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necromancer in a fantasy game RAW novel - Chapter 130
130
망자들 사이에 끼어있는 갈색 머리 하녀.
그녀는 애써 주눅 들지 않고 당당한 행세를 하려 했으나, 무심코 해골 병사와 눈이 마주쳤다.
“히익···!”
특유의 허파 빠지는 듯한 소리에 토드는 실소를 참지 못했다.
심호흡을 몇 차례 거듭하던 하녀는 한결 진정된 모습으로 토드와 마주했다.
“저희, 구면이지요. 아가씨.”
“아··· 네! 그렇죠. 전 한나 바우어라고 합니닷!”
씩씩한 목소리로 대꾸하던 하녀는 끝에 가서 혀를 깨물었다. 어떻게든 얼굴을 일그러트리지 않으려다가 입을 부여잡고 울상을 짓는데, 재밌는 사람이다.
“그, 그리고 전 아가씨라 불릴만한 신분이 아니니, 존칭은 붙여주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토드가 빙긋 웃었다.
“알겠습니다. 바우어 양. 헌데 여기서 일을 하고 싶으시다고요?”
“그렇습니다.”
하녀에게서 마력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는다. 업도 상대적으로 희미하다.
손이 거친 것으로 보아 조금 억척스러운 생애를 살아온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겠으나, 활발한 인상이라는 것 외에 특이한 점은 없다.
옆에 앉아 있던 파멸의 기사가 넌지시 속삭였다.
【수상하군.】
“수상한 구석이 있나요? 지극히 평범해 보입니다만.”
이스라는 안광을 좁히며 읊조렸다.
【기사도 전집에 따르면 첩자들은 평범함을 가장하여 방문하기 마련이네. 인상이 약할수록 상대의 뇌리에 잘 각인되지 않으니, 침투에 최적화된 인재인 셈이지!】
“이스라, 죄송하지만 목소리가 너무 큽니다. 다 들릴 텐데요.”
【들으라고 하는 소리일세.】
파멸의 기사가 흘리는 기세에 하녀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헛기침한 토드는 이스라를 자중시켰다.
“···보시다시피 여긴 아직 완공되지 않은 성채입니다. 제가 따로 사람을 구한다는 공고를 낸 적도 없었던 것 같은데, 여긴 어떻게 찾아오신 겁니까?”
이스라가 미약하게 흩뿌리는 기세에 짓눌릴 법도 한데, 하녀는 꿋꿋하게 입을 열었다.
“알레상 강을 오가는 뗏목꾼들 사이에 소문이 자자했습니다. 북쪽 지류에서 죽은 자들이 성을 짓고 있는 걸 본 사람이 한둘이 아니라고요. 그래서 분명 사령술사님이 여기 계실 거라 확신하고 찾아온 겁니다!”
평범한 인간이 망자에게 두려움을 느끼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물며 그런 존재들이 득시글거리는 소굴에 발을 디디는 것만으로도 적지 않은 결단이 필요할 터.
본연적인 공포를 이겨내면서까지 여기까지 찾아온 저의가 뭘까.
토드가 강렬한 호기심을 느낀 와중, 이스라가 중얼거렸다.
【알고도 죽은 자들의 성채로 찾아온 게 아닌가? 목숨이 아깝다면 얼씬도 하지 않았을 텐데 말이야. 토드, 역시 제정신이 아닌 게 틀림없네.】
울컥한 하녀가 항변했다.
“죄송하지만, 전 미친 게 아닙니다! 비록 다른 사람들도 제가 여길 찾아가겠다고 하니, 그런 소리를 하긴 했으면서도···”
어깨를 들썩이던 토드는 깍지를 낀 채 대꾸했다.
“엄밀히 말씀드리자면, 살아있는 사람이 일하겠다고 찾아온 건 바우어 양이 처음입니다. 오랫동안 그라워볼프 가문에서 하녀로 근무하셨죠?”
“그, 그렇습니다.”
