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knight in a fantasy novel RAW novel - Chapter 157
157. 그 교수의 여름방학(8)
“그사이에 마법포가 더 늘었어…….”
앨리스가 렌슬렛 공작성을 보고는 질렸다는 듯 말했다.
렌슬렛의 재정 상황을 생각하면 말이 안 되는 숫자다.
“요즘에도 렌슬렛을 염탐하고 그래?”
로니아드가 그런 앨리스의 태도를 보곤 물었다.
“뭐, 습관 같은 거라서요. 이젠 상관없지만.”
앨리스는 공작성에 배치된 세 개의 마법포에서 눈을 떼지 않고 답했다.
“그래 봤자 폰테임보다는 숫자는 적어.”
“하지만 성능은 압도적이네요? 저 마법포 중 한 문은 대마도사의 작품일까요?”
“뭐, 그렇지.”
하이든이 죽고 그에게 가던 예산과 인력을 아끼게 된 이노는 가장 먼저 공작성에 마법포를 설치했다.
또한 공작성 전체를 보수 공사하고 공작성과 대저택에 각종 방어 마법을 인챈트했다.
어느 정도냐면, 율카네스와 아스카가 저택으로 감히 공간 이동하기 힘들 정도로 빼곡히 방어 마법으로 도배를 해 놨다.
분명 하이든이 쳐들어왔을 때 겪었던 트라우마가 작용했을 것이다.
“대마도사 하나가 어지간한 열 마법 병단을 압도한다더니 사실이군요…….”
앨리스는 순수하게 감탄했다.
“그렇기는 하지. 율카네스가 협조하지 않았다면 그 예산을 가지고 절대 이렇게 못 해.”
당연한 말이지만 저택과 공작성에 마법 인챈트를 한 장본인은 율카네스였다.
물론 의도는 힘들게 얻은 마누스의 적통과 신성의 섬광을 보호하기 위해서였지만.
“율카네스 그 노인네가 성격은 지랄맞지만, 실력은 확실하다니까? 나도 저 안으로는 공간 이동이 힘들어.”
아스카가 혀를 내두르며 대화에 끼어든다.
대화에 끼어든 아스카는 공작성을 보았다.
“참고로 세 번째 마법포는 내 작품이야!”
은근히 자신의 업적을 자랑한다.
“그래, 그래 잘했다.”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를 자랑에 로니아드는 습관적으로 아스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헤헤헤~.”
아스카가 기분이 좋은지 강아지처럼 헤실거린다.
“크흠, 나도 정령술로 충분히 도와줄 수 있어.”
“나도 황실의 아티팩트 중 몇 개를…….”
그런 아스카가 부러웠는지 테노바와 이소레타가 서로 자신의 능력을 어필한다.
“그나저나 공작성 내의 분위기가 좀 어수선하군?”
로니아드는 두 여자의 어필을 한쪽 귀로 흘리며 주변을 둘러봤다.
뭔가 어수선하고 우중충한 분위기다.
“마치 처음 클라메니크에 왔을 때 같아.”
이소레타가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공격적인 자연의 기운이 강해.”
테노바도 눈을 감고서 공기를 느꼈다.
“혹시 또 뭔 짓 했어?”
로니아드가 앨리스를 쳐다보며 물었다.
“염탐만 할 뿐이지, 렌슬렛에는 거의 손 뗐다니까요!”
앨리스가 억울하다는 듯 외쳤다.
“과거의 업보 때문에 폰테임이 신뢰 안 간다는 것은 너도 잘 알잖아?”
애초에 염탐하는데 완전히 손을 뗐다는 게 말이 되나?
“에휴, 어쨌든 저는 모르는 일이에요. 아무리 아버지라도 지금 상황에 렌슬렛에 신경 쓸 여유가 없을 텐데.”
로니아드의 말에 앨리스 또한 분하지만 인정하는 모습이다.
그의 시선이 이어서 아스카에게 향했다.
“나도 최근까진 들은 얘기가 없어.”
아스카도 모르겠다는 투다.
그렇게 공작성을 구경하면서 자잘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공작 각하께서 오십니다!”
이노의 등장을 알리는 외침이 들렸다.
공작성에 마련된 접객실에 있던 로니아드와 일행들은 다 같이 일어났다.
아스카도, 이소레타도, 앨리스도, 본래 자신의 신분은 뒤로한 채로, (실제로도 신분은 숨겨야 했기에) 이 땅의 통치자를 존중하는 예를 표했다.
“손님이시군요.”
이윽고 이노가 들어왔다.
“공작 각하를 뵙습니다.”
로니아드가 이노를 보면서 예를 취했고, 이노는 상기된 얼굴로 로니아드를 보았다.
‘배후는 바로 네년의 문란함이다!’
방금 감옥에서 들었던 말이 가슴을 스쳤다.
“……환영해요. 딱 봐도 신분을 숨기고 여행하는 귀족가의 자제시군요.”
이노의 얼굴이 갑자기 굳었고, 이내 그녀의 눈에 로니아드와 함께 왔다는 여인들이 보였다.
