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necromancer in a fantasy game RAW novel - Chapter 132
132
생각외로 연무장이 광활하다. 그래도 스킨 워커들의 기동성이라면 금방 찾아낼 수 있으리라 판단했다.
그런데 하수인들의 눈앞엔 관들만 놓여있고, 토드는 온데간데없었다.
‘없어?’
혹시나 관을 모두 뒤져봤지만, 하나같이 비어 있었다. 이마를 좁힌 산시아는 두 스킨 워커를 양옆으로 퍼뜨렸다.
그녀는 하수인을 통해 주변의 횃불이 꺼져있음을 확인했다.
‘어둠 속에 숨으셨구나.
호흡을 가다듬은 산시아가 눈을 치켜뜨자, 스킨 워커들에게도 흐릿한 안광이 맺혔다.
어둠이 트이고, 컴컴한 연무장이 흑백으로 얼룩진 음영으로 보인다.
하수인들은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주변을 탐색했는데, 광견병에 걸린 것처럼 수시로 목을 비틀어댔다.
이를 관조하던 산시아는 현기증을 느꼈다.
‘정신이 없어.’
아무래도 자신의 육신이 아닌 하수인을 거쳐 권능을 발현하는 건 생소한 일이었다.
게다가 민감한 자신의 감각과 달리, 상대적으로 저하된 망자의 감각에서부터 오는 괴리감도 극심했다.
그래도 하수인의 시야에 아른거리는 인영이 포착되었다.
몸을 웅크리고 있어 제대로 가늠하긴 어려웠으나, 고작 한 구라면 스킨 워커에게 손쉬운 사냥감이었다.
‘아냐. 스승님이라면 혹시 몰라. 미끼를 던져놓고 끌어들이는 걸 좋아하시는 분이니, 경계를···’
─캬아악!!
그러나 주인의 갈등이 무색하게, 이미 하수인은 눈이 돌아간 뒤였다. 놈은 거침없이 전방을 향해 내달린다.
산시아가 이를 갈았다.
“망할 놈 같으니!”
이미 멈춰 세우기엔 늦었다. 그렇다면 힘을 실어, 상대를 단숨에 짓이길 작정이었다.
스킨 워커가 눈앞의 망자를 향해 발톱을 바짝 세웠다.
촤악!
썩은 왼팔이 찢겨나갔지만, 도리어 망자가 늑대인간에게 달려들었다.
옆구리를 물어뜯기니 광분한 하수인은 망자의 몸통을 마구 휘갈겨댔다.
상반신이 거의 뜯겨나가는 와중에도 망자는 집요하게 늑대인간을 물고 늘어졌다.
‘쓸데없는 곳 말고, 머리를 노려!’
산시아의 명령에 비로소 스킨 워커는 망자의 머리통을 뽑아버렸다. 그제야 무력화된 망자가 움직임을 멈췄다.
스킨 워커의 기량이라면 단숨에 망자를 쓰러트려야 했지만, 놈의 충동적인 기질 탓에 조종이 까다롭다.
─크르릉!!
자신의 육신에서 피가 흐르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지, 스킨 워커는 낮게 으르렁거렸다.
망자의 이빨과 발톱이 헤집은 자리에서 선혈이 샘솟고 있었다.
‘잔상처인데도 출혈이 심해.’
낭광병의 부작용도 고스란히 옮겨간 탓에 저열한 하수인의 육신으론 오래 견디질 못한다.
입술을 곱씹은 산시아가 하수인을 움직이려던 차였다.
들썩.
돌연 땅에서 손가락이 솟구치더니, 스킨 워커의 발목을 휘어잡는다.
【크으으···!】
‘바닥에 숨어있었다고?’
순식간에 망자들이 스킨 워커를 에워쌌다. 지면에 매복하고 있던 시체만 다섯 구였다.
─캬아악!!
스킨 워커가 날카롭게 울부짖으며 날뛰었으나, 좀처럼 망자들을 떼어내지 못하고 허우적댔다.
면도날처럼 예리한 절삭력이 무언가 점성 가득한 것에 막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즉각 하수인의 발톱을 확인한 산시아의 표정이 구겨졌다.
‘진흙?’
발톱에는 부패한 살점과 질척거리는 흙이 엉겨 붙어 있었다. 땅속에 숨어있던 망자들은 그사이 연무장의 토양과 결부되어 변이를 일으킨 상태였다.
스킨 워커의 강점을 상쇄하는 결정타.
수세에 몰린 하수인은 점점 산시아의 명령조차 듣지 않고 마구잡이로 움직였다.