“그럼 그 경력을 살린다면 얼마든지 다른 가문이나 도시에서 일거리를 구할 수도 있으실 텐데, 굳이 네크로폴리스를 찾아오신 연유가 궁금하군요.”
입술을 깨문 하녀는 토드를 응시했다.
“변경백의 병사들에게서 사령술사님이 산시아 아가씨를 데려갔다고 들었습니다. 동이 트기도 전에 떠나셔서 미처 작별 인사도 드리지 못했고요.”
“산시아라면 잘 지내고 있습니다. 바우어 양이 원하신다면 만나게 해드릴 수도 있습니다.”
그 말에 하녀는 안도하면서도, 양손을 꽉 쥔 채 답했다.
“그건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치만, 전 아가씨를 만나 뵈러만 온 게 아니라, 아가씨를 모시기 위해 온 겁니다.”
토드는 의아한 투로 되물었다.
“제가 보아온 바로, 산시아에게 딱히 시중이 필요해 보이진 않은 것 같던데요. 산시아는 저의 제자로서 동행하며 부족함 없이 처신해왔습니다.”
하녀의 동공이 세차게 흔들렸지만, 그녀는 표정을 가다듬고 대꾸했다.
“하지만 아가씨께선 여태껏 시중들의 손길을 받으며 자라신 분이십니다. 아가씨는 워낙 사려 깊으신 분이라, 분명 사령술사님께 말씀드리지 못한 생활상의 고충이 많았을 겁니다!”
일리가 있는 말이긴 하다. 공작가에서 금지옥엽처럼 자라난 영애가 여태까지의 여정을 따라오기엔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가슴팍에 손을 올린 하녀는 당차게 말을 이어나갔다.
“제가 곁에서 보필해드리면 불편함 없이 지내실 수 있습니다. 비단 아가씨뿐만 아니라, 사령술사님도요.”
토드가 주변을 가리켰다.
“흠, 보시다시피 이곳은 따로 살아있는 고용인이 없습니다. 대부분이 제 하수인들이지요.”
해골 병사들이 특성을 받은 뒤로 건설 현장은 부쩍 활기를 띠었다.
느릿느릿 걸어가던 시체들과 달리, 해골들은 자재를 들고 뛰어다니며, 끌로 석재를 다듬고, 도르래를 당기는 등의 섬세한 동작도 자유자재로 해냈다.
비록 입을 여는 이는 없어, 온통 먼지와 공사장의 소음뿐이었지만.
“저로선 바우어 양이 이곳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이 생각나지 않는군요.”
이미 반절 가까이 완성된 네크로폴리스는 점차 사령술사들의 성채로서 위엄을 갖춰가고 있었다. 거기에 200구가 넘는 망자들이 일제히 연장을 들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건 기묘하면서 장엄한 광경이었다.
이를 멍하니 지켜보던 하녀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탁자에 마련된 잔을 가리켰다.
“시, 시체들이 차를 달여올 수 있나요?”
잔에는 단출하게 물만 담겨 있다.
“···못하죠.”
망자는 맛을 느끼지 못한다. 죽은 자가 인간의 가호에 적합한 차를 끓이는 건 불가능했다.
“앞으로 사령술사님이 성채를 세우시면 어찌 됐든 손님들이 가끔 찾아오기도 할 텐데, 이렇게 덜렁 물만 대접해드릴 순 없다고 생각합니다!”
“술을 내어드리면 되지 않을까요. 병을 따고, 따르기만 하면 그만이니까요.”
“술을 드시지 못하거나, 용무 상 마다하시는 분이라면요.”
이 하녀, 말발이 만만치 않다.
토드의 입가가 휘어졌다.
“일리가 있군요.”
“듣기론 사령술사님이 최근에 남작위를 받았다고 들으셨습니다. 앞으로 제후로서 기반을 다지실 거라면 손님 대접에서 부족함이 없어야 사령술사님의 위엄도 바로 설 거라 생각합니다!”
이스라가 재빨리 속삭였다.