아스카와 앨리스, 그리고 처음 보는 여자 둘.
아스카는 이해하지만 왜 앨리스가 여기에 껴 있는지 정말이지 궁금했다.
하지만 이노는 감히 이것을 물어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요, 요즘 같은 시기에 참으로 용감하셔라. 집사는 이들에게 저택의 방을 안내해 주도록.”
“알겠습니다.”
“그럼 나는 업무가 많아서 이만.”
그녀는 그렇게 말한 뒤 도망치듯 로니아드 앞에서 사라졌다.
“응?”
갑작스레 서먹해진 이노의 태도에 로니아드는 의아했다.
‘보는 눈이 많아서 그런 걸까?’
분위기도 수상하고 이노의 태도도 이상하다.
이노와 함께 온 카디에게 물어보려 했다.
‘벌써 저기까지 가 버렸네?’
카디나는 이노의 뒤를 쫓아가고 있었다.
그러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돌려 로니아드를 보았다.
“역시 무슨 일이 있네요.”
앨리스가 이노가 사라진 방향을 보며 입을 열었다.
“참고로 저는 절대 아니에요!”
결백함을 외치는 충신처럼 말을 덧붙인다.
“공작령에 무슨 일이 있습니까?”
로니아드는 자신을 안내하는 집사에게 물었다.
과거 비서관으로 있으면서 얼굴을 익힌 노년의 집사다.
그 또한 로니아드의 변장한 모습을 알고 있다.
“예…….”
집사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앨리스를 보았다.
앨리스 때문에 말하기를 망설이는 것 같았다.
“괜찮네. 그녀는 이제 적이 아니야. 내가 책임지지.”
집사의 눈빛을 눈치챈 로니아드가 앨리스를 보증한다.
“…….”
그 말에 옆에 있던 앨리스가 묘한 눈으로 로니아드를 봤다.
“그게 사실은…….”
집사는 불안하긴 했지만 이내 로니아드에게 작금의 상황을 알렸다.
“로니아드! 도대체 어디서 뭘 하다 오신 건가요?!”
“아스카~! 연락도 없이 갑자기 온 거야? 나 놀라게 해 주려고?”
저택으로 가자, 로니아드 일행을 반긴 것은 이노가 아닌 제인과 아리아였다.
제인은 로니아드에게 달려가 그의 여기저기를 살피며 물었고, 아리아는 그새 아스카와 친해졌는지 서로 손을 맞잡고 꺄꺄거린다.
“그나저나 쟤는 왜 여기 온 거야?”
“폰테임의 영애도 그렇지만 다른 두 숙녀분은 누구시죠? 설명이 필요해요.”
그러다가도 앨리스와 이소레타 그리고 테노바를 보더니 하악질 하는 고양이처럼 군다.
‘이렇게 설명하는 것도 지치는군.’
로니아드는 귀찮고 지쳤지만, 간단히 한 달 동안 있었던 일들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지금 눈앞의 여자가 황녀……?”
“그 옆에는 엘프, 그것도 하이 엘프라고요?”
제인과 아리아의 말에 로니아드는 아스카 때처럼 테노바의 변신을 해제해 줬다.
“우와……!”
아리아와 제인은 신기하다는 듯 테노바를 보았다.
이종족이라고 해 봐야 하프였던 데이지만을 보았던 두 소녀다.
“후훗, 나 실버 엘프의 품격을 잘 감상하도록.”
테노바가 뽐내듯이 자연의 기운을 술술 풍긴다.
요정의 숲에선 몰랐지만, 인간 세계에서 엘프는 그 존재만으로도 강한 자연과 정령의 기운을 내뿜었다.
‘구경거리가 되어 기분 나빠 할 줄 알았는데 아니어서 다행이야.’
그나마 테노바가 사람들의 시선을 즐기는 별종 엘프여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나저나 폰테임 영애가 가문에서 가출했다는 걸 믿으세요?”
그렇게 테노바 구경이 마무리될 즈음, 아리아가 앨리스를 노려본다.
“말했잖아. 폰테임에서 얘를 악황제에게 시집보내려 한다고.”
결국 앨리스는 가문을 저버리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다.
“황후의 자리를 왜 거부하실까? 우리 폰테임 영애에게 아주~ 잘 어울릴 것 같던데? 누구는 어느 국왕의 왕비로 만들려고 수작까지 부리셨으면서?”
과거 아리아는 지금의 국왕에게 시집을 갈 뻔했다.
그리고 그 모략을 앨리스가 짰을 거라고 아리아는 확신하고 있었다.
과거의 앙금이 꽤 남아 있던 아리아는 여전히 그런 앨리스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심지어 여기는 아카데미도 아니다. 렌슬렛 공작령으로 아리아의 본진.
원수에게도 웃음을 팔아야 하는 사교계의 가면을 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그 일에 관해서는 정말 미안하게 생각해.”
앨리스의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 사과.
“미안하게 생각한다고오? 참나, 너는 그걸 사과라고 한 거니?”
아리아는 화가 풀리기는커녕 더더욱 짜증이 났다.
