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necromancer in a fantasy game RAW novel - Chapter 110
110
관리의 이야기를 주교후에게 전달했지만, 그는 냉소로 일관했다.
“와일드 헌트? 그건 민간에서 전승되는 속설에 불과하다. 지금은 이성의 시대이거늘, 그런 미신 따위를 믿는단 말인가?”
“어찌 그리 단언하십니까. 혼란스러운 시기엔 온갖 징조가 나타나는 게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닙니다.”
“간교한 혀로 우리의 신앙을 흔들지 마라.”
토드는 차분하게 대응했다.
“저는 예하의 신앙을 존중합니다. 당신들과 신의 사이를 이간질하거나, 기만할 의도는 없습니다. 다만 제빵사나 대장장이가 각기 자신들만이 해낼 수 있는 역할이 있듯이, 성직자와 사령술사 간에 관여하는 분야가 다른 것뿐입니다.”
주교후의 표정이 삐딱하게 일그러진다.
“사령술사가 할 수 있는 일이라. 멋대로 연고 없는 시신을 훔치고, 방치된 무덤을 도굴하는 것이?”
마냥 그의 비아냥을 흘려들을 순 없는 게, 토드도 내실이 부실하던 쪼렙 시절에나 하던 짓들이다. 토드는 유연하게 화두를 이어나갔다.
“교회에선 와일드 헌트 같은 심령 현상을 단순히 미신으로 치부할지 모르겠으나, 흑색 학파는 이를 상당히 위험한 부류의 징조로 해석합니다.”
그나마 다른 ‘징조’들에 비하면 얌전한 거지, 안전한 건 아니다.
“아예 숲을 우회하거나, 여명까지 기다린 뒤에 통과해야만 합니다.”
“불가하다. 그깟 유령들 따위에 시간을 지체해서는 안 돼.”
눈썹을 추켜세운 토드가 되물었다.
“이미 해가 떨어진 지 오래입니다. 와일드 헌트와 맞서면 적지 않은 손실이 있을 텐데요.”
주교후는 광륜표를 거머쥔 채 뇌까렸다.
“주제넘게 나서지 마라. 사령술사. 네놈이 내 앞에서 불경한 지식을 잘만 떠벌이고도 살아있는 건, 중앙 교구의 전언 덕분이다. 내가 보기엔 그 악령 무리나, 네놈이나, 쓸어버려야 하는 존재인 건 마찬가지야.”
아무래도 주교후의 완고한 성미를 꺾는 게 쉬워 보이진 않는다. 게다가 주변의 성전사들도 은연중에 불편한 심기를 내보이고 있었다.
“엄밀히 네놈은 이송되는 처지임을 자각해라. 동부 권역을 벗어날 때까진, 멈추지 않는다.”
토드는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정 예하의 뜻이 그러하시다면.”
주교후는 곧장 안장 위에서 눈을 감은 채 기도에 전념했다. 그의 손에 걸린 광륜표가 흐릿하게 일렁인다.
돌아온 토드를 향해 이스라가 말했다.
【교회에 속한 자치고 꽉 막히지 않은 작자가 없는 법이네. 가뜩이나 저들은 다른 이들의 말에도 귀 기울이지 않는데, 하물며 사령술사인 자네의 조언을 듣겠나?】
그사이 회복을 받은 말은 이전처럼 축 늘어지지 않고 힘차게 투레질을 쳤다. 토드는 녀석의 갈기를 쓸어내리며 답했다.
“주교후는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이스라가 투구를 기울였다.
【두려워한다고? 그랬다면 강행 돌파를 고집할 이유가 없지 않나?】
“사람은 자신이 알지 못하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저는 와일드 헌트라는 현상과 습성에 대해 잘 알지만, 주교후 같은 성직자들에겐 불가해한 미지겠죠. 그런 지식을 교회에서 가르치진 않을 테니까요.”
파멸의 기사는 팔짱을 낀 채로 성전사단을 응시했다.
【흐음, 확실히. 저들의 불꽃이 미약하게 흔들리고 있긴 하네.】
“주교후는 차라리 정면으로 부딪쳐, 불확실성을 덜어내고 싶은 겁니다. 그는 신앙심도 투철한 데다가, 휘하의 성전사단도 있죠. 유령 무리쯤이야 여타 악령을 구마하듯 퇴치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거겠죠.”
