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necromancer in a fantasy game RAW novel - Chapter 111
111
망령들의 숫자를 보곤 전투가 불가피하다고 판단했는지, 주교후가 결단을 내렸다.
“전원, 하마한다! 밀집 대형!”
그의 외침에 성전사들이 일제히 말에서 내리곤, 주교후를 중심으로 신속하게 대형을 구축했다. 자연히 토드 일행도 대형의 안쪽으로 들어온 데 비해, 오히려 이스라는 밖으로 뛰쳐나갔다.
“이봐! 돌아와라!”
이에 파멸의 기사는 장검을 뽑아 든 채 소리친다.
【하, 하! 하. 어찌 기사 된 자가 전투를 앞두고 말에서 내릴 수 있단 말이냐!】
이스라는 대형으로부터 동떨어진 위치에 홀로 섰다.
【그건 명예롭지 못한 일! 본인은 말 위에서 적들을 상대할 테다!】
그녀는 타고난 용장이다. 방진 틈바구니에 끼어서 싸우는 성향과는 거리가 멀었다.
덕분에 쇄도하던 유령 떼가 두 갈래로 나누어진다. 일부는 이스라를 향해 하강했다.
【오너라! 유령들의 군세여!】
파멸의 기사는 장검을 휘두르며 유령들의 신형을 갈라버렸다. 진녹색 빛이 어린 장검은 영체조차 거침없이 찢어발긴다.
이스라는 마치 풍랑을 만난 물고기라도 된 것마냥 날뛰었다.
‘근데, 너무 많지 않나?’
평범한 유령 무리였다면 굳이 토드가 주교후를 만류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스라가 검으로 베어 넘겨도 들러붙는 놈들이 훨씬 많았다. 아무리 파멸의 기사를 헤집어대도 끄덕 않자, 놈들은 말을 노렸다.
창칼이 마갑의 틈을 쑤시고, 화살이 말의 다리와 머리를 헤집었다.
【어, 어엇?!】
말이 고꾸라지자 덩달아 이스라의 몸도 유령들의 틈바구니로 기울어진다. 비록 칼 부딪치는 소리가 계속 들렸지만, 그녀는 유령들에게 파묻혀 허우적댔다.
“구해야 하지 않을까요.”
산시아가 발톱을 꺼내려 들기에, 토드가 만류했다.
“아마 괜찮을 겁니다. 갑옷에 생채기가 좀 생기긴 하겠지만, 어차피 유령들론 파멸의 기사를 죽이진 못할 겁니다.”
유령들의 레벨은 30에서 40 정도를 웃돈다. 문제가 있다면 숫자가 어마어마하게 많을 뿐.
“그럼 저희도 여길 나가서 합세를···”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그나마 이스라라서 버틸 수 있지요. 우리가 이 밖을 나갔다간 온몸이 갈기갈기 찢어질 겁니다.”
이제 유령들은 방진을 향해 접근했다. 성전사들과 충돌하기 직전, 광륜표를 거머쥔 주교후가 읊조렸다.
“청컨대, 나의 신앙을 방벽 삼아 여기 현현하소서.”
쩡―!!
성전사들 앞에 빛의 장벽이 떨어진다. 부딪친 유령들은 소거되고, 비집고 들어오려는 개체들은 불타 녹아내린다.
그래도 원체 수가 많아 일부 개체가 장벽을 헤집고 침투했으나, 성전사들이 철퇴로 응징했다.
대번에 기고만장해진 마르커스가 지껄였다.
【보았느냐? 이게 악을 멸하는 구주의 빛이다. 네 기사는 괜히 만용을 부렸다가 화를 입은 것이야.】
토드가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마르커스. 실례지만, 지금 불타고 계십니다.”
치이익···!
마르커스는 이따금 심문관 겸 둘라한이라는 자신의 처지를 망각하는 것 같았다. 그는 애써 김이 피어오르는 투구를 눌러썼다.
【아직 이 정도는 견딜 만하다. 이 또한 구주께서 내게 내리는 시련일 지어니!】
방벽의 신성력은 경계 쪽에 집중된 데다가, 그나마 둘라한이라 버티는 건가.
허투루 주교후 자리에 오른 건 아닌 모양이다. 토드도 살갗이 타들어 갈 정도는 아니었으나, 섬광이 눈에 거슬렸다.
‘그래도 아직은 밖으로 나가면 안 되겠지.’
