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necromancer in a fantasy game RAW novel - Chapter 131
131
“함정이 분명해요. 여태껏 대공의 마수가 닿았던 곳들을 생각해보세요. 쾨흘링, 에다리크, 판가우, 전부요.”
산시아의 목소리엔 대공을 향한 적개심이 묻어났다.
“이번엔 뫼를렌푸르트에서 황소대공이 무슨 일을 꾸미는지 몰라도, 이런 하찮은 수작에 저희가 호응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그렇다고 대공의 움직임을 묵인할 순 없습니다. 그는 수하에 흑마법사들을 두고 있지요. 자칫 뫼를렌푸르트에서 동일한 참극이 발생한다면 규모가 걷잡을 수 없을 겁니다.”
이미 요른카리에선 무저갱의 투사가 소환되었다. 흑마법사 놈들이 붙은 이상, 다량의 인명 손실이나 재해는 가급적 방지해야만 한다.
가뜩이나 뫼를렌푸르트는 북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인구 밀집도가 높은 대도시.
더한 놈이 튀어나올지도 모를 일이었다.
“정말 대공이 제국 권역령에서 그런 짓을 벌일까요? 자신의 정치적 입지에 악영향이 미치는 걸 무릅쓰면서요.”
“대공은 교활한 책략가입니다. 그는 제국을 통치하길 원하지요. 피로 군림하는 게 얼마나 성가신 일인지 잘 알 겁니다.”
토드는 반으로 갈라진 봉랍을 응시했다.
네 발로 땅을 단단히 디딘 황소의 형상.
완고해 보이는 문양과 달리, 하는 짓거리들은 뱀과 같은 사내.
“그는 차기 황권을 노리고 있는 만큼, 오히려 자유시 하나 정도는 악마의 주둥이에 던져줄 의향이 있을지도 모르죠.”
산시아가 표정을 찡그렸다.
“황위를 노리는 자가, 제국민들의 목숨을 마귀들에게 던져준다고요? 앞뒤가 맞지 않는 것 같아요.”
“자신이 거병할 명분을 만들려는 겁니다. 잘 생각해보세요. 산시아. 뫼를렌푸르트가 마경으로 전락하면, 누가 가장 타격을 입을까요?”
“그야, 당연히 황소대공 아닌가요? 사람들도 바보가 아닌 이상, 그가 배후에 있다는 걸 모두 알고 있으니···.”
토드는 고개를 저었다.
“안타깝게도 모두가 그 사실을 알진 못합니다. 산시아. 대공이 오래전부터 당신의 가문에 마수를 뻗쳤음에도, 여태껏 한 번도 이단으로 고발당하지 않았다는 게 방증입니다.”
“어떻게 그걸 모를 수 있을까요? 아무리 변방에서 벌어진 일들이라 하더라도, 목격한 증인들이 널렸고, 이미 증언을 한 자들도 많았는데요.”
토드는 미소를 흘리며 자신의 손에 찬 반지를 가리켰다. 크뤼거가 자신을 셰우드 남작으로 봉하면서 내려준 직인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지위에 집착하는 거겠죠. 그런 무지렁이들이 쏟아내는 헛소리와 대공만 한 위치에 선 자들의 한마디는 무게가 다르니까요. 상대는 하층민들의 유언비어쯤이야 쉽게 무마시킬 힘이 있습니다.”
탄식한 산시아가 입술을 깨물었다.
“황소대공도 곁에 흑마법사들을 두는 위험 부담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을 가까이하는 이유는, 명분을 만들기 위함입니다.”
편지를 치운 토드는 탁자에 펼쳐진 제국 지도를 훑어내렸다.
“뫼를렌푸르트만한 도시가 파괴된다면, 자연히 사람들은 황실과 의회의 통치력에 의문을 품겠죠. 그렇지 않아도 제국이 내적으로 흔들리고 있는데, 악마까지 도래했다니 얼마나 흉흉한 소문들이 나돌겠습니까.”
“···그럼 대공은 자신이 흑마법사들을 부려 악마들을 강림시켜놓곤, 정작 그걸 자신이 퇴치하는 연극을 벌이겠다는 건가요?”
토드가 어깨를 으쓱였다.
“여태까지 벌인 일들은 아마 견적을 보기 위함이었겠죠. 적당한 파괴, 적당한 혼란. 그걸 수습하고 대의를 내세우는 영웅의 탄생.”