이스라가 감탄했다.
【오히려 두려워하기에 맞서려 한다고. 일리가 있는 말이네! 생각해보니 기사도 전집의 사례 모음에도 압박감에 대응하는 무인들의 태도가 다르다는 식으로 묘사했었지.】
곰곰이 생각해보던 그녀가 되물었다.
【자네는 주교후의 속내를 잘 꿰뚫어 보고 있었군. 허면 저자가 자네의 조언을 무시하리란 것도 익히 짐작한 바 아닌가?】
말에 올라탄 토드는 어깨를 으쓱였다.
“주교후에게 사전 고지를 해둔 셈입니다. 나는 미리 위험성을 알고 경고는 해뒀다. 그러나 당신이 만용을 부렸으니, 대가를 치르는 건 오롯이 당신의 탓이라는 걸.”
【구태여 그런 번거로운 짓을 할 필요가 있나?】
토드가 미소 지었다.
“엄연히 다르죠. 제가 미리 통보를 해주지 않았다면, 저들의 입장에선 우리도 덩달아 휘말린 것처럼 보일 겁니다.”
성전사들은 마을 주민들이 갖다 준 횃불마저 마다하고 말 위에 올라탔다.
“다만 와일드 헌트와 직접 조우해보면, 앞으론 제 말을 쉽게 흘려듣지 못하겠죠.”
【하, 하! 하. 자네가 그렇게까지 말할 정도라니. 기대되는군!】
다른 이들의 시선을 고려하여 자제하던 안광이 세차게 타오른다.
【마땅히 사냥도 무예를 단련하기 위한 일환이리라! 인간을 거두어 가는 사냥꾼들을 도리어 사냥하는 것도 나름 좋은 울림이겠어.】
주교후를 필두로 성전사들이 박차를 가했다. 말들의 울음소리가 마을의 고요를 깨트렸다. 마치 숲 너머에 도사리고 있는 것들더러 들으라는 것처럼 요란한 소음이었다.
문명의 희미한 불길을 등지고, 새카만 어둠이 드리워진 곳을 향해 나아간다.
적어도 토드는 자신을 비롯해 일행의 안위는 챙길 자신이 있었으나, 저 게걸스러운 아가리에 얼마나 삼켜질 진 의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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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뭇가지 사이를 스치는 바람이 속삭임처럼 메아리친다. 전력 질주를 하기엔 숲이 꽤 울창한 탓에 성전사들은 수시로 주위를 살폈다.
가까이 말을 몰고 온 산시아가 속삭였다.
“스승님. 많은 시선이 느껴져요. 괜히 숲의 분위기 때문에 긴장돼서 그런 걸까요?”
토드는 고개를 저었다.
“착각이 아닙니다. 이곳은 기운이 왕성하군요. 비단 유령이 아니라 다른 것이 튀어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곳입니다.”
드문드문 길의 흔적이 보이는 것으로 미루어 봤을 때, 마차가 다니기에도 충분한 길목이었을 것이다.
마을의 관리는 와일드 헌트가 지난달 즈음에 나타난 것으로 추측했으니, 불과 한 달 사이에 수풀들이 자라나 수백 년간 왕래가 이어진 통로를 덮어버린 것이다.
“와일드 헌트는 전쟁이나 재난을 알리는 징조이기도 하지만, 그들이 지나간 곳은 풍요로워진다고도 하더군요.”
산시아는 얼굴에 드리워진 가지를 밀어내며 물었다.
“이렇게 초목이 울창하게 우거진 것도, 와일드 헌트의 영향일까요?”
“아마 그럴 겁니다. 원래 숲은 원초적인 생명력이 잉태되는 동시에···”
후두둑-!!
어디선가 수풀이 요란하게 흔들리고, 정체 모를 동물의 비명이 울려 퍼진다.
“죽음도 만연한 공간이지요. 와일드 헌트는 그런 양면성을 상징하는 징조입니다.”
경계심 때문에 날이 바짝 선 탓인지, 산시아의 눈동자에도 안광이 맺혀 있었다.