다급해진 산시아는 반대편의 스킨 워커에게로 의식을 집중했다.
‘이쪽을 도와라!’
주둥이를 치켜든 스킨 워커가 네 발로 질주했다.
‘이만한 속도라면 땅에서 솟구치더라도 무시하고 합류할 수 있을 거야.’
그런데 내달리던 스킨 워커의 머리 위에서 울려 퍼지는 기괴한 울음소리.
【끼리기긱─?】
‘구울.’
산시아의 심장이 철렁였다.
천장에서 뚝 떨어진 형체가 스킨 워커를 덮친다.
─캬아악!
【끼이이익!】
바닥에 거칠게 뒤엉킨 스킨 워커와 구울은 서로를 발톱으로 헤집으며 치열하게 몸싸움을 벌였다.
날렵한 체구의 구울은 견고한 시체들과는 다른 의미로 까다로웠다. 그 사이 시체들 2구가 들러붙는다.
산시아는 양쪽에서 밀려 들어오는 정보의 급류에 맥을 못 췄다.
‘이러다가 하수인을 둘 다 잃겠어.’
가뜩이나 피를 보고 광분한 하수인들을 동시에 통제하는 건 미숙한 사령술사에게 어려운 일이었다.
고민하던 산시아는 그나마 3구와 교전하는 하수인에게서 시야를 거두고, 망자들에게 포위당한 쪽으로 의식을 집중했다.
치열하게 맞붙은 와중에 겨우 한 구를 쓰러트렸어도, 스킨 워커는 망자들의 맹공에 전신이 온통 피범벅이었다.
‘이건 마력 소모가 심해서 쓰고 싶지 않았는데.’
그렇지만 이대로 스승님께 무력한 모습만 보여드리고 싶진 않다.
산시아는 자신의 손가락을 깨물곤, 저 너머 이어진 하수인을 향해 마력을 그러모았다.
“피로 새겨진 굴레를 받아들이나니. 숙명에 굴종하고···”
부글부글.
온몸에 낭자한 핏자국이 끓어오른다. 하수인은 전신을 휘감는 열기에 고양된 듯, 거세게 날뛴다.
산시아의 낭송이 극에 달했다.
“마지막 한 방울까지 태울지어다.”
혈액에 맺힌 기포가 새카맣게 변색한다. 스킨 워커가 울부짖자 덩달아 시체들의 몸에 묻어있던 핏물도 김을 일으키며 가열했다.
치이이익···!!
【그학? 그어어···.】
엉겁결에 스킨 워커의 피를 뒤집어썼던 망자들이 비틀거렸다. 진흙과 뒤섞인 육신은 더욱 빠르게 용해된다.
산시아가 단호히 의념을 흘려보냈다.
‘물어뜯어.’
스킨 워커는 무력화된 망자들을 도살했다.
마지막 남은 망자를 쓰러트리자, 스킨 워커가 나직이 울음을 흘렸다.
─우우우···.
갈팡질팡하던 하수인의 육신이 기울어졌다.
스킨 워커조차 혈액의 독성을 견디지 못하고 산화했다.
‘그래도 하수인 하나로 여섯 구를 잡았어.’
과도하게 신경을 기울인 탓에 머리가 지끈거렸지만, 나름의 성과에 주먹을 쥐었다.
남은 하수인의 시야로 돌아온 산시아는 문득 섬뜩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이쪽에 붙은 망자는 3구. 하지만 자신과 마찬가지로 스승님 쪽에 놓여있던 관은 10개였다.
산시아는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그럼 나머지 한 구는 어디 간 거지?”
그러자 대답이 곧바로 돌아왔다.
“사령술사의 힘은 하수인에게서 비롯됩니다. 하수인을 부리는 데 공을 들이는 것도 좋지만, 그렇다고 너무 매몰되어선 안 됩니다.”
횃불 아래, 토드가 미소짓고 있었다.
“왕이 잡히면 끝이죠. 더욱이 사령술사는 여타 마법사나 사제들과 달리, 일신을 보호할 수단이 많지 않습니다. 하수인의 시야에만 몰두하지 않고, 주변의 상황에도 귀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산시아.”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온 망자가 이빨을 들이밀고 있었다.
콰직.
구울이 스킨 워커의 목덜미를 물어뜯었다. 축 늘어진 하수인의 시야가 꺼지고, 산시아는 풀죽은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졌어요. 스승님.”
“왜 졌는지 생각해볼까요?”
토드의 물음에 곰곰이 생각해보던 제자가 입을 열었다.
