 크샤트 추기경은 피식 웃었다.
“체스카드 왕실은 솔직히 말해 가망이 없습니다. 이미 민심도, 귀족들의 지지도, 왕실의 재정이나 군사력도 모두 바닥입니다.”
추기경의 차가운 분석.
‘롱페리우스에서 국왕과 국왕파의 군대가 싹 다 불탄 것이 치명적이긴 했지.’
교단은 가망 없는 체스카드 왕실을 대신해 마누스의 적통을 통해 언제든 왕조를 교체할 계획을 가지고 있던 것이다.
이를 위해 성녀와 추기경을 이곳에 보낸 것이고, 왕도에서 벌어진 최근의 사태는 좋게 얻어걸린 명분일 뿐이다.
“지금 이 왕국은 언제 무너져도 이상할 게 없습니다. 교국의 입장에서는 이 왕국이 친제국 성향의 폰테임에게 넘어가도 문제고, 제국에 넘어가면 더더욱 문제입니다.”
‘성녀를 왕도에 파견한 이유가 이거였나?’
단순히 로지스트를 회유하는 것이었으면 몰래 추기경이나 주교를 보내면 됐다.
하지만 교국에서는 성녀를 보냈다.
성녀는 상징적인 존재다.
그녀를 체스카드의 수도로 파견 보낸 것은, 제국와 폰테임에게 우리가 이 왕국에 이 정도 관심을 보이고 있으니 경거망동하지 말라는 메시지이리라.
“말씀은 잘 알았습니다.”
성녀의 돌발 행동은 핑계일 뿐, 그들이 아카데미로 갑작스레 온 이유 또한 의도한 일로 보였다.
뜻밖의 회담이었지만 알고 보니 전혀 뜻밖은 아니었던 것이다.
나는 잠시 앉아서 차를 마시고 있는 성녀를 보았다.
이 모든 것이 그녀가 의도한 것이라면?
‘참으로 여우 같군’
어쩌면 저 생각 없어 보이는 언행 또한 연기일지도 모르겠다.
‘로지는 그렇다 치고, 제인에 대해서는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걸까? 로지까지 알았으면 제인에 대해서도 잘 알 텐데?’
렌슬렛에서 제인 왕녀를 보호하고 있다는 사실은 온 천하가 다 안다.
다만 그녀가 아카데미에 학생으로 있다는 사실은 소수를 제외하면 잘 모른다. (물론 알 사람은 다 알지만.)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마누스의 적통 중에는 제인 왕녀도 있지 않나요?”
나와 비슷한 심정이었는지 마리아가 대신 크샤트에게 질문했다.
그녀의 질문에 추기경은 무덤덤한 얼굴로 답했다.
“제인 왕녀야 현재 렌슬렛에서 보호하고 있어서 일단은 안심입니다. 렌슬렛의 여공작이야 자타가 공인하는 반제국, 반폰테임 쪽 군주시니까요. 신앙심도 깊으시고요.”
저들은 제인이 이 아카데미에 재학 중이라는 사실을 아는 것일까? 아니면 알면서도 모른 척하는 것일까?
“만약에 폰테임이 내란을 일으키고 제국으로부터 로지스트를 구출하지 못한다면, 그때는 차선으로 렌슬렛의 제인 왕녀가 이 왕국의 새 주인이 될 수 있게 도울 겁니다.”
자신들의 계획. 뻔한 계획이지만 우리에게 이렇게 술술 말해 주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알겠습니다. 오늘부터 이틀, 큰 소란이 나지 않는 선에서 아카데미를 돌아다니는 것을 허락하겠습니다. 뭐, 이미 하고 계시겠지만.”
총장의 입으로부터 직접 교국의 성직자들이 아카데미를 활보할 수 있도록 허락을 듣기 위해서다.
로지와 데이지를 찾으면서 겸사겸사 아카데미 내에서의 제국과 이단의 징조를 찾으려는 속셈이겠지.
“총장님의 협조에 감사드립니다.”
“아한-제르다.”
마리아의 입에서 협조하겠다는 말이 나오자마자, 크샤트 추기경을 비롯한 성녀, 아고르 등 수십의 팔라딘과 성직자들이 우르르 총장실이 있는 건물을 빠져나갔다.
나와 마리아만 남은 텅 빈 총장실.
“정말 괜찮겠습니까?”
나는 그들이 나간 문을 보면서 마리아에게 물었다. 로지와 데이지의 안위에 대한 걱정도 있었지만, 교국의 성직자들이 아카데미를 활개치고 다니면 이사회에서도 반발할 것이다.
“지금 같은 시국에 괜히 교단과 척을 질 필요는 없지요. 이사회도 납득할 것이고요.”
마리아는 대수롭지 않은 듯 말하며 마저 남은 차를 마셨다.
그녀는 내 짧은 물음에 담긴 모든 뜻을 대충 눈치챈 듯 보였다.
“무엇보다 이미 로지와 데이지는 아까 제국으로 갔습니다.”
“……빠르군요. 그런데 로지가 교단을 피할 이유는 없지 않습니까? 제국이랑 교국 사이에서 이권을 취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 같은데.”
“로지와 데이지는 교단이 온 것 때문에 제국으로 간 게 아니에요. 원래 예정이 그랬어요. 로지가 당신에게 얘기 안 했나요?”
“…….”
‘이것들이?!’
마리아의 말에 나는 속으로 로지와 데이지를 욕했다.
‘분명 데이지의 짓이겠지. 로지는 흔쾌히 따랐을 테고.’
전에 내게서 정령을 빼앗긴 것에 대한 소소한 복수일 터.
“아아, 곧 제국으로 떠난다고 얘기는 들었는데, 오늘이었군요. 날짜를 착각해서…… 하하하하.”