“스승님 말씀대로 와일드 헌트가 숲에 생명력을 가져다줬을진 몰라도, 저희에게선 거두어 가려는 것 같네요. 스칼바냐르에서 봤던 정령들과 달리, 이들은 호의적이지 않아요.”
토드는 슬슬 마력을 끌어올리며 답했다.
“원래 와일드 헌트뿐만 아니라, 기본적으로 정령들은 인간에게 호의적이지 않습니다. 숲은 생명과 죽음을 주고받으며 유지되는 공간인데, 인간은 거둬가기만 하니까요. 그들에겐 눈엣가시나 다름없죠.”
말들이 눈에 띄게 불안해했다. 처음에는 뒤통수가 따끔거리는 정도였던 것이, 이제는 팔에 닭살이 돋을 정도로 시선이 강렬해졌다.
불안을 견디다 못한 주교후가 소리쳤다.
“대오를 유지하고, 속도를 올린다! 서둘러 숲을 빠져나가···”
돌연 머리카락이 곤두섰다.
‘온다.’
키이이잉―――!!
호각을 부는 듯한 날카로운 뿔나팔 소리.
마치 울부짖는 사람의 비명을 짐승이 어설프게 따라 하는 것만 같아 극도로 불쾌했다.
동시에 사방에서 말발굽과 사냥개들 짖는 소리가 쏟아져 나온다.
귀가 먹먹해질 정도의 굉음에 말들이 놀라 발광했다. 토드 역시 가까스로 고삐를 거머쥐곤 황소처럼 날뛰는 말을 진정시켰다.
마치 찬물이라도 끼얹은 것처럼 온몸이 벌벌 떨렸는데, 토드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짜릿한데. 나도 어지간하면 귀곡성에 익숙해져서 몸에 별 반응이 없는데. 이건 좀 센걸?’
자신의 저항력을 뚫고 들어올 정도라면 틀림없이 ‘공포’보다도 상위에 해당하는 상태 이상이다. 와일드 헌트를 잡아서 경지가 오르면, 관련된 은혜를 어머니께서 내려주실까? 군침이 싹 돌았다.
그나마 토드가 이 정도였으니, 성전사들은 잠시 얼빠진 것처럼 넋을 놓고 있었다.
바로 옆의 수풀이 들썩인다.
늑대에 버금가는 몸집의 짐승이 말을 향해 도약했다.
만약 말에 탄 이가 평범한 기수였다면 맥없이 당했겠지만, 여기 있는 이들은 전원 성전사.
신속하게 뽑힌 칼날에서 섬광이 번쩍였다.
그 짧은 찰나에 말을 왼쪽으로 틀고, 성전사는 짐승을 향해 칼날을 내질렀다.
콰직!
―끼이익!!
곳곳에서 짐승들의 습격이 이어졌다. 성전사들은 침착하게 도리깨나 철퇴를 휘두르며 골통을 깨부쉈다. 그들의 무기에 맺힌 신성력 탓에 눈이 부신지, 이스라는 안광을 가늘게 뜨고 있었다.
【흠! 사냥개들을 먼저 풀어놓은 건가!】
“사냥개치곤 덩치가 꽤 크지 않습니까?”
토드의 옆으로 녹색 궤적이 스쳐 지나간다. 단면이 예리하게 갈라진 짐승의 몸뚱이가 바닥을 뒹굴었다.
검을 거둔 파멸의 기사가 히죽 웃었다.
【그래서인지 베는 맛이 있군.】
바닥을 훑어보는 데 가만 보니 죽은 사냥개들의 몸뚱이는 얼마 못 가 잿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그걸 본 토드가 혀를 찼다.
‘와일드 헌트가 부리는 사냥개라 그런가. 사체를 안 남기네.’
영양가가 없는 놈들이다. 그런데 점점 튀어나오는 숫자가 늘어나더니, 급기야 수풀 속에서 화살이 날아든다.
이스라는 허공에서 화살을 낚아챘는데, 건틀렛에 힘을 주자 부러지지 않고 연기가 되어 흩어졌다.
【기묘한 놈들이군. 화살마저 사라진다니.】
“저들은 현실과 명계를 오가는 존재들이니, 자신들의 무장도 거기서 만들겠죠. 당신의 검처럼요.”