“제 하수인 통제가 미숙했던 것 같아요. 이 녀석들이라면 금방 스승님을 찾아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토드가 손가락을 튕기자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해골 병사들이 스킨 워커들의 몸뚱이를 끌고 왔다.
“평범한 망자가 아니라, 당신의 방식대로 하수인을 고안해낸 건 훌륭한 시도였습니다.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도 속도가 빨라서, 저도 피해 다니느라 고생 좀 했습니다.”
토드의 너스레에 산시아가 미간을 좁혔다.
“하지만 제 하수인들은 스승님을 발견하지 못했어요. 어떻게 사전에 알고 피하신 거죠?”
토드는 제자의 손을 스킨 워커의 유해에 이끌었다.
산시아의 피로 발현된 탓에 죽은 피조물은 여전히 육신에 끓어오르는 듯한 미열이 남아 있었다.
“망자들이 산 자를 추적하는 원천은 체열입니다. 망자는 저해된 신체 기능으로 인해 오감이 떨어지지만, 피조물이 발산하는 체열만큼은 명확하게 인지할 수 있답니다.”
“아···.”
“반면 이 하수인은 어떤가요.”
걸어 다니는 시체의 육신은 싸늘했다.
“스승님께선 하수인들의 감각을 통해 제 하수인들을 탐지하셨군요.”
“게다가 늑대인간은 밤눈이 밝지만, 시야 반경이 좁습니다. 직선상의 거리는 멀리 볼 수 있지만, 좌우로 조금만 움직여도 사선에서 벗어나지요.”
“그건 미처 생각지 못했어요. 제 하수인의 특성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네요.”
토드는 빙긋 웃으며 시무룩해진 산시아를 다독였다.
“그래도 첫 시도치고 이 정도면 훌륭합니다. 경험의 미숙함은 반복해서 학습하면 그만이지요. 헌데 스킨 워커의 혈액에 마력을 주입하여 터뜨린 건 매우 인상 깊었습니다. 소리의 서에 실려있던 「확산성 맹독」이던가요?”
그래도 토드의 칭찬에 금세 화색이 돌았다.
“아, 네···! 거기에 스승님께서 시체 폭발을 구가할 때 사용하시던 방식을 참고했어요. 어떻게 하면 스승님의 매복에서 하수인을 구해낼 수 있을지 고민해보다가, 출혈이 너무 심해져서 차라리 다수를 폭사시키는 판단을 내렸고요.”
맹독 계열 빌드라. 그라워볼프의 혈통 탓에 선천적으로 피의 업이 축적된 산시아에겐 적절한 육성 방식일지도 모른다.
“훌륭한 응용력이었습니다. 다만 마력을 너무 과도하게 투자해서, 하수인조차 견디지 못하고 동귀어진을 하더군요.”
산시아가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실전에선 처음 사용해본 주문이라···. 너무 힘을 줬나 봐요.”
“마력은 신중하게 응용해야 합니다. 자칫 주문에 마력을 과소비하면 남은 하수인들을 유지할 여력조차 떨어지니, 섬세하게 분배할 필요가 있지요.”
“더 정진하겠습니다. 스승님.”
턱을 기울이던 토드가 덧붙였다.
“앞으로도 맹독과 관련된 주문들을 접목시킬 생각이라면 488쪽에 시신의 부패와 산성에 대한 구결들이 적혀 있습니다. 너무 오래 원서를 들여다보면 피곤할 테니, 틈틈이 필사해서 공부해보세요. 마력 안배와 핵심 주문들을 익히는 데 도움이 될 겁니다.”
“네! 감사합니다. 스승님.”
산시아는 의욕에 찬 목소리로 대꾸했다.
토드는 흐뭇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자신의 제자를 돌아봤다.
‘모든 빌드를 내가 익힐 수는 없어. 소리의 서는 나 혼자서 해독하기엔 내용이 방대하지.’
어머니가 하사하는 은혜는 한정되어있다. 자신이 걷지 못하는 길을 산시아가 향한다면, 사령술 연구에도 도움이 된다.
토드는 산시아에게서 새어 들어오는 눈물의 업을 감지했다.
‘비단 망자뿐만 아니라, 산 자에게서도 눈물의 업을 얻을 수 있을 줄은.’
피가 청산되어야 할 원한이나 죄업과 관련 있다면, 눈물은 소망이나 숙원과 엮여 있는 것으로 추측했다.
산시아에게서 얻는 업은 아마 그녀가 자신의 제자, 흑색 학파의 일원이기에 그런 걸지도 모른다.