토드조차 저 유령들의 무리에 휩쓸렸다간 목숨을 장담하기 어렵다. 아직 전격술사에게 사용한 영혼 목걸이 스택이 회복되지도 않았고.
토드는 눈을 가늘게 뜨고 유령들을 유심히 관찰했다.
이들은 마치 맹목적인 분노에 차 있는 것처럼 보인다.
망자가 생자를 향해 적의를 드러내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지만, 분명 관리는 와일드 헌트에 휘말린 이들이 행렬의 일부가 되었다고 했었다.
‘죽이려고 달려드는 데 정도가 있을 순 없겠지만, 이건 거의 발작에 가까운 수준인데.’
때마침 망자들 틈바구니에 깔려있던 이스라가 악다구니 끝에 외쳤다.
【블루레이!】
영마는 제 주인의 부름에 응답했다. 찢어지는 귀곡성과 더불어 불꽃에 휩싸인 발굽이 유령들을 짓뭉갰다.
잽싸게 영마에 올라탄 이스라는 열이 받았는지, 사방을 누비며 유령들을 믹서기처럼 갈아버렸다.
‘역시 이쪽으로 몰려드는 숫자가 훨씬 많아.’
이스라의 어그로도 만만치 않을 텐데, 그럼에도 유령들의 우선순위는 주교후를 비롯한 성전사단이었다.
문득 토드는 성전사들이 하나같이 목에 광륜표를 내걸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신성력을 끌어올리니 어둠 속에서도 광륜표가 붉게 타오르며 발광한다.
‘저놈들, 신성의 빛에 적개심을 품고 있군.’
유령들은 형체가 녹아내리는 걸 아랑곳하지 않고, 끊임없이 방벽에 머리를 박아댔다.
‘드루이드 신앙이 횡횡했던 곳이라 했었지. 태양 교단이 과거에 이교는 닥치는 대로 때려잡았으니 눈이 뒤집힐 수밖에.’
벌써 방벽에 녹아내린 유령만 해도 수백 기가 넘을 것이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몰려든다.
키이잉――!!
또 뿔나팔.
거의 인해전술을 방불케 하는 유령들의 물결이었다. 앞에서 무쌍을 찍던 이스라도 질린 듯한 의념을 보내왔다.
【토드! 이놈들, 끝이 없는 것 같네! 벌써 본인이 쓰러트린 놈들만 해도 100은 넘을 것을, 뭔가 이상하지 않나?】
‘제가 보기에도 그렇습니다.’
게다가 아까부터 이스라가 유령들을 쓰러트렸음에도, 거둔 업이 전무했다.
영멸, 혹은 처치 판정이 아니라는 뜻.
이놈들은 모종의 기믹이 있는 게 분명했다.
이렇게 끝없이 몰려오는 것들을 무력화해봤자, 소용이 없다.
토드가 광륜표를 움켜쥔 주교후를 향해 소리쳤다.
“예하! 이렇게 대치해봤자 소용없습니다! 방벽을 거두셔야 합니다.”
“방벽을 거두라니! 성전사들을 저 악귀들의 먹이로 던져주자는 거냐?!”
“이미 눈치채지 않으셨습니까. 저 유령들이 끊임없이 충원되는 본산은 따로 있습니다. 지금 상태로 버텨봤자 유령들은 끝없이 몰려올 겁니다.”
“······.”
끊임없이 달궈지는 광륜표 탓에 주교후의 손에는 물집이 잡혀 있었다. 그는 표정을 일그러트린 채로 쉽사리 광륜표를 놓지 않았다.
“제가 일찍이 와일드 헌트에 대해 경고하지 않았습니까. 단순한 유령 무리가 아니라고요. 이번에도 제 첨언을 무시하시렵니까?”
과도한 신성력은 망자뿐만 아니라, 그걸 남용하는 필멸자의 살갗조차 공평하게 태운다. 점점 주교후의 손이 뭉개지고 있었다.
이미 수백을 넘는 유령이 소멸했음에도, 수백이 또 몰려온다. 점점 방벽의 강도가 약해지면서 침범하는 유령들도 늘어났다.
아직까진 성전사들이 앞에서 버텨주곤 있지만, 그간 누적된 피로 탓에 점점 버거워하는 모습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이스라 정도의 탈인간급 무력이어야 유령들을 학살할 수 있지, 성전사들도 필멸자에 불과했다.