장검을 휘둘러 화살을 쪼개는 것도 귀찮았는지, 이스라는 토드의 곁에 다가와 갑옷으로 화살을 받아냈다.
【어찌 되었든 간에, 저것들이 성가신 놈들이라는 건 틀림 없네. 모습을 드러낼 생각은 없으면서, 개들만 내보내고 멀리서 활만 쏘아대다니! 비열한 놈들!】
그렇다고 수풀 너머로 저들을 추적하자니, 섣불리 위치를 이탈했다간 대오가 무너진다.
점점 쏟아지는 화살이 거세지자, 견디다 못한 주교후가 목청을 높였다.
“여길 빠르게 벗어난다! 대오를 유지하라!”
그의 호령에 다들 고삐를 바짝 당겼다.
비록 숲길에서 질주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으나, 선두에 선 주교후가 곤봉에서 불길을 뿜어대며 걸리적대는 수풀이나 뿌리를 태워버렸다.
‘화끈한데. 정치질로 따낸 주교후 자리는 아니라는 건가.’
덕분에 빠른 속도로 숲길을 주파했지만, 달리는 와중에도 토드는 찜찜한 기분을 떨쳐내지 못했다.
그렇게 많은 사냥개를 풀어놓은 것치곤, 너무 수월하게 빠져나간 게 아닌가?
오솔길을 벗어나 상대적으로 트인 곳에 이르러서야 주교후는 곤봉을 거둬들였다.
“낙오자는 없나?”
그의 물음에 재빠르게 후열을 헤아린 디터가 답했다.
“없습니다, 예하.”
숨을 돌린 주교후가 발갛게 달아오른 광륜표를 어루만졌다.
“구주의 보살핌이 있었군. 악령들의 마수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으니···”
아무리 봐도 벗어난 것 같진 않다.
게다가 자신들은 숲에서 완전히 이탈한 것도 아니다. 안도하기엔 이른 시점이었다.
【정말 이게 끝인가? 조금 싱거운 감이 없지 않아 있다만.】
“아뇨. 이스라. 사냥개들의 역할을 생각해보세요.”
대개 사냥터에 동반하는 개들은 사냥이 용이하게끔 사냥감을 지치게 만들거나, 특정 지점으로 유도하도록 훈련되어 있다.
“제가 보기엔 그들이 우리를 여기로 몰아넣은 것 같습니다.”
유심히 귀 기울여보던 산시아가 되물었다.
“하지만 스승님, 그렇게 시끄럽던 소음이 잦아들고 있어요. 저희도 제법 숲길을 빠르게 지나간걸요. 정말 따돌린 게 아닌가요?”
분명 예의 요란하던 말발굽 소리는 차츰 멀어지고 있긴 하지.
“산시아, 흔히 영가들이 산 자와는 반대로 행동한다는 얘기, 들어보셨나요?”
토드는 향로를 꺼내 들었다.
“와일드 헌트도 마찬가지입니다. 오히려 소리가 작아지고 있다는 건··· 반대로 가까워졌다는 겁니다.”
그와 동시에 한 성전사가 허공을 가리켰다.
“예, 예하, 하늘에!! 하늘에!”
모두의 시선이 성전사의 손끝을 따라갔다.
달빛조차 짙은 구름에 가려져, 어두운 밤이었음에도 유난히 하늘이 밝다.
망자가 흘리는 안광은 희미하나, 그 숫자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무수하다면 밤하늘을 밝히기엔 충분했다.
하늘에서 온갖 종류의 망령들이 토드 일행을 향해 내달리고 있었다. 선두에는 활을 든 엘프들뿐만 아니라, 전차에 탄 기수, 뼈만 남은 전령, 마녀, 고대의 군단병까지, 시대와 종족, 형태를 가리지 않고 온갖 종류의 망자들이 섞여 있었다.
인지를 아득히 초월한 광경에 주교후조차 입을 다물지 못하는 와중, 토드는 면면에 함박웃음을 흘렸다.
‘이야, 저걸 다 영멸시키면, 업이 얼마야?’
성전사들이 보기엔 악령의 군세가 내려오는 절망적인 광경이었으나.
사령술사 입장에선 복덩어리들이 전속력으로 굴러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