【속지 말게. 토드. 저래놓곤 자네 찻잔에 독을 탈지도 모를 일이지 않나.】
“걱정 마세요. 이스라. 제게 어지간한 독극물은 무해합니다.”
【뒤에서 침이라도 뱉으면 어쩌려고 그러나···!】
음, 그건 좀.
토드가 미간을 찌푸리자 하녀가 말했다.
“그리고 전 요리도 할 수 있습니다. 적어도 산시아 아가씨의 가호에 맞는 음식들은 자신 있는 편입니다!”
조금 솔깃한 대목이었다.
여태껏 여정 중 요리를 담당했던 건 피에트였는데, 그가 이탈한 뒤론 건조된 육포를 씹거나, 솥에 끓인 잡탕찌개가 일행의 주식이었다.
일행 중 살아있는 사람은 토드와 산시아뿐이었는데, 둘 다 요리에 썩 능하다고 보기엔 어려웠다.
“안타깝지만, 현재로선 성채를 건설하는데 모든 재정을 기울이고 있는지라, 바우어 양의 보수를 지급할 여력이 없습니다. 아마 당분간은 무급으로 일하셔야 할 텐데요.”
“괜찮습니다! 곁에서 산시아 아가씨를 모실 수 있다면 그걸로 좋습니다.”
토드가 미간을 좁힌 채로 속삭였다.
“엄밀히 산시아는 흑색 학파의 일원으로서 그라워볼프 가문의 지위를 포기했습니다. 이에 따라 당신에겐 더 이상 산시아를 위해 봉사할 의무도, 그녀를 따름으로써 얻을 재산도 없고요.”
하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토드는 추궁을 이어나갔다.
“엄밀히 산시아는 이제 당신과 동등한 처지인 겁니다. 그럼에도 당신은 그녀를 위해 죽은 자들로 가득한 곳에서 일하겠다고요?”
그녀의 눈빛이 사뭇 결연해졌다.
“···상관없습니다. 비록 그라워볼프 가문마저 이젠 사라졌더라도, 제 사명감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제게 산시아 아가씨는 여전히 아가씨이십니다.”
오호. 토드가 미소를 흘렸다.
“아가씨께서 새로운 신분을 받아들이셨다 한들, 전 제 책무를 다하고 싶습니다. 부디! 부탁드립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하녀는 힘차게 고개를 숙였는데 쾅, 요란한 소리와 함께 탁자에 머리를 박았다.
“크아앗···!”
다소 어설프지만, 충직한 하인이다.
어깨를 들썩이던 토드가 그녀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크흠, 흠. 네크로폴리스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한나 바우어.”
머리를 문지르던 하녀는 얼떨결에 토드와 손을 맞잡았다.
“가, 감사합니다.”
황급히 손을 내뺀 한나는 뒤에 놓여있던 짐가방을 가리켰다.
“그럼 바로 아가씨를 만나 뵈러 가도 되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저 해골을 따라가세요.”
그녀는 제법 무거워 보이는 가방을 양손에 들고는, 씩씩하게 망자를 따라갔다.
지나가는 길목에서 하수인들을 마주칠 때마다 숨을 들이켰지만, 그래도 짐가방만은 놓치지 않고 곧잘 따라가는 모습이었다.
이스라는 영 못마땅한 눈초리로 중얼거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수상하네.】
“···사실 저도 그렇게 생각하긴 합니다.”
【아니! 그럼 왜 들여보낸 건가?】
토드는 어깨를 으쓱였다.
“어차피 네크로폴리스는 모든 공간에 제 안배가 미친 곳입니다. 수작질을 벌였다간, 즉각 발각되겠죠.”
【굳이 그런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누가, 어떤 의도를 품고 보낸 첩자일 지도 모를 일이거늘.】
사령술사가 은밀히 입술을 훑었다.
“첩자라면, 망자로 일으켜 추궁해보면 되겠지요. 그러니 너무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일단 저 하녀는 어떠한 기예도 익히지 못한 인간입니다.”