“그것만으로 정말 황소대공이 황위를 거머쥘 수 있을까요?”
“뫼를렌푸르트에서만 그런 일이 벌어지진 않을 겁니다. 아마 제국 도처에서 사교도들이 준동하겠죠. 뫼를렌푸르트를 빌미로 준동한 그가 성공적으로 제국의 혼란을 수습한다면··· 자연히 제국민들에게 자신이 지배자로서 걸맞다는 인상을 심어줄 수도 있을 겁니다.”
10년 가까이 은거하면서 누구보다도 제국의 동향에 신경 썼던 게 토드다. 그도 내심 제국의 혼란기를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획책하고 있다는 의심은 품고 있었다.
‘콘라트는 흑마법사들뿐만 아니라, 동시에 서부 대교구의 지지도 받고 있어. 게다가 라노까지 끼고 있는 마당에, 원한다면 정적들을 모조리 죽여가며 황제로 군림할 수도 있었을 거야.’
하지만 토드가 보기에 그는 찬탈자로서 황금 옥좌에 앉는 걸 원치 않았다.
자연히 민중들과 제후들에 의해 추대되어 그 자리에 오르는 것을 원한다.
자신이 여러 번 대공의 작업에 훼방을 놓았음에도, 그는 지속적으로 회유를 시도했다. 대공의 야심을 짐작할 수 있었다.
표정을 일그러트린 산시아가 중얼거렸다.
“그런 자가 황위에 앉는다면, 제국의 전망이 밝진 않을 거예요.”
“오, 그건 모르는 겁니다. 대개 자기주관이 철저한 이들은 중간이 없지요.”
토드는 느슨한 미소를 흘렸다.
“대공의 통치가 제국을 쇠락으로 몰고 갈 수도 있지만, 제국에 유례없는 치세를 가져다줄지도 모를 일입니다. 지금도 황소대공은 황실의 외척으로서 남부의 패권을 주름잡고 있으니, 황권만 거머쥔다면 통치자로서 결점이 없으니까요.”
“아무리 그래도, 흑마법사들과 결탁한 자가요?”
경악하는 산시아를 향해 토드가 읊조렸다.
“수렵제가 끝나면, 사냥개들은 쓸모가 없어지죠. 대공위의 무게는 왕관에 비할 바 못 됩니다. 제국 남부의 패권가로 군림할 때와는 달리, 모든 이들의 이목이 쏠리지요. 당연히 그도 세간의 시선을 의식해야 하니, 쓸모가 없어진 잔재들은 모두 쓸어낼 겁니다.”
머리가 복잡한지, 이마를 움켜쥔 산시아가 중얼거렸다.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워요. 흑마법사들도 그걸 모르는 건 아닐 텐데.”
“흑마법사들도 대공이 즉위하면 자신들이 위험해질 거라는 걸 당연히 알고 있을 겁니다. 그래도 당장은 자신들의 영향력 확충을 위해 협력하는 것일 테고요.”
이른바 적대적 공생 관계다.
흑마법사들은 악마를 강림하고, 추종자들을 확보하니 저들대로 좋고, 대공으로선 평판 작업을 위한 기반이 다져지는 셈이니까.
다만 호시탐탐 서로의 뒤통수를 향해 칼을 꽂기만을 기다리는 쪽이겠지.
산시아는 치를 떨었다.
“대공은 황좌를 두고 위험한 줄타기를 하는 거네요. 얼마나 많은 사람의 목숨이 오갈지는 신경도 쓰지 않고.”
“그러니 그 줄을 끊어버려야겠지요.”
토드의 단호한 대답에 산시아가 그를 넌지시 응시했다.
“이제 스승님께선 어엿한 봉역도 획득하셨고, 자신만의 성채도 구축하셨지만, 대공에 필적하기엔 한없이 미약하세요. 그럼에도 대공에게 대적하시려는 건가요?”
토드는 깍지를 낀 채 되물었다.
“그러는 당신은 어떻습니까? 산시아.”
이를 갈던 제자는 나직이 속삭였다.
“···저는 그자를 용서할 수 없어요. 제 저주를 빌미로 가문에 접근했고, 모든 일을 초래한 원흉이니까요.”
그녀를 헤아리던 사령술사가 뇌까렸다.