‘어머니께서 제자를 들이면 내 성취도 높아질 거라 말씀하신 게 이것 때문이었나.’
제자, 혹은 추종자 메커니즘이 이런 식으로 작동하는 거라면 흑색 학파를 일종의 다단계로 생각해볼 수도 있었다.
휘하 구성원이나 지지자가 늘어날수록, 학파의 정점에 있는 토드의 전력에도 도움이 된다.
‘···성채가 완성되면, 본격적으로 학파의 구성원을 더 들일 수도 있겠지.’
흑색 학파의 장밋빛 미래를 구상하던 중, 산시아가 입을 열었다.
“그런데 스승님. 차라리 저도 스승님처럼 개체 수를 늘려서 다수의 하수인을 운용하는 게 나을까요?”
“음?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소수의 하수인에게만 공을 들여 통제하려니, 너무 효율이 떨어지는 것 같아서요. 차라리 스승님처럼 하수인에게 개별적인 기동은 자율적으로 맡기고, 저는 큰 흐름만 조율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제자의 물음에 토드가 웃음을 터뜨렸다.
“당신에겐 제가 하수인을 다루는 게 그렇게 비친 모양이군요.”
그는 선명한 미소를 띤 채로 대꾸했다.
“안타깝게도 하위 망자들은 스스로 움직이는 태엽 인형처럼 편리한 존재가 아닙니다. 그들은 의식이 옅은 잔재이기에, 사역자의 지시가 필요하답니다.”
토드의 말을 헤아리던 산시아의 표정이 굳었다.
“네···?”
제자의 머리를 쓰다듬은 토드가 어깨를 으쓱였다.
“망자는 기본적인 기량만 놓고 보면, 엄밀히 산 자에 비해 떨어지죠. 둔한 움직임, 유연하지 못한 반응성, 이 모든 걸 사령술사의 판단력으로 극복하는 겁니다.”
자신은 고작 두 기의 하수인을 조종하는 것만으로도 애를 먹었다.
“그럼 지금, 성채를 짓고 있는 망자들은, 스승님이 지시한 명령을 반복적으로 수행하는 게 아니라···”
“제가 한시라도 통제를 풀었다간, 비싼 돈 주고 데려온 드워프들이 물어뜯기겠죠? 그걸로도 모자라 이곳을 벗어나 주변에 있는 마을로 난동을 피우러 갈 테고요.”
대련하는 와중에, 지상에 있는 수백의 망자들까지 통제하고 있었다는 뜻이 아닌가.
그제야 격차를 체감한 산시아는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저도 스승님께 처음 배울 땐 죽은 생쥐나 바퀴벌레 따위를 여러 마리 조종하면서 시작했답니다. 생각보다 어렵지 않아요.”
‘나 때는 이렇게 제대로 된 송장도 없었고, 동물이나 곤충 사체로 배웠는데. 암.’
스승은 경악하는 제자를 향해 씨익 웃었다.
“그래도 스킨 워커면 나름대로 통제가 까다로운 망자인데, 두 기를 조종할 정도면 나쁘지 않습니다. 차근차근 망자를 늘려가면서 조종을 익혀보세요.”
“···하수인 조종에 대해 조언해주는 구절은 없나요?”
토드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건 답이 없습니다. 꾸준히 노력해야 합니다. 때론 졸도하고, 마력을 탕진해서 통제권을 상실한 자기 하수인에게 쫓기기도 하면서 감각을 익혀야지요.”
아무리 맹독 빌드라도 근간은 사령술.
결국 하수인 개체 수를 충분히 확보해야 유연한 운용이 가능해진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스승님···.”
연무장을 빠져나온 토드는 축적된 업을 헤아리다가, 고개를 기울였다.
‘그러고 보니 요즘 피의 업이 꾸준하게 쌓였단 말이야.’
산시아에게서 눈물의 업은 일부 수급한다 쳐도, 대체 피의 업은 어디서 들어오는 거지?
산시아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짙고, 다량이다. 이스라가 학살을 벌였을 때와 맞먹을 정도의 수확이다.
문득 목 주변께를 습관적으로 어루만지던 토드는 허전함을 느꼈다.
‘아, 목걸이를 라노가 가져갔지.’
사령술사의 눈이 가늘어졌다.
마침 고유 주문과 관련하여 오드람에게 물어볼 것도 있는 참이라, 방으로 돌아와 넋의 거울 앞에 섰다.
거울의 표면이 일렁이고, 세상이 뒤집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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