“자칫하다간 예하를 비롯해 성전사단까지 여기서 전멸할 수도 있습니다.”
이를 갈던 주교후가 낮게 되물었다.
“···무슨 짓을 할 작정이냐?”
방울을 집어 든 토드가 답했다.
“저들과 대화를 해보겠습니다.”
“정녕 네 눈엔 저 악의에 가득 찬 무리가 보이지 않더냐! 저런 것들과 대화가 통할성싶은가?”
“예하. 저는 사령술사입니다. 새삼스럽지만 혼령과 소통하는 게 제 본분이랍니다. 하물며 성난 황소도 잘 타이르면 진정시킬 수 있는데, 영가라고 못할 것도 없지 않습니까.”
우리 소통해요.
주교후로선 토드의 비유가 와닿지 않았는지, 이마에 핏줄이 불거졌다.
“그걸, 지금 말이라고···!”
토드의 얼굴에서 미소가 가셨다.
“예하, 이번엔 제 말을 따르셔야 합니다. 저 유령들은 신성의 빛에 계속 이끌리고 있습니다. 예하의 깊은 신앙심과 별개로, 천상의 권능을 끌어오는 몸뚱이에는 한계가 있지요. 예하가 이대로 성력을 모두 소진하시면 끝입니다.”
주교후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광륜표를 부여잡았다.
이건 시험이다. 이건 구주께서 내 신앙을 시험하기 위해 보낸 간교한 술책이 틀림없었다.
“어차피 방벽을 거두지 않더라도 이대로 가다간 전멸입니다. 적어도 제 조언을 따르고, 목숨은 건지시겠습니까? 아니면 나머지 성전사들도 죽음으로 내몰아, 저 유령들과 함께 걷도록 하시겠습니까?”
그는 눈을 질끈 감았다.
“방벽을 거두면. 이대로 네놈이 저들과 교섭하겠다고?”
토드의 얼굴에 다시 미소가 깃들었다. 사령술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잠시면 됩니다. 거기에 휘하 성전사들더러 광륜표는 잠시 갑옷 안에 넣어서, 보이지 말라고 지시하세요.”
딸랑···!
방울을 흔듦과 동시에, 토드는 휘파람을 불기 시작했다.
소법을 부는데, 어째 대역폭을 맞추는 게 쉽지 않다. 여럿의 목소리가 섞인 것인지, 이렇게 복잡하게 얽힌 형태는 토드도 처음 느꼈다.
휘파람을 불다 말고, 토드가 말했다.
“그리고 가급적이면 「거룩한 장벽」 말고, 성전사들에게 「보호의 성사」와 「광휘 어린 무구」를 걸어주세요. 그게 장벽 같은 대범위 성사를 쓰는 것보다 효율이 나을 겁니다.”
도저히 못 참았다.
아직 네 짬밥엔 그렇게 펑펑 「거룩한 장벽」 써대면 안 된다고.
사제는 사제답게 광역기부터 날리고 볼 것이 아니라, 버프 걸고 힐 돌리면서 버티다가 패턴이나 상황 파악된 이후, 결정적인 순간에 주요 스킬을 써야 될 거 아냐.
그래도 주교후 정도면 레벨 60 전후의 고위 성직자이나, 토드가 보기엔 아이템이나 육성 세팅이 완벽하지 않은 상태.
사령술사의 입에서 교단에서 주교급에만 내려오는 고위 성사의 명칭이 술술 나오니, 카셀미어 주교후는 어안이 벙벙했다.
“네, 네놈이. 그건 어떻게.”
이건 조금 새삼스러운 반응인데.
‘나더러 쪼개졌다고 떠들더니. 정작 내 부캐가 안톤이었던 건 모르나 보네?’
아무래도 주교후가 자신에 대해 아는 정보는 단편적.
토드는 어깨를 으쓱였다.
“설명은 나중에 하겠습니다. 일단 불빛부터 꺼주시겠습니까?”
눈을 질끈 감았다가 뜬 주교후가 외쳤다.
“전원, 광륜표를 집어넣는다!”
난데없는 주교후의 지시에 성전사들은 당황한 눈치였다. 주교후가 자진해서 광륜표를 풀어헤치자, 성전사들도 뒤따랐다.
세차게 방울을 울려댄 토드는 그들 사이를 헤집고 나와, 유령들과 마주했다.
일대를 감싸던 빛이 사그라들고, 유령들은 흉흉한 기세를 흘리며 몰려들었다.