“아스카, 너도 뭐라고 말 좀 해 봐!”
답답해진 아리아가 아스카를 끌어들인다.
“나? 나는 왜?”
아스카가 어리둥절한 얼굴이다.
“너도 쟤한테 당한 게 많잖아?”
“내가 뭘 당해?! 쟤한테 당한 거 없거든? 내가 늘 이겼어!”
아스카는 억울하다는 듯이 아리아에게 말했다.
이상한 부분에서 승부욕이 생긴 모양이다.
“제인, 어떻게 생각해?”
아스카가 안 넘어오자 아리아가 제인에게 물었다.
제인이야말로 어떻게 보면 폰테임과 철천지원수다.
“…….”
제인은 앨리스를 보며 표정을 굳힌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대놓고 화를 내는 아리아보다 더욱 살벌했다.
갑자기 얼어붙은 분위기.
‘이것이 바로 후궁들 간의 암투 같은 건가?’
‘싸운다. 그것도 말로 싸워. 우와…….’
이소레타와 테노바는 이 모든 것을 흥미롭게 보고 있었다.
아리아와 제인의 태도에 앨리스가 힐끔 로니아드를 쳐다본다.
‘어떻게 좀 말려 봐요’라는 메시지를 담은 눈빛.
앨리스의 시선을 느낀 로니아드는 그녀의 눈을 보더니,
―어찌 되었든 네가 저지른 업보 중 하나다. 이참에 조금이라도 매듭지어 봐.
라고 텔레파시로 조언했다.
‘저 소시오패스 성향이 없어지지는 않았을 테니 진심으로 미안해하진 않겠지만.’
앨리스가 근래 많이 바뀌었지만, 인간의 본성은 어지간해선 바뀌지 않는 법.
로니아드도 앨리스의 진심 어린 반성은 바라지도 않았다.
‘그래도 아리아와 제인의 분은 조금이라도 풀어 줘야겠지.’
이 모든 히로인들을 안고 앞으로 나아가려면 피해자의 분을 조금씩이라도 풀어 줘야 했다.
‘그래도 좀 심하다 싶으면 중재해야지.’
다만 그 정도가 심하면 끼어들 생각이었다.
“로니아드 경.”
생각에 잠겨 있던 로니아드를 제인이 불렀다.
“말씀하세요, 제인.”
“저와 아리아 그리고 폰테임 영애, 이렇게 셋이서만 잠시 있어도 될까요?”
“……알겠습니다.”
살짝 걱정되었지만 로니아드는 고개를 끄덕였고, 그는 이소레타, 테노바, 아스카를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그녀들끼리 뭘 어떻게 해결할진 모르겠다.
‘그래도 설마 죽이기야 하겠어?’
제인의 성정이 악독한 것은 아니니, 일단 믿기로 하자.
“잠시 산책이나 갔다 오자.”
로니아드는 세 여자를 데리고 공작가 저택을 걸었다.
공작가의 사용인들 모두 로니아드를 비롯한 손님들에 대해 알고 있었기에, 별다른 제지 없이 돌아다닐 수 있었다.
다만 전과 다른 시선들이 좀 신경 쓰였다.
‘아마 나 때문에 이노가 곤욕을 치르고 있어서 그런 것일까?’
특히나 시녀들의 시선이 따갑다.
누구 때문에 자신들의 주인은 힘들어하는데, 그 원흉은 뻔뻔하게 다른 여자들과 돌아다니니.
‘내가 생각해도 천하의 나쁜 놈이군.’
지금 일이 끝나면 몰래 이노에게 가 볼 생각이었다.
그렇게 산책을 하는데 갑자기 이소레타가 그에게 말했다.
“그나저나 로니, 제인은 왕녀다.”
“어, 맞아. 근데 갑자기 그건 왜?”
“그리고 나는 황녀다.”
“그렇지.”
‘그게 뭐?’
로니아드는 이소레타를 보았다.
이소레타는 뭐가 불만인지 주둥이가 삐쭉 튀어나왔다.
“근데 왜 왕녀에게는 존대를 하고 황녀인 나에게는…….”
“……그게 불만이었냐?”
“맞아, 나도 인간 세계의 기준으로는 왕녀야!”
옆에서 듣고 있던 테노바도 이소레타의 말이 일리 있다는 듯 따지기 시작했다.
‘이건 또 어떻게 피해 가야 하나.’
그렇다고 저 둘에게 갑자기 존대해 주자니, 어색해서 미칠 것 같고.
“그게 오히려 더 좋은 거 아닌가?”
그때, 아스카가 끼어들었다.
“존대하지 않는다는 것은 한마디로 격 없이 편하고 가깝다는 뜻이잖아?”
“뭐, 비슷해.”
아스카의 뜻밖의 지원에 로니아드도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반대로 그만큼 존중에서 멀어졌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이건 굳이 말할 필요 없겠지.
“가까우니까 그런 거라고?!”
“그렇다면 이게 좋은 건가?”
이 단순한 두 여자는 곧바로 만족하더니 헤실헤실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