망자의 시야 너머를 훑어보니 산시아는 돌연 안겨든 한나 탓에 당황한 눈치였다. 하녀가 눈물을 글썽이니 오히려 산시아가 그녀를 다독여주는 꼴이었다.
토드는 거기서 통찰을 거둬들였다.
“그런 것치곤 이스라, 경계를 지나치게 하시던데요.”
【안일함이 위험을 낳는 법이네.】
“혹시 제가 놓친 부분이라도 있습니까? 아무리 살펴봐도 내재된 위험성은 없는 것 같던데요.”
토드를 쏘아보던 파멸의 기사가 낮게 중얼거렸다.
【자네, 그 계집을 볼 때마다 아주 입꼬리가 귀에 걸린 것 같더군.】
“그랬나요? 그야, 행동가지 하나하나가 웃기지 않습니까.”
【만일 허술함이 고도의 기만책이라면!】
“그게 연기였다면 기립 박수를 보낼 의향이 있습니다. 그랬다면 바우어 양은 희극인으로서 재능을 낭비하는 걸지도 모르지요.”
이스라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역시 자네는 아무것도 모르네! 본인이 기필코 간악한 속내를 낱낱이 고발해내지! 정의는 언제나 승리하기 마련!】
그러면서 파멸의 기사는 회랑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이스라가 이토록 날 선 반응을 보이는 것도 이해는 간다. 아무래도 자신이 그녀를 네크로폴리스의 수비대장으로 임명했으니, 책무나 의무 따위에 집착하는 그녀의 기질이 발휘된 탓이리라.
‘···일단 두고 볼 일이지.’
토드는 신경을 거두고, 오롯이 성채 건설에만 집중했다.
///
연신 부은 눈가를 문지르던 한나가 입을 열었다.
“···그래서, 아가씨. 정말 그 사령술사의 제자가 되신 거라고요?”
여태까지의 자초지종을 들은 한나는 도무지 믿기 어려운 눈빛이었다.
“응.”
“하지만···! 그 사령술사는 아가씨의 원수잖아요. 그라워볼프 가문이 몰락한 건.”
산시아는 단호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한나. 가문의 파멸을 자초한 건 아버지뿐만 아니라, 선대부터 쌓은 죄업이었어. 너도 그간 여관에서 지내면서 들은 이야기들이 있을 거 아니니.”
크뤼거의 공표로 인해 동부 일대에는 이리공이 저지른 악행이 낱낱이 알려져 있었다.
“그건 변경백이 퍼뜨린 소문이 아닐까요? 믿기 어렵습니다. 그라워볼프 가문의 기사들이 사람들을 죽이고, 제물로 바쳤다니···”
“너도 성을 드나드는 사교도들을 보았잖니. 너가 날 데리러 왔을 때, 성안에 쌓여있던 제단도 그렇고.”
그날의 기억을 떠올린 한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봤지요. 정말 끔찍했습니다. 그게 사령술사가 아니라, 주인 어르신께서 데려온 자들이 벌인 짓이라곤, 보고도 믿기 어려웠습니다.”
산시아는 한나의 눈앞에서 소매를 걷어붙였다.
“아, 아가씨. 병세가···?”
“그간 무수한 사람들이 내 병을 고치러 성채를 드나들었지만, 더 악화시킬 뿐이었어. 이건 가문에 피로 내려오는 저주야. 내가 씻어내야 할, 그라워볼프 가문의 죄악이고.”
누구보다도 곁에서 산시아를 오랫동안 지켜봤던 한나기에, 기괴하게 뒤틀린 흔적 없이 말끔해진 팔이 감격스러웠다.
“정말 그 사령술사가 아가씨의 병을 고쳐주신 거군요!”
쓴웃음을 흘린 산시아는 다시 소매를 내렸다.
“완전히 나은 건 아냐. 아직 난 더 수행이 필요하고, 배워야 할 것도 많고.”
새삼 한나가 불안해진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여긴 온통 죽은 것들뿐이던데, 아가씨는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난 이제 괜찮아. 계속 다루다 보니 익숙하기도 하고.”