딸랑, 딸랑. 딸랑!
방울이 쉴 새 없이 울려 퍼진다.
그토록 사납게 달려들던 게 무색할 정도로 유령들은 우두커니 서서 토드 일행을 응시했다.
순식간에 주변이 잠잠해지자, 토드가 나직이 외쳤다.
“이 중에 이분들을 통솔하는 터주, 인도자, 우두머리, 혹은 대장이신 분이 있으십니까?”
곧 유령들이 하나둘씩 입을 열었다.
【우리에겐 대장이 없다.】
【우리는 모두 우리.】
【우리가 곧 하나.】
토드가 빙긋 웃었다.
“아하, 그러시군요.”
군령(群靈)이군. 수십의 영혼이 뒤섞여, 하나의 거대한 자아로 기능하는 존재다. 토드가 우연히 만들어낸 살점 거인의 자아도 비슷한 방식이었다.
대개 저런 존재들이 그렇듯, 퇴화하거나, 뒤틀리는 경우가 잦다. 한마디로 미친놈일 확률이 높다는 뜻.
‘하필이면 영가가 날뛰기 좋은 환경에, 시간대까지 최적이야.’
평소보다 적어도 3배 이상 강해진 상대와 싸우려던 것이다.
“저는 사령술사 토드 셰우드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품은 미련을 풀어드리고자 합니다.”
만약 악령 무리로만 이루어진 군령이었다면, 토드도 두말할 것 없이 전력을 다해 영멸시켰을 것이다.
그러나 저들이 띠는 업은 복합적이다. 미세하게 눈물의 업이 짙게 배어난다.
그 말인즉슨, 일찍이 이스라가 계약에 응했던 것처럼, 저들도 교섭할 여지가 있다는 것.
그런데 유령들은 입가를 찢더니, 명백한 비웃음을 흘렸다.
【왜 우리가 네 말을 들어줘야 하지?】
【저 늙은 광신도의 빛은 희미해졌다.】
【마음에 안 드는 것들이야.】
이에 분개한 주교후가 응수했다.
“이 사악한 악령들! 구주의 신성을 거스르는 불경한 것들아! 너희는 마땅히 재로 돌아가야만 한다!”
유령들이 낄낄거렸다.
【우리는 네 알량한 빛이 두렵지 않아.】
【언젠가 네 불빛은 꺼지겠지만.】
【우리는 계속 돌아올 거다.】
턱이 뜯긴 용병단의 형체가 주교후를 가리켰다.
【너희도 우리와 함께 달리게 될 거야.】
그토록 결연하던 성전사들조차 수백의 유령이 조소하자, 점점 위축되는 눈치였다.
그들의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울수록, 반대급부로 유령들의 안광은 더욱 선명해진다.
토드가 빙긋 웃으며 끼어들었다.
“아무래도 발원지가 이곳이 아닌 다른 곳에 있으니, 아무리 신성력을 퍼부어대도 끄떡없다는 거죠?”
【잘 아는데?】
【오오, 사령술사. 헛똑똑이!】
【할 말 끝났지.】
슬슬 무기를 집어 들려는 유령들을 향해, 토드는 넋의 거울을 꺼내 들었다.
달그락.
“하지만 짜잔, 이건 어떨까요?”
사아아···.
열린 손거울 첩에서 사무치는 한기가 흘러나온다.
“저 너머에 제가 잘 아시는 분이 계시거든요. 평소에 검은 망토 입고 다니시는. 그분이라면 발원지고, 그런 제약이든, 뭐든 간에, 그냥 낫으로 끊어버릴 수 있으실 텐데.”
명계까지 직접 통하는 다이렉트 연줄이라고 들어보셨나?
신성력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대가리부터 박아대던 유령들이, 도리어 뒷걸음질 쳤다.
【싫어···. 싫어···.】
【추운 곳. 한기. 목에 드리워진 그림자. 종막.】
【거기로 끌려가면, 달릴 수 없어!】
머리를 부여잡고 흔들어대거나, 갑자기 고장 난 것처럼 단어를 늘어놓는 등, 격한 반응이 나온다.
토드가 빙긋 웃었다.
“지금 계약하시면 살려는 드릴게요.”
살려는 드릴게.
직접 죽여서 업을 벌 수 없다는 건 알았으니, 대신 나랑 같이 일이나 좀 하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