마리아의 시선이 느껴진다. 뭔가 딱하고 짠하다는 시선.
나는 난감한 상황을 돌리기 위해 주제를 돌렸다.
“교단은 닭 쫓던 개가 되었군요. 모처럼 그들답지 않게 빠르게 움직인 거 같던데.”
“거북이가 뛰어 봤자지요. 여전히 요란하기만 하고 실속은 하나도 없고.”
내 말에 마리아가 조소했다.
시간을 거슬러 차원을 넘어온 그녀지만, 마법사 특유의 성직자를 같잖게 보는 성향은 여전한 것 같다.
심지어 그녀의 심장에는 신성력이 마나와 함께 섞여 있음에도 말이다.
“그나저나 이렇게 되면, 다음 학기에 교단에서 다시 와서 난리를 치겠군요.”
“글쎄요. 다음 학기에는 이곳 아카데미로 성녀와 추기경을 보낼 여유가 있을까 모르겠네요.”
“혹시 또 뭔가를 알고 계시는 겁니까?”
“아직 확실한 것이 아니니 비밀로 할게요.”
“…….”
나는 뚱한 표정으로 그녀를 보았다.
“대신 이건 얘기해 줄게요.”
입이 삐죽 나온 나를 마리아가 안됐다고 여겼는지 정보를 미리 말해 줬다.
“원래 내년 2학기에 열릴 예정이었던 룬-페스티아가 다음 학기에 열리는 것으로 변경됐어요.”
그녀의 입에서 나온 정보는 튀어나온 내 주둥이를 평평하게 만들 정도로 중요한 정보였다.
“그게 총장과 이사회에서 멋대로 조정 가능한 거였습니까?”
“정확히 말해선 조정이 아니라 봉인석의 시간이 앞당겨졌어요. 아마 로지스트의 이른 각성이 영향을 준 모양입니다.”
조정한 것이 아니라 조정당한 것이다.
‘로지가 램 동아리를 만든 이유가 사라졌군.’
로지가 램 동아리를 만들었던 이유가 룬-페스티아가 열리기 전에 좀 더 빨리 환상 군단과 접촉하려던 이유였다.
동아리 활동을 명분으로 아카데미의 출입 금지된 장소를 탐방하려 했는데, 이렇게 다음 학기에 개최되어 버렸으니 말이다.
“다음 학기는 많이 피곤하겠군요…….”
“그렇죠. 장난 아니게 바쁠 겁니다. 위험하기도 할 테고.”
멀리 미뤄 뒀던 시험이 바로 코앞으로 다가온 기분이다.
“뭐, 일단은 저도 방학을 즐겨 보려고합니다.”
그래도 놀 땐 놀고서 바빠야 하지 않겠는가?
“그럼, 가 보겠습니다. 총장님도 즐거운 방학 보내시고요~.”
나는 마리아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는 총장실의 문을 열었다.
그러다가 문득 어떤 생각이 들었다.
“그나저나 총장님, 로지와 데이지 이 두 사람, 여름 방학 동안 이렇게 제국으로 가 버리면, 별일 없겠……죠?”
단순히 제국에만 있다가 얌전히 다음 학기 때 등교하면 상관없지만…….
‘문제는 여름 방학 동안 제국에서 또 뭔 짓을 벌일지가 걱정이라는 것이지.’
내 물음에 마리아가 진한 미소를 짓는다. 마치 내 입에서 그 말이 나올 것을 기다렸다는 듯이.
“네, 안 그래도 제가 루카스 교수님을 찾은 이유가 그것 때문이에요.”
‘아! 그러고 보니 내가 총장실로 이렇게 온 이유를 못 들었구나.’
하지만 마리아의 얼굴을 보니 뭔가 기분이 싸해진다.
굉장히 피곤해질 것만 같은 느낌이랄까?
“저를 부른 이유가 무엇이죠?”
“루카스 교수님, 혹시 여름 방학 때 계획이 어떻게 되시나요?”
그녀의 말에 등골이 조여 오는 기분이다.
‘첫째 주는 드라센 제도에서 쉬고, 둘째 주는 오스카에서 놀다가 셋째 주부터는 렌슬렛에서 다음 학기 준비도 하면서 쭉 있으려 했는데?’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견문도 넓히고, 그 이후에는 렌슬렛에서 다음 학기 준비를 하려고 합니다만?”
적당히 필터링 해서 마리아에게 말했다.
“한가하다는 거네요?”
“어떻게 하면 이 말이 그렇게 들립니까?”
나는 억울하다는 듯 격하게 반발했다.
“렌슬렛에서 여공작의 일도 도와주고, 왕녀와 아리아도 돌봐야 하고, 다음 학기 대비도 해야 하고…….”
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물론 그것도 중요하겠죠. 하지만 더 중요한 일이 있어서요.”
내 설명에도 마리아는 요지부동이다.
“루카스 교수님, 저와 함께 어디에 좀 갔다 와야겠어요.”
“……어디를, 얼마나 말입니까?”
어찌 되었든 눈앞의 여자는 상급자다. 비루한 직장 생활, 상급자가 이미 저렇게 마음을 정했으면 반쯤 체념해야 한다.
“기간은 한 달 정도니까 남은 방학 중 한 달은 즐길 수 있을 거예요.”
“거, 참으로 자상하시군요……. 그래서, 어디로 가길래 한 달씩이나 소요되는 겁니까?”
마리아는 내가 드라센에서 했던 일들을 알고 있다. 따라서 그랑블루의 존재도 안다.
‘그 전에 마리아 또한 공간 이동 마법을 쓸 줄 아는 거 같았는데?’
“설마 로지와 데이지를 감시하러 제국에 가는 겁니까?”
설마 하는 심정으로 물었는데,
“네, 비슷해요! 제국에서 한 달 정도만 있다 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