【달그락.】
산시아의 손짓에 방을 지키던 해골 병사들이 고개를 치켜들었다. 토드가 그녀에게 호위 겸 일손으로 내려준 다섯 기의 정예병들이었다.
기겁한 한나가 산시아를 만류했다.
“어유, 그래도 이젠 제가 왔으니, 저것들은 치워달라고 하세요. 앞으로 아가씨는 제가 부족함 없이 모시겠습니다.”
사뭇 산시아는 걱정스러운 눈길로 한나를 바라봤다.
“너야말로 여기서 지낼 수 있을까. 나야 사령술의 길을 걷기에 익숙하지만, 네가···”
“염려 마세요! 아가씨! 아가씨도 그 병약한 몸으로 여태 잘 견디셨는데, 저라고 못 지낼까요. 저야 몸 건강한 것 빼곤 시체인걸요.”
“너무 무리하진 마.”
문득 자신의 품을 뒤적이던 한나는 조심스레 편지 봉투를 꺼내 들었다.
“그럼 아가씨, 계속 그 사령술사를 따르실 거라면, 이건 어떻게 할까요?”
편지 한가운데에 찍힌 봉랍은 황금빛에 가까운 황소 문양이었다.
저런 문양을 사용하는 제후는 제국에서도 한 명뿐.
‘황소대공 콘라트···.’
산시아의 얼굴이 서늘해졌다.
봉투를 받아든 산시아는 한나를 향해 물었다.
“한나, 넌 아직도 그라워볼프 가문에 충성하니?”
고개를 저은 한나가 단호하게 답했다.
“아뇨! 아가씨. 여덟 살 때 산에서 얼어 죽을 뻔한 천한 것을 구해주시고, 하인으로 거둬들여 주신 건 아가씨입니다. 저는 산시아 아가씨에게 충성합니다!”
한나의 어깨를 부여잡은 산시아가 나지막이 속삭였다.
“···난 네가 진심일 거라 믿어.”
마주 본 눈동자는 흔들림 없이 확고하다.
“네.”
몸을 일으킨 산시아가 편지를 둘러봤다.
“이 편지, 누구한테서 건네받은 거니?”
콘라트, 아버지에게 흑마술사들을 붙여준 장본인.
스승님, 동시에 자신의 적이다.
///
토드는 편지를 내려놓았다.
“···대공은 뫼를렌푸르트에서 당신과 만나고자 하는군요.”
“저를요?”
“예. 엘리아스, 당신 남동생의 처우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토드가 편지를 건네주자, 산시아는 빠르게 내용을 훑어내렸다.
얼굴을 찌푸린 그녀가 중얼거렸다.
“왜 하필 뫼를렌푸르트일까요?”
“뫼를렌푸르트는 콘라트의 권역에서 멀지 않은 도시입니다. 게다가 대도시에는 은밀히 회동할 만한 곳도 많고요.”
일찍이 동행한 바 있는 마법사, 카리나의 홍염 마탑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랬다면 자신의 영향력이 직접적으로 미치는 권역령 내의 도시를 고르지 않았을까요? 더욱이 뫼를렌푸르트는 자유시잖아요.”
토드가 미소를 흘렸다.
“아마 대공 정도의 정보력이라면 제도에서 들려오는 소식에도 귀가 밝을 겁니다. 조만간 자유시에서 개최될 일정도 있으니 겸사겸사 그곳을 고른 거겠죠.”
라이히슈타크, 소위 제국 의회는 정기적으로 제국 내의 자유 도시들을 순차적으로 돌며 개최된다.
보통 제국 의회에서 상정하는 안건이라면 하나밖에 없다.
산시아가 신음했다.
“황제 폐하의 임종이 머지않았군요.”
“예.”
여러 혼란기를 거친 이후, 제국은 황금 권좌를 공석으로 두지 않는 게 원칙.
‘대공이 날 부르고 있다.’
그것도 차기 황권을 두고 라이히슈타크가 개최될 도시에.
토드의 눈썹이 꿈틀거렸다.