“콘라트는 악마들의 위험성을 간과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명성을 위해 수천의 영혼을 무저갱과 거래하려는 건 흑색 학파의 일원으로서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일입니다.”
편지 봉투를 갈무리한 토드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우선 장례식 이후, 제국 회의 공고까지 시일이 있을 겁니다. 그동안 수련에 정진합시다.”
“네. 스승님.”
토드는 미간을 좁히고 방문 너머를 응시했다.
“이 서신을 가져온 게 저 하녀라고 했었죠.”
“예.”
“신뢰할 수 있겠습니까?”
“한나는 어려서부터 줄곧 제 곁에서 저를 보필해온 아이예요. 스승님께 누를 끼치는 일이 없도록, 제가 잘 지켜볼게요.”
토드를 마주 보던 산시아는 낮게 중얼거렸다.
“···만일 방해가 된다면,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두 사령술사의 눈동자에 옅은 초록빛이 일렁였다. 토드가 미소 지었다.
“현명하게 판단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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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 중인 네크로폴리스에서 한나가 하는 일이라곤 물 주전자를 들고 산시아를 졸졸 따라다니거나, 망자들을 보곤 까무러치는 게 다였다.
며칠간 갈피를 못 잡고 헤매는가 싶더니, 어느 날 하녀가 자청해서 토드를 찾아왔다.
“그으, 사령술사니임.”
“왜 그러십니까? 바우어 양.”
치맛자락을 매만지던 한나는 자신의 볼을 긁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짓고 계신 성채가 훌륭하긴 하신데요··· 마땅히 주방이나 식자재를 보관할 공간이 없어서 제대로 된 요리를 대접하기가 어려운 것 같습니다.”
“그랬습니까? 여태 바우어 양이 훌륭하게 식사를 차려주신 덕에 미처 몰랐군요.”
그러고 보니 성채를 설계할 때, 살아있는 인간의 편의 시설이나 하인들을 안배한 공간을 구상해놓지 않았다.
사령술사답게 오로지 시체들을 보관할 영안실의 습도나 화장터의 통풍은 원활한지, 납골당을 위해 볕이 들지 않는 부지만 고려하다가 벌어진 사태였다.
토드가 혀를 찼다.
“제 실책이군요. 그럼 여태껏 요리는 어떻게 하신 겁니까?”
“아, 그동안은 얄마르 씨와 아이길 씨가 도와준 덕에 불을 피워놓지 않고 훈연으로 조리할 수 있었습니다.”
생글거리는 한나를 향해 토드가 고개를 기울였다.
“얄마르? 아이길? 졸데르기 출신의 두 병사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제가 고향은 못 들었지만, 얄마르 씨는 턱뼈가 어긋나신 분이고, 아이길 씨는 두개골에 금이 살짝 가신 분이십니다. 성채에선 불을 피우면 안 되니, 저녁을 앞두고 애를 먹고 있었는데, 마침 두 분이 지나가시다가 저를 도와주셨습니다.”
“그간 망자들을 두려워하시더니, 도움까지 받으실 줄은 몰랐군요.”
한나는 머쓱한 표정으로 답했다.
“겉보기에만 무섭지, 자상하셨습니다. 두 분 다 과묵하신 줄 알았는데 말문이 트이니 어눌하지만, 말씀도 곧잘 하십니다.”
망자들은 성대를 통해 말을 하지 않는다.
이스라나 마르커스와 같은 고위 망자들처럼 혼의 울림을 흘려보내는 것이다.
자아가 너무 약하거나, 일전에 카타콤에 있던 추기경의 유해처럼 신체 부위가 부족할 경우 뼈마디 부딪치는 소리만 내거나, 귀곡성을 내지르는 게 전부.
토드가 기억하기로 해골 병사 중에 발화 특성을 붙여준 개체는 없다.
사령술사는 묘한 미소를 흘렸다.
“바우어 양의 건의 사항은 받아들이겠습니다. 아직 내성 시설은 한창 건설 중이니, 가우트리트더러 설계에 약간 수정을 부탁하면 될 것 같습니다.”
“아, 넵! 감사합니다!”
“그리고 산시아는 연무장으로 불러주세요.”
납골당, 영안실, 화장터를 비롯해 토드가 설계 초부터 구상해놓은 공간들에는 연무장도 포함되어 있었다.
토드는 수납장에 향로와 서리 반지를 풀어놓으며 말했다.
“바우어 양에게 사령술의 소질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 말에 산시아는 당황한 기색이었다.
“네? 한나가요?”
“망자의 말을 듣더군요. 도움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통성명도 나누고 때론 이야기도 했답니다.”
수납장을 닫은 토드가 너스레를 떨었다.
“원래 친화력이 좋은 성격입니까?”
“하인들과 두루두루 친하게 지내는 편이긴 했는데, 설마 망자들과도 그러리라곤.”
방울을 풀어헤친 산시아는 헛웃음을 흘렸다.
“그럼 그 아이도 일원으로 받아들이는 건가요?”
이에 토드는 어깨를 으쓱였다.
“글쎄요. 마력에 자질이 없어서 한계는 명확해 보입니다. 일단 미약한 가능성만 있다고 해두겠습니다.”
···사실 저런 경우는 하인으로서 삼기에 더 적합하다. 일단 망자와 통한다는 것은 영안이 선천적으로 발현되었다는 뜻인데, 소생 시 고위 망자로 거듭날 가능성이 높다.
이스라처럼 오히려 망자로 일어났을 시, 생전의 한계를 깨고 만개할 수도 있다는 뜻.
‘그렇다고 당장 일부러 죽일 필요는 없지.’
요 며칠 토드는 한나가 차려준 생선구이에 만족하던 참이었다. 알레상 강의 지류라 그런지, 봄철 민물고기의 맛이 일품이다.
망자가 되면 미각이 없어지니 쓸만한 요리사를 잃는 건 큰 손실이다.
“자, 산시아. 그간 소리의 서를 필사하며 흑색 학파의 교리와 기초적인 이론에 대해선 파악했으니, 오늘은 하수인 운용을 본격적으로 해봅시다.”
손뼉을 친 토드가 주변을 가리켰다.
“여긴 모의 대련을 행하기 위해 고안된 공간입니다. 당신 앞에 마련된 관이 보이시죠?”
관에서 흘러나오는 역한 액취에 산시아가 미묘하게 얼굴을 구겼다.
“네. 이건 송장 박피기로 처리하지 않은 시신들이네요.”
“라즐씨에게 부탁하여 판가우에서 수급한 사형수들의 시신입니다. 부패가 진행되지 않았으니 교보재로 활용하기에 적합하죠.”
토드는 천천히 물러서며 속삭였다.
“관에 담긴 시신은 10구입니다. 제가 향할 반대편 위치에도 동일한 수가 놓여있습니다.”
드넓게 구축한 연무장은 깊은 지하에 있어, 한기와 어둠이 짙게 서려 있었다. 마력을 통해 유지되는 횃불 특유의 녹색 불빛만이 일대를 음산하게 밝힌다.
“규칙은 간단합니다. 오로지 하수인만을 조종하여 상대방의 기권을 받아내는 겁니다. 이 모의 대련을 통해 하수인 조종 기술을 배양하고, 사령술을 활용할 수 있는 방도를 직접 고민할 수 있습니다.”
설명을 전해 들은 산시아가 물었다.
“···제가 알고 있는 권능을, 하수인에게만 사용해도 되는 건가요.”
어둠 속에서 토드의 눈동자가 번뜩였다.
“그렇습니다. 그간 얼마나 잘 배웠는지 보겠습니다.”
산시아는 관을 향해 손을 뻗었다.
“부디, 실망시키지 않을게요. 스승님.”
가늘어진 눈동자에서 연녹색 휘광이 튀었다. 그녀가 단호하게 손을 휘젓자, 관이 일제히 들썩였다.
“내가 그대를 부르노라. 그믐달을 거니는 영락자들아.”
콰직!! 콰악!!
관을 부수고 튀어나온 망자들은 서로를 물어뜯더니, 섭식을 거듭하던 형체들이 뒤엉키며 육중한 형태로 자라났다.
─크르릉···!!
두 기의 스킨 워커는 번들거리는 독니에서 침을 뚝뚝 떨구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거칠어진 숨을 가다듬은 산시아는 어둠 너머를 응시했다.
저 너머에 계실 스승님에게, 자신의 성취를 보여주고 싶었다.
“가서, 찾아라.”
제자의 명령에 늑대인